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99
1399회. 재를 뿌리고 뭐?
황룡방의 일로 그렇지 않아도 바쁘던 남맹 총사부에 비상이 걸렸다.
남맹은 즉시 감찰대를 소호반점으로 파견했다.
어제저녁에 그곳에서 일어난 분쟁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석경장이 관계된 일인지라 감찰대는 소호반점의 점원은 물론, 그 시간에 식사를 하러 왔던 손님들까지 탈탈 털었다.
엄밀히 분류하자면 석경장은 정파고, 황룡방은 정사지간이다.
그래서 감찰대는 황룡방이 엄한 짓을 벌인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런데 목격자들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니다?
의외로 목격자들은 황룡방 부방주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중년인이 부인에게 술 한잔 따르면 금 한 냥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부인의 남편이 화를 냈습니다. 저 같으면 좋아라 했을 텐데 말이죠.”
“부인에게 말을 건 중년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잖았습니다.”
“부인의 가족들이 기가 좀 세 보였습니다.”
“그러다 노인이 중년인과 그의 일행을 죄다 데리고 나갔습니다.”
감찰대는 해거름 무렵 돌아와 총사대에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감찰대를 돌려보내고 총사대는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의견은 둘로 갈렸다.
백익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십전무후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건 큰 잘못입니다. 황룡방을 잃겠지만 남맹이 이 일에 관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자칫 석경장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용각과 모용미의 생각은 달랐다.
“황룡방이 큰 결례를 범한 것은 사실이나 모르고 한 일이고, 끝까지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에 반해 구천노도의 손속은 과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남맹이 절강성에 진출하려면 황룡방을 안고 가야 해요. 석경장이 아니라 구천노도의 사과를 원하는 것이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천노도는 늙은 여우니 남맹의 입장을 이해해 줄 거예요.”
황룡방의 편을 드는 의견이 우세했다.
남맹의 절강성 진출에 황룡방의 협조는 필수인 때문이다.
황룡방이 호천맹으로 기울면 남맹의 진출에 악재로 작용할 터였다.
회의를 주재하던 대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입을 열었다.
“모용각 총사.”
“예.”
“지금 당장 구천노도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라. 구천노도는 심계가 깊은 사람이니 남맹의 고충을 이해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협조란 구천노도의 사과를 의미한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 일을 석경장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대총사 모용문이 굳은 얼굴로 모용각을 응시했다.
그렇게 되면 자칫 석경장이 황룡방에 사과한 모양새가 되고 만다.
고금제일인인 남천과 십전무후가 그걸 용납할 리 없으니 어떻게든 황룡방과 구천노도의 선에서 끝내야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겠습니다.”
“구천노도는 물론 황룡방의 입단속도 단단히 해 둬야 할 것이다.”
“예, 나중에라도 잡음이 나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모용각이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그도 대총사가 입단속을 강조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모용각은 저녁 식사도 거르고 석경장으로 달려갔다.
오늘 중으로 구천노도와 황룡방주의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석경장.
당운망이 약제당을 사용했다면 심통과 그의 제자들은 고월각에서 생활했다.
저녁 식사를 앞두고 고월각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심통과 남맹의 총사 모용각이다.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심통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시간에 남맹의 총사가 갑자기 나를 만나러 오다니, 무슨 일이냐?”
“실은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어 노선배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정파에서 심통의 위치는 딱 노선배 정도였다.
심통의 무위를 생각하면 기막힐 노릇이지만 사람 인식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뜸 들이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거라.”
이미 오래전에 명리(名利)를 초월한 심통은 그런 호칭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제저녁 소호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습니다. 황룡방이 십전무후 님께 큰 결례를 저질렀더군요.”
순간 심통의 눈썹이 꿈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남맹의 총사가 ‘죽어 마땅한 짓’을 ‘결례’라고 축소해서다.
십전무후 남궁연이 누군가.
남천 연적하의 부인 이전에 남맹 맹주인 검왕 남궁벽의 딸이다.
그런 사람에게 수청을 들라 한 것은 결코 결례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통은 버럭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모용각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용각이 심통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말을 이어 나갔다.
“남맹은 조만간 절강성으로 진출할 예정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황룡방은 절강성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방파입니다. 그래서 남맹에서는 오래전부터 황룡방에 공을 들이고 있었지요.”
“서두가 길구나.”
“노선배님에게 당한 일로 황룡방이 등을 돌리려 합니다. 그들은 노선배님이 사과하지 않으면 남맹을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남맹 총사부에서는 그들이 실수한 것은 사실이나, 대국적인 견지에서 노선배님이 사과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이것은 석경장이 아닌, 노선배님 개인에게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조용히 덮고 넘어가야 할 테지요.”
묵묵히 듣고 있던 심통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노선배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다.
정파 제자가 녹림의 마두에게 대협 소리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듣자 듣자 하니 ―듣도 보도 못한 핏덩어리가― 사과를 하라느니,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느니 운운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모용각은 얼른 남맹이라는 권위를 앞세웠다.
“물론 듣기 거북하시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남맹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후후후. 남맹의 뜻이라……. 잘 알았다.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느냐?”
“황룡방에서는 오늘 중으로 노선배님이 방주에게 사과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남맹은 노선배님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보답을 해 드릴 것입니다.”
“보답?”
심통이 관심을 보이자 모용각은 이때다 싶어 내질렀다.
“보상으로 재물을 드릴 수도 있고, 노선배님 제자들에게 남맹의 무공을 가르쳐 줄 수도 있습니다.”
심통은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이 나이에 재물이 무슨 소용이며, 고금제일인의 사손(師孫)들에게 남맹의 무공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보답은 바라지 않는다. 황룡방주는 어디에 있느냐?”
“도향촌의 민가에 있습니다.”
남맹은 무림대회를 앞두고 총단을 다시 도향촌으로 옮긴 바 있다.
무림대회를 원활하게 치르기 위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 것이다.
“안내해라.”
심통의 말이 떨어지자 모용각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
도향촌.
초저녁.
두 사람이 도향촌으로 들어섰다.
한 식경쯤 전에 석경장을 출발한 모용각과 심통이다.
뒤쪽을 힐끔 돌아보던 모용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허어! 심 노선배의 경신술이 대단하구나.’
내색은 안 했지만 쉬지 않고 달려온 탓에 무릎이 후들거렸다.
그런데 심통은 방금 고월각을 나선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사파와 달리 정파에서 구천노도의 존재감은 그저 그랬다.
정파의 원로들이 심통에 대해 평가할 때면 항상 ‘그래 봐야 녹림의 마두지’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정말 그럴까?’
생각에 잠긴 모용각의 귓가로 심통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 왔느냐?”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대답과 함께 모용각은 심기일전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모용각이 제법 관리가 잘된 집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계십니까?”
모용각이 두 번 부르자 비로소 누군가 대문을 열었다.
모용각과 심통을 본 황룡방도가 황급히 안채로 달려갔다.
곧이어 방주 황룡신군 한비호와 부방주 철혈검 장도우가 방도들을 이끌고 마중하듯 나왔다.
황룡방 방주와 부방주를 발견한 모용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다시 뵙습니다. 남맹의 총사 모용각입니다. 약속대로 심 노선배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심 노선배님께서 방주님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심 노선배님?”
모용각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심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룡방 방주 황룡신군 한비호가 짐짓 모른 체 너스레를 떨었다.
“구천노도께서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자를 찾으시다니 영광입니다. 남맹의 옆에 있으니 이런 호사를 누려 보는군요.”
그때다.
묵묵히 서 있던 심통이 갑자기 박도를 뽑아 벼락처럼 휘둘렀다.
파앗―!
한비호의 한쪽 팔이 어깨에서 잘려 허공으로 치솟았다.
잘린 어깨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바, 방주님!”
부방주 장도우가 다급히 한비호의 지혈에 나섰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용각이 새된 소리로 외쳤다.
“노선배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심통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말했다.
“죽어 마땅한 놈을 살려 줬더니 감히 나를 능멸해? 이후로 또다시 나를 희롱하면 황룡방을 멸문시키겠다. 알겠느냐?”
심통은 싹 다 죽이고 싶었지만 살업(殺業)의 무게를 알기에 한번 더 참았다.
부방주 장도우는 기가 막혔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팔 하나를 잃은 황룡신군 한비호는 혼이 나간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오직 분기탱천한 모용각이 주제를 모르고 거듭 소리쳤다.
“심 노선배님! 남맹과 황룡방의 관계를 말씀드렸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남맹의 대업에 재를 뿌리시고도…….”
“재를 뿌리고 뭐?”
심통이 스산한 얼굴로 모용각을 보았다.
그 서슬에 놀란 모용각은 얼른 흥분을 가라앉혔다.
“석경장과 남맹의 관계를 아시는 분이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이런 짓? 어린놈이 오냐오냐했더니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는구나!”
말과 함께 심통이 모용각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짝!’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모용각이 뒤로 날아갔다.
땅에 거꾸로 처박혔던 모용각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의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황룡방주는 남천 대협의 부인이자, 남맹 맹주의 딸을 술집 작부 취급했다. 죽어 마땅한 놈을 호생지심(好生之心)에 살려 주었더니, 뭐? 잘못을 사과해? 네놈이 그러고도 남맹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 남맹을 위해서라면 십전무후의 명예쯤은 뒷간에 처박혀도 상관없다는 것이냐? 에라! 이 쌍놈의 새끼야!”
말하다가 화가 나는지 심통이 모용각에게 발길질을 했다.
모용각은 신묘한 각법에 또다시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제대로 꼭지가 돈 심통은 끊임없이 욕하며 쓰러진 모용각을 짓밟았다.
저러다 죽겠다 싶을 즈음, 심통의 발길질이 멎었다.
이윽고 심통의 눈이 한비호를 향했다.
“너 이 새끼, 귓구멍 열고 잘 새겨듣거라. 황룡방이 남맹에 가든 호천맹에 가든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신경을 건드리면, 너는 무조건 죽는다. 그때가 되면 남맹도 호천맹도 너를 지켜 주지 못할 것이다.”
심통의 기이한 기백에 눌린 한비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그는 팔이 잘린 것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피떡이 된 남맹 총사를 보니 지금은 살려 준 것에 감사해야 할 때였다.
황룡방 방주가 꼬리를 말자 그제야 심통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한비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다 안채로 돌아갔다.
이를 악물고 있던 부방주 장도우가 ―모용각을 둘러업은― 수하와 함께 남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