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0
1320회. 오오! 텔레마! 불멸의 힘이여! 신들의 대적자여!
마침내 날이 밝았다.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는 군주의 옆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건 뭐야?”
엘리오가 라자 코트라의 손에 들린 막대기 같은 걸 가리켰다.
주는 음식을 마다하고 막대기를 물어뜯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켄티우스의 꼬리를 말린 것입니다. 드시겠습니까?”
“괜찮아. 그게 맛있어?”
“부라퀴족과 발리족들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켄티우스 한 마리를 잡아야 하나가 나오니까요.”
“켄티우스라는 게 혹시 저거야?”
엘리오가 분지에 가득한 물소를 닮은 마물을 가리켰다.
철갑을 두른 것 같은 몸통에 머리에는 1미터 길이의 뿔이 무려 세 개나 박혀 있었다.
그 뿔은 창끝처럼 직선으로 뻗어 있어 꽤나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렇습니다. 하위 마족이 혼자서 잡기에 어려운 마물이지요.”
“뿔에 찔리면 죽겠는데?”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 뿔로 무기를 만드는 마족도 있습니다.”
“부라퀴족들이 저걸 사냥해?”
“예, 여럿이 달라붙으면 그럭저럭 잡을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물었다.
“켄티우스들은 뭘 먹고 살아?”
“잡식이라 입에 들어가는 건 다 먹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조용히 풀을 뜯어 먹지만,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하면 다른 마물도 잡아먹습니다.”
“대단하네.”
“저래 보여도 상위 마물입니다.”
“그래 봐야 마족들의 먹이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마족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다른 데로 도망치지 않는 거지?”
“저렇게 떼로 모여 있으면 하위 마족들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저러는 겁니다.”
“아하.”
엘리오는 찬찬히 분지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몰려온 마족들이 죄다 하위 마족이다.
“신전 건축은 하위 마족들만 하나?”
“하위 마족들만 해도 차고 넘치니까요. 또 중위 이상의 마족들은 하위 마족을 잡아먹기도 해서……. 부르면 오히려 공사가 늦어질 수도 있어 열외시키는 것도 있을 겁니다.”
“마족들끼리도 자주 잡아먹어?”
“손실된 카오스의 힘을 보충하는 데 마족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요.”
“입맛 때문이 아니라 카오스를 빼앗으려고 잡아먹는다는 거야?”
“보통은 그렇습니다. 사티로스처럼 모시는 신이 있다면 모를까? 뒤를 봐줄 신이 없으면 잘 잡아먹힙니다.”
“사티로스를 죽이면 안타르 신이 복수라도 해 줘?”
“사티로스에게 흡수한 카오스를 다시 탈취해 가거나, 심할 경우 죽이기도 한다 들었습니다.”
“안타르 신이 직접?”
“예, 직접요.”
“와아. 사티로스족이 섬길 만하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섬길 이유가 없지요.”
“신과 마족들 사이에 주고받는 게 확실하구나.”
“샤이틴님의 법이 그렇습니다.”
“그렇군.”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신으로 알려진 샤이틴도 자기 편에게는 좋은 일을 한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과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는 둔덕을 내려갔다.
분지에 접어들자 풀을 뜯던 켄티우스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켄티우스들은 숫자를 믿는지 다시 머리를 풀밭에 처박았다.
켄티우스 뿔에 겁먹은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는 숨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수의 부라퀴족을 보고 다가온 마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족장 라자 코트라를 보고는 즉시 돌아갔다.
그가 내뿜는 초월자 특유의 기운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라자 코트라와 동행한 덕분에 엘리오 일행은 다른 마족들과 시비 한번 일으키지 않고 신전 앞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엘리오 일행이 신전 정문으로 들어서자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체는 염소를 닮은― 사티로스족 남자 둘이 앞을 막았다.
손에 단창을 든 걸 보니 사티로스족 전사다.
대족장 라자 코트라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뭐냐?”
“족장님께서 부라퀴족과 발리족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카렐 마운트가?”
“예.”
“이 라자 코트라의 출입까지 막으라 했다는 것이냐?”
“…….”
사티로스족 전사들이 애매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라자 코트라는 초월자로 부라퀴족이라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라자 코트라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자 사티로스족 전사들은 한 걸음 물러섰다.
“대족장님은 들어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부라퀴족들은 안 됩니다.”
“그들은 내 일행이다.”
“그래도 안 됩니다. 부라퀴족과 발리족은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다른 부라퀴족과 발리족들은 어디 있느냐?”
“그들은 외부에서 석재나 목재 나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족장을 불러오든지,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든지 해라.”
머뭇거리던 사티로스 전사들 중에 하나가 안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따가닥거리는 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홀로 남은 사티로스 전사는 라자 코트라의 눈치를 보면서도 확실하게 신전 출입문을 막아섰다.
라자 코트라는 한 주먹에 사티로스 전사를 때려죽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들의 뒤에 초월자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안타르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요란한 발굽 소리와 함께 십여 명의 사티로스 전사들이 나타났다.
사티로스의 전사들 뒤에서 늙은 사티로스 하나가 나와 라자 코트라에게 인사를 했다.
“라자 코트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렐. 늙어서 노망이 났느냐? 부라퀴족과 발리족의 출입을 막은 이유가 무엇이냐?”
기다리는 동안 짜증이 났던 라자 코트라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따져 물었다.
쓴웃음을 짓던 카렐 마운트가 서둘러 답했다.
아무리 사티로스가 안타르 신의 종이라 해도 초월자에게 밉보여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저희 늙은 사제가 신탁을 받았습니다.”
“신탁?”
“부라퀴족과 발리족이 큰 문제를 일으킬 터이니 출입을 막으라고.”
“안타르 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냐?”
라자 코트라는 철렁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확인하듯 물었다.
“안타르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들로부터 그런 전언을 받았습니다.”
라자 코트라는 내심 안도했다.
나이 든 사제들은 머리가 혼탁해 종종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런 게 틀림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신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출입을 막아? 샤이틴님의 성역에서 쫓겨난 잡신들의 짓이라면 어쩌려고?”
“워낙 이름을 날리던 사제의 말인지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제의 말에 부라퀴족과 발리족을 막았다는 것이냐?”
“그게…… 사티로스족들에게는 전설적인 사제의 말인지라.”
“그래서, 지금 나에게 신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제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냐?”
“어이쿠! 무슨 말씀을. 라자 코트라님은 초월자시니 입장하셔도 괜찮습니다.”
“내 일행은 못 들어간다?”
한수간 ‘울컥’한 라자 코트라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카렐 마운트가 자신보다 늙은 사제를 더 존중하는 것 같아서다.
안타르 신의 신탁이었다면 양보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길을 열어야 마땅했다.
라자 코트라의 광포한 기세에 깜짝 놀란 카렐 마운트가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 그럴 리가요. 데리고 들어가셔도 됩니다. 설마하니 초월자님이 데리고 온 부라퀴족인데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그건 라자 코트라의 책임이라는 소리였다.
라자 코트라가 ‘흥!’ 하고 냉소를 치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엘리오 일행이 재빨리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라자 코트라와 부라퀴족들을 보던 카렐 마운트가 곁에 있던 전사들에게 말했다.
“부라퀴족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따라다니며 지켜보도록 해라.”
“예.”
열 명의 사티로스 전사들이 줄지어 신전으로 들어갔다.
홀로 우두커니 서 있던 카렐 마운트는 사제를 찾아 급히 자리를 떠났다.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
마족 일꾼들로 북적거리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조용했다.
신전 안에는 우샤스 운드라로 보이는 신상 하나가 달랑 서 있었다.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는 우샤스 운드라의 신상을 향해 나아갔다.
마족은 ‘신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신을 만나려면 신상 앞으로 가는 게 당연했다.
초월자답게 대족장 라자 코트라는 신상에 딱히 예를 표하지 않았다.
하위 마족들에게야 떠오르는 샛별 같은 신인지 몰라도, 초월자들에게 우샤스 운드라는 성공한 ‘박쥐’에 불과한 때문이다.
“군주님.”
옆으로 물러난 라자 코트라가 엘리오 라고아 군주에게 앞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엘리오가 신상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문득 이시카의 잊혀진 신전에서 루나 마일러스와 만난 일을 떠올렸다.
우샤스 운드라도 그녀처럼 육화(肉化)하여 나타날까?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의 진신(眞身)은 처음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샤스 운드라는 어떨지 모르겠다.
엘리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샤스 운드라. 인간들은 ‘꿈과 희망의 신’으로 알고 있지만, 마족들은 ‘의심과 모략의 신’ 또는 ‘박쥐’로 부르더라? 어느 쪽이 진실이냐? 용기가 있다면 나와서 씨불여 봐라.”
“…….”
군주의 폭언에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물론 마족들이 우샤스 운드라를 비난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뒤에서나 하는 소리다.
다른 마족들 앞에서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하는 마족은 없다.
하물며 이곳은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
그것도 우샤스 운드라 신상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조용히 뒤를 따라와 지켜보던 사티로스 전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뛰어 다녔다.
“오오! 안타르 신이시여!”
“신이시여!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의 뜻이 아닙니다!”
“부라퀴족이, 혼자서 저지른 짓입니다!”
“부라퀴족이여! 너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족장님을 모셔 와라!”
조용하던 신전 내부가 한순간 시장통처럼 변했다.
사티로스 전사들이 일으킨 소란에 다른 마족들까지 몰려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라자 코트라가 말했다.
“군주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설령 우샤스 운드라가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군주라는 호칭에 하위 마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심지어 꼬리에 불붙은 것처럼 날뛰던 사티로스들도 잠잠해졌다.
군주는 준신급 존재.
우샤스 운드라만큼이나 두려운 존재가 출현했으니 당연하다.
예나 지금이나 군주를 막을 수 있는 건 군주나 신밖에 없었다.
소식을 듣고 카렐 마운트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카렐 마운트와 함께 온 늙은 사티로스 하나가 두 팔을 번쩍 쳐들고 소리쳤다.
“오오! 텔레마! 불멸의 힘이여! 신들의 대적자여! 땅끝에서 온 너는, 어둠이 내려와도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리라!”
늙은 사티로스의 외침이 신전에 울려 퍼졌다.
사제의 외침에 깜짝 놀란 카렐 마운트가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엘레노라, 그것은 어느 신께서 하신 말씀입니까?”
그러나 엘레노라는 눈을 부릅뜨고 같은 소리를 반복할 뿐이었다.
카렐 마운트가 신상 앞에 서 있는 부라퀴족 청년과 엘레노라를 번갈아 볼 때다.
돌연 뻣뻣하게 서있던 부라퀴족 청년이 바지를 내리더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우샤스 운드라의 신상에 오줌을 싸질렀다.
촤아아아―.
가까이서 그걸 본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고 쥐어짜듯 소리쳤다.
“안 돼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