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15
1015회. 균열 정찰이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떤가?
알파 중대의 막사로 돌아간 기사들은 하나 둘 체인 메일을 입기 시작했다.
마나를 각성한 기사들이라 그런지 강철 사슬로 만들어진 체인 메일을 천옷 입듯 쉽게 몸에 걸쳤다.
반각(약 7분)도 안 되어 기사들 넷이 무장을 마쳤다.
그래도 같은 중대라고 가장 연장자인 케일이 엘리오에게 물었다.
“자네 무장은 없나?”
“해야 돼요?”
연적하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강호는 물론 구주를 종횡할 때도 무장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네가 소드마스터쯤 된다면 모를까? 소드 익스퍼트(전문가)들도 무장을 하니, 하는 게 좋을 걸세.”
그 말에 연적하는 조금 망설였다.
솔직히 이곳에서 자신의 무위가 어디까지 통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소드마스터라는 에스카토스 공작과 만난 적 있지만, 마나라는 존재 자체가 영기보다 상위의 힘이라 예측이 불가능했다.
유성우(流星雨)에서 소드마스터인 코드란테스 백작이 살아남은 걸 보면 자신도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말이다.
떠나기에 앞서 케일과 기사들이 애매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고 있을 때, 중년 남자가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중년 남자를 본 케일이 반색을 했다.
“에릭 씨, 마침 잘 왔소. 우리 중대에 신입 기사가 왔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릭 제스퍼가 말했다.
“압니다. 어젯밤 늦게 연락을 받아서 지금 챙겨 주러 왔습니다. 엘리오 경이시죠?”
에릭 제스퍼가 평상복을 입고 있는 엘리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예.”
“병참관 에릭 제스퍼입니다. 그냥 에릭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에릭은 귀족 선조를 둔 평민으로 ―무늬만 귀족인― ‘라무스(큰 가지)’다.
연적하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귀족치고 소탈한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다.
“아, 예. 그런데요?”
“로빈 남작님의 지시로 군용피복(軍用被服)을 지급하러 왔습니다. 받으시고 서명해 주십시오.”
꾸러미를 건넨 에릭이 종이와 펜을 연이어 내밀었다.
까막눈인 연적하가 종이를 받고 머뭇거리자 에릭이 빈칸을 손끝으로 쿡쿡 찔러 보였다.
과거 계약 사기를 당한 바 있던 연적하가 망설이자 케일이 한마디 했다.
“아무렇게나 쓰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거니까.”
그러자 에릭이 설명하듯 말을 보탰다.
“물론 아무렇게나 써도 되지만, 이후로도 똑같은 서명을 해야 법적 효력이 있다는 건 알아 두십쇼.”
“에이, 옷 받았다는 확인증에 서명하는 걸로 너무 겁주지 맙시다. 그러니까 신입이 더 못 하지 않소? 그나저나 체인 메일은 없소?”
“아시다시피 체인 메일은 기사님들의 개인 장구류라서요. 공식적으로 후작가에서 지급하지는 않습니다.”
“그야 나도 알지. 지금 균열에 투입되는데 옷만 입고 가야 할 판이니 하는 말이 아니오.”
“사정은 알겠지만……. 병참 부서에 개인 장구류는 없습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케일이 아쉬운 얼굴로 엘리오를 보았다.
야인이니 뭐니 해도 뛰어난 기사 하나가 보강됐으니 좀 오래갔으면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연적하는 대충 글자 하나를 흉내 내서 그렸다.
확인증의 서명을 확인한 에릭은 기사들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연적하는 즉시 빳빳하고 두툼한 기사 옷으로 갈아 입었다.
붉고 푸른 색깔로 염색된 게 지난밤 후작의 막사에 모인 귀족들이 입고 있던 것과 같았다.
케일이 한마디 했다.
“한결 낫군. 이제 가세.”
케일이 앞장서자 네 명의 기사가 그 뒤를 따랐다.
케일과 기사들은 숙영지와 빙벽 사이의 공터로 이동했다.
드넓은 설원에는 이미 구백여 명의 영지병들이 중대별로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기사들은 가장 선두에 있는 알파 중대의 앞에 가서 섰다.
잠시 후 백인장 하나가 다가와 파비안에게 붉은 용이 수놓아진 깃발을 건넸다.
파비안이 슬쩍 엘리오의 안색을 살폈다.
본래 중대의 기수는 소위들 중에 최강자가 해 왔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본체만체하자 파비안은 못 이기는 척 깃발을 받아 들었다.
잠시 후 불사조 기사단의 호위 속에 대장군인 베르나르도 후작이 참모 오스카 아비드 자작과 기사단장, 중위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베르나르도 후작을 발견한 기수들은 비스듬하게 서 있던 깃대를 수직으로 세웠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사열을 하듯 찰리 중대와 벨라토스 중대를 지나쳐 알파 중대에 이르렀다.
중대를 지나칠 때마다 중대장인 남작들은 자기 중대로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베르나르도 후작이 알파 중대에 이르자 데니스 로빈 남작이 중대의 선두로 이동했다.
알파 중대에 서 있는 엘리오를 발견한 베르나르도 후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제야 알파 중대가 이름값을 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곧이어 참모인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알파 중대의 데니스 로빈 남작에게 손을 까딱였다.
중대장인 데니스 로빈 남작이 기수를 데리고 선두로 나섰다.
그 뒤를 벨라토스와 찰리 중대가 따라갔다.
베르나르도 후작과 불사조 기사단이 후미에 따라붙었다.
***
히르헤라 빙벽 앞.
알파 중대는 멈추지 않고 최전방 지대로 전진했다.
알파 중대가 빙벽의 균열에 도착하자 코드란테스 영지의 디바 중대가 자리를 내주고 뒤로 빠졌다.
다행히 균열에 마수가 출현하지 않아 부대의 교체는 물이 흐르듯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이선으로 후퇴하는 디바 중대장 모튼 비크 남작에게 물었다.
“비크 경, 균열에 이상 징후는 없소?”
“없었소. 균열의 크기도 변화가 없고, 마수는 하루 평균 열 마리 정도가 출현했소.”
“빙벽의 보수는 좀 되고 있는 거요? 아닌 거요?”
그러자 모튼 비크 남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답했다.
“메이지 칼로스 님이 마법을 퍼붓고 있지만 솔직히 한 뼘도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소. 메이지 칼로스 님도 수리보다는 현상 유지가 목적인 것 같았소.”
“알겠소. 수고하셨소.”
“수고하시오. 참, 어제부터 균열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한 번씩 들리고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게요.”
“마수의 소리요?”
“나도 처음 듣는 소리라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소. 또 그 소리가 날지도 모르니 들어 보시오. 그럼 이만.”
모튼 비크 남작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디바 중대의 후미에 합류해 떠나갔다.
찝찝한 얼굴로 서 있던 데니스 로빈 남작은 균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세 명의 기사들이 백인장들과 함께 맡은 구역을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자신의 곁에는 기수(旗手) 파비안과 아직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엘리오만 남은 상태.
데니스 로빈 남작이 멀뚱멀뚱 서 있는 엘리오를 불렀다.
“엘리오 경.”
“예?”
“저게 균열이다. 보이는가?”
“예.”
거대한 빙벽에는 가로 일 장(약 3미터), 세로 이 장(약 6미터)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빙벽 주위에는 굶주린 마수들만 먹이를 찾아 오락가락할 뿐이다. 마물쯤 되면 이성이 있어서 빙벽으로 막혀 있다는 것을 알고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수천 년간 막혀 있었으니 가 봐야 얻을 게 없다는 걸 아는 거지.”
“아!”
그제야 연적하는 마물이 왜 균열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로디나 대륙의 인간들처럼, 마물들도 빙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 빙벽 안쪽에서 3미터 크기의 거대한 고릴라 형태의 마수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전신이 하얀 서리에 덮인 그것은 아이스 오우거라 불리는 마수였다.
거대한 체구의 아이스 오우거는 인간들을 쓱 둘러보고는 그중 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육지 최강의 마수’라는 별칭답게 조금의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케일은 아이스 오우거가 다가오자 백부장과 열 명의 총병을 이끌고 마주 달려갔다.
이윽고 케일의 부대원들과 아이스 오우거가 맞부닥쳤다.
가장 먼저 총병들의 마력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퍼펑―!
아이스 오우거의 몸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마력탄은 아이스 오우거의 피부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마력 라이플 자체의 마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왕궁의 팬텀 기사단처럼 마나 유저가 쏜 마력탄이었다면 ―마력 상승 효과로― 피부 정도는 뚫었을 테지만, 일반 총병의 마력탄으로는 무리였다.
마력탄은 단지 아이스 오우거의 화만 북돋았을 뿐이다.
“크아아아―!”
거친 포효와 함께 아이스 오우거가 총병들에게 돌진했다.
그러자 케일이 미끄러지듯 아이스 오우거에게 파고들며 마나 소드로 아이스 오우거의 종아리를 찍었다.
콰직―!
큰 파열음과 함께 아이스 오우거의 종아리에 실금이 갔다.
케일의 마나 소드가 마력탄보다 강하다는 증거다.
정면을 향하던 아이스 오우거의 고개가 아래로 홱 꺾였다.
자신의 종아리에 상처를 낸 인간을 찾는 것이다.
엘리오와의 대화를 끊고 묵묵히 지켜보던 데니스 로빈 남작이 돌연 검을 뽑아 들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이윽고 남작은 케일을 찾기 위해 상체를 돌린 아이스 오우거의 옆구리에 마나 소드를 박아 넣었다.
퍼억―!
여러 번 손발을 맞춘 것처럼 케일과 남작의 합공은 자연스러웠다.
“크어어―!”
아이스 오우거의 덩치를 생각하면 허리에 박힌 롱소드는 별것 아니었지만, 충격이 큰지 아이스 오우거는 제자리에서 괴성만 질러 댔다.
심지어 허리에 박힌 검을 뽑아 던진 뒤에도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누가 봐도 겁을 먹은 행동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케일 휘하의 백인장이 지원에 나섰다.
남작과 케일, 그리고 백인장이 아이스 오우거의 주위를 빙빙 돌며 검격을 퍼부었다.
허리에 입은 부상으로 마력이 약해진 아이스 오우거의 피부가 세 사람의 마나 소드에 쩍쩍 갈라졌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아이스 오우거는 결국 균열로 달아났다.
그러나 데니스 로빈 남작은 달아나는 아이스 오우거의 뒤를 쫓지 않고 엘리오에게 돌아갔다.
잠깐의 격전이 끝나고 균열 앞은 다시 고요해졌다.
데니스 로빈 남작이 검신에 묻은 아이스 오우거의 피를 툭툭 털어 내며 말했다.
“아이스 오우거는 지능이 떨어지지만 눈치가 빨라. 안 되겠다 싶으면 저렇게 달아난다니까. 저럴 때 쫓아가면 안 돼. 광포화가 될 가능성이 높거든.”
“광포화요?”
지친 남작을 대신해 파비안이 대신 설명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위 마수들은 ‘버서커(Berserker)’ 상태로 돌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광포화라고 부르는데, 인간 광전사들처럼 외상을 입지 않습니다.”
“광전사?”
“금지된 약물로 체내의 마력을 폭주시켜 버서커 상태에 빠진 기사를 광전사라 부릅니다. 버서커를 유발하는 약물을 마수의 피로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사이 검 손질을 끝낸 데니스 로빈 남작이 연적하에게 말했다.
“궁금증은 다 풀었나? 본래 소위들 중에 최강자가 깃발을 들고 나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지만, 경도 그러고 싶지는 않을 거야. 맞지?”
“예.”
“그럼 기수는 지금처럼 파비안이 계속 맡기로 하고, 경은……. 균열 정찰이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떤가?”
말이 ‘균열 정찰’이지 실은 알파 중대 주변을 돌아보라는 소리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걸 ‘균열로 들어가라’로 받아들였다.
“까짓것 그러죠. 뭐.”
어차피 빙벽과 균열, 그리고 유성우 이후의 고요함이 수상쩍었던 연적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