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3
1253회. 죄인은 어디 있느냐?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는 귀족처럼 성을 가졌지만 실은 평민이다.
그런 사람을 라무스라 한다.
라무스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다.
첫째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둘째는 ‘법을 잘 지킨다’이다.
봉작의 기준이 ‘공적’과 ‘준법’인 한 라무스들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 관리자로 라무스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매사에 열심인데, 법까지 잘 지키기 때문이다.
라무스들은 치안대에 협조적이다 못해 적극적으로 돕기까지 했다.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크룰리의 치안대에 지난밤에 일어난 일을 숨김 없이 보고할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마나 프트라스의 사제들을 만나고 온 것도 그래서다.
라고아라는 모험가에게 ‘제가 알고 있는 걸 말해도 되겠습니까?’ 물었지만, 실은 상대가 반대해도 치안대에 모두 털어놓을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의 질문은 그에게 도망갈 기회를 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고아는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세요. 그럼 치안대의 조사가 끝난 뒤에나 출발하겠네요?”
어딘지 여유가 느껴지는 그의 질문에 당황한 쪽은 라인 하이드다.
예상과 어긋난 라고아의 태도에 멈칫하던 그는 이내 차분하게 답했다.
“용의자가 누군지 모를 때는 신고 직후 출발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지금의 경우 치안대가 모험가님을 만나러 올 겁니다.”
“그럼 신고하고 오세요. 나는 이곳에서 치안대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용병들이 교수형당할 짓을 했지만, 모험가님을 사적 제재로 걸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제국 모험가를 받아들이는 정책과 별개로 제국 모험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거든요.”
왕가에서는 제국 모험가를 환영했지만, 전쟁에 동원된 시민들은 제국이라면 치를 떨었다.
왕가보다 시민들 쪽에 가까운 치안대에서 제국 모험가의 불법적인 행위를 눈감아 준다?
그건 라인 하이드의 상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괜찮습니다.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합니다. 하이드 씨는 역마차의 일만 신경 쓰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치안대에 용병들의 실종 신고를 하러 가 보겠습니다.”
라인 하이드는 라고아에게 묵례를 하고 태번을 떠났다.
역마차를 움직이려면 치안대에 신고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쉐이드 왕국.
크룰리 치안대.
라인 하이드는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낮은 자세로 지난밤의 사건을 신고했다.
“……현재 용병들은 모두 실종 상태이고, 납치됐던 모험가들은 태번으로 돌아왔습니다.”
치안대 조사관 미리암 세인이 기록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지난밤 용병 아홉 명이 강도로 돌변해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을 납치했는데, 승객 중에 다른 모험가가 여자를 구해 신전에서 치료를 받았고, 남자 둘은 제 발로 걸어 돌아왔다? 맞아요?”
“예.”
“여자를 구해 준 모험가의 이름이 라고아고요?”
“맞습니다. 현재 승객들 모두 태번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아도 태번에 남아 있나요?”
“예. 조사가 필요하면 받겠다고 했습니다.”
“강도로 돌변한 용병들은 지금 어딨습니까? 크룰리를 빠져나갔다고 하던가요?”
“그게…….”
라인 하이드가 말끝을 흐렸다.
결과에 따라 자신이 용감한 승객을 고발한 것일 수도 있어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알고 있겠지만 감추는 게 있으면 안 됩니다. 하이드 씨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요.”
불이익이라는 말에 라인 하이드는 급히 입을 열었다.
“도시 외곽의 폐가에 죽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릅니다.”
“용병들을 죽인 사람이 납치됐던 남자들입니까? 아니면 여자를 구해 준 사람입니까?”
“납치됐던 남자들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라고아 씨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라인 하이드는 최대한 말을 돌렸다.
하지만 치안대 조사관 미리암 세인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라고아가 여자를 구하는 과정에 용병들을 죽였겠군요. 여자가 부상이 심했나 봐요? 치료사가 아니라 신전으로 데리고 간 걸 보면.”
“신전에서 들었는데 목을 찔렸다고 합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라고.”
미리암 세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라인 하이드가 용병들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려 준 때문이다.
그녀는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서 대기해 주세요. 승객 한 사람도 태번을 떠나면 안 됩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한 후에 치안대가 태번으로 찾아갈 겁니다.”
“치안대가 태번에 언제쯤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역마차 운행을 책임진 라인 하이드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폐가를 찾아야 하니 금방은 안 될 거예요. 빠르면 한 시간, 늦어도 점심 이전에는 갈 겁니다.”
“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라인 하이드는 조사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몸을 돌렸다.
막 걸음을 떼려는 그에게 미리암 세인이 말했다.
“모험가가 제국인이라고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역마차를 아드리아 왕국까지 몰고 갈 생각이 있다면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라고아를 태번에 잘 붙들어 매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만에 하나 그가 달아나면 당신의 역마차를 출발지로 돌려보낼 테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아 씨는 자발적으로 치안대 조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무슨 소린들 못 하겠어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를 잘 지키도록 하세요. 지원이 필요하면 지금 말씀하시고.”
조사관이 모험가를 죄인 취급하자 라인 하이드는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막상 닥치니 자괴감이 들었다.
“라고아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조사관님도 그를 보면 그게 얼마나 잘못된…….”
“당신의 가드들로 충분하다는 소리로 받아들이죠. 그만 돌아가 보세요.”
라인 하이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조사실을 빠져나갔다.
***
정오경.
중무장한 크룰리의 치안대가 태번을 찾아왔다.
그런데 치안대원들의 표정이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삼십여 명이나 되는 치안대가 태번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곧이어 치안대장과 조사관이 태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일 층 식당에 나와 있던 라인 하이드가 조사관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관님?”
미리암 세인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하이드 씨, 라고아는 어딨습니까?”
“이 층 숙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니 곧 내려올 겁니다.”
그러자 치안대장이 창문 밖으로 손짓을 보냈다.
열 명의 치안대원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정문과 후문을 막아섰다.
미리암 세인 조사관이 놀란 얼굴로 서 있는 라인 하이드에게 치안대장을 소개했다.
“이분은 크룰리의 치안대장이신 프레드 베틀 남작님이십니다. 남작님, 저 사람이 역마차의 운송 책임자입니다.”
눈알을 굴리던 라인 하이드는 허리가 부러질 듯 접으며 인사를 올렸다.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듭니다.”
“베틀 남작이다. 죄인을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냐?”
“용병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고아에 대해 묻는 거다.”
“그는 강도들에게서 모험가들을 구해 주었는데……. 왜 죄인이라고 하십니까?”
“폐가에서 아홉 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중 여덟은 팔다리가 잘렸고, 하나는 복부에 구멍이 났다. 제국에서는 그런 걸 정당방위로 보는지 몰라도 쉐이드 왕국은 아니다. 죄인은 어디 있느냐?”
“헉! 라고아 씨는 이 층 숙소에 있습니다. 가드들과 제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 층을 지키고 있었으나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라고아가 크레아를 구해 준 것으로만 알던 라인 하이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드들과 올라가 아직도 있는지 확인해라. 있다면, 데리고 내려와라.”
치안대장의 명령에 라인 하이드는 머뭇거렸다.
라고아 같은 위험인물의 체포에 가드들을 앞세우겠다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치안대장의 명령을 거부했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몰랐다.
그가 부당한 지시 앞에 갈팡질팡할 때, 계단으로 세 남자가 내려왔다.
엘리오 일행이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무심코 계단 쪽을 보던 라인 하이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치안대장님, 저기 선두에 선 남자가 치안대장님이 찾으시던 라고아라는 모험가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치안대장이 가드를 끌어들이기 전에 얼른 뒤로 물러났다.
빈자리를 찾던 엘리오의 시선이 낯선 두 남녀에게로 향했다.
“거기, 둘 중에 누가 치안대장이에요?”
미리엄 세인 조사관은 죄인의 불경스러운 태도에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멈칫했다.
젊은 모험가라고 들었는데 눈빛이 묵직한 게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제 옆에 계신 분이 크룰리의 치안대장이신 프레드 베틀 남작님입니다. 저는 조사관인 미리암 세인이고요. 당신이 라고아라는 모험가입니까?”
그녀는 잠시 ‘아홉 명의 모험가를 살해한 혐의’를 뒤로 돌렸다.
지금은 상대의 신분을 정확히 아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대답 대신 느긋하게 창가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치안대장 프레드 베틀 남작의 눈썹이 꿈틀할 때, 파비안이 나섰다.
“라고아 경이 누군지 궁금해하니 소개하지요. 대륙을 지키는 스쿠툼(빙벽)의 수호자! 로렌 공국 라티누스와 북부 슬래시 랜드의 적법한 지배자! 검의 적자(嫡子)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이십니다! 라고아 백작님의 맞은편에 계신 분은 ‘베일럼 왕국의 호랑이’로 알려진 소드마스터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이시고, 저는 ‘균열의 기사’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이윽고 파비안은 프레드 베틀 남작에게 자신의 작위 증명서를 건넸다.
로렌 공국 공왕인 베라흐트 불프스 공작이 보증한 여행 증명서도 있지만, 제국과 남부 왕국이 전쟁 중이라 북부 왕국의 작위 증명서로 대체한 것이다.
남부 왕국과 북부 왕국은 오랜 동맹 관계다.
그게 아니더라도 남부 왕국에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히르헤라의 빙벽에서 마족 군주들을 물리치고, 제국의 소드마스터들을 꺾은 북부 왕국의 영웅.
최근 제국 황제의 꼬임에 넘어가 제국 백작의 작위를 받았지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남북 왕국 기사들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프레드 베틀 남작은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에게 정중하게 작위 증명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북부의 대영웅을 뵙다니 이는 저와 가문의 영광입니다. 각하께서 강도단을 척살해 주신 덕분에 크룰리의 시민들이 더 안전해졌습니다. 크룰리의 시민들을 대신해 각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엘리오가 뻘쭘한 얼굴로 화답했다.
“뭘 영광씩이나.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거면 말해 봐요.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 하시면, 최근들어 용병들이 강도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각하에게는 조금의 해도 끼치지 못하겠지만, 다른 모험가와 시민 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니, 귀찮다 외면하지 마시고 응징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미리암 세인이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치안대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적 제재를 잡아내야 할 치안대장이 도리어 그걸 부탁하다니?
이 정도면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걸 넘어 꼬리를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