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8
1158회. 백작님에게 라고아 자작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난감한 질문에 엘리오는 뒷목을 잡았다.
남부에서 전쟁이 터졌다면 코르보 마법 병단도 남부에서 발을 빼기 어려울 터였다.
그렇게 되면 킬리언 헤일 공작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젠장. 편지 괜히 보냈네.’
전쟁 중인 사람에게 잡스러운 일을 부탁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남부 왕국들이 연합했다면 코르보 마법 병단이 후방으로 빠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작님,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빤히 보았다.
엘리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내 고향에 이런 말이 있어.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라.”
“자작님이 직접 해결하시게요? 로렌 공국에 가는 건 어쩌고요?”
“좀 번거롭긴 하지만 가면서도 할 수 있어.”
“어떻게요?”
“내가 마검사 아니냐. 마법 비스름한 걸로 왔다 갔다 하면 돼.”
“아에토스 백작가에를요?”
“아니. 에스쿠도 백작가를.”
엘리오는 화근인 에스쿠도 백작에게 손을 쓸 생각이었다.
이래서 ‘풀을 벨 때는 뿌리까지 뽑으라[削草除根]’는 말이 있는가 보다.
파비안이 슬쩍 엘리오의 안색을 살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자작님.”
“어?”
“자작님 요즘 굉장히 폭력적으로 행동하시는 거 알고 계십니까?”
“내가?”
“예.”
“뭐가 또 굉장히 폭력적이야?”
엘리오가 황당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물론 강호에서도 한때 소악마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복수의 과정에서 생겨난 사소한 오해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다른 녹림 출신들과 달리― 부드럽고[柔], 섬세한 사람이라 믿는 그에게 파비안의 말은 충격이었다.
“코디악(몰록의 성이 있는 도시)에서 난폭하게 행동하셨잖습니까.”
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타메이온에서 빅풋의 심장을 먹은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마족 군주가 인간을 이롭게 할 리 없지 않은가!
“내가 뭘 어쨌기에?”
“마족과 눈만 마주쳐도 분을 못 참고 파르르 떠는 걸 한두 번 본 줄 아십니까?”
“그건 딴생각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던 거고. 너도 코디악에 있는 마족들이 어떤지 봤잖아.”
“그래도 과했던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타불라 마탑의 린다 켈리도 즉결심판 하셨고요.”
“그건 그 사람이 에밀리에게 저주를 심어서 그랬던 거고.”
“하지만 흑마법사도 아닌데 재판도 없이 죽이신 건 좀 과했습니다. 에스쿠도 백작군 수백 명도 자작님의 마법에 목숨을 잃었고요. 솔직히 영지병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영주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들일 뿐이잖습니까?”
“…….”
그 부분에 있어서는 엘리오도 반박하지 못했다.
듣고 보니 파비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잘못은 영주와 그의 가족이 했는데 정작 죽은 건 영지병들이었다.
‘내가 심마(心魔)에 빠진 건가?’
심마는 자기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의 어둠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마족에게 손을 쓸 때나, 마법사를 죽일 때, 영지병들에게 술법을 사용할 때,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던 것 같다.
“자작님은 푸토코아의 암습자들도 살려 주셨습니다. 그들의 죄가 린다 켈리보다 작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비안의 지적에 엘리오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이세계에서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릴 수는 없었다.
한편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아이처럼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선 마족을 때려죽이는 건 오히려 영웅적인 행동이다.
린다 켈리의 경우, 대귀족들에게는 즉결심판의 권한이 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월권을 했다고 비난할 대귀족은 없으리라.
끝으로 에스쿠도 백작군을 죽인 게 뭐가 문제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영지전도 본질은 전쟁이다.
적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비는 람파스 기사단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이랴!’ 하고 외치며 말고삐를 가볍게 흔들었다.
잠시 후 숲길을 빠져나간 사두마차는 도로 위를 힘차게 달렸다.
***
해거름 무렵.
엘리오 일행을 태운 사두마차는 포메른부르크 공국과 말라시아 공국의 접경지에 도착했다.
하비는 마차를 검문소 앞으로 몰아갔다.
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여행자들이 검문소를 통과하는 속도는 매우 더뎠다.
한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사두마차의 차례가 됐다.
마차가 목책으로 다가가자 경비병들이 마차 주변으로 다가왔다.
“어디의 누구요?”
하비가 머뭇거릴 때 마차 문을 열고 파비안이 밖으로 나갔다.
그가 자신의 작위 증명서를 제출했지만 경비병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도 요구했다.
이전에 공국을 드나들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결국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리오의 작위 증명서까지 제출하고서야 마차는 목책을 통과할 수 있었다.
어느덧 창문 밖이 어둑어둑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걸 보니 하비가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검문 과정에서 경비병들과 옥신각신했던 파비안이 툴툴거렸다.
“아니 전쟁은 남부에서 일어났는데 왜 우리한테 까다롭게 굴죠? 북부의 귀족이라고 차별하는 건가?”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전쟁사를 공부할 때 배웠을 텐데. 잊어버린 건가?”
“뭐가 있나요?”
“제국과 왕국의 특무대가 적국 도시에서 파괴 공작을 벌이지 않았나. 그래서 많은 부대를 후방으로 돌려보내야 했지. 전쟁이 나면 타국 기사들의 이동을 파악하는 게 당연하다네.”
엘리오가 파비안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너 기사 아카데미 졸업한 거 맞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우리가 남부의 귀족이면 이해하겠는데, 북부의 귀족들에게도 그러니까 하는 소립니다.”
듣고 보니 이상해진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는데요?”
“전쟁이 발발하면 남부와 북부의 구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제국과 왕국의 관계만 남게 되죠. 히르헤라의 사태만 아니었어도 북부 왕국들이 남부를 도왔을 겁니다.”
“진짜요?”
“제국에서 히르헤라에 1개 사단만 파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북부 왕국들이 히르헤라에서 손해를 볼수록 제국은 안정되니까요.”
“허어! 그런 와중에도 제국과 왕국의 전쟁을 염두에 뒀다는 건가요?”
“전쟁이 끝난 지 50년밖에 안 지났으니까요. 왕국도 그렇지만, 제국에도 전쟁을 바라는 대귀족들이 많습니다.”
북부에 적대적이던 헤드나르 후작을 떠올린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경비병들의 까칠한 행동도 납득이 간다.
엘리오는 속으로 ‘대귀족의 안목은 다르구나!’라고 감탄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파비안을 향했다.
“너, 천재기사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검술에 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검술과 세계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다르죠. 저도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뭐라고 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그러는 동안 마차가 멈춰 섰다.
엘리오 일행은 하비가 말하기도 전에 우르르 마차에서 내렸다.
그곳은 목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다.
파비안이 다가온 하비에게 말했다.
“검문은 없었어요?”
“자경단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열어 줬습니다. 사두마차를 보고 대귀족의 행차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하.”
파비안은 더 묻지 않았다.
영주의 군대가 없는 곳은 주민들이 자경단을 꾸려 스스로를 지켰다.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자경단은 대귀족을 마수만큼이나 두려워했다.
작은 마을에 사두마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잠시 후 촌장이 달려와 엘리오 일행을 마을 회관으로 안내했다.
촌장은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음식을 내왔다.
촌마을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식사를 마친 엘리오가 천둔검을 챙기자 파비안이 물었다.
“이 밤에 어딜 가시게요?”
“똥 치우러.”
“길눈도 어두우신데 이 밤에 혼자 가시게요?”
“헤매지 않고 찾아가는 방법이 있어.”
“그런 게 있습니까?”
“있더라고.”
“백작님과 저는 이곳에서 기다리면 됩니까?”
“어, 늦어도 해 뜨기 전까지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엘리오는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에토스 백작가는 구룡번신(九龍翻身)의 수법으로 단번에 갈 수 있지만, 에스쿠도 백작가는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맞추려고 무리하지는 마십쇼. 자작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한마디 했다.
“라고아 경,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밖으로 나갔다.
딱히 할 일이 없던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슬그머니 그를 따라 나갔다.
공중으로 도약한 엘리오가 구룡번신을 펼치자, 그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두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던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백작님? 저런 텔레포트 마법도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없네. 그리고 저건 텔레포트가 아니네.”
“아니라고요?”
“공간에 아무런 일그러짐이 없지 않았나. 알려지지 않은 이동술일 걸세.”
“제가 자작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습니다.”
“그보다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겠나?”
“예, 제가 아는 건 모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포메른부르크 공국에서 라고아 경이 에스쿠도 백작의 일을 직접 처리하겠다고 했을 때, 경이 라고아 경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아, 그때요? 제가 좀 주제넘은 소리를 했었죠?”
눈치 빠른 파비안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잔소리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자네가 라고아 경에게 한 말을 생각해 보았네. 자네는 라고아 경의 행동을 폭력적이고 난폭하다 지적했네.”
“아이쿠! 지적이라뇨?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백작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제가 말실수를 한 겁니다. 자작님이 돌아오시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라고아 경에게 사죄하라고 하는 말이 아닐세. 그리고 자네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처음도 아니었어. 내가 본 게 맞다면 자네는 라고아 경을 걱정하고 있네. 타메이온에서 라고아 경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
순간 파비안은 자신의 입을 주먹으로 쥐어 패고 싶었다.
백작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선을 넘은 게 분명했다.
그건 이 모임의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직시했다.
자신만 짊어지고 가기에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너무 버거웠다.
“백작님에게 라고아 자작님은 어떤 존재입니까?”
“어떤 존재냐니?”
파비안의 저돌적인 질문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살짝 상체를 뒤로 뺐다.
소드마스터에게 도서관의 사서나, 사무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질문을 하다니!
“존재라는 말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자작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검술의 마스터라고 생각하네. 개인적으로는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보다 더 뛰어난 분이라 믿고 있네.”
“그런 것 말고,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백작님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잠깐,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눈을 찌푸렸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꾸 되물으니 불편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의 기사입니다. 백작님의 질문에 답을 드려도 되는지 판단하기 위해 여쭙는다고 생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