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90
1390회. 무서워 죽겠습니다
남부 왕국 대귀족들로 이루어진 ‘어비스 관리 협회’는 결국 모험가와 용병의 어비스 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어비스 이상 현상 조사단’이 긴급 출동해 조사를 벌이는 중에도 어비스 입구가 조금씩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비스 관리 협회’에서는 당장 급한 대로 플라잉이 가능한 마법사들을 어비스 내부로 파견하기로 중지를 모았다.
어비스가 공중으로 더 떠오르기 전에 어비스에서 활동 중인 모험가와 용병을 최대한 밖으로 내보내려는 것이다.
동시에 노천 광산 밑바닥에 십여 미터 높이의 단을 건설해 나갔다.
광부와 채집꾼 등을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다.
한편 ‘어비스 관리 협회’는 어비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체 비밀에 부쳤다.
어비스를 독점하려다 전쟁까지 터졌는데 ‘어비스에 문제가 생겨 폐쇄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말이다.
더불어 강철 골렘을 더 이상 발굴하지 못한다는 게 알려지면 병사들 사기가 떨어질 테니 감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비스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어비스 이상 현상은 ‘어비스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중구.
숙소 창가에 앉아 있는 엘리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벌써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메기스투스가 오지 않아서다.
점원이 엘리오의 옆에 있는 탁자에 요리를 가져다주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파비안이 떠난 뒤로 계속된 일이라 점원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엘리오가 점심 식사를 마칠 즈음 점원이 빈 그릇을 가지러 다시 왔다.
빈 그릇을 가지고 돌아서는 점원에게 엘리오가 물었다.
“어이, 요즘 재밌는 이야기 없냐?”
“어이쿠! 그런 말씀 마십쇼. 총동원령이 내렸는데 그런 게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도 없다고?”
“온통 전쟁 이야기뿐입니다.”
“그거라도 말해 봐.”
점원이 들고 있던 빈 그릇들을 슬며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참에 대귀족이 잡아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고 좀 쉴 참이다.
“남부로 갔던 원정군이 쉐이드 왕국으로 물러났답니다. 원정군에서 십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고 하는데……. 관청에서 아니라고 하지만 엄청나게 죽은 모양입니다. 지금 제국령 남부에서는 십육 세가 넘으면 징집한답니다. 여행자까지 잡아간다니 말 다했죠.”
“십육 세를? 진짜 눈이 돌아갔나 보네.”
“제국령 북부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청년들은 거리에서 바로 의용군으로 끌려간답니다.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끌고 가는 바람에 거리가 텅텅 빌 정도랍니다.”
“귀족도 끌고 간대?”
“아유! 예외 없답니다.”
“갑자기 왜 그런대? 제국군 숫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부와 북부 왕국에서 마력총을 엄청나게 끌어모았답니다. 그래서 제국군의 피해가 상상 이상이랍니다. 전쟁터에 양쪽 시체가 산을 이룰 정도라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요. 마탑이 문젭니다. 하라는 마법 연구는 안 하고, 마법사들이 죄다 마력총만 만들어 팔고 있으니……. 마탑의 배만 부르게 하는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비스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아! 어비스요. 지금 생각 났는데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닙니다.”
“이상한 소문?”
“노천 광산 밑바닥에 있던 어비스 출입구가 공중으로 계속 떠오르고 있답니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는데요?”
“진짜?”
“저도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지나가다 들은 거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별일이 다 있네.”
“기상 이변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들 합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비스가 뭐라고 그것 때문에 기상 이변이 일어납니까?”
엘리오는 어비스의 실체에 대해 가르쳐 주려다가 말았다.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을 신전에 고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나가 봐.”
축객령이 떨어지자 점원은 빈 그릇을 주섬주섬 챙겨 숙소를 떠났다.
타불라 마탑을 보는 엘리오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파비안이 곁에 있었다면 세상의 종말이라고 떠들어 댔을 게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쯤 지나자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점원의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에서 왠지 모를 불온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어비스의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긴 해야겠군.”
중얼거리던 엘리오는 숙소를 떠나 타불라 마탑으로 향했다.
창가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마탑 앞으로 장소를 옮기려는 것이다.
노점상들은 아직 오후 3시밖에 안 됐는데 대부분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자연스럽게 얼쩡거리기가 어렵다.
고민하던 엘리오는 곧장 타불라 마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공학 연구소.
연구소 소장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비굴한 미소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엘리오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메기스투스 왔었습니까?”
“아직 방문하지 않았습니다만, 왜 늦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연락이 왔습니까?”
“예. 닷새 전에 마법 통신구로 연락을 해 왔습니다. 국경이 봉쇄되어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늦는다고요. 아마 오늘내일 중으로 방문할 겁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겠죠?”
“물론입니다. 다른 마공학자들에게도 제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좋아요. 계속 그렇게만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려니 답답하군요. 그래서 말인데, 소장님이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해 줬으면 합니다. 마법사들에게는 다양한 통신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법 통신구 같은 거라도 하나 주시죠.”
순간 카비 크레이저 백작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법 통신구가 고가의 물건인 까닭이다.
물론 라고아 백작의 신분이면 가질 수도 있지만 문제는 돈이다.
“저어, 꼭 마법 통신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실 테지요?”
“소장님의 연락만 받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럼 차라리 블랙 비드가 어떻겠습니까?”
“블랙 비드요?”
“예, 작아서 소지하기도 그게 훨씬 편하실 겁니다. 잠시만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라고아 백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진주만 한 크기의 검은 구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것이 블랙 비드입니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건 긴급 신호용입니다. 두 개를 서로 연동하면, 한쪽이 다른 쪽에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신호만 보내는 건 싸구려지만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그건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블랙 비드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 둔 뒤, 들고 있던 블랙 비드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탁자 위에 놓인 블랙 비드가 ‘드드드’ 진동하며 깜빡깜빡 점멸했다.
엘리오는 ―진동하며 점멸하는― 블랙 비드를 집어 들고 신기한 눈으로 살폈다.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다니라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메기스투스가 방문하면 제가 신호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블랙 비드를 몸에서 떼어 놓지만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괜찮네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엘리오는 두말 않고 블랙 비드를 품 안에 집어 넣었다.
이제야 족쇄에서 풀려난 기분이다.
그동안 창가에서 눈알이 아프도록 마탑을 지켜봤는데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라고아 백작이 블랙 비드로 만족하자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안도했다.
“각하. 저는 생산 시설을 좀 점검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소장이라는 직위가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하하.”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웃으며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아, 하나만 더요. 소장님은 혹시 어비스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까?”
“어비스요? 어비스에 무슨 일이 생겼답니까?”
엘리오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표정을 보니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별일 아닙니다. 오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를 들어서, 혹시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봤던 겁니다.”
“그러셨군요. 원래 어비스에 대한 이야기는 과장이 심합니다. 분명 관심이 필요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신호 잊지 마십쇼.”
엘리오는 카비 크레이저 백작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마탑 밖은 벌써 칠흑처럼 어두웠다.
“내 눈으로 확인해 두는 게 좋겠지?”
블랙 비드가 있으니 굳이 숙소에 틀어박혀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엘리오는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라 구룡번신을 펼쳤다.
어비스의 이상 현상을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다.
***
남부 대수림.
햇살이 뜨거운 정오 무렵, 허공에서 엘리오가 툭 떨어져 내렸다.
“어? 뭐지?”
엘리오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어비스가 있는 노천 광산을 목표로 했는데 울창한 숲속이었다.
구룡번신을 사용한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다.
구주의 비경 속에서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동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수림이라 다행이다.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구룡번신이 방해를 받은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제도로 돌아가는 중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자칫 메기스투스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엘리오는 다시 한번 구룡번신을 펼쳤다.
목표는 역시나 어비스가 있는 노천 광산이었다.
잠시 후 노천 광산 입구로 한 청년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대수림에서 사라진 엘리오였다.
노천 광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엘리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아! 어비스네. 다행이다.”
이번에는 목표 지점에 제대로 왔다.
자신의 구룡번신에 문제가 없다는 게 증명이 된 셈이다.
“뭐 때문에 그랬던 거지?”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오는 나선형 길을 따라 아래로 질풍처럼 내달렸다.
절정의 경신술을 펼치자 금방 바닥에 내려갈 수 있었다.
“진짜네.”
놀랍게도 어비스의 출입구인 검은 점이 허공 삼십여 미터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크기도 엄청 커져서 노천 광산의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어비스 출입구를 올려다보는 엘리오의 귓가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안전상의 이유로 어비스 출입이 금지됐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돌아가십쇼!”
엘리오는 슬쩍 돌아섰다.
어비스 출입 관리소 앞에 낯익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사칼이라고 했던가?’
엘리오가 어비스 관리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늦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얼굴을 알아본 사칼이 머리를 조아렸다.
“백작님.”
“사칼 씨.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죠?”
“예, 예. 그런데 오늘은 일행 분들이 안 보이시네요?”
사칼이 라고아 백작의 뒤를 힐끔거렸다.
“어비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확인차 혼자 와 봤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어비스 출입구가 상당히 위로 떠올라 있네요? 크기도 엄청 커져 있고?”
“아이쿠! 말씀도 마십쇼. 한 달쯤 전부터 조금씩 떠오르더니 저 모양입니다. 크기도 자꾸만 커지는 게 무서워 죽겠습니다.”
사칼의 말에 엘리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무래도 로디나 대륙의 기상 이변은 어비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때 가슴에서 ‘드드드!’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타불라 마탑의 마공학 연구소장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보낸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