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46
1146회. 오 낯선 자여, 모든 신들에 맞서 홀로 싸우라
엘리오가 사슴족인 에밀리에게 ‘고기 먹을 줄 아냐?’고 물은 이유는 아침 식사로 고기 스튜와 빵이 나왔기 때문이다.
에밀리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네.”
사슴족이라고 해서 먹는 것까지 사슴은 아니다.
온순한 성격과 뿔이 사슴을 닮았지 식성은 인간처럼 잡식이었다.
“그래? 다행이네.”
엘리오가 손수 고기 스튜를 떠서 에밀리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사이 에밀리는 빵 한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마법사들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에밀리를 힐끔거렸다.
저 무시무시한 사람이 한낱 수인 계집애의 시중을 들어 주다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사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에밀리를 꼼꼼하게 챙겼다.
강호인들이 봤다면 아마 마법사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리라.
그는 여자와 어린애와 노인을 싫어하기로 유명했으니까.
식사를 마친 후 마법사들은 에밀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 일행이 에밀리와 잡담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그런 마법사들에게 파비안이 소리쳤다.
“어이! 마법사들! 거 왜 아까부터 똥파리처럼 우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어? 차 마시고 나서 부를 테니까 다른 데 가 있어!”
“예, 예.”
호위대 마법사들은 파비안의 눈치를 보며 길옆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에밀리에게 물었다.
“너에게 반지를 준 마법사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느냐?”
“네, 타불라 마탑에서 보고 들은 걸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치안대에 잡혀간다고.”
“그게 전부냐?”
“음……. 에바 멜레스 님에 대한 것도 물어봤어요.”
“에바 멜레스가 누구냐?”
“나이 많은 수인 할아버지예요.”
“그도 테이머냐?”
“네.”
“에바 멜레스도 마공학 연구소에서 너와 같은 일을 했겠구나?”
“아니요. 그분은 외부에서 일을 하셨어요. 마공학 연구소를 비울 때가 많았어요.”
“마탑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냐?”
“네.”
그러자 파비안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마탑 밖에서 무슨 일을 했는데?”
“그건 저도 몰라요. 물어봤는데 가르쳐 주지 않으셨어요.”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마공학 연구소에서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 연구라도 한 걸까요?”
“그랬을지도 모르지.”
“에밀리에게 저주를 걸어서까지 지키려고 한 비밀이 뭘까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탑의 일은 대귀족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다.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작님.”
“왜?”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뭐긴요, 지금까지 우리가 한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타불라 마탑에서 하는 비밀 연구 말입니다.”
“관심 없다. 나는 천공성만 찾으면 돼.”
“뭔가 거대한 음모의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응, 상관없어.”
엘리오는 파비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타불라 마탑에서 뒤 구린 일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뭐?
자신의 목표는 악인이 아니라 금사와 천자마다.
‘마탑의 음모? 그런 건 개나 주라고 해.’
이 세계 사람도 아닌 그에게 마탑의 음모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파비안은 불만족스러운 듯 입을 삐죽였지만 더 파고들지 않았다.
사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하고자 하는 일에 비하면 타불라 마탑의 비밀은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제도 페트로폴리스 중구.
타불라 마탑.
마공학 연구소 사육장.
마공학 연구소장이자 5서클 메이지인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맞은편에 결박당한 채 앉아 있는 수인 에바 멜레스를 씁쓸한 눈으로 보았다.
“에바 멜레스. 네가 하는 일에 대해 에밀리에게 말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너희가 사람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지. 하지만 수인은 좀 다르지 않나.”
“우리도 사람입니다.”
“고양이족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고양이족일 뿐.”
그러자 에바 멜레스가 숙이고 있던 머리를 쳐들었다.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에 노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뿐, 이내 에바 멜레스의 눈동자가 풀어졌다.
자신의 앞에 있는 마법사가 무려 5서클의 메이지이기 때문이다.
“믿어 주십시오. 에밀리에게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 탑주님 생각은 다르다.”
“몇 번을 물어봐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제가 왜 에밀리같이 앞날이 창창한 아이에게 그런 일을 말해 주겠습니까?”
“앞날이 창창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타불라 마탑에 들어온 수인은 살아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너희는 사형 선고를 받은 중죄인들이니까.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에밀리는 저와 다르게 죄가 없지 않습니까?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면 나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해 주지 않았다?”
“예.”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착잡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다.
문을 열고 마공학 연구소의 마법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오비도스 백작령으로 갔던 마법사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호위대 인솔자인 린다 켈리가 죽었답니다.”
“린다 켈리가 죽어?”
“예,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린다 켈리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자가 왜?”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탑주님이 소장님을 찾으십니다.”
“알겠다. 에바 멜레스를 가두고 잘 지켜봐라.”
“예.”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탑주의 집무실이 있는 5층으로 이동했다.
***
타불라 마탑 5층.
탑주의 임시 집무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카비 크레이저 백작과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찌푸렸다.
“린다 켈리가 죽었네.”
“들었습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목을 베었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린다 켈리가 수습하기 어려운 사고를 쳤어.”
“사고요?”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후작을 보았다.
타불라 마탑 메이지의 목이 잘릴 만한 일이라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에밀리에게 살인 저주를 걸었다고 하더군. 마탑에 대한 충성심으로 한 일이겠지.”
“그걸 어떻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알아냈답니까?”
“한밤중에 찾아와서 그 이상한 마법을 사용했다더군.”
“진실을 말하게 한다는 그 마법요?”
“그래, 린다 켈리는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술술 말했겠지.”
순간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며칠 전에 타불라 마탑에서 그 마법을 목격했었다.
차라리 후유증으로 백치가 되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제정신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말이 아닌가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 카비 크레이저 백작에게 후작이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에바 멜리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할 것 같네.”
“에바 멜리스를 죽이라는 겁니까?”
“정신 마법으로 그가 에밀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내게. 죽이는 건 백치가 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알겠습니다.”
“에바 멜리스를 대체할 테이머는 곧 구해다 주겠네.”
“상급이어야 합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엘리오 일행은 에밀리를 오비도스 백작의 사냥숲에 데려다준 뒤, 동쪽으로 이동했다.
대륙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로렌 공국으로 가는 것이다.
초행길이라는 이유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나서서 사두마차를 사고, 근면 성실한 마부를 수소문해 고용했다.
마부에게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가라고 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해서 동쪽으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서남쪽 포메른부르크 공국에서 동쪽 끝 로렌 공국까지의 거리는 무려 4,500킬로미터.
마차로 하루에 80킬로미터씩 이동해도 무려 56일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창밖으로 포메른부르크 공국의 풍광을 구경하던 파비안이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반대편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파비안의 시선을 느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힐끔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아, 아닙니다. 백작님과 함께 다니니 편해서요.”
“내가 언제까지 라고아 경을 따라다닐 건지 궁금한 건 아니고?”
“하하…….”
파비안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엘리오가 계속해 보라는 얼굴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작정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소드마스터에 근접했다는 건 자네도 알 걸세. 라고아 경은 내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사라네. 가능한 오랫동안 라고아 경의 옆에 남아 있고 싶은 게 내 바람일세.”
“백작님은 자작님이 왜 천공성을 찾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네.”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힐끔 보았다.
백작이 이 정도 각오라면 말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눈빛이다.
엘리오는 잠시 생각했다.
백작은 이미 동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천공성을 찾는 목적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비안이 말했다.
“히르헤라의 균열을 만든 게 흑마법사인 건 아시죠?”
“알다마다. 그 일로 대륙 전체에 흑마법사 척살령이 내렸는데.”
“그 흑마법사의 배후에 천공성이 있었습니다. 자작님은 천공성의 주인인 카마 데비아스를 죽일 겁니다.”
“태양신 카마 데비아스가 배후라는 건가?”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그렇습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천공성을 찾는 거고요.”
“세상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보통의 소드마스터가 아님은 알지만, 태양신을 죽일 생각인 줄은 몰랐다.
‘인간이 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꾹 눌러 참았다.
‘허! 천공성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찾은 이후가 더 문제로군.’
인간과 태양신의 싸움이라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파비안이 계속해서 말했다.
“천공성 다음은 남부 대수림에 있는 어비스를 찾아갈 겁니다.”
“어비스? 모험가들의 천국을 말하는 건가?”
“예, 어비스의 주인인 우샤스 운드라가 카마 데비아스와 한패랍니다.”
파비안은 아직 우샤스 운드라에 대한 확신이 없는 터라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의견을 전하기만 했다.
넋 나간 얼굴로 듣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물었다.
“라고아 경, 정말 신들과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예.”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백작은 전율을 느꼈다.
문득 그의 뇌리로 고대의 시(詩)가 스치고 지나갔다.
누가 그곳에 있느냐?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곳, 아우로라이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히페리온의 사자는,
바다로 둘러싸인 녹색 섬을 지키고 있다.
오 낯선 자여,
모든 신들에 맞서 홀로 싸우라.
텔레마, 불멸의 힘이여!
땅끝에서 온 너는, 어둠이 내려와도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리.
‘오 낯선 자여, 모든 신들에 맞서 홀로 싸우라. 이건 혹시 라고아 경을 두고 하는 예언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흐릿하던 머릿속이 한순간 선명해졌다.
이건 소드마스터가 되네 마네 하는 차원을 아득히 초월한, 인간과 신의 경계를 허무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생의 목표였던 소드마스터가 지금은 너무도 하찮게 생각됐다.
인간의 운명을 걸고 신들과 싸우려는 기사 앞에서, 소드마스터 따위가 뭐라고.
집착을 버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호응하듯 마나홀의 마나가 맹렬하게 소용돌이쳤다.
깜짝 놀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