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1
1021회.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칼 데인 남작의 입에서 갑자기 ‘소드마스터’ 소리가 나오자 깜짝 놀란 파비안은 대꾸할 말을 찾아 머리를 굴렸다.
엘리오가 소드마스터라는 것은 둘만의 비밀인 까닭이다.
그런 파비안을 보며 칼 데인이 넌지시 말했다.
“자네가 타메이온에서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엘리오 경 때문이 아닌가? 소드마스터는 아니겠지만, 소드 익스퍼트 정도라면 말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파비안은 소드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드 비기너와 스드 익스퍼트는 엄청난 차이지만, 소드마스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파비안이 망설이자 칼 데인 남작은 미끼를 더 던졌다.
“솔직히 말하지. 어제 9시간이나 엘리오 경을 조사했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영기를 탐색한 것이었네. 내 수준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더군. 내 평생에 그런 영기는 처음이었네. 후작님께서 야인인 그를 기사로 임명하신 것도 그래서였겠지. 그리고 오해가 없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네만, 이 조사는 엘리오 경과 자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네. 오히려 뛰어난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절차일세. 그런데 그 업적이 과장이나 거짓이라고 의심을 받아서야 되겠나? 엘리오 경의 경지가 소드 익스퍼트라면, 그런 의혹은 받지 않을 걸세.”
그 말에 파비안이 약간 흔들렸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엘리오와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출세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개하는 게 오히려 나았다.
칼 데인 남작이 거듭 물었다.
“엘리오 경이 아이스 오우거와 얼음 숲의 마수들을 죽였나?”
“예.”
“사흘 동안이나 얼음 숲에 있었으면 꽤나 많은 마수를 죽였을 텐데.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보게.”
“스밀로돈과 화이트 울프를 죽였습니다. 그 밖에는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엘리오 경의 검에서 오라(Aura)를 보았나?”
“예.”
“오라 블레이드는?”
“보지 못했습니다.”
파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오가 오라 블레이드 수백 개를 뿌리고, 오라에 휩싸인 검이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칼 데인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제야 모호함이 풀리는군.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만 더 확인해 보겠네. 중대장인 데니스 로빈 남작이…….”
칼 데인 남작은 노련한 심문관답게 질문을 살짝 뒤틀어 다시 처음부터 묻기 시작했다.
***
파비안의 조사도 9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그사이 알파 중대는 푸토코아 백작령의 골리앗 중대와 임무를 교대했다.
파비안이 알파 중대 소위 막사로 돌아온 것은 오후 6시쯤이었다.
그가 돌아오자 케일과 쿠누트, 리들리가 격하게 환영했다.
“여어! ‘균열의 기사’ 파비안! 어서 와라!”
“하도 안 와서 칼 데인 남작에게 잡아먹힌 줄 알았다!”
“엘리오 경은 타메이온에 있을 때보다 칼 데인 남작과의 시간이 더 힘들었다고 하던데, 괜찮냐?”
뻘쭘한 얼굴로 듣고 있던 파비안이 물었다.
“균열의 기사는 뭡니까?”
리들리가 킬킬 웃으며 답했다.
“아! 몰랐냐? 베르나르도 후작령의 병사들이 너와 엘리오 경을 ‘균열의 기사’라고 부른다. 기사 중에 최초로 균열을 넘어갔다고 그렇게 부른단다.”
“쩝, 그게 뭐 대수라고.”
“대수지! 알파 중대, 디바 중대, 골리앗 중대 중에 처음 있는 일인데. 오늘 교체식에서 푸토코아의 기사들이 계속 묻더라. 기사 둘이 타메이온을 정찰하고 왔다는 게 진짜냐고.”
알파 중대와 균열 감시를 교대한 골리앗 중대는 푸토코아 백작령에서 파견한 최정예 부대다.
기사가 타메이온으로 건너간 건 처음 있는 일이라 히르헤라의 주둔군들에게 소문이 난 상태였다.
파비안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천막을 살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갔는지 엘리오가 보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그는 자신의 간이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심신이 지쳐 있던 그는 간이침대에 길게 몸을 뉘였다.
물에 빠진 것처럼 몸이 아래로 푹 가라앉는 느낌이다.
한쪽에서 열심히 기사들이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웅웅 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깊게 잠들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별일 없었지?”
엘리오의 음성에 파비안은 눈을 번쩍 떴다.
“아! 엘리오 님.”
파비안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자 엘리오가 손을 들어 막았다.
“괜찮아. 내려올 거 없어. 내가 알아 둬야 할 게 있으면 지금 말해.”
칼 데인 남작의 심문에 장시간 시달린 바 있던 연적하는 파비안을 배려했다.
“그게, 저어…… 엘리오 님께서 얼음 숲에서 스밀로돈과 화이트 울프를 잡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얼음 숲이 마수들의 보금자리라……. 아무 일도 없이 사흘이나 숨어 있을 수는 없다고 해서요. 그 부분만 첨가했습니다.”
“그럴 것 같더라.”
연적하는 아쉬웠지만 그만하기를 다행이라 생각했다.
칼 데인 남작의 지능적인 압박을 파비안같이 단순한 기사가 피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자신이야 남궁연과 심통을 가까이서 보며 살았기에 머리가 잘 돌아갔지만 파비안에게는 무리였을 게다.
“그리고 엘리오 님의 검술이 마나를 각성한 소드 익스퍼트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천막 안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소드 비기너와 소드 익스퍼트는 작위가 다르다.
예컨대 소드 비기너가 남작이라면, 소드 익스퍼트는 자작의 작위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받을 수 있다’지 ‘받는다’는 아니다.
작위 수여는 어디까지나 국왕의 마음에 달린 까닭이다.
봉작은 공적과 출신, 그리고 그 사람의 쓰임새에 따라 얼마든지 빠르거나 늦을 수 있었다.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기사라면 모를까? 야인 출신의 엘리오가 단숨에 자작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 해도 소드 익스퍼트들은 최소한 자작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그러니 아직 봉작조차 받지 못한 기사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케일과 쿠누트, 리들리는 파비안과 엘리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그만 쉬어.”
“예.”
파비안이 눕는 걸 보고 난 뒤에야 연적하도 자리로 돌아갔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보는 연적하의 눈빛은 무거웠다.
파비안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칼 데인 남작이 자신을 다시 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고민할 때 종소리가 울렸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케일이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엘리오 경,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상대가 소드 익스퍼트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케일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아, 같이 가자고요?”
“예.”
연적하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사이 리들리가 잠들려는 파비안을 억지로 깨웠다.
연적하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내려갔다.
언제 부를지 몰라 전전긍긍하느니 식당에서 칼 데인 남작을 만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다.
모처럼 만에 1소대 기사들이 단체로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기사들의 식당으로 쓰는 막사.
연적하는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슬쩍 귀족들의 자리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칼 데인 남작이 오스카 아비드 자작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연적하는 식판을 들고 동료 기사들 속에 섞여 앉았다.
건성으로 빵을 찢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연적하에게 케일이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나요?”
“예. 아까부터 식사에 집중을 못 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그냥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봤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칼 데인 남작을 만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생각했으니까.
그러자 카일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소드 익스퍼트가 남작의 작위를 받으니 속이 착잡할 거라 생각했다.
‘야인이 아니었다면 자작의 작위를 받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 엘리오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출신 성분이 미천하면 출세에 지장이 있는 게 현실이었다.
연적하는 칼 데인 남작과 식사 속도를 비슷하게 맞췄다.
그래야 그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칼 데인 남작이 일어나는 걸 본 그는 급히 빵으로 스프를 닦아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식기 반납대에서 연적하와 칼 데인 남작이 마주쳤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연적하가 빤히 칼 데인 남작을 응시했다.
그러나 칼 데인 남작은 싱긋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칼 데인 남작은 오스카 아비드 자작 일행과 함께 기사 식당을 떠났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던 연적하는 멍한 얼굴로 칼 데인 남작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다가가 물었다.
“남작이 뭐라고 합니까?”
“웃기만 하는데?”
“그래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알아. 지금 만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이네요. 할 말 있으면 바로 부르지. 왜 그렇게 뜸을 들인답니까?”
“그러게. 하는 짓이 누구를 꼭 닮았어.”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칼 데인 남작의 속은 심통만큼이나 종잡기 어려웠다.
떠나려던 연적하는 에너지 볼이 담긴 바구니 앞으로 다가갔다.
균열 감시의 교대가 끝나서 그런지 에너지 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연적하는 습관적으로 에너지 볼을 챙겼다.
그러자 파비안도 그를 따라 에너지 볼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경은 또 왜 그래?”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저도 엘리오 님처럼 준비하고 싶습니다.”
“나는 딱히 그런 게 아닌데?”
연적하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단지 식탐임을 알고 있었다.
창고, 아니면 녹림도 시절의 후유증일 것이다.
신기한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질 못하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파비안이 존경스러운 눈으로 엘리오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엘리오 님 덕분에 사흘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엘리오 님의 철두철미한 준비 정신 덕분입니다.”
파비안의 말에 케일과 쿠누트, 리들리도 에너지 볼을 한 주먹씩 챙겼다.
***
베르나르도 후작의 막사.
저녁 식사 후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베르나르도 후작과 후작의 참모 오스카 아비드 자작, 그리고 심문관 칼 데인 남작이다.
칼 데인 남작이 면담 보고서를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건넸다.
“엘리오 경과 파비안 경이 균열에서 나오자마자 따로 격리한 뒤에 면담을 진행한 결과입니다.”
후작은 보고서를 읽자마자 바로 오스카 아비드 자작에게 넘겼다.
“이번 일은 히르헤라 주둔군 원수이신 에스카토스 공작 각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착오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칼 데인 남작,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예.”
“흑마법사 여섯이 메가 텔레포트로 사라진 게 확실한가?”
“엘리오 경과 파비안 경이 묘사한 마력장의 크기와 모습은 분명히 메가 텔레포트였습니다.”
“메가 텔레포트는 7서클 마법이다. 7서클의 마구스(최고 마법사)가 이번 일에 관계되었다는 것은…….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창조신의 스쿠툼(Scutum)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 데인 남작은 모르겠지만 히르헤라에 떨어진 메테오 스웜을 생각하면 7서클의 마구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오 경의 경지를 이상하게 평가했더군.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그의 영기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벌어진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순간 베르나르도 후작의 눈매가 좁아졌다.
영기를 수련한 야인 출신 기사가 진짜 소드 익스퍼트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