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75
1075회. 누구 편을 들어 주실 겁니까?
루퍼스 중대 뒤쪽의 공터에 도착한 엘리오는 두 팔을 몸통 옆에 붙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곧이어 그가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영기를 힘껏 용천혈로 발산한 순간, 폭발적인 힘이 앞으로 나아가던 그를 띄워 올렸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의 몸이 까마득한 하늘로 날아갔다.
애나 로건이 입을 쩍 벌리고 한 점 점이 되어 버린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저게 플라이 마법이 아님을 알았다.
기본적으로 플라이 마법은 저렇게 요란하지 않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날아오른 지점에 생겨난 3미터 지름의 크레이터와 폭발음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마력탄처럼 달려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 하다니!
잠시 후 베르나르도 후작군 진영을 한 바퀴 돈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허공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설원에 내려선 엘리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힘 조절을 못 하면 이렇게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요.”
“저 같은 사람도 날 수 있을까요?”
“평범한 영기 수련자라면 어렵겠지만 마나 유저라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엘리오가 애매한 눈으로 애나 로건을 보았다.
이 세계의 마나가 영기보다 뛰어나기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솔직히 평범한 영기 수련자는 평생을 수련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하지만 경은 마나 유저니까, 영기 수련자보다 훨씬 빠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해 볼게요!”
“발바닥으로 마나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키고, 적절하게 방출하면 됩니다. 마나 방출은 지속적으로 연습해서 그 요령을 직접 깨닫는 수밖에 없어요.”
“네!”
애나 로건이 씩씩하게 답했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도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 대한 사심보다― 스왈로우 플라잉을 익히겠다는 열망으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게 스왈로우 플라잉을 배우던 애나 로건이 멈칫했다.
‘줄리 그린우드 남작?’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었다.
“잠시만요. 기사단에서 저를 찾아온 것 같아요.”
애나 로건은 줄리 그린우드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줄리 그린우드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모르는 사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나 로건이 줄리 그린우드 남작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너에게는 볼일 없어.”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말에 애나 로건이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설마 지금 라고아 남작님을 만나러 왔다는 건가요?”
“그래. 왜? 라고아 남작님이 네 사람이라도 돼? 그런 거 아니잖아?”
“뻔뻔하군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러 올 생각까지 하다니.”
“내가 라고아 남작님을 모른다고 누가 그래?”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애나 로건을 지나쳐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게 걸어갔다.
“라고아 남작님! 잘 지내셨어요? 어제의 일도 사과드릴 겸 찾아와 봤어요. 혹시 실례일까요?”
갑작스러운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방문에 엘리오는 조금 당황했다.
뒤이어 어젯밤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의 인생에 줄리 그린우드 남작과 라미노프의 기사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괜찮습니다. 어제의 일로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이라도 불쾌했다면 그 자리에서 내 손으로 처리했을 테니까요. 어젯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 네에…….”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칼 같은 정리에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우리 부단장님에게 체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나 봐요?”
“네.”
“혹시 그걸 배우는 데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을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은 저도 셀레투스 기사단이에요. 검술에 자신이 없어서 마력총을 잡았죠. 부단장님이 남작님께 체술을 배운다니까 저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요. 히르헤라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
엘리오가 애매한 얼굴로 줄리 그린우드 남작을 보았다.
사실 비연보는 대단한 절학이 아니라서 꼭꼭 숨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처럼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을 콕 찍어 말하라면, 인연이다.
엘리오는 줄리 그린우드 남작과 자신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누군지 알고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
‘새우는 먹을 만했는데…….’
계속되는 그녀의 시중이 부담스러울 즈음 라미노프의 기사가 치고 들어왔다.
그녀의 봉사는 헌신에 가까웠다.
멀쩡한 여기사가 시녀처럼 행동할 리 없으니 분명 목적이 있으리라.
어쩌면 베일럼 왕국의 내부 상황과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애나 로건이 자신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로 부단장 자리에 올랐다니까.
‘역시 그럴 목적이겠지?’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줄리 그린우드 남작을 보았다.
그때 애나 로건이 불쑥 끼어들었다.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셀레투스 기사단의 전임 부단장이에요.”
순간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노한 눈으로 애나 로건을 쏘아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 앞에서 둘의 관계가 다 까발려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녀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거라 생각했다.
애나 로건과 그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았다.
그건 애나 로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굳이 이 자리에서 그걸 밝힌 것도 줄리 그린우드 남작을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게서 떼어 놓기 위함이었다.
애나 로건은 자신을 노려보는 줄리 그린우드 남작에게 생긋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여유 있는 태도에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거절하겠지?’
자포자기한 줄리 그린우드의 귓가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특별한 자격 조건은 없지만.”
“예, 죄송했습니다.”
“원하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지금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나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맞습니다. 원하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애나 로건도 마찬가지였다.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자신의 전임자였다는 것까지 알려 줬는데 가르쳐 주겠다니?
두 사람이 놀라거나 말거나 엘리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제비 날기(swallow flying)를 배우시겠습니까?”
“예! 예! 배우겠어요!”
“그럼 먼저 마나를 혈관에 녹여 넣는 것부터 연습하세요. 그 부분은 애나 로건 경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애나 로건 경,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
“네.”
애나 로건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만남을 최소화하려면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엘리오는 자신이 왜 그걸 애나 로건에게 맡겼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통역 아티팩트를 쓰고 있는데, 뜻이 잘 전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용케 애나 로건 경이 성공했으니 애나 로건 경의 경험을 듣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예. 그렇게 할게요.”
“마나를 혈관에 보낼 수 있게 되면 찾아오세요. 그때 제비 날기를 가르쳐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향해 허리까지 조아렸다.
이야기가 정리되자 엘리오는 두 여기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를 악물고 있는 애나 로건에게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애나 로건. 잘 가르쳐 줘야 할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라고아 남작님을 찾아갈 테니까. 아니다. 가르치는 시늉만 해 줄래? 그게 낫겠다.”
“닥치세요.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라고아 남작님에게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렴.”
애나 로건은 줄리 그린우드 남작에게 마나와 혈관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쳤다.
“……파비안 경은 혈관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위치에 집중하라고 했어요. 스왈로우 플라잉을 위해서는 마나를 두 다리로 흘려 보낼 수 있어야 해요.”
“라고아 남작님에게 배우는 체술이 스왈로우 플라잉이니?”
“그래요. 달릴 때는 마력탄처럼 빠르고, 플라이 마법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있죠.”
“그게 가능하다고?”
그러자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간 애나 로건이 움푹 패인 크레이터를 가리켰다.
“이게 스왈로우 플라잉의 흔적이에요. 마력탄처럼 달려가던 라고아 남작님은 여기서 하늘로 날아오르셨어요. 선배도 언제고 볼 날이 있을 거예요.”
애나 로건이 씁쓸한 눈으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 자신의 관계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공허했다.
***
엘리오가 막사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파비안이 금방 뒤따라왔다.
“중대장님!”
“왜?”
“그 여기사는 또 누굽니까?”
“누구?”
“방금 전까지 중대장님과 함께 있던 여기사 말입니다.”
“베일럼 왕국의 남작이야.”
“막사에서 책만 읽으시더니 베일럼 왕국의 남작은 또 언제 알게 되신 겁니까?”
“어젯밤에.”
“환영회요?”
“그래. 갑자기 내 옆에 와서 시중을 들더라고.”
“야아! 완전히 노린 거네요. 그래서요?”
“이것저것 챙겨 주길래 받아먹었지.”
“그리고요?”
“끝.”
“에이, 그러지 마십쇼. 뭐가 있으니까 중대장님을 따로 찾아온 거 아닙니까?”
“없었어 인마. 애나 로건 경처럼 자기도 체술을 배우고 싶다더라.”
“애나 로건 경과 잘 아는 사이인가 봅니다?”
“셀레투스 기사단의 전임 부단장이란다.”
“헉! 애나 로건 경에게 자리를 빼앗긴 그 부단장요? 아까 그 여기사가 그 사람이었습니까?”
“어.”
순간 파비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야아! 보통 아니네요. 애나 로건 경과 전임 부단장 사이가 그렇게 껄끄러웠다던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기사가 그 두 사람 아닙니까? 밀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들인데요 뭐.”
“아이고, 자랑이다. 나한테 밀주 단속하라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위에서 풀어 주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뭘?”
“체술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르쳐 준다고 했어.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 자리에 애나 로건 경도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있었지.”
“저런! 애나 로건 경 오늘 잠 못 자겠네. 애나 로건 경과 전임 부단장 사이가 나쁘다는 거 모르셨습니까?”
“파비안.”
“예?”
“애나 로건 경은 내가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이고,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나에게 새우 껍질을 까 준 사람이다. 그 이상 내가 알아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하냐?”
“…….”
눈치 빠른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놀랍게도 그는 정말 히르헤라의 미녀 기사들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중대장님, 이건 진짜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서론이 길다.”
“나중에 로건 백작가와 그린우드 백작가가 싸우면 누구 편을 들어 주실 겁니까?”
“정의로운 편.”
“아, 예에.”
파비안이 입을 삐죽이자 엘리오가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누구 편을 들 건데?”
“저야 당연히 애나 로건 경이지요. 애나 로건 경과 먼저 알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의리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 너라면 의리를 따라가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돼.”
“왜요? 안 될 건 또 뭡니까?”
“나도 한때는 그렇게 해 봤는데 못 할 짓이더라고.”
강호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던 엘리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