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96
1196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거야
피에스트라.
하데스 항.
마력범선이 천천히 계류장으로 접근했다.
뱃머리에서 항구를 보던 파비안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항구에 높으신 분이 행차했나 봅니다? 저거 황실 기사단 깃발 아닙니까?”
기사단 문양에 어두운 엘리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답했다.
“나는 모르지.”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점잖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제국 황실의 임페리얼 기사단 깃발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일로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국의 사정에 어두운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쁠 일도 있어요?”
“임페리얼 기사단의 종신 기사단장이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입니다.”
“종신 기사단장요?”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백작 시절에 임명되었는데……. 황제가 평생 임페리얼 기사단의 단장으로 있어 달라고 했다더군요. 그 뒤로 임페리얼 기사단은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지휘를 받고 있습니다.”
“대공이 된 뒤에도요?”
“실제로는 부단장인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운영하고 있지만,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작위 때문에 왔는지, 크나우프 후작의 일로 왔는지 모른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파비안이 조금은 긴장된 눈으로 계류장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작위를 주기 위해 온 것이면 좋겠네요. 동부에 영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선원들이 밧줄로 마력범선을 계류장에 단단히 고정했다.
이윽고 널빤지가 계류장과 마력범선 사이에 놓여졌다.
선원들은 계류장에 진을 친 기사단이 두려운지 선뜻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는 엘리오 일행이 앞장섰다.
북부 귀족들이 마력범선에서 내리자 중년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실례지만 북부에서 오신 귀족들이시오?”
기사의 정중한 질문에 파비안이 먼저 일행을 소개했다.
“그렇습니다. 제 왼편에 계신 분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시고, 오른편에 계신 분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라고아 자작님의 수행기사인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파비안이 소개를 마치자마자 중년 기사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나는 임페리얼 기사단 부단장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오. 아라곤 공국의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황제 폐하께 라고아 자작의 봉작을 상신했소. 이에 황제 폐하께서는 히르헤라에서 세운 라고아 자작의 공적을 인정하여, 제국 백작의 작위와 봉토를 하사하기로 하셨소.”
그의 말에 북부 귀족들의 뒤에서 지켜보던 선원들이 일제히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소란이 가라앉자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응시했다.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묻겠소. 귀하는 황제 폐하의 충신이 되어 제국을 수호하고, 귀하에게 주어진 봉토를 잘 다스리겠다고 맹세하겠소?”
“맹세합니다.”
엘리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침략이 아니라 수호라면 얼마든지 환영인 때문이다.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뒤쪽으로 손을 까닥이자 기사 하나가 부단장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두루마리를 활짝 펼친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담담하게 운을 뗐다.
“황제 폐하를 대신해 읽겠소. ‘나 론디니움 제국 황제 덱스터 프레이저 2세는, 에스카토스 왕국 알바 누베스 출신의 엘리오 라고아에게, 론디니움 제국 백작의 작위와 함께 로렌 공국의 라티누스를 봉토로 하사한다.’ 축하하오, 엘리오 라고아 백작. 본래 황궁으로 불러 봉작식을 거행했어야 하는데, 그보다 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하여 약식으로 진행했소. 참고로 작위는 세습되니, 작위와 봉토는 라고아 가문의 것이라 생각하면 되오.”
“감사합니다.”
엘리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제국에 봉토가 생긴 게 너무도 좋았다.
그때 파비안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벨라츠 후작님. 우리 라고아 백작님을 대신해서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봉토로 받은 라티누스 말입니다. 로렌 공국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이곳에서 가깝습니까?”
“당연히 가깝지. 피에스트라 북쪽으로 하루 정도 말을 달리면 라티누스가 나오네. 본래 파베르 백작의 영지였는데, 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뒤로 불프스 공왕에게 귀속됐지. 물 좋고 비옥한 땅이라 노리는 대귀족들이 많았는데, 라고아 백작의 차지가 됐으니 배 아파할 사람들이 많을 걸세.”
“불프스 공왕의 영토인데 황제 폐하께서 마음대로 결정하셔도 됩니까?”
“하하하! 그럴 리가. 불프스 공왕 전하께서 먼저 알고 황제 폐하께 제안한 것이네. 라고아 백작 같은 대귀족이라면 누구라도 모셔 가려 할 걸세. 마침 피에스트라와 가까운 영지라 황제 폐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고.”
“아하!”
파비안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제 왼편에 계신 분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시고, 오른편에 계신 분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라고아 자작님의 수행기사인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파비안이 소개를 마치자마자 중년 기사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나는 임페리얼 기사단 부단장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오. 아라곤 공국의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황제 폐하께 라고아 자작의 봉작을 상신했소. 이에 황제 폐하께서는 히르헤라에서 세운 라고아 자작의 공적을 인정하여, 제국 백작의 작위와 봉토를 하사하기로 하셨소.”
그의 말에 북부 귀족들의 뒤에서 지켜보던 선원들이 일제히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소란이 가라앉자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응시했다.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묻겠소. 귀하는 황제 폐하의 충신이 되어 제국을 수호하고, 귀하에게 주어진 봉토를 잘 다스리겠다고 맹세하겠소?”
“맹세합니다.”
엘리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침략이 아니라 수호라면 얼마든지 환영인 때문이다.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뒤쪽으로 손을 까닥이자 기사 하나가 부단장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두루마리를 활짝 펼친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담담하게 운을 뗐다.
“황제 폐하를 대신해 읽겠소. ‘나 론디니움 제국 황제 덱스터 프레이저 2세는, 에스카토스 왕국 알바 누베스 출신의 엘리오 라고아에게, 론디니움 제국 백작의 작위와 함께 로렌 공국의 라티누스를 봉토로 하사한다.’ 축하하오, 엘리오 라고아 백작. 본래 황궁으로 불러 봉작식을 거행했어야 하는데, 그보다 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하여 약식으로 진행했소. 참고로 작위는 세습되니, 작위와 봉토는 라고아 가문의 것이라 생각하면 되오.”
“감사합니다.”
엘리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제국에 봉토가 생긴 게 너무도 좋았다.
그때 파비안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벨라츠 후작님. 우리 라고아 백작님을 대신해서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봉토로 받은 라티누스 말입니다. 로렌 공국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이곳에서 가깝습니까?”
“당연히 가깝지. 피에스트라 북쪽으로 하루 정도 말을 달리면 라티누스가 나오네. 본래 파베르 백작의 영지였는데, 그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뒤로 불프스 공왕에게 귀속됐지. 물 좋고 비옥한 땅이라 노리는 대귀족들이 많았는데, 라고아 백작의 차지가 됐으니 배 아파할 사람들이 많을 걸세.”
“불프스 공왕의 영토인데 황제 폐하께서 마음대로 결정하셔도 됩니까?”
“하하하! 그럴 리가. 불프스 공왕 전하께서 먼저 알고 황제 폐하께 제안한 것이네. 라고아 백작 같은 대귀족이라면 누구라도 모셔 가려 할 걸세. 마침 피에스트라와 가까운 영지라 황제 폐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고.”
“아하!”
파비안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황제가 불프스 공왕에게 라고아 백작의 근황을 묻는 과정에서 봉작과 봉토의 정보를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엘리오 일행과 함께 바닷바람 태번으로 자리를 옮겼다.
황실 기사단에서 손을 썼는지 손님으로 북적거려야 할 바닷바람 태번은 조용했다.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주문한 맥주와 안주가 나오자 주인과 요리사는 물론 셀리까지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그는 주방 내부까지 직접 가서 둘러본 뒤에 엘리오 일행에게 돌아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와 파비안 남작도 자리를 피해야 하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니네. 제국 대귀족들이 너무 관심을 가져서 그러는 것이라.”
이윽고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온 것은 단지 작위 수여를 위해서만이 아니오. 라고아 백작은 기사단장님이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 전하라는 것을 알고 있소?”
“조금 전에 들었습니다.”
“크나우프 대공가를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단장님을 대신해 내가 왔소. 단장님께서는 결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은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소.”
“다른 사람의 지시라는 건가요?”
“그렇소. 특무대장인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독단적으로 벌인 짓이오.”
“증거는 있나요?”
“아쉽게도 증거는 없소. 크나우프 대공가의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특무대가 속한 감찰부는 대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 크나우프 대공가도 자백을 받아내기 어려울 거요.”
“아하, 그래서요? 없던 일로 하자?”
“결과적으로는 그렇소.”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구구절절이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변명은 약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죠.”
엘리오는 반대하지 않았다.
크나우프 대공가와 각을 세워 봐야 피곤하기만 한 까닭이다.
고슬링 후작과 결투 이후 기사단만 봐도 신경이 쓰였다.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것저것 고려할 게 너무 많아서다. 그런 쓸데없는 감정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감사하오. 참고로 추후에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수 있으나, 그건 크나우프 대공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크나우프 대공가와 관계된 일을 떠들어 댈 사람들이 있어요?”
“있소. 심지어 아주 많소.”
“누군가요? 그런 사람들이.”
“과거 군신이라 불리던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께 패한 가문의 후손들과…….”
레이드 벨라츠 후작이 말끝을 흐리자 엘리오가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요?”
“하아! 황태자 전하의 측근들이 그렇소.”
“예? 황태자는 왜 그런대요? 크나우프 대공가에 감정이 있나요?”
“황태자 전하는 황제 폐하를 빼닮으셨소. 과거 제국 전쟁을 일으킨 분이 황제 폐하시오. 물론 나이가 드신 뒤로 온화해지셨지만. 황태자 전하는 강경파의 수장이시오.”
“예?”
레이드 벨라츠 후작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엘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경파인 것과 크나우프 대공가를 들쑤시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황태자 전하가 크나우프 대공가를 자극하는 것은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전선에 뛰어들기를 바라기 때문이오. 조만간 라고아 백작에게도 황태자 측 사람이 찾아올지 모르오.”
“나는 확전을 막으려고 제국에서 작위를 받은 건데요?”
“제국 수호의 맹세를 내세워 라고아 백작에게 남부 전선으로 가라고 하실 수도 있소.”
“괜찮아요.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천공성을 찾아야 하니까. 천공성의 위험에 비하면 남부 왕국과의 전쟁은 새 발의 피예요.”
“그게 사실이오?”
“그러니까 히르헤라에서 피에스트라까지 달려왔죠. 흑마법사들에게 히르헤라 빙벽의 파괴를 지시한 배후가 천공성에 있다니까요. 그자의 마법 경지가 무려 마그눔 오프스예요. 그자가 작정하고 튀어나오면 제국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마그눔 오프스라면 멸망할 게요.”
“바로 그거예요. 남부 왕국과의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알겠소. 나도 돌아가는 대로 기사단장님과 황제 폐하께 마그눔 오프스에 대한 주의를 다시 한번 말씀 올리겠소.”
“황제 폐하에게 말해서 황태자 좀 진정시키라고 하세요. 괜히 바쁜 사람 발목 잡고 늘어지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하하.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시오. 황태자 전하도 지혜로운 분이시니 마그눔 오프스에 대해 알게 되면 자중하실 것이오.”
“북부 왕국에서 마그눔 오프스의 존재를 알려 줬을 텐데요?”
“북부의 정보는 황실에서도 특급 기밀로 다루고 있어서……. 어느 정도 선까지 알고 계신지 단언하기가 어렵소.”
“남부 왕국과 전쟁할 경우에 대비해 꼭꼭 감췄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요?”
“꼭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오. 스쿠툼(빙벽)에 균열이 생겼다는 게 알려진다면 세상만 혼란해질 게요. 어떤 일은 아는 게 도리어 병이 될 수도 있는 법이오.”
엘리오는 반박하지 않았다.
하기야 황궁 마법사인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도 포기한 균열이니 일반 백성들은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할 말을 마친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주인과 요리사, 셀리가 바닷바람 태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요?”
“하아! 황태자 전하의 측근들이 그렇소.”
“예? 황태자는 왜 그런대요? 크나우프 대공가에 감정이 있나요?”
“황태자 전하는 황제 폐하를 빼닮으셨소. 과거 제국 전쟁을 일으킨 분이 황제 폐하시오. 물론 나이가 드신 뒤로 온화해지셨지만. 황태자 전하는 강경파의 수장이시오.”
“예?”
레이드 벨라츠 후작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엘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경파인 것과 크나우프 대공가를 들쑤시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황태자 전하가 크나우프 대공가를 자극하는 것은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전선에 뛰어들기를 바라기 때문이오. 조만간 라고아 백작에게도 황태자 측 사람이 찾아올지 모르오.”
“나는 확전을 막으려고 제국에서 작위를 받은 건데요?”
“제국 수호의 맹세를 내세워 라고아 백작에게 남부 전선으로 가라고 하실 수도 있소.”
“괜찮아요.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천공성을 찾아야 하니까. 천공성의 위험에 비하면 남부 왕국과의 전쟁은 새 발의 피예요.”
“그게 사실이오?”
“그러니까 히르헤라에서 피에스트라까지 달려왔죠. 흑마법사들에게 히르헤라 빙벽의 파괴를 지시한 배후가 천공성에 있다니까요. 그자의 마법 경지가 무려 마그눔 오프스예요. 그자가 작정하고 튀어나오면 제국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마그눔 오프스라면 멸망할 게요.”
“바로 그거예요. 남부 왕국과의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알겠소. 나도 돌아가는 대로 기사단장님과 황제 폐하께 마그눔 오프스에 대한 주의를 다시 한번 말씀 올리겠소.”
“황제 폐하에게 말해서 황태자 좀 진정시키라고 하세요. 괜히 바쁜 사람 발목 잡고 늘어지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하하.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시오. 황태자 전하도 지혜로운 분이시니 마그눔 오프스에 대해 알게 되면 자중하실 것이오.”
“북부 왕국에서 마그눔 오프스의 존재를 알려 줬을 텐데요?”
“북부의 정보는 황실에서도 특급 기밀로 다루고 있어서……. 어느 정도 선까지 알고 계신지 단언하기가 어렵소.”
“남부 왕국과 전쟁할 경우에 대비해 꼭꼭 감췄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요?”
“꼭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오. 스쿠툼(빙벽)에 균열이 생겼다는 게 알려진다면 세상만 혼란해질 게요. 어떤 일은 아는 게 도리어 병이 될 수도 있는 법이오.”
엘리오는 반박하지 않았다.
하기야 황궁 마법사인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도 포기한 균열이니 일반 백성들은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할 말을 마친 레이드 벨라츠 후작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주인과 요리사, 셀리가 바닷바람 태번으로 돌아왔다.
황실 기사단이 사라지자 일반 손님들도 하나 둘 태번을 찾았다.
파비안이 마른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자작, 아니 백작님. 황태자가 거절해도 거머리처럼 자꾸 엉겨 붙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하던 대로 하는 거지.”
“패시게요?”
“무슨 소리야? 나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 아니야. 황태자를 어떻게 패?”
“후작, 공작에게는 거침없이 손을 쓰셨잖습니까?”
“황태자는 다르지. 황제가 될 사람인데 똑같이 하면 되겠냐?”
“안 될 건 또 뭐가 있습니까? 황태자는 뭐 사람 아닙니까?”
급진적인 파비안의 발언에 엘리오가 펄쩍 뛰었다.
“야! 너 뭐 잘못 먹었어? 내가 그러겠다고 해도 말려야 할 사람이 왜 그래?”
“말려요? 백작님이 말리면 들을 사람이고요? 오마르 백작님도 한 말씀 해 주십쇼. 라고아 백작님이 누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입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그 점에 있어서는 파비안과 생각이 같았다.
“라고아 경이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황태자를 패는 건 아니죠. 제가 그 정도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엘리오가 애원의 눈초리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끝내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도 기사의 양심이 있는지라.”
“오마르 백작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할 말이 없네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엘리오는 반쯤 남은 맥주를 단숨에 마셨다.
그때 파비안이 확인하듯 물었다.
“아직 대답 안 하셨습니다. 하던 대로 하는 게 뭔데요?”
“몰라 인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