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4
1254회. 고작 한 번의 실패일 뿐입니다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검사를 그랜드 마스터, 마법사를 마그눔 오프스라 부른다.
그것과 별개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마공학자를 가리키는 칭호가 있다.
그것이 아크 메이지다.
마공학은 기술에 마법을 접목시킨 것으로 마법만 뛰어나다고 아크 메이지가 되는 건 아니다.
마탑을 통틀어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아크 메이지만 있는 것도 그래서다.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타불라 마탑.
마공학 연구소.
붉은 노을에 물든 창가 자리에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았다.
마공학 연구소장인 5서클 메이지 카비 크레이저 백작과 초로의 노인이다.
노인, 아크 메이지 메기스투스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오늘 새벽 프리아의 제작실에서 골리앗의 자율 기동에 성공했습니다. 야수에서 수인으로 교체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현재 다른 수인으로 골리앗 2호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자율 기동까지 무난하게 갈 것 같습니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메기스투스와 달리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이오? 자율 기동을 확인했소?”
“골리앗이 명령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열 번 넘게 확인했습니다. 반발이나 저항 없이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타불라 마탑이 제국, 아니, 대륙 제일의 마탑으로 우뚝 솟을 거요.”
“전투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황실의 재가가 필요합니다.”
“남부 전선에 투입하자는 소리요?”
“남부 왕국의 강철 골렘에 맞설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알겠소. 그 문제는 탑주님과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하겠소. 골리앗 한 기를 제작하는 데 시간이 어느 정도나 걸리오?”
“모든 인력을 투입해도 보름은 걸립니다. 수인의 확보를 제외하고 기체의 제작에만요.”
“한 달에 두 기라는 소리구려?”
“수인이 제때 공급된다는 전제하에 그렇습니다.”
“알겠소. 수인의 확보는 신경 쓰지 마시오. 수인 부락의 위치를 확인해 두었으니 차질 없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오.”
“에바 멜레스와 가깝게 지내던 수인 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라도 그 아이를 통해 골리앗의 비밀이 새어 나갔다면…… 타불라 마탑이 폐쇄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했는데 별일이 있겠소?”
“골리앗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에 관한 별별 추측이 나돌 겁니다. 그때 에바 멜레스의 이야기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에바 멜레스는 죽여서 입을 봉했지만, 그의 측근이던 에밀리는 수인족에게 돌아갔다.
수인족이 인간보다 열등한 취급을 받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영혼을 골리앗에 집어넣었다는 게 밝혀진다면,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은 흑마법사 취급을 당하게 될 터였다.
그 정도 사건이면 황실에서도 감싸 주기 어렵다.
아니, 제국 시민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 황실이 앞장서 타불라 마탑을 찢어발길 게다.
고민하는 카비 크레이저 백작의 귓가에 메기스투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인 아이를 없애야 합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게요.”
“어차피 소장님과 탑주님은 라고아 백작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엑시티움으로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소.”
“고작 한 번의 실패일 뿐입니다. 그것도 한 발만 사용했다지요?”
“…….”
“하나로 안 되면 둘, 둘로도 안 되면 셋, 넷…… 죽을 때까지 엑시티움을 퍼부으면 됩니다. 신이 아닌 이상, 그도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 문제는 탑주님과 상의해 보리다.”
“어비스로 가고 있다지요? 톰스톤의 범죄자들은 일 골드만 쥐어 줘도 서로 하겠다고 덤벼들 겁니다.”
톰스톤은 어비스 입구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험가들의 도시다.
말이 모험가의 도시지 실은 온갖 범죄자들로 들끓는 범죄 도시였다.
오죽하면 도시 이름이 비석(톰스톤)일까.
톰스톤이 범죄자들의 도시가 된 것은 톰스톤에 치안을 담당할 조직이 없어서다.
대수림은 미개척지다.
당연히 대수림 중앙에 있는 톰스톤에도 제국이나 왕국의 지배력이 닿지 않았다.
흔히들 대수림에는 세 개가 없다고 한다.
왕, 영주, 치안대가 그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대륙의 범죄자들은 죄다 톰스톤으로 몰려갔다.
물론 톰스톤에도 자경단이 있지만, 자경단보다 범죄 조직이 더 강했다.
그러다 보니 비석이라는 도시 이름에 걸맞게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갔다.
톰스톤에서는 청부 살인에 일 실버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일 골드를 준다면 죽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줄을 설 터였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암살은 수인족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타불라 마탑의 존폐가 달린 문제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그는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탑주님과 상의해 보겠소.”
메기스투스는 답답한 눈으로 백작을 보았지만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골리앗의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결국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남부 아드리아 왕국.
크룰리를 떠난 엘리오 일행의 역마차는 열흘 후 아드리아 왕국에 들어섰다.
마차는 아드리아 왕국에서 다시 하루를 더 달려 최종 목적지인 페로무로스에 도착했다.
페로무로스는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도시들과 확연하게 달랐다.
도시가 무려 강철로 된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창밖으로 강철 벽을 보던 엘리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아! 성벽 좀 봐. 철이 남아도나?”
“그러게 말입니다. 북부에 돌아가 말해 줘도 믿지 않을 것 같은데요?”
북부 출신 귀족들이 혀를 내두르자 삼등석에서 하워드 솔론 남작이 끼어들었다.
“마수와 마물의 침략이 너무 심해 강철로 벽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바로 반박했다.
“에이! 아무렴 북부의 글라체스 요새만큼 시달렸을까. 글라체스 요새도 돌인데, 강철은 심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라고아 경?”
글라체스에서 마족과 싸웠던 엘리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페로무로스보다 글라체스가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글라체스가 더한 건 사실이지.”
하워드 솔론 남작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페로무로스는 제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위험한 도시였다.
‘북부에 타메이온이 있다면 남부에는 대수림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드리아 왕국의 페로무로스는 대수림과 맞닿은 곳으로 지금도 마수가 출몰한다.
스쿠툼(빙벽)이 세워진 이후 마수가 급감한 북부보다 더 위험지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북부 출신 기사들은 히르헤라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믿겠지만 말이다.
잠시 후 간단한 검문을 마친 역마차는 강철 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역마차는 도시 중앙의 역마차 운송협회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운송 책임자와 가드들이 엘리오 일행의 마차 앞에 정렬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작별 인사를 하려는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에 가드들을 힐끔거렸다.
엘리오 일행이 마차에서 내리자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가 쪼르르 달려가 허리를 조아렸다.
“각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실 때 불러 주십시오. 그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각하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엘리오는 찾아와 인사하는 운송 책임자를 귀찮다고 내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알면 누구라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접을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어쩌겠나, 자신의 위치가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때 고급스러운 마차 두 대가 다가왔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제와 성기사 들이 이용하는 마차다.
사제들의 마차를 본 운송 책임자와 가드들은 슬그머니 역마차 협회 사무소로 들어갔다.
남아 있어 봐야 들러리밖에 안 되니 알아서 자리를 피한 것이다.
역마차가 떠난 빈자리에 신전의 마차가 멈춰 섰다.
곧이어 마차에서 내린 하미쉬와 시쉬트가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하미쉬가 신전의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시카의 신전까지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떨까요?”
그녀의 제안에 엘리오가 마차 내부를 슬쩍 살폈다.
역마차처럼 육 인승이라 세 사람이 더 타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 먼가요?”
“이곳에서 반나절을 더 대수림 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거리도 거리지만 초행길이실 테니, 저희와 함께 움직이는 게 나을 겁니다.”
대수림이라는 말에 엘리오가 반색을 했다.
“이시카의 신전이 대수림에서 가까운가 봐요?”
“사람들이 이시카를 떠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마수와 마물의 출현이 빈번하니까요.”
“지금도 그런가요?”
“고대에 대륙 중부의 마수와 마물이 북부와 대수림으로 이동한 건 아시죠? 고대사에 의하면 각각 타메이온과 대수림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타메이온은 스쿠툼(빙벽)에 의해 막혔지만, 대수림과 남부 왕국 사이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허! 정말요? 남부 왕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대요?”
“대수림이 스쿠툼의 역할을 했습니다. 마수와 마물에게 대수림이 최적의 장소라, 인간의 영역으로 진출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아! 그러니까 북부는 빙벽, 남쪽은 대수림으로 마물의 유입이 차단됐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오묘한 마나 프트라스님의 섭리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대수림에 벽이 없으니 마물이나 마수가 넘어올 수도 있잖아요?”
뒤쪽에 가만히 서 있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서 페로무로스같이 강철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생겨난 겁니다.”
엘리오는 솔론 남작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북부 글라체스보다, 아니 어쩌면 히르헤라보다 위험한 곳이 페로무로스였다.
북부의 빙벽은 ‘벽’이지만 대수림은 그저 ‘울창한 숲’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득 엘리오가 하미쉬에게 물었다.
“대수림의 마수와 마물이 남부 왕국으로 넘어오지 않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건 인간에게 마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마수와 마물의 몸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지만, 인간은 그저 육신밖에 없으니까요. 이왕이면 마력까지 함께 취하는 게 마수나 마물 입장에서는 훨씬 낫겠죠?”
“아…….”
“마수나 마물이 대수림을 벗어난 경우는 둘 중 하나예요. 병들어 대수림에서의 사냥이 어려워졌거나, 사람 고기의 맛을 잊지 못한 거죠.”
“말씀을 들으니 대수림도 오묘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나 프트라스님의 섭리죠.”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사제가 마나 프트라스님을 찬양해도 돼요?”
“샤스트라 파라크티님과 마나 프트라스님은 남남이 아니니까요. 그럼, 이시카의 잊혀진 신전으로 함께 가 보실까요?”
하미쉬의 거듭된 권유에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모르기도 하지만, 이 더위에 반나절 거리를 걸어가고 싶지 않아서다.
엘리오 일행을 태운 신전 마차가 강철 벽으로 둘러싸인 페로무로스를 빠져나갔다.
대수림과 맞닿은 지역답게 도로가 ―양편에서 자란 나무들로―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야아! 산적들 먹고살기에 딱 좋은 지형이네.’
엘리오가 감상에 젖은 눈으로 창밖을 살폈다.
저런 곳에 숨어서 상단을 털어 먹던 옛 추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파비안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한마디 했다.
“용병들이 돌변한 이유를 알 만도 하네요. 강도 짓 하기에 좋아 보입니다. 에이, 쌍놈의 새끼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뜨끔한 엘리오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늘이 생겼으니 시원해서 좋다고 해야지. 네 머릿속에는 그런 것밖에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