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7
137회.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장옥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연적하 일행은 편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시간을 때웠다.
의원에 있던 설차수와 유근식까지 합류해 제법 시끌벅적했다. 그래도 다른 손님이 없어서 눈치가 보이거나 할 일은 없었다.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내다 보면 서로의 사정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설차수 일행과 연적하의 관계가 그랬다.
화용독심 남궁연의 경우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지만 연적하는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처음과 달리 제법 친근한 사이가 됐다.
진설하는 아까부터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구천현녀가 스승이라고?’
구천노도 심통은 대놓고 연적하가 구천현녀의 제자라고 했다.
연적하도 그걸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구천현녀의 제자라는 것으로 구천동모의 거짓말을 밝혀냈다.
사람들은 구천동모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에 집중했지만 진설하는 달랐다. 그녀는 연적하가 ‘구천현녀의 제자’라고 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연적하가 구천구검이라는 상승의 검법을 사용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 그는 그 검법을 구천현녀가 직접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혼자 고민하던 진설하는 슬쩍 연적하의 자리로 다가갔다.
“연 공자님.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심통과 남궁천, 남궁연의 시선이 진설하에게로 향했다.
저 맹랑한 아가씨가 이번엔 무슨 핑계로 그를 찾는지 궁금해하는 눈치다.
“예, 뭔데요?”
진설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정말 궁금해서 찾아온 거라 부끄럽지도 않았다.
“아까 낮에요. 구천동모 앞에서 그러셨잖아요. 구천현녀에게 검법을 배우셨다고.”
“아, 네.”
연적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믿건 말건, 구천현녀에게 무공을 배운 건 사실이니까.
“정말 구천현녀에게 무공을 배우셨어요?”
“네.”
“어머! 우리가 말하는 구천현녀가 상고시대의 선녀 맞죠? 황제(黃帝, 헌원씨)가 치우(蚩尤)와 싸울 때 병법을 주고, 양산박의 송강에게 세 권의 천서(天書)를 주었다는?”
“그럴걸요?”
그제야 진설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보였다.
사실 사람들은 그가 구천현녀 운운한 것을 한 귀로 듣고 흘렸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연적하의 대답을 들으니 아무래도 장난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심통과 툭탁거릴 때를 제외하면 농담도 거의 하지 않았다.
지금의 표정도 나름 진지해 보였다.
전부터 들어 알고 있던 심통은 실실 웃었고, 남궁천과 남궁연 남매는 양미간을 찡그리며 사색에 잠겼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표정 관리를 위해 애꿎은 객잔 지붕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전에는 와룡장의 창고에서 선대가 남긴 기연을 얻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죠.”
“그럼, 선대의 기연도 얻고, 구천현녀에게 검법도 배웠다는 건가요?”
“비슷해요. 구천세법은 와룡장에 전해 오는 검법이지만 구천구검은 다르거든요.”
“아!”
진설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아직 구천현녀에게 직접 배웠다는 말을 믿는 건 아니다. 다만 구천세법과 구천구검의 출처가 다르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와아! 구천현녀가 정말 있었구나. 저는 그냥 옛날이야기로만 알았거든요.”
“저는 그런 옛날이야기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구천현녀는 어떻게 생겼어요?”
호기심으로 진설하의 눈이 반짝였다.
대대손손 들려줘도 될 정도로 신비한 이야기인지라 그럴 만도 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연적하가 남궁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연 누님을 닮았어요.”
“…….”
뜻밖의 말에 진설하는 눈만 끔뻑거렸다.
이 자리에서 갑자기 남궁연의 이름이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아! 그 정도로 아름답다는 거군요. 놀라워라!”
기분이 조금 떨떠름했지만 진설하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런 진설하를 향해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던데, 진 소저는 다르시네요.”
“어이쿠! 공자님. ‘전혀’는 아니고 반신반의 정도 수준은 됩니다.”
“뭘, 표정은 아니던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진설하가 담담하게 말했다.
“솔직히 십두마병의 일이 없었다면 저도 그랬을 거예요. 십두마병이 괴물로 변하는 것을 봐서 그런지 이제 어지간한 건 다 믿어지네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듣고 보니 그렇네. 십두마병의 목숨이 두 개나 되는 것에 비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
지금까지 딴청을 부리던 설차수도 그 부분에서는 동의를 표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누구도 ‘연적하가 구천현녀에게 검법을 배웠다’는 사실에 토를 달지 않았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간 진설하가 설차수와 유근식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연 공자님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위에다 전할 수는 없겠죠?”
잠시 생각하던 설차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나을 게다. 십두마병의 이야기만 해도 안 믿을 텐데…….”
거기에 연적하와 구천현녀의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멍청이들이라고 손가락질만 받게 될 것이다.
유근식이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고생해서 보고 들은 걸 전부 전하지 못한다니 좀 안타깝네요.”
“아쉽지만 십두마병의 정보에 집중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지금은 십두마병에 관한 보고도 사실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축소해서 보고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쩝, 이래저래 고민이다.”
진설하와 유근식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보고하면 아무도 믿을 것 같지 않고, 기이한 이야기를 빼자니 의미가 없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연적하 일행은 다시 모였다.
하루를 푹 쉰 덕에 유근식의 안색도 하루 전과 달리 볼 만했다.
이윽고 이사가 마차를 끌고 오자 일행은 하나 둘 마차에 올라탔다.
부상당한 두 사형들을 위해 진설하가 자청해 마부석 옆자리로 나갔다.
이사가 얼굴을 훤히 드러낸 그녀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직 추운데 얼굴을 가리시지요?”
“입춘이 지난 지가 언젠데요. 괜찮아요.”
“아, 예.”
이사가 가볍게 고삐를 털자 말들이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다그닥. 다그닥.
아직 땅이 얼어붙은 상태라 이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경험 많은 이사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야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금방 진설하의 얼굴이 추위에 얼어붙었다.
꼿꼿하게 얼굴을 들고 있던 그녀는 안 되겠는지 헝겊으로 머리를 칭칭 동여맸다.
처음부터 눈만 내놓고 있던 이사가 그런 그녀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칼바람을 오래 썼으니 분명 감기에 걸릴 게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경칩에 나온 개구리도 날이 추우면 얼어 죽는데…….’
입춘이 지났다고 이 추운 날씨에 얼굴도 안 가리고 찬바람을 맞다니!
***
등주.
점심 무렵, 연적하 일행을 태운 이 두 마차가 도시로 들어갔다.
마차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큰 의원 앞에 멈춰 섰다.
설차수와 유근식뿐 아니라 감기에 걸린 진설하도 의원으로 들어갔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간단한 치료를, 그리고 진설하는 탕약을 처방받았다.
약 꾸러미를 들고 마차로 돌아온 진설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 보름을 먹으라는데 제가 사흘이면 충분하다고 했어요. 아, 부끄러워라. 이게 몇 년 만에 걸리는 감기인지 모르겠네요. 훌쩍.”
진설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코를 훌쩍였다.
코가 헐었지만 이미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일행 중에 가장 사교적인 남궁천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진 소저. 약은 제때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이동 중에라도 꼭 달여 드세요.”
“네, 괜히 폐를 끼치게 돼서 죄송해요.”
“폐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고생스럽겠지만 다 인생의 경험이려니 생각하세요.”
“고마워요. 정말 자상하세요.”
진설하가 슬쩍 연적하를 보았다.
하지만 연적하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던 연적하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렸다.
“우리 뭐 먹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공자님, 마부가 알아서 모시고 갈 겁니다. 아까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 잘하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 걸 봤습니다.”
“아, 그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네. 마부는 참 잘 뽑은 것 같아.”
“월봉이 은자 닷 냥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요.”
“이 추운 날씨에 천하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데 닷 냥이 뭐 대단하다고.”
“공자님은 금전 감각이 아직 없으셔서 그러시는 겁니다. 은자 닷 냥이면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섭니다.”
“심 노인은 금전 감각이 있고?”
“있는 편이지요.”
“그래서, 얼마를 모았는데?”
순간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심통에게로 향했다.
“오십 냥 조금 넘습니다.”
“나는 얼마쯤 모은 것 같아?”
“……오백 냥요?”
“천오백 냥이 넘어 이 사람아. 누구 앞에서 금전 감각을 논하고 있어?”
“험, 험. 금전 감각은 돈을 모으는 것과 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 쓰는 것이 좋은 거라 할 수 있지요. 쓰는 만큼 늘어나는 게 금전 감각이라고나 할까요.”
“쓰는 만큼 늘어나는 건 빚이지. 빚지고 허덕이는 와룡장 못 봤어?”
때마침 마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심통은 마차 움직임에 맞춰 상체를 흔들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어이쿠야! 이제 반점을 찾아가는구나. 좋구나! 강과 산, 바람과 달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그 주인이로다!”
그는 가락에 맞춰 흥얼흥얼 노래까지 불렀다.
대답을 기다리던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말발에서 밀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사는 미림반점이라는 음식점 앞에 마차를 세웠다.
마부석 옆에 앉아 있던 남궁연이 제비처럼 날아 지면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경신술과 아름다운 외모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이어 마차 문을 열고 연적하 일행이 우르르 나왔다.
그제야 넋 놓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분분히 발걸음을 옮겼다.
반점 입구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가 막힌 진설하를 제외하고 모두가 기대에 찬 얼굴이다.
마차에서 내리면서부터 킁킁거리던 유근식이 탄성을 내뱉었다.
“야아! 냄새 좋은데? 요리를 꽤 잘하나 봐?”
냄새를 맡지 못하는 진설하가 아쉬운 얼굴로 코를 훌쩍거렸다.
반점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도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니, 꽤나 유명한 집 같았다.
일곱 명이 앉을 만한 자리는 없었다.
별수 없이 계산대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연과 진설하 쪽으로 다가갔다.
“여어! 아가씨들, 자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와 합석 어때?”
남궁연은 외면했고, 진설하는 코를 훌쩍거렸다.
남자가 연적하 일행을 슬쩍 보며 실실 웃었다.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등주 제일의 방파인 봉무방 사람들이라고. 방주님께서 두 아가씨와 합석하고 싶어 하는데, 웬만하면 함께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