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3
1043회. 그 목적지가 어딥니까?
루퍼스 중대 막사는 찰리 중대 뒤쪽에 있었다.
위치상 베르나르도 후작가 숙영지의 가장 외곽이다.
찰리 중대 앞을 지나던 파비안이 엘리오를 힐끔 보았다.
“왜?”
“제 보직은 어떻게 됩니까?”
“보직?”
“알파 중대에서는 제가 1소대 기수였잖습니까. 루퍼스 중대에서는 중대장님의 참모가 되나 싶어서요.”
“아! 너 잔머리 좀 되지? 참모 해라.”
“잔머리라니요. 이래 봬도 왕립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에스카토스 왕국에도 아카데미가 있냐?”
“있다마다요. 왕국마다 하나씩은 운영합니다. 기사를 육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뭘 배우는데?”
“검술과 전술, 전략 같은 걸 배웁니다.”
“오오! 제법인데?”
“이래 봬도 제가 천재 소리를 듣던 기사입니다.”
“그런데 왜 알파 중대에서는 기수를 하고 있었어?”
“알파 중대 참모인 빅터 아스테르 때문이죠.”
“그 사람이 왜?”
“모르셨습니까? 그 사람이 아스테르 자작가의 장남이잖습니까. 아스테르 자작가의 후계자라서 데니스 로빈 남작님이 그를 지명한 거죠.”
“능력은 되는 사람이고?”
“왕립 아카데미 선배인데 유명하기는 했습니다.”
“그럼 아스테르 자작가의 후계자라서 뽑힌 건 아니지 않나?”
뼈를 때리는 엘리오의 지적에 파비안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그런 파비안을 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엘리오가 말했다.
“참모 해라. 나는 전술 전략 그런 거 모르니까.”
“옙!”
참모를 허락하자 파비안의 얼굴이 밝아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루퍼스 중대에 도착했다.
엘리오를 대신해 중대 막사 옆에 설치된 종루로 다가간 파비안이 클래퍼(종을 때리는 쇠뭉치)와 연결된 가죽 줄을 잡아당겼다.
땡― 땡― 땡―.
집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자 막사에서 대기하던 루퍼스 중대 기사와 병사 들이 공터로 뛰어나왔다.
세 개 소대가 대오를 맞춰 도열하기까지 이십 분이 걸렸다.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던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말했다.
“정확하게 알파 중대의 두 배가 걸리네요. 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건 나중에 참모가 알아서 시키고, 지금은 인사나 해야겠다.”
말과 함께 엘리오가 루퍼스 중대 앞으로 걸어갔다.
루퍼스 중대의 기사와 병사 삼백삼십칠 명이 숨죽이고 엘리오를 관찰하듯 뜯어보았다.
무덤덤한 얼굴로 삼백삼십칠 명을 보던 엘리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중대장 엘리오다. 요구 사항이 있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소대장들에게 말해라.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내 옆에 있는 참모 파비안을 찾아가고, 그래도 안 되면 나를 찾아와라. 끝.”
말을 마친 엘리오는 그대로 돌아서 중대장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중대장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웅성거리는 중대원들 앞으로 파비안이 나섰다.
“중대장님의 참모 파비안입니다. 영지에서 막 올라와 히르헤라의 분위기가 어떤지 잘 모르겠지요? 이제부터 몸으로 알아 가면 됩니다. 그런데 집합 시간이 다른 중대의 두 배더군요. 이래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십 분 이내에 집합을 완료하기로 하겠습니다. 해산합니다.”
파비안의 해산 선언에 세 개 소대가 흩어졌다.
네 명의 기사가 쭈뼛쭈뼛 파비안에게 다가갔다.
가장 먼저 파비안의 왕립 아카데미 동기인 2소대 소위 주디가 알은체를 했다.
“파비안,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동기라고는 하지만 신동으로 소문난 파비안이 입학을 일찍 해서 주디의 나이가 훨씬 많았다.
그런 이유로 아카데미에서부터 주디는 파비안에게 반말을 사용하고, 파비안은 존대를 썼다.
“그럭저럭. 히르헤라 주둔지에는 언제 온 거야?”
“2월에 왔으니까 3개월째 접어들었네요. 영지 분위기는 좀 어때요?”
“전사자들 소식이 계속 전해져 와서 뒤숭숭해. 그런데 진짜 이곳에서 그렇게 많이 죽어? 제국과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갑자기 제국 이야기가 왜 나와요?”
“영지에서는 제국과 다시 분쟁이 터진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어. 북부에서 갑자기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니까. 이런 일은 전에 없었잖아.”
그제야 파비안은 베르나르도 후작령에 지금까지 빙벽의 균열이 알려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모여든 기사들이 파비안의 입에 집중했다.
후속 부대라 해도 히르헤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빙벽에 균열이 생겼어요. 그 균열로 타메이온의 마수와 마물은 물론, 최근에는 마족까지 넘어오고 있어요.”
“헉!”
“말도 안 돼!”
“스쿠툼에 구멍이 났다고?”
“정말이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 기사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파비안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조만간 균열 감시에 투입될 테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때 확인하면 되고. 지금은 집합하는 속도부터 좀 앞당겨 보겠습니다.”
말과 함께 파비안은 클래퍼에 연결된 가죽 줄을 잡아당겼다.
땡― 땡― 땡―.
루퍼스 중대 막사에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비안의 주위에 모였던 기사들도 소대별로 흩어졌다.
소대별로 정렬을 마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여전히 처음과 동일했다.
중대원들이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 생긴 일이다.
파비안은 간단한 주의 사항을 전하고 부대를 해산시켰다.
네 명의 기사들이 다시 파비안을 중심으로 모였다.
균열 이야기 때문인지 파비안의 행동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는 루퍼스 중대의 기수인 레이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기수를 맡은 레이 모건이오. 중대장님은 어떤 분이오? 루퍼스 중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 나돌던데.”
레이 모건이 주디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 탓에 파비안은 정중히 되물었다.
“좋지 않은 말은 뭡니까?”
“중대장이 야인 출신이라 궂은일만 도맡아 할 거라 하더이다.”
“궂은일요?”
“중대장에게 든든한 뒷배가 없으니 다른 중대를 대신해서 사지로 내몰릴 거라는 소리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 말에 파비안이 피식 웃었다.
사실 유력가문의 자제들로 구성된 벨라토스 중대를 제외하면 알파 중대나 찰리 중대의 운명은 비슷했다.
찰리 중대가 후방의 지원부대라고 하지만, 알파 중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찰리 중대원인 까닭이다.
그러니 벨라토스 중대를 제외한 ―뒷배 없는― 나머지 중대의 운명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이야! 이 사람도 뻔뻔하네.’
뒷배가 없어서 루퍼스 중대까지 흘러 들어온 사람이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할 줄이야!
“우리 중대장님이 야인 출신이라 뒷배가 없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대장님에게 뒷배가 필요한지는 모르겠군요. 그건 뭐,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당장 알파 중대만 해도 다른 중대보다 사상자 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알파 중대와 루퍼스 중대가 뭉치면 피해는 더 줄어들 터였다.
하지만 파비안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입으로 백번 떠드는 것보다 균열 감시에 한번 투입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파비안은 기사들에게 빙긋 웃어 보인 후 또다시 클래퍼에 연결된 가죽 줄을 잡아당겼다.
땡― 땡― 땡―.
세 번째 집합에야 병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집합 훈련을 시킨다는 걸 알아차리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탓이다.
그렇다 해도 알파 중대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파비안은 알파 중대의 속도와 같아질 때까지 계속해서 종을 쳤다.
쉬지 않고 울리던 종소리는 루퍼스 중대의 집합 속도가 알파 중대와 같아져서야 멎었다.
***
루퍼스 중대로 옮긴 뒤에도 엘리오와 파비안의 일상은 같았다.
오전에는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석양 무렵.
엘리오는 마침내 파비안의 앞에서 구천세법 일 식을 펼쳐 보였다.
지겹도록 기본기만 훈련시키던 엘리오가 처음으로 검술을 선보이자 파비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시연을 마친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물었다.
“외웠나?”
“아직요. 몇 번은 더 봐야 외울 것 같습니다.”
“천재라면서 한 번 보고 못 외워?”
“검술이 요상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팔랑거려서 힘이나 쓰겠습니까? 정말 엘리오 님의 검술이 맞습니까?”
파비안이 익힌 대륙의 검술은 롱소드의 쓰임에 맞게 간단한 편이었다.
그에 비하면 엘리오의 검법은 좀 현란했다.
파비안의 지적에 엘리오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킬킬 웃었다.
“내 검술이 좀 요상하게 느껴질 거야. 하지만 이런 말 들어 봤나?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萬流歸宗].”
“처음 들어 봅니다.”
“물줄기는 많이 있지만 결국 바다로 흘러가지. 검술도 마찬가지. 종류가 많지만 목적지는 하나야.”
“그 목적지가 어딥니까?”
“몰라.”
엘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한때는 검술로 득도(得道)를 할 수 있다고 믿은 적도 있다.
그러나 ‘왕들의 하늘’과 ‘네 번째 하늘’을 경험한 지금, 그런 말들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했다.
득도를 해 봐야 어차피 상계에서 하계와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에이, 그게 뭡니까? 목적지도 모르면서 하나라는 건 어떻게 아십니까?”
“기술적으로 검법의 목적지는 알아. 내가 모르겠다고 한 건 검법 창시자들이 말한 그 이면의 목적지야.”
‘이를테면 득도 같은 거.’
엘리오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세계의 사람에게 득도를 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기사들의 목표는 소드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드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는 상위 차원과 눈곱만큼의 관계도 없었다.
어찌 보면 이게 정상인지도 모른다.
평생 수련해도 소드마스터에 이르기 어렵고, 그랜드 마스터는 전설에나 등장하는 경지니까.
그래도 그게 ‘검을 수련해 득도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 검술을 수련하면 남작님이 타메이온에서 보여 준 그것도 할 수 있습니까?”
“그게 뭔데?”
“그 왜 스켈레톤들을 박살 낼 때 보여 준 기술 있지 않습니까. 수백 개나 되는 오라 블레이드가 막 날아가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하!”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날에 본 구천구검이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당연하지. 이것도 그거와 같은 검술이라고.”
“이 검술의 이름은 뭡니까?”
파비안은 엘리오가 보여 준 것을 야인 부족의 검술로 생각했다.
“아홉 하늘의 능력[九天勢法] 검술이야.”
통역이 어째 이상했지만 엘리오는 그냥 넘어갔다.
아마도 ‘세법’에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엉킨 것 같았다.
파비안도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한마디 보탰다.
“통역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간단히 ‘나인 스카이 검술’은 어떻습니까?”
“그래? 그것도 괜찮겠네. 나인 스카이 검술.”
엘리오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동의했다.
‘아홉 하늘의 능력 검술’에는 항상 아티팩트의 통역에 대한 설명이 따라다녀야 한다. 그러느니 ‘나인 스카이 검술’로 간단히 끝내는 게 백번 나았다.
그렇게 해서 구천세법은 ‘나인 스카이 검술’로 굳어졌다.
어차피 파비안에게 구천구검까지 가르칠 생각이 없던 엘리오에게 구천세법의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시 보여 줄게. 이번에 보고도 따라하지 못하면, 벌칙으로 롱소드 천 번 내려찍기다. 정신 차리자.”
엘리오의 경고에 파비안은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그날 파비안은 롱소드를 만 번 넘게 내려찍은 뒤에야 겨우 ‘드래곤 플라이[飛龍昇天]’라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가 마나 유저였기에 가능하지 하계의 무인이었다면 롱소드를 들어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새로 창설된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루퍼스 중대는 알파 중대 와 함께 균열 감시 임무에 투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