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8
138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등주의 봉무방은 정파에 속한 무림 방파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크다. 당연히 정의맹의 일원이며 매년 정의 맹에 거액의 기부금도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주 사람들은 봉무방을 정사지간의 문파로 생각했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악행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방주인 무진검 용유천의 호방한 성격이 봉무방을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그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호불호가 분명했다.
대체로 의협을 추구했지만, 사사로운 일에 잘 흥분해 일을 크게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여자와 관계된 시비였다.
그는 여자로 일어난 싸움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대형 사고를 칠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영웅호색’이었다.
방주가 그러다 보니 제자들도 그런 쪽으로 더 대범했다.
봉무방의 제자인 서우범이 연적하 일행에게 다가가 껄떡거린 것도 그래서다.
솔직히 처음에는 서로 조금 떨어져 있어 일곱 명이 같은 일행인 줄 몰랐다.
그러나 절색의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곤란한 시선을 보낼 때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모두 일행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서우범의 태도가 변한 것은 아니다.
그는 눈치를 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현재 미림반점의 손님 중 절반이 봉무방 제자들인지라 거리낄 게 없었던 것이다.
“아가씨들? 합석합시다.”
거듭된 요청에 설차수가 대신해서 나섰다.
“고마운 말씀이나 우리가 일행이라 여협들만 합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우범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랬구려. 그럼 다른 분들도 모두 함께 가십시다. 봉무방 제자들이 단체로 와서 빈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게요. 어떻소?”
설차수가 연적하와 심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단체로 온 것이라면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나을 듯싶어서다.
연적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차하면 두드려 패서 쫓으면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이와 달리 혈기 왕성한 구천노도 심통은 무슨 생각인지 실실 웃기부터 했다.
설차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를 합석시켜 주신다는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도 만사를 귀찮아하는 연적하와, 사고 칠 궁리부터 하는 심통을 잘 안다. 이들과 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것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됐다.
그래서 야릇한 심통의 웃음을 보면서도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서우범이 먼저 방주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방주 추혼도 용비천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만들었다.
이윽고 서우범이 돌아와 연적하 일행을 방주에게 데리고 갔다.
“저쪽에 앉아 계신 분이 봉무방의 방주님이신 무진검 대협이십니다. 그리고 이쪽에 계신 분이 부방주님이신 추혼도 님이시고요.”
서우범의 소개에 무진검 용유천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봉무방의 방주인 용유천이오. 마침 우리 방파에서 모임을 가져 객잔에 자리가 없소.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니 합석을 하는 게 나을 게요. 강호의 동도분들 같은데 어디의 뉘시오?”
얼떨결에 대표로 나서게 된 설차수가 일행을 힐끔 보았다.
연적하와 심통은 탁자 위의 음식에 시선이 꽂혀 있었고, 무림 세가의 고수들인 남궁천과 남궁연은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딱 봐도 봉무방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통성명을 거부하는 눈치다.
‘아아! 좋지 않아.’
최소한 남궁세가의 고수들만이라도 정체를 밝히면 봉무방이 조심해 줄 텐데, 그건 물 건너간 것 같다.
하기야 무림 세가의 고수들이 내키지 않는 사람들과 안면을 틀 리가 없다.
별수 없이 설차수는 자신들만 소개하기로 했다.
‘아무리 자기들 안방이라고 해도 우리가 정의맹 소속이라는 걸 알면 좀 조심하겠지?’
그나마 봉무방의 분위기가 정파 같으니 그 정도 선은 지켜 줄 것이다.
“저희는 정의맹 정주 지부의 사람들입니다. 저는 천도문의 설차수, 이쪽은 금검문의 유근식, 그리고 창인문의 진설하입니다.”
정의맹이라는 말에 용유천의 눈이 반짝였다.
봉무방도 정의맹에 속해 있으니 형제라고 할 수 있었다.
경국지색의 여자들과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하하하! 우리 봉무방도 정의맹의 식구외다. 이제 보니 한 가족이었구려. 설 형제,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앉아서 먹으시오. 오늘 계산은 우리가 다 해 주겠소.”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설차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교롭게도 방주의 탁자에는 딱 두 명이 앉을 자리밖에 없었다.
방주의 자리 옆으로 띄엄띄엄 빈자리가 보였다.
‘하아!’
설차수는 속이 빤히 보이는 자리 배치를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서우범이 남궁연과 진설하에게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아, 두 분 먼저 편하게 앉으시지요. 다른 분들도 적당히 찾아 앉으시면 됩니다.”
용유천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이었다.
“하하! 우리는 한 가족과 같으니 어려워 말고 자리를 잡으시오.”
남궁연과 진설하가 마지못해 방주의 옆에 앉았다.
그의 말대로 같은 정의맹인지라 딱히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연적하와 심통, 남궁천이 방주의 자리에서 가까운 곳으로 걸어갔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자연히 가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대충 자리가 정리되자 용유천이 노골적으로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소저의 이름은 어찌 되시오?”
“…….”
그러나 남궁연은 입을 열지 않았다.
머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용유천이 이번에는 진설하에게 물었다.
“험, 험, 과묵한 소저구먼. 그래, 진 소저라고 했소? 등주에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우리 봉무방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주리다.”
“정의맹의 일로 지나는 길이에요. 식사만 하고 떠날 거라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이 추운 날씨에 어딜 그리 바삐 간다는 거요? 보아하니 감기도 걸린 것 같은데.”
“맹주님의 명을 집행하는 중이라 가야 해요.”
“아! 풍뢰도 대협께서는 강녕하시오? 이 년 전에 뵙고 도통 뵙질 못해서.”
용유천은 은근히 알은체를 했다.
어지간한 방파의 수장들은 정의맹 맹주를 만나지도 못한다. 지금 그는 자신의 대단한 인맥을 여협들에게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별말이 없는 걸 보면 잘 계시는 거겠죠?”
진설하는 정의맹의 일원이지만 맹주인 풍뢰도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다.
용유천이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말했다.
“그렇구려. 그분 술이 어찌나 센지. 나는 대작하다가 술병이 날 정도였소. 그래도 다음 날 거뜬히 다니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오. 나이가 있으니까 이제 술을 좀 줄이셔야 할 텐데. 쯧!”
용유천은 마치 자신이 풍뢰도 장강호의 가족이라도 되는 양 그를 걱정했다.
진설하는 듣는 둥 마는 둥 부지런히 음식을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부방주 용비천이 한마디 툭 던졌다.
“두 분 소저. 아무리 급해도 방주님이 말씀하시는데, 좀 대답도 하면서 먹는 게 어떻겠소?”
진설하가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맹주님에 대해 뭘 알아야 대답을 하죠.”
“아니, 꼭 대답을 하라는 게 아니라. 대화를 좀 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 이동 중이라 배가 많이 고프거든요. 솔직히 모르는 분들과 대화할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딱 부러진 진설하의 말에 용비천은 눈만 끔뻑였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자 닳고 닳은 용유천이 나섰다.
“하하! 같은 정의맹 식구인데 모르는 분들이라니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우리는 강호 도의를 위해 함께 싸우는 혈맹이외다. 그러니 객지에서 오라버니를 만났다 생각하고 편하게 말을 하시구려.”
그는 은근슬쩍 ‘오라버니’라고 수작을 걸었다.
봉무방 제자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용유천과 진설하를 번갈아 보았다.
사실 방주가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지분거리는 것을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진설하가 음식이 목에 걸렸는지 ‘켁켁’거리다 말했다.
“음, 음. 오라버니라니요. 딸 같은 후배들에게 농담이 심하시네요.”
용유천는 적게 잡아도 오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러니 이제 이십 대 초반의 진설하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에이! 딸이라니. 남자와 여자 사이에 나이는 의미가 없어. 앞으로는 그냥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특별히 두 소저에게만 허락하리다.”
진설하가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봉무방 방주라는 사람의 처신이 너무 가볍다.
그는 하오문의 잡배들이 기녀에게 하듯 행동하고 있었다.
“저어, 용 방주님. 정의맹에 속하신 분의 말씀치고는 너무…….”
진설하는 차마 경망스럽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너무 어떻다는 거요?”
용유천이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진설하를 보았다.
그의 직설적인 질문 앞에서 진설하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와도 같은 대화는 방주의 자리에서만 오가지 않았다.
남자들만 모인 경우는 좀 더 거칠고 자극적이었다.
봉무방의 무력부대인 연혼대 대주 십삼검 임허단이 앞에 앉은 청년을 응시했다.
늙은이와 삼십 대 남자의 중간에 낀 청년은 앉자마자 걸신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쓸어 갔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
말이 없기는 그 옆의 늙은이와 삼십 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여자들과 떨어져 기분이 상했으려니 생각해 넘어가 주려 했다.
그러나 그런 배려는 갑작스러운 청년의 말로 깨졌다.
“심 노인, 이 집은 냄새만 그럴듯하지 맛은 형편없네. 왠지 속은 기분이야.”
임허단의 얼굴이 굳었다.
어쩐지 그게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로 들려서다.
그건 봉무방에 한차례 욕을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소리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뒤에서 그랬는데 저놈은 앞에서 저러고 있었다.
꾹 참고 있던 임허단이 결국 지적질을 했다.
“대답이 없기에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입은 뚫려 있었네. 이 집은 등주에서 유명한 요릿집이다. 그쪽 입맛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음식만 그런 게 아닙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알고 보면 쓰레기인 놈들도 많습니다.”
누굴 콕 찍어 말한 게 아니다.
그건 그저 정파인들에 대한 심통의 변치 않는 신념일 뿐이었다.
“그래, 쓰레기 맛이야. 공짜니까 먹는 거지 내 돈 내고 먹으라면 확 엎었다.”
건량과 육포도 불평 없이 잘 먹던 그가 폭언을 쏟아 냈다.
남궁연과 진설하만 쏙 빼간 봉무방의 행동에 속이 꼬여서 그런 것이다.
두 사람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임허단의 얼굴이 굳어 갔다.
게다가 이제는 늙은이까지 은근슬쩍 봉무방을 욕하고 있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건 봉무방이고, 쓰레기는 방주님이라 이건가?’
임허단의 눈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방주가 미녀만 보면 지분대는 것은 잘못이지만, 방주와 방파에 대한 모욕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상대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자신만 우스운 꼴을 보인 게 되니까.
“그래도 방주님께서 대접하는 것인데 너무 심한 소리를 하는군. 자네 눈에는 우리 봉무방이 우스워 보이나?”
“…….”
임허단의 말에 소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한자리에 있던 봉무방 방도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에게로 향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아직 날도 추운데 어디서 파리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심 노인도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