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2
1022회. 공에는 포상이 따르기 마련이지
한참을 고민하던 베르나르도 후작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후에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일반적으로 영기 수련자는 물론 그 경지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마나 유저보다 두 단계 아래라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지금 엘리오 경은 마나 유저와 같다고 하는 것인가?”
심문관 칼 데인 남작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답했다.
“수인왕(獸人王) 투살리오스의 경우 마나 유저와 한 단계밖에 차이가 안 나지 않습니까? 엘리오 역시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오 경이 ‘소드 익스퍼트’가 아니라면 무사 생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수인왕 투살리오스와 엘리오 경의 경지가 비슷하다는 것인가?”
“드러난 현상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소드 비기너’인 저의 직감에도 엘리오 경의 경지는 절대 ‘소드 비기너’가 아닙니다.”
“…….”
베르나르도 후작의 생각이 깊어졌다.
후작의 침묵이 길어지자 보고서를 읽고 있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슬쩍 끼어들었다.
“엘리오 경이 ‘오라 디퓨전(검광)’으로 마수를 베어 버린 것은 확실한가?”
“마수의 종류와 숫자에 대한 파비안의 증언이 수차례 반복 되었음에도 일치하였습니다.”
수차례 반복이라는 말에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문관으로서 칼 데인 남작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니 거의 확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오 경의 ‘오라 디퓨전’이 ‘소드 익스퍼트’의 ‘마나 오라(검광)’와 같은 효과를 가진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군.”
귀족들 사이에서는 마나 유저와 영기 수련자의 구별을 위해 같은 검광이라도 마나 유저의 것을 ‘마나 오라(마나의 빛)’, 영기 수련자의 것을 ‘오라 디퓨전(빛의 분출)’이라 했다.
마나와 영기의 구별을 위한 것이라 했지만 속내는 차별이었다.
사실 차별을 받아 마땅할 정도로 영기 수련자의 검광은 마나 유저의 검광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칼 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타메이온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수인왕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겠군. 수인에게서 배워 간 인간이 자신과 비슷하다니.”
“그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반드시 찾아올 겁니다.”
“수인왕 투살리오스의 호승심이야 유명하니까. 그와 엘리오 경이 맞붙으면 진정한 경지를 알 수 있게 될지도.”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은근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오스카 아비드 자작과 칼 데인 남작의 대화가 수인왕에 이르렀을 때 베르나르도 후작이 말했다.
“칼 데인 남작, 수고했네. 자네는 그만 나가 보게.”
“예.”
칼 데인 남작이 후작과 자작에게 묵례를 올린 뒤 조용히 물러났다.
후작과 둘만 남게 되자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넌지시 말했다.
“엘리오 경이 소드 익스퍼트라니 고민 되시겠습니다.”
“그 정도는 감안하고 있었소. 그 이상일까 싶어 고민하는 것이지.”
“나이가 있는데 설마하니 소드마스터에 도달했겠습니까?”
“그 나이에 쌓을 만한 수준의 영기도 아니었소. 수인왕 투살리오스가 소드마스터로 불리지만 그의 나이는 삼백 살이 넘었소. 그에 반해 엘리오 경은 이제 고작 스물일곱이 아니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새삼 놀랍기는 하네요. 하지만 칼 데인 남작의 말처럼 엘리오 경이 ‘소드 익스퍼트’가 아니면 생환하기 불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엘리오 경의 영기가 순수하고, 야인 출신이니 흑마법사들과는 관계가 없을 테고……. 정말 마나 유저와 영기 수련자의 벽을 허물었다는 소린데……. 이게 다른 귀족들의 귀에 들어가면 말들이 많을 테니 당분간은 우리만 아는 것으로 합시다. 칼 데인 남작과 엘리오 경, 파비안 경에게도 그와 같은 뜻을 알려 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은 혹시 흑마법사의 말뚝에 대해 아는 게 있소?”
“없습니다. 있었다면 진즉에 말씀드렸을 겁니다.”
“알겠소. 내일 에스카토스 공작 각하와 메이지 칼로스를 만나 흑마법사의 일을 상의해 보리다. 경도 그만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예, 편안한 밤 되십시오.”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묵례를 올린 뒤 돌아서 나갔다.
홀로 남은 베르나르도 후작은 다신 한번 꼼꼼하게 칼 데인 남작의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알파 중대 기사들의 막사에서 쉬던 연적하는 후작의 부름을 받았다.
타메이온에서 생환한 일로 부른다고 생각한 그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게. 배치를 받자마자 큰 공을 세웠더군?”
“공은요 무슨. 정찰일 뿐인데요.”
“큰 공이라고 자부해도 되네. 지금까지 타메이온에 넘어간 인간도 없지만, 정찰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사도 없었으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기간도 짧았고요.”
연적하는 운으로 밀고 나갔다.
다른 귀족들이 그것을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자신만 피곤해지는 까닭이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피식 웃었다.
엘리오의 입단속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한편으로 안심이다.
“칼 데인 남작의 보고서를 읽었네. 자네에 대한 평가를 아주 좋게 했더군.”
“…….”
연적하는 칼 데인 남작이 뭐라고 썼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이 세계의 글을 모르기에 의미도 없었다.
후작이 거짓말을 해도 알아챌 도리가 없으니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엘리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제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도 윗사람과 맞먹으려 들면 데리고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영기 수련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나 유저와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들었네. 소드 익스퍼트라고?”
“예.”
“처음 자네를 만났을 때 영기가 범상치 않다는 건 알았네만. 마나 유저와 같은 효율을 보일 정도라니 놀랍군. 그렇다 해도 자작의 작위를 상신할 수는 없네. 왕국에도 법도가 있어서. 그 점은 경이 이해를 해 줘야겠어.”
“괜찮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말게. 히르헤라 균열에서 지금처럼 공을 세운다면, 자작의 작위도 머지않아 받게 될 테니까.”
“예.”
베르나르도 후작이 슬쩍 엘리오의 안색을 살폈다.
공을 세우면 자작의 작위도 가능하다고 했음에도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다.
“경은 봉작(封爵)에 관심이 없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신기하군. 내가 만난 기사들의 최대 관심은 봉작이었는데. 그럼 자네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베르나르도 후작이 관심 어린 눈으로 엘리오를 보았다.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 인간 세상에 나왔을 터.
그가 작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 알고 싶었다.
“세상의 평화입니다.”
“허허.”
순간 베르나르도 후작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건 정말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였다.
‘아니,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출세해서 귀족이 되고 싶어 할 텐데.’
“진심인가?”
“예.”
짧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에 베르나르도 후작은 더 파고들지 않았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군. 잘 알겠네. 자네가 세운 공이 국왕전하께 알려지면, 영지를 내려 줄지도 모르겠어. 뭐, 그래 봐야 북방의 척박한 땅이겠지만.”
“영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자네가 그렇다 하더라도 공에는 포상이 따르기 마련이지. 여하튼 자네의 입으로 소드 익스퍼트라는 소리를 들으니 후련하군. 참, 따로 원하는 자리가 있나?”
‘소드 익스퍼트’인 그를 데니스 로빈 남작의 휘하에 두기가 미안해서 물어본 것이다.
“없습니다. 알파 중대가 마음에 듭니다. 기사들과도 친해졌고요.”
“그렇다면 작위가 내려올 때까지 알파 중대에 있게. 데니스 로빈 남작에게는 자네를 존중하라고 지시하겠지만, 그의 지휘권을 침해하지는 말게. 자네와 그가 마찰을 일으키면 자네를 참모부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네.”
베르나르도 후작은 엘리오가 중대장인 데니스 로빈 남작과 잘 지내지 못하면 그를 참모인 오스카 아비드 자작에게 붙여 줄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연적하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이제 겨우 기사들과 친해졌는데 고위 귀족들 속에서 찬밥의 도토리로 지낼 수는 없었다.
“알겠네. 그만 돌아가 보게.”
“옙!”
연적하는 후작이 자신의 검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자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
베르나르도 후작이 에스카토스 공작의 중앙 지휘 통제 막사를 찾은 건 점심 무렵이었다.
베르나르도 후작의 방문 사실을 알고 있던 에스카토스 공작은 궁정 마법사 칼로스와 함께 그를 맞이했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묵례를 올렸다.
“공작님.”
“어서 오시오, 후작. 소식은 들었소. ‘균열의 기사’들을 휘하에 두어 좋으시겠소.”
“하하.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찾아왔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조사가 끝났습니다. 이건 심문관인 칼 데인 남작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기다렸다는 듯 그걸 받아 읽었다.
잠시 후 공작의 손에 있던 보고서는 궁정 마법사 칼로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칼로스가 보고서를 읽을 때까지 침묵했다.
칼로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에스카토스 공작이 운을 뗐다.
“엘리오 경이 마나 유저와 영기 수련자 간의 벽을 허물었다니 놀랍구려. 그의 영기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소.”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그를 수인왕 투살리오스에 비교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에스카토스 공작의 시선이 궁정 마법사 칼로스를 향했다.
“메이지 칼로스? 어떻소? 엘리오 경과 같은 경우가 가능하오?”
궁정 마법사 칼로스가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영기 수련자의 성취가 마나 유저보다 두 단계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수인왕 투살리오스의 경우만 봐도 한 단계 아래에 불과하니까요.”
“흑마법사들이 마신과의 계약으로 강한 힘을 손에 넣기도 하던데, 혹 그럴 가능성은 없겠소?”
“엘리오 경을 처음 만나던 날 ‘진실의 눈’으로 그의 영기를 검사하던 일이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그에게는 흑마법의 기운이 없었습니다. 만약 엘리오 경이 흑마법사들과 관계되었다면 그들에 대한 목격담도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렇다면 엘리오 경에 대한 의심은 접겠소. 흑마법사들의 말뚝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부끄럽지만 말뚝과 관련된 제의는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마법사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메이지 칼로스도 모르는데 그가 알겠소?”
“제국의 3대 마법 학파에서 흑마법사들을 추격하고 있으니, 그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제국의 3대 마법 학파는 헤르메티카, 파라바하드, 타불라다.
그들은 오랜 세월 흑마법사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베르나르도 후작이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물었다.
“공작 각하, 엘리오 경의 공을 상신하면 작위 수여에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당연히 큰 영향이 미칠 게요. 작위까지 올려 주지는 않겠지만, 후작령 인근의 봉토를 하사하실 가능성이 크오.”
에스카토스 공작은 단언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국에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라 왕국에도 자랑할 거리가 하나쯤 있어야 했다.
에스카토스 4세에게 ‘왕국군이 인류 최초로 타메이온 정찰에 성공했다’는 것은 큰 치적이었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엘리오에게 봉토가 주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엘리오 남작령이라…….’
베르나르도 후작은 그에게 어디를 추천해야 할지 생각했다.
당연히 자신의 성이 있는 클루톤에서 너무 멀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되는 곳이어야 한다.
‘슬래시 랜드가 적당하겠군.’
자신의 영지 서북쪽 끝에 자리한 슬래시 랜드라면 왕에게도, 자신에게도, 엘리오에게도 무난하리라.
물론 메테오 스웜이 떨어진 땅 히르헤라에서 살아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