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3
1283회. 도마뱀 꼬리 자르기
상상을 초월한 사내의 뻔뻔함에 파비안이 폭발하고 말았다.
“뭐? 보호? 보호가 무슨 뜻인지는 아나?”
“알고말고. 들어 보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마물들에게서 지켜 주고 먹을 것도 내어 주지. 단, 그 대가로 남자들은 잡일을 해야 한다.”
힘없는 모험가들일 경우 여기까지만 들으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모험가들을 억류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노예로 팔겠다고 협박한 용병들이 그렇게 양심적일 리가 있나.
“여자들은?”
“뭘 할 것 같나.”
남자, 아케리오 용병단 부단장 블레크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아케리오 용병단의 용병 마흔네 명 중에 마력총병만 네 명이다.
짐마차조차 없이 다니는 아홉 명을 제압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5분도 길다.
네 자루 마력총이 불을 뿜자마자 바로 살려 달라고 빌 게다.
잡일을 하는 데는 네다섯 명만 있어도 된다.
‘부상자와 시체는 마물의 미끼로 쓰고…….’
망상에 빠져 있는 그의 귓가로 용병단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구, 구울이다! 구울이 온다!”
사내의 외침에 엘리오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용병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노련한 용병단이라 우선 처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용병들은 일곱 대의 마차를 빙 둘러 세운 뒤, 말을 풀어 한쪽에 모았다.
마력총을 든 네 명의 용병이 마차 지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타인록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벌거벗은 거인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팔을 늘어트린 채 걷던 다섯 마리 구울이 마차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구울들의 행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구울들은 굶주린 야수처럼 마차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갔다.
크아아―!
마차 지붕 위에 대기하던 총병들의 마력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퍼퍼퍼펑―!
마력탄에 직격당한 충격으로 구울 두 마리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구울들은 이내 균형을 되찾았다.
상처 입은 두 마리 구울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움직였다.
때맞춰 또 한번 마력총 소리가 들렸다.
퍼퍼펑! 퍼엉―!
처음과 달리 두 마리 구울에게 사격이 집중된 탓일까?
운 좋게 마력탄이 구울 한 마리의 눈을 꿰뚫었다.
마력탄이 눈을 뚫고 뒤통수로 빠져나가자 구울은 뒤로 천천히 넘어갔다.
다른 한 마리 구울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마력탄에 무릎이 박살 나 한쪽 발로 절룩거리던 구울이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구울은 포기하지 않고 두 손과 한쪽 발을 이용해 계속 전진했다.
구울 두 마리를 무력화시켰지만 용병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사이 다른 세 마리 구울이 마차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마차 안쪽에 있던 용병들은 창과 방패로 구울이 마차를 넘어오지 못하게 밀어냈다.
네 명의 총병들은 마차 지붕에서 아래로 뛰어내린 뒤 중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중앙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홉 명의 외부인들과 합류했다.
총병들 중 하나가 외부인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뭣들 해! 칼은 장식이야? 세 마리 구울로 끝이 아니야! 더 많은 구울이 오고 있다고! 마차가 뚫리면 너희도 죽어!”
그러자 파비안이 조롱하듯 말했다.
“우리를 보호해 준다며? 남자들은 잡일만 하라고 했잖아.”
“…….”
말문이 막힌 총병은 기막힌 얼굴로 뺀질뺀질하게 생긴 청년을 노려보았다.
“왜? 내가 없는 소리 했어? 열심히 보호해 달라고. 어이쿠! 저기 뚫리기 직전이다. 뭐 해? 마력총으로 지원 안 해? 구울이 커서 눈 감고 쏴도 맞히겠다.”
이를 갈던 총병은 즉시 마력총의 총구를 청년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렸다.
퍼펑! 펑! 퍼엉―!
네 명의 총병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마력총을 쏘았다.
혼전 중에 구울 한 마리가 기어이 마차 한 대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용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구울에게 창칼을 휘둘렀다.
“무릎! 무릎부터 부숴!”
“그다음은 손이다! 잘라! 자르라고!”
구울은 용병들의 집중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남은 한 마리에게 용병들이 몰려갔다.
마차를 밀치고 들어오던 구울은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용기백배해진 용병들은 마차 밖으로 뛰쳐나가 부상당한 구울까지 끝장을 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이내 용병들은 마차 안으로 몸을 피했다.
멀리서 십여 마리의 구울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마차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구울의 사체를 처리하는 용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법 하네.”
히르헤라 주둔지에 있던 정규병들보다 용병의 실력이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용병들은 싸우는 법을 알았다.
지능적으로 무릎을 망가뜨리고, 차근차근 구울을 공략했다.
용병들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울 다섯 마리를 상대하면서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마력총이 고작 네 정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피해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용병 마흔네 명이 이토록 강한 전투력을 가졌다니 놀라울 뿐이다.
파비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요. 루퍼스 중대보다 더 센데요?”
“많이 세지. 마력총이 네 자루밖에 없잖냐.”
“운도 작용했습니다. 마력총에 머리가 터져 죽은 마물은 처음 봅니다.”
“그건 인정. 그래도 저 정도면 대단한 거야.”
소드 익스퍼트가 셋, 소드 비기너가 열 명이면 정규군 세 개 중대급이다.
힘이 법보다 앞서는 어비스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만도 했다.
“설마 다 죽이실 건 아니죠?”
“미쳤어? 나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 아니야.”
“어쩌시게요?”
“착실하게 살아갈 기회를 줘야지.”
“착실이라뇨? 그건 용병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저놈이 아까 뭐라고 했지? 거절은 없다? 나도 같은 말을 해 줄 거야.”
두 사람이 용병의 처리 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 마차 지붕으로 돌아갔던 총병 중 하나가 소리쳤다.
“구울이다! 구울이 몰려온다!”
그러자 아케리오 용병단 단장 우레아가 총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목소리 낮춰!”
그 말에 총병이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오감이 발달한 구울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인간의 외침 때문일까?
어슬렁어슬렁 걷던 구울들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총병들의 마력총이 불을 내뿜었다.
퍼퍼퍼펑―!
마력총 소리에 흥분한 구울들이 괴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총병들은 가장 선두에 있는 구울에게 집중 사격을 했다.
마물의 눈알을 관통하는 행운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구울의 동작은 현저하게 느려졌다.
하지만 그래 봐야 십여 마리 가운데 한 마리다.
질주하던 다른 구울들이 담장처럼 둘러진 마차를 들이받았다.
쿵! 콰앙―!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마차들이 들썩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파비안이 말했다.
“이번에는 뚫리겠는데요?”
“그러겠지.”
마수라면 모를까?
마물을 마차로 막는 건 루나 마일러스 같은 전술의 천재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전멸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생각보다 강자가 많잖습니까?”
“맞아, 소드 익스퍼트 셋에 소드 비기너 열 명이면 할 만하지.”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구경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고생은 할지언정 끝까지 살아남는 건 용병들일 게 분명했다.
구울이 마차를 넘어 들어왔지만 아케리오 용병단 단장 우레아는 절망하지 않았다.
마차를 넘어 들어온 구울의 숫자는 여덟.
아케리오 용병단의 전투력으로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흔네 명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홉 명이나 되는 인원이 더…….
‘응? 저것들은 왜 저기서 손가락만 빨고 있지?’
보급품도 없이 헤매고 있었지만 저들도 분명 모험가 아니면 용병일 터.
그런데 구울들과 용병단의 피 말리는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아케리오 용병단이 죽으면 자신들도 죽게 될 텐데 그런 건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다.
‘쯧쯧! 마차 없이 다닐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대가리에 똥만 찬 것들.’
구울을 물리치면 그다음은 저것들 차례라고 다짐하던 우레아가 멈칫했다.
부서진 마차 사이로 뭔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구울이 더 남았나?’
그는 상대하던 구울을 다른 용병들에게 떠넘기고 마차 위로 뛰어올랐다.
‘이런 젠장!’
마차가 뚫렸을 때도 여유롭던 우레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구울 열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중 절반인 다섯의 피부가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붉었다.
중급 마물인 엘더 구울이 분명했다.
일반 구울이 하급 마물인 반면 엘더 구울은 중급 마물이다.
구울 열 마리가 더 늘어난 것은 큰 위험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엘더 구울 다섯 마리는 다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엘더 구울 다섯이면, 아케리오 용병단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난리 났군.’
중급 마물부터는 소드 익스퍼트가 아니면 상대하기 어렵다.
세 명의 소드 익스퍼트들이 세 마리 엘더 구울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남은 엘더 구울 두 마리가 용병들을 학살할 게 분명하다.
우레아는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려 전황을 살폈다.
용병들과 구울의 싸움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다 죽겠다.’
빠르게 눈알을 굴리던 우레아의 시선이 중앙으로 향했다.
마차도 없이 떠돌던 얼뜨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을 제물로 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우레아는 부단장 블레크를 향해 달려갔다.
“블레크!”
“예!”
“엘더 구울 다섯 마리가 오고 있다. 저 얼치기들을 이용해 빠져나가야겠다.”
“지금요?”
“그래, 지금. 엘더 구울이 안으로 들어오면 달아날 틈도 없을 거다.”
“어떻게 하시게요?”
“저 좆밥들을 제압해 구울에게 던져 주고 자리를 뜬다. 구울이 배를 채우고 떠나면 다시 돌아오자.”
“알겠습니다.”
우레아와 블레크는 구울과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다섯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중앙으로 향했다.
흉흉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용병들을 본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물었다.
“싸우다 말고 왜 저러는 겁니까?”
“우리를 구울에게 바치고 달아나겠단다.”
“허어! 개새끼들. 진짜 가지가지 하네요. 인간이 싫다, 인간이 싫어.”
파비안이 욕을 퍼붓자 루나 마일러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욕까지 할 건 아니에요. 오히려 용병단장의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고 봐야 해요.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겠다는 거니까요.”
“그, 그런가요?”
파비안이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까지 객관적으로 보다니 과연 성녀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처럼 달려온 우레아 단장과 블레크 부단장은 다짜고짜 엘리오 일행을 공격했다.
엘리오가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다면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는 단숨에 제압당했을 것이다.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는 재빨리 엘리오 라고아 백작 뒤로 몸을 뺐다.
그와 동시에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엘리오가 단장과 부단장을 단숨에 제압했다.
뒤이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주먹질에 다섯 명의 용병이 나가떨어졌다.
뜻밖의 결과에 단장과 부단장은 황망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얼치기들을 제압해 구울에게 던져 주고 이 자리를 피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구울의 먹이가 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