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98
1098회. 마족보다 더 나쁜 놈들을 만나게 될 것 같아
알 듯 말 듯 한 설명에 파비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귀신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습니까?”
“여기서 귀신이 왜 나와?”
“오감으로 느낄 수 없지만 실재하는 거잖습니까?”
“너 몇 살인데 귀신 타령이냐?”
“스물세 살요.”
“그 나이면 귀신이 아니라 여자에게 관심 가질 때 아니냐?”
“수련 계속하다가 귀신을 볼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육감이 발달하면 귀신을 느낄 수 있습니까?”
“쯧! 겁은 많아서. 귀신도 신이야. 괴상한 형상을 가져서 그렇지. 너 마나 프트라스를 만나고 싶다고 노래를 하지? 그런데 만나 본 적 있어?”
“없습니다.”
“그런 거야. 바라고 바라도 안 만나지는데 뭔 걱정이냐.”
“아, 그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자작님은 신들을 만나 보셨죠?”
“그랬지.”
“귀신은 아니었나 봅니다?”
“흐흐흐. 맞아. 괴상하게 생긴 신들은 아니었어. 오히려 대부분 아름답게 생겼더라고. 내 손에 맞아 죽은 신들도 외모는 그럴싸했어.”
“신들을 왜 죽였습니까?”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해서. 상대가 신이라고 해서 맥없이 죽어 줄 수 없잖아? 그래서 내가 죽였지.”
파비안이 기이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 그의 말이 사실임을 믿는다.
그는 정말로 신들을 죽였다.
흉측하게 생긴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 숭배하는 신이었으리라.
“죄책감 같은 건 없습니까?”
“없어. 얌전히 있는 신을 죽인 게 아니라, 나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신들을 죽인 거라서. 죄책감보다는 업적을 쌓은 느낌이 더 커.”
“그 신들도 자작님을 죽이는 게 업적이었을까요?”
“그들은 나를 걸림돌로 생각했어. 그러니까 청소하는 느낌으로 나를 죽이려고 했을 거야. 나는 살겠다고 신들을 죽였고.”
“이건 여담입니다만, 신들과 자작님의 공생은 불가능했습니까?”
엘리오는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구주의 신 적 존재들과 자신이 공생할 수 있었을까?
결론은 ‘없다’였다.
마치 잘 짜여진 먹이사슬처럼 자신과 신들은 충돌했고, 생사가 갈렸다.
피차 무슨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당연한 듯 그랬다.
“응.”
엘리오는 불가능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천자마와 금사를 죽이기 위해 이 세계까지 건너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신(천자마)’이나 ‘꿈과 환상의 신(금사)’과도 공생할 수 없겠네요?”
“중요한 건 공생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야.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계까지 왔겠냐?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아, 그렇군요. ‘공생’보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는 거죠?”
“타락한 신들과 공생해 봐야 똑같이 나쁜 놈 되는 거밖에 더 있냐.”
“그러네요. 이제 자작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네가 볼 때 나는 어떤 사람이냐?”
“그게, 막상 설명하려니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참기사다, 멋있다, 등등 많은데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른다고? 차라리 욕을 해라 인마.”
“그, 그건 자작님의 극히 일부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엘리오가 계속 말하라는 듯 빤히 보자 파비안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제 마음속에서 자작님은 소드마스터보다 위대한 그랜드마스터이십니다.”
엘리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랜드마스터라는 말을 듣는데 뭔가 뿌듯했다.
최근 주둔지에 늘어난 소드마스터들과 차별되는 것도 좋았다.
“너, 사람 볼 줄 아는구나.”
제가 말하고도 오글거리는지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던 파비안이 물었다.
“그런데 이곳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오늘 마족이 침공합니까?”
“마족보다 더 나쁜 놈들을 만나게 될 것 같아.”
“예? 그게 누굽니까?”
“기다려 봐. 동이 트기 전에 알게 될 거야.”
엘리오가 하얗게 반짝이는 얼음숲을 응시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육신통(六神通)에 의하면 타메이온에서 뭔가 일어날 터였다.
그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마나 개발서를 덮어 두고 침대에 올라 눈을 감자마자 육신통이 발휘됐다.
눈앞에 선명하게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부지불식간에 보게 된 그것은 놀랍게도 메테오 스웜이었다.
군산복합 도시인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진 것이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아비규환의 비명이 여운처럼 귓가를 울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육신통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과거 불길한 느낌에 불과하던 육신통이 이제는 마치 직접 그 일을 경험한 것 같았다.
메테오 스웜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얼음숲에서 보았던 흑마법사들의 의식과 악신 샤이틴의 결계(테르미누스)였다.
흑마법사가 또다시 메테오 스웜을 펼치려면 테르미누스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달려왔다가 파비안과 루퍼스 중대를 만난 것이었다.
파비안은 더 캐묻지 않고 얼음숲을 샅샅이 살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흘간의 강행군으로 파비안의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졌을 때다.
“왔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파비안이 화들짝 놀랐다.
얼음숲 한가운데 마력장이 생성되고 있었다.
파비안은 그것이 메가 텔레포트의 전조임을 알아차렸다.
‘흑마법사구나!’
과거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싸우다 달아났던 흑마법사가 돌아온 게 분명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명의 흑마법사들이 얼음숲에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설원에서 육망성의 불빛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뭘 하려는 거지?’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다.
석상처럼 서 있던 엘리오가 돌연 망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헉!’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몰아닥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루퍼스 중대원 중 누군가 흑마법사들을 발견하고는 하늘로 마력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퍼엉―!
마력 신호탄의 화려한 불꽃과 얼음숲 위를 날아가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젠장! 모두 제자리에서 대기해! 총병들에게 사격하지 말라고 해!”
파비안의 외침에 ‘사격 중지!’라는 말이 곳곳에서 울렸다.
깊게 잠들었던 얼음숲이 한순간 깨어났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마수들이 곳곳에서 포효를 해 댔다.
“아우우우우―!”
“캬아아아!”
“커헝―!”
엘리오가 예상했던 대로 얼음숲에 나타난 것은 흑마법사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테르미누스부터 재가동한 흑마법사 딜런 던포드는 머리 위에서 일어난 폭발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화려하게 빛나는 마력 신호탄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경계병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메테오 스웜을 펼치고 떠나면 자연히 정리될 문제였다.
‘쯧!’ 하고 혀를 차던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마력 신호탄 옆으로, 마치 와이번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한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상대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마법사가 오고 있다! 막아라!”
딜런 던포드의 말에 아홉 명의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쳐들고 마법 주문을 외웠다.
이윽고 ‘파이어 볼’과 ‘윈드 커터’ 등이 하늘 한 지점으로 쏘아 올려졌다.
엘리오는 불덩어리와 바람의 칼날이 다가오자 천둔검을 휘둘렀다.
천둔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와 ‘파이어볼’, ‘윈드 커터’가 허공 한 지점에서 만났다.
퍼퍼펑―! 콰앙―!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법사들의 공격이 계속되자 엘리오는 천둔검을 던졌다.
깜짝 놀란 마법사들이 달아났지만 엘리오의 이기어검을 피할 수 없었다.
퍽! 퍽! 퍼억!
천둔검이 무자비하게 흑마법사들의 상체를 관통했다.
엘리오는 작정한 듯 숨 쉴 틈 없이 흑마법사들을 몰아붙였다.
메테오 스웜의 파괴력을 알기에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천둔검이 장내를 한 바퀴 돌았을 즈음, 아홉 명의 흑마법사들 중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한 생존자인 딜런 던포드가 황망한 눈으로 새처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검과 젊은 기사를 보았다.
기사에게서 느껴지는 가공할 영기를 보니 잊고 있던 석 달쯤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놈이구나!’
7서클 마구스만의 절대 언령 마법으로 알려진 ‘데스 워드’를 깨뜨린 절대강자.
그때는 너무 놀라서 수하들을 버리고 달아나야 했다.
때마침 마나홀에서 테르미누스의 마력 강화 효과로 한계를 초월한 마력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9서클의 마법도 가능하리라.
그는 저 젊은 기사의 목숨이냐, 히르헤라의 파괴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운 좋은 놈이군. 하지만 그 운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딜런 던포드는 서둘러 8서클 마법인 아폴루토스 프로텍트의 주문을 외웠다.
절대 방어인 아폴루토스 프로텍트는 그랜드마스터의 공격도 막아 낼 정도로 완벽한 보호 마법이었다.
우우웅―.
딜런 던포드를 중심으로 반구형(半球形)의 마력장이 생성됐다.
반투명한 마력장을 본 딜런 던포드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끝났군.’
이제 절대 방어 안에서 메테오 스웜의 주문을 완성한 뒤에 텔레포트로 떠나면 이 지긋지긋한 히르헤라와도 작별이다.
균열은 더욱 커질 테지만, 병사들을 잃은 북부 왕국들은 당분간 히르헤라로 진출할 엄두도 내지 못하리라.
딜런 던포드는 마음 놓고 메테오 스웜의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엘리오의 검결지가 반구형 보호막을 가리켰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천둔검이 반구형 보호막을 향해 날아갔다.
펑―!
가벼운 폭발음과 함께 천둔검이 뒤로 튕겨 났다.
엘리오는 천둔검으로 몇 번이고 반구형 보호막을 때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천둔검이 저 반구형 보호막을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열 번을 넘어 스무 번 가까이 때렸음에도 반구형 보호막은 멀쩡했다.
뒤늦게 그는 반구형 보호막이 천둔검보다 강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진검강은 어떨까?’
엘리오는 구천구검의 초식으로 반구형 보호막에 진검강을 퍼부었다.
콰콰콰콰쾅―!
얼음숲 일대가 들썩일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지만, 반구형 보호막은 처음과 달라진 게 없었다.
문득 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천체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흑마법사가 또 메테오 스웜을 펼치려 한다는 걸 알았다.
이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이곳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지면 북부 왕국은 히르헤라를 지킬 힘을 상실하게 된다.
엘리오는 균열 저편 히르헤라를 보았다.
과거 설원이던 때와 달리 지금은 대도시다.
저곳에 메테오 스웜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미친놈!’
저 도시의 시민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 위에 메테오 스웜을 퍼붓는단 말인가.
한순간 반구형 보호막 안에서 마법 주문을 영창하던 딜런 던포드와 엘리오의 시선이 마주쳤다.
딜런 던포드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아폴루토스 프로텍트는 신의 권능도 막을 수 있다고 알려진 절대방어의 마법 주문.
그랜드마스터의 공격도 막을 수 있는데 하물며 소드마스터쯤이야.
그는 젊은 기사를 비웃다가 다시 메테오 스웜의 영창에 집중했다.
쿠르르르―.
묵직한 우렛소리와 함께 별들의 운행이 조금씩 뒤틀렸다.
흑마법사를 노려보던 엘리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망루와 감시 초소에서 뚫어져라 지켜보는 루퍼스 중대원들이 보였다.
‘구천검령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데…….’
루퍼스 중대원이 보지 못하게 구천검령을 쓰는 방법이…… 있다.
엘리오는 즉시 공간 창고 마하담에서 흑운차일(黑雲遮日)의 부적을 꺼내 밤하늘로 훨훨 날려 보냈다.
맑던 밤하늘이 돌연 먹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먹구름을 어둠의 에테르로 오해한 파비안은 서둘러 흩어져 있던 루퍼스 중대원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았다.
펑! 펑! 펑! 퍼어엉―!
루퍼스 중대 총병들이 미친듯 마력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칠흑 같은 어둠이 불빛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