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20
1220회. 적들은 네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아
‘같은 깃털의 새끼리 무리를 지어 다닌다[類類相從]’는 말이 있다.
마차를 타고 가던 승객들은 동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남작가 출신인 안드리아 지터 부부는 같은 귀족가 사람들과 어울렸다.
특히 딸인 싱크레어 지터와 비슷한 또래의 아들을 둔 웨인 스코트 부부와는 거의 매일 식사를 함께했다.
스코트 남작가의 차남인 웨인 스코트는 점잖은 신사였지만, 그의 부인인 이라이자 크로우는 고상함과 거리가 먼 여자였다.
크로우 자작가의 삼녀인 이라이자 크로우는 방탕한 생활로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었는데, 얼굴만큼은 뭇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정도로 아름다웠다.
웨인 스코트 역시 그런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의 적극적인 구애로 둘은 마침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안드리아 지터 부부와 웨인 스코트 부부는 여행 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았다.
샤인 코울스로가 눈치껏 이라이자 크로우의 비위를 잘 맞춰 준 덕분이다.
그러던 두 부부 사이는 모험가가 싱크레어 지터를 가르치면서부터 삐걱댔다.
싱크레어 지터의 얻어걸린 행운이 부러웠던 이라이자 크로우는 매사에 딴지를 걸었다.
―검술을 가르치려면 아카데미로 보내야지 뜨내기에게 그런 걸 맡기면 안 된다.
―모험가는 대부분 용병 출신이라 검술에 근본이 없다.
―여자는 체력에 한계가 있어 검술보다 마법이 더 어울린다.
그래도 안드리아 지터 부부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비난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그러다 마침내 점심 식사 도중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모험가가 여자를 엄청 밝힌다던데 뭘 믿고 싱크레어를 맡긴 거예요? 정말 소문처럼 모험가에게 딸을 팔기라도 한 건가요? 두 분 다 남작가 출신이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건 가난한 평민들이나 할 법한 일이잖아요?”
이라이자 크로우의 막말에 샤인 코울스로가 버럭 소리쳤다.
“이보세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일에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그러나 이라이자 크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그럼 가르쳐 줘 봐요. 어느 기사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밖에서 검술을 가르치는지. 그것도 여자아이가 잘 걷지도 못할 정도로 하루 종일. 오늘은 기절한 애를 안고 왔다면서요? 나도 자작가에서 자랐지만 그런 식의 검술 지도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
샤인 코울스로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웨인 스코트가 처의 팔을 슬그머니 붙잡았다.
“부인, 그만합시다.”
그러나 이라이자 크로우는 도리어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이 말해 봐요. 크로우 남작가에서도 그런 식으로 검술을 지도하나요?”
“아니오. 어쨌든 여기까지만 합시다.”
“거봐요. 이상하다고 했잖아요. 다투지 않는 것도 좋지만, 귀족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니까요.”
이라이자 크로우가 계속 물고 늘어지자 안드리아 지터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 광경을 본 파비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와아! 저 여자 입이 소드마스터네요.”
“그러게. 너도 말로는 저 여자를 못 당하겠다.”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런데 라고아 경은 저런 소리를 듣고도 괜찮으십니까?”
“나한테 한 소리는 아니잖아.”
“아니라고요?”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모험가를 변태인 것처럼 말했는데 나한테 한 소리가 아니라니?
“지터 씨 부부에게 한 말이라는 뜻이야. 남의 대화를 엿듣고 화내면 쓰나.”
“라고아 경에 대한 모욕적인 평가도 있었잖습니까?”
“오해라고 봐.”
“의외로 마음이 넓으시군요. 상대가 남자였어도 그랬을까요?”
“남자면 입을 찢었지.”
“왜 남자와 여자에 차별을 두십니까?”
“그 말은 내가 저 여자 입을 찢어야 한다는 소리야?”
“아닙니다. 왠지 여자라고 봐주는 것 같아서 여쭤본 겁니다.”
“봐주지 말고 찢어라?”
“아니라니까요!”
“찢고 싶으면 네가 가서 찢어. 괜찮다는 나를 부추기지 말고.”
“이야기가 왜 그리로 갑니까?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찢으라는 소리네.”
“아니라고요!”
파비안은 강하게 부정했다.
차별하지 말자는 소리를 왜 그렇게 몰아가는지 모르겠다.
이 층 숙소로 돌아간 샤인 코울스로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자 안드리아 지터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무 화내지 마시오.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잖소.”
“그래도 저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어요. 싱크레어의 검술 지도를 모험가에게 계속 맡겨야 하나요? 차라리 당신이 기초를 가르쳐 주는 건 어때요? 당신도 지터 남작가에서 기초는 배웠을 거 아니에요?”
“모험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게요. 당신도 그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사람인지 알잖소.”
“그래도 우리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요. 모험가의 행동이 이상한 건 사실이잖아요.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매일 애를 데리고 나가질 않나. 갑자기 마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하질 않나. 말로만 고상한 척하는 그 여자도, 모험가도 다 마음에 안 든다고요!”
물끄러미 아내를 보던 안드리아 지터가 딸에게 시선을 돌렸다.
“싱크레어, 너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 이럴 때일수록 너의 의견이 중요하단다. 너는 모험가에게 계속 검술을 배우고 싶으냐? 만약 네가 싫다면 더 이상 모험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된다. 네 생각은 어떠냐?”
“마스터에게 배우고 싶어요. 배우게 해 주세요.”
“마스터? 모험가가 자기를 마스터라고 부르게 시켰느냐?”
“네.”
안드리아 지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기사와 종자 간에나 사용하는 단어인 까닭이다.
‘모험가가 기사일까?’
기사라면 조금 희망적이다.
용병 출신 모험가와 달리 기사들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알겠다. 네가 좋다니 계속 배우도록 해라. 그런데…… 아니다.”
안드리아 지터는 딸에게 ‘마나의 축복을 받았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잠에서 깨자마자 자랑을 했겠지…….’
하지만 싱크레어는 ‘마나’의 ‘마’ 자도 꺼내지 않았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적자도 아닌데 열두 살에 마나의 축복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아버지가 허락하자 싱크레어 지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검을 챙겼다.
“저, 마스터에게 검술을 배우고 올게요.”
샤인 코울스로는 철부지 딸의 행동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버렸다.
방금 식당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도 모험가에게 달려갈 생각을 하다니 기가 막혔다.
딸이 밖으로 나가자 안드리아 지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가드들을 통해 알아보니 검술 지도를 하고 있다 하더이다. 그 미친 여자의 말은 신경 쓸 것 없소.”
그가 이라이자 크로우를 욕하자 샤인 코울스로는 슬그머니 이불을 내렸다.
***
약하게 내리던 눈이 멈췄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 빛깔이었다.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를 뒤에 달고 태번을 나섰다.
일 층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승객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눈은 성인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앞서 걷는 엘리오의 뒤를 힘겹게 따라 걷던 싱크레어 지터가 소리쳤다.
“헉! 헉! 좀 천천히 가면 안 돼요?”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가 가까이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가오자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스스슷―.
눈 위를 달리고 있지만 발자국조차 찍히지 않았다.
답설무흔의 경공술로 마을을 빠져나간 그는 순식간에 가까운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싱크레어 지터는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마스터를 올려다보았다.
산 꼭대기까지 단숨에 달려온 것도 놀랍지만, 뒤를 돌아보니 발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는 그녀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라는 걸 가르쳐 주마. 이것을 배우면 하루도 쉬지 말고 수련해야 한다.”
“그것도 검술인가요?”
“이건 명상법이다. 이 명상법을 매일매일 반복하면 검술에 큰 도움이 되지. 아침에 앉았던 자세대로 앉아 보거라.”
싱크레어 지터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엘리오는 소주천을 가르쳤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싱크레어 지터는 바로 소주천에 돌입했다. 마나라는 실체가 있었기에 그걸 한 바퀴 돌리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명상에서 깨어난 싱크레어 지터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네가 나에게 배운 기술들은 아무에게나 가르치면 안 된다. 반드시 심성이 착한 사람에게만 가르쳐야 해. 알겠냐?”
“네.”
“그럼 이제 ‘세 가지 재능의 검(Three Talented Swords)’을 펼쳐 봐.”
마스터의 지시에 싱크레어 지터는 힘차게 목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치릿!’ 하고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아침까지만 해도 없던 현상이라 싱크레어 지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연히 그녀의 집중력이 흩어졌다.
“딴생각하지 말고!”
마스터의 호통에 ‘아차!’ 싶은 싱크레어 지터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싱크레어 지터가 삼재검에 익숙해지자 엘리오는 나뭇가지를 꺾어 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세 가지 재능의 검’으로 너를 공격할 테니 막아 봐.”
말을 마친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에게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삼재검이라고는 하나 이미 초식을 버린 경지의 그인지라, 어린 싱크레어 지터는 단 한 번도 막아 내지 못했다.
“앗! 아야! 아야! 아파요!”
싱크레어 지터가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엘리오는 멈추지 않았다.
소리쳐도 멈추지 않자 싱크레어 지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 동안 난타당하던 싱크레어 지터가 우연찮게 나뭇가지를 막았다.
따악―!
그제야 엘리오는 두드려 패던 걸 멈췄다.
“싱크레어, 적들은 네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아. 아니, 오히려 더 신이 나서 너를 공격할걸? 왜냐고? 그게 세상의 이치니까. 싸움은 내가 죽든, 상대를 죽이든 해야 끝이 나는 거야. 그러니까 아프다 비명 지르지 말고,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되받아칠 생각을 해. 알겠냐?”
“……네.”
“세 가지 재능의 검을 각각 백 번씩 해.”
입술을 삐죽이던 싱크레어 지터는 목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치릿! 치릿! 치릿―!
날카로운 파공음이 산 정상에 울려 퍼졌다.
엘리오는 그녀의 자세가 안정되자 구천세법 일 식인 드래곤 플라이[飛龍昇天]를 가르쳤다.
과거 와룡장 아이들이 네다섯 살에 배우던 검술이라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싱크레어 지터는 세 번만에 드래곤 플라이의 초식을 외웠다.
자신은 물론, 클루톤의 천재 기사로 불리던 파비안보다도 빠른 속도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지려 하자 엘리오는 ―마치 고양이를 다루듯― 싱크레어 지터의 뒷덜미를 잡고 하산했다.
태번.
어제까지만 해도 숙소로 돌아갈 때면 축축 늘어지던 싱크레어 지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데 이어 ‘작은 하늘 회로’를 배워 피로 회복이 빨라진 탓이다.
기운이 뻗친 그녀는 다른 때와 달리 후다닥 이 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때마침 일 층에 나와 있던 운송 책임자 레온 토로스가 엘리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눈이 그쳤으니 이삼일 후면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출발일이 확정되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급적 멀리 나돌아 다니지 말라는 소리다.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오에게 레온 토로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지터 씨와 스코트 씨 사이에 주먹다짐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