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5
194. 양자 결연 3
지스와는 청건당의 교리를 진심으로 믿는 이였다. 그런 그에게 아자딘은 계시받은 자였으니, 아자딘이 교단을 접수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도 그의 눈엔 겸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과연 계시받은 자, 겸손하기도 하셔라.’
그렇게 감복했기에 지스와는 더더욱 모두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쳐라.”
천주로서는 당연히 아자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림스로운의 신체를 이용해 힘을 얻은 천주 입장에서 아예 그림스로운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아자딘의 존재는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거참.”
아자딘은 자신의 손에 들린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가볍게 던졌다. 아자딘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회전하는 곤봉이 아자딘에게 내밀어진 창들을 후려쳤다.
창대가 부러지고 꺾인다. 사람을 칠 때는 그 위력이 가감되는 그림스로운의 곤봉이지만 사물을 칠 때는 용서가 없다.
“어!?”
“크억?!”
창을 든 이들이 손에 전해지는 충격에 놀라 창을 떨어뜨렸다.
애초에 알현의 장에 들어올 때 비무장으로 옷까지 다 벗겨서 들여보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이들이 당황할 때 아자딘은 활에 활줄을 걸고 부러진 창대를 집어 들어 활에 걸었다.
깃도 날개도 없어서 멀리 발사되지는 않겠지만 실내에서 쏘기에는 충분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아자딘이 쏘면 천주를 꿰뚫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천주를 죽일 수는 없지. 브투마 국왕이 괜히 이자를 살려뒀겠어?’
청건당원들은 잠재적인 위협이다. 그 많은 이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브투마 국왕은 청건당을 인정해준 것이다.
아자딘이 여기서 천주를 죽이면 청건당 조직은 와해되고 말리라. 그래서 아자딘은 활줄에 창대를 건 상태로 경고했다.
“지금 즉시 병사들을 물리시지요. 교우들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 천주님.”
“네, 네놈, 지스와. 널 아디로프에 보냈다고 내게 이런 짓을….”
“그런 게 아닙니다, 천주님.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좌중을 물리고 저와 대화를 나누어볼까요?”
아자딘은 천주의 행동을 보며 실소했다.
천주가 원래부터 이렇게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을 텐데. 권력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인가?
지스와가 권력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교리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걸 적어도 그들을 다스리는 천주는 알아야 할 일 아닌가.
‘지스와도 자기 같은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날 필요 이상으로 경계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쯧.’
아자딘은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천주를 향해 창대를 날렸다.
“우선 왼쪽 귀!”
-퍼억!
아자딘이 발사한 창대가 발을 관통하자 곧이어 천주의 비명이 들렸다.
“처, 천주님!”
놀란 이들이 다가서려고 했지만 공중에서 춤추는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즉시 접근한 이의 턱을 후려갈겼다.
스스로 춤추는 곤봉이 사람을 때려 기절시키는 모습을 본 이들이 멈칫했다.
“어….”
“청천의 도를 행하고자 하는 이들은 들어라.”
아자딘은 당황하는 청건당원에게 외쳤다.
“나는 그림스로운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천주님에게 내린 첫 번째 계시에 더해서 그분을 보다 높은 경지로 전하고자 하시는 신의 사자로서 와 있으니 감히 계시를 접할 자격이 없는 자는 죽을 것이다.”
“하, 하지만 지금 당신이 천주님께 상처를 입혔잖아?!”
그사이 아자딘은 또 창대를 주워서 활로 쏘았다.
“오른쪽 귀!”
“크아아악!”
“지금의 상처는 성흔이로다. 천주께서 계시를 얻어 보다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한 상처이니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아자딘은 능청스럽게 그리 말하고 세 번째 창대를 집어 들었다.
“크악! 아, 알겠다! 알겠어! 모두 물러나라!”
천주는 아자딘이 자신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데 일부러 죽이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병사들을 물렸다.
“지스와도 물러나.”
“네? 저도 말입니까?”
“그래. 가서 혹시 병력이 더 몰려오는지 감시하고 내게 알려줘.”
아자딘은 감시역을 맡긴다는 핑계로 지스와까지 보냈다.
“큭…. 이제 됐냐?”
천주는 아자딘이 지스와까지 보내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후. 좋아.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군. 천주. 더 다치기 전에 이해해서 다행이야. 다음엔 귀 말고 어딜 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으으윽.”
“아, 우리 서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할까?”
아자딘은 천주가 있는 단 위로 올라가 발을 걷어보았다. 귀에서 피를 흘리는 미소년이 바닥에 쓰러진 채 비단으로 귀를 덮어 출혈을 억누르며 신음하고 있었다.
“천주 맞아? 대리인인가?”
“처, 천주 본인이 맞다. 이건 그림스로운의 영향으로….”
“당신 딸보다 어려 보이는데. 하지만 확실히 그림스로운의 권속은 맞는 것 같군.”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신탁을 받긴 했지만 그 체액을 몸에 들이지 않아 권속이 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이에 접근하니 천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림스로운의 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미안해. 내가 자꾸 말렸는데도 지스와는 너희 종교를 진짜로 믿고 있어서 말을 안 들어 처먹어.”
“…….”
“보시다시피 내가 그림스로운의 신체를 손에 넣은 건 사실인데 나는 전령일족이라 너희 교단엔 관심이 없어. 내가 관심 있는 건 전령일족의 반역자들이 나가 제국과 손잡고 코라사르 때처럼 브투마를 침공할 텐데 그걸 방지하는 거다.”
“정확히 뭘 원하는 거냐?”
“소개지의 백성들을 구제해줘. 그들에게 비를 피할 곳과 식량을 제공해줘라. 그리고 교단이 브투마 방어 작업에 물심양면으로 협력해주는 것?”
“그런 짓을 하면 얼마 못 버틴다. 공성전이 시작되면 교단에 비축해둔 식량이 빠르게 바닥을 드러낼 텐데…. 브투마 국왕이 우리 종교를 공인해주긴 했지만, 전쟁 중에 물자가 떨어져도 우리를 우선해서 지원해줄 것 같지는 않군.”
“글쎄? 지금도 여론 때문에 종교를 공인해준 거지 딱히 당신들 교리에 감복해서 그런 건 아닐걸? 그런데 브투마 방어에 헌신한 당신들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여론은 더더욱 당신들 편일 텐데?”
“이해를 못 하는군.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 되면 폭주하게 된다.”
“폭주한다고?”
아자딘은 깜짝 놀랐다. 그의 뇌리에 아디로프 남작령에서 일어났던 폭주 사태가 떠오른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 오염되지 않은 비약을 먹은 청건당원들도 먹을 게 부실해서 생명에 위협이 느껴지면 폭주해 사람을 잡아먹는다.”
“…뭘 먹인 거야, 대체. 사람들을 그런 괴물로 만들다니.”
“학질과 열병에 고통받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네놈은… 북방 출신으로 보이는데 이상하게 풍토병에 시달리지 않았나 보군.”
“뭐, 모기에 안 물리고, 물도 다 차로 만들어 먹으면 되니까.”
“그게 가능한가….”
“사실 좀 물리긴 했어.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건 식량 사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벨 호다에서 식량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뭐? 벨 호다에서? 거기 놈들은 천하가 자기 것인 줄 아는 오만방자한 사탕수수 농장주인데?”
“천하가 자기 것인 줄 아는 오만방자한 놈이라….”
아자딘은 엄청난 허례허식으로 자신을 높이던 천주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고 비웃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더니만….
하지만 신흥 종교의 교주쯤 되면 이렇게 스스로 도취해야 해먹을 수 있으리라.
“벨 호다 농장주들을 설득해뒀어. 그러니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상당히 자신이 있나 보군. 그 외에 요구사항이 있나?”
“그래. 내가 아는 적들은 브투마의 석영 왕좌에 접촉해서 왕화의 빛을 약화시킬 거야. 나가들이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전에 말이지. 그걸 막고 싶은데 브투마의 왕좌와 성 구조에 정통한 인물을 소개해줄 수 있나?”
“하, 마침 그런 인물을 하나 알고 있긴 하지.”
“누군데?”
“만자-자덱.”
“만자-자덱이라면 브투마 국왕?”
“그래.”
“소개해줄 수 있다고?”
“그렇다. 하지만 전령일족이 감히 국왕을 대할 수 있겠냐?”
“뭐 어차피 똑같이 빵 먹고 차 마시는 인간인데 못 만날 게 뭐가 있지? 게다가 청건당의 보증을 받고 만나는 거잖아? 만자-자덱의 허락이 있으면 더 좋지. 몰래 잠입해서 왕좌를 만지는 것보다 합법적으로 안을 조사하는 게 더 나으니까.”
“…….”
“빨리 소개해줄 수 있으면 좋겠군. 자, 그럼 당신의 교단을 안정화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뭐?”
“어쨌건 내가 갑자기 등장해서 당신의 위신에 먹칠을 했잖아. 그걸 보충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어지간하게 무리한 게 아니면 들어주지.”
“말이 잘 통하는군. 정말 내 교단을 찬탈하러 온 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니까. 아, 물론 아디로프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죄 갚은 치르게 하고 싶지만, 브투마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헌신해. 일단 당장은 눈앞에 보이는 참극을 막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이상한 놈이군. 정말 브투마에 나가들이 쳐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 이런 짓을 한다고?”
“이봐. 원래 청건당을 만들 때도 그렇게 생각했어? 지스와가 저렇게 당신을 믿고 좋아하는 걸 보면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 텐데?”
“무슨 소리냐?”
“초심을 잃어버리니까 지스와가 하는 짓도 자기 권력을 찬탈하려고 수작 부리는 걸로 보이는 거 아냐? 지스와는 그런 놈이 아니야.”
아자딘이 지스와의 동기가 순수하다고 주장하자 천주가 피식 웃었다.
“누구나 자기는 순수한 호의를 가졌다고 주장하지. 바로 등 뒤에 칼을 숨긴 놈도 말이지.”
“그렇다고 진짜 호의와 가짜 호의를 구분하지 못하면 그것도 멍청한 것 같은데. 그냥 당신이 권력투쟁에 너무 시달려서 의심병이 생긴 거야. 우선 지스와는 권력투쟁에 뛰어들 만큼 똑똑하지 않아. 권력에 관심을 가지기엔 지나치게 좀, 머리가 ‘순수’하다고.”
지스와는 멍청해서 암투에 뛰어들 수 없다. 아자딘은 그 말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권력에 관심 없이 순수하게 그저 브투마를 구하러 왔다는 거냐?”
“그래.”
“그런 순수한 호의 따위가 있을 리가. 하물며 전령일족이지 않은가? 전령일족이라면 피와 살육에 굶주린 괴물인 줄 알았는데.”
“그 전령일족도 지금 내부 사정이 복잡해서 말이지.”
“음. 알겠다. 널 만자-자덱에게 추천해주지. 하지만 그전에 해야 알 일이 있다. 내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일 말이지. 해주겠다고 약속했지?”
“좋아. 어떤 일이지? 너무 무리한 것만 아니면 들어주지. 나로서도 당신이 교단을 잘 운영하는 게 좋으니까.”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이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일이다.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지.”
“…말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
아자딘이 물어보자 천주가 심호흡을 했다. 그도 자신의 발언이 자칫하면 아자딘을 오히려 자극해 원수로 돌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각오한 것일까?
각오를 다진 천주가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양자가 되는 거다.”
“…….”
아자딘은 굉장히 영특한 인물이지만 천주의 말을 이해하려면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뭐? 양자? 내가? 당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