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48
1448회. 모노리스, 불멸의 사다리
베리스는 모쿠바스 군주의 눈빛이며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뭐라 하지는 못했다.
군주들은 악신 샤이틴의 권속이라는 점에서 동류지만, 돌아서면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관계인 까닭이다.
물론 자신의 신체가 부라퀴족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만, 오랜 세월 연금술에만 매진한 탓에 맞붙어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력으로는 몰록에게도 밀렸는데, 하물며 몰록을 죽이고 모쿠바스의 군주가 된 저 간악한 부라퀴족을 무슨 수로 당해 낸단 말인가!
대답을 고심하던 베리스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이놈을 불멸의 사다리와 함께 날려 버리는 건 어떨까?’
불멸의 사다리는 결계 해제 최후의 단계다.
마족에게 적대적인 티탄족을 생각하면 마지막이 어떨지 예측할 수 있다.
거기다가 자신이 평생 모은 화기(火器)들까지…….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이다.
모쿠바스의 군주를 불멸의 사다리 앞까지만 데려다 놓으면 된다.
“실은…….”
베리스는 자신이 이곳에서 발견한 티탄족의 유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엘리오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저 동굴 안에 티탄족의 유물이 있는데, 그쪽이 3년 동안 결계를 해제하고 있었다는 거야?”
“해제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내가 온 거네?”
“그렇다.”
“재밌군.”
엘리오가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녹림에서는 이럴 경우 예외 없이 치명적인 함정으로 연결되곤 했다.
과연 마족 군주는 어떨까?
베리스는 상대가 의심하는 듯하자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신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로 동굴은 마족도 진입하지 못한다. 군주라 해도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 충분치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 없으면 포기하라’는 소리다.
엘리오는 베리스의 경고를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너만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을 믿으라고?’
어쩌면 그건 동굴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베리스의 수작일 수도 있었다.
“일단 가 보자고. 몸이 못 버티겠다 싶으면 포기할 테니까.”
엘리오가 앞장서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베리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돌아섰다.
앞장서 걸어가는 베리스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동굴의 폭과 높이는 각각 5미터로 키가 3미터에 달하는 베리스도 작아 보였다.
엘리오는 동굴 벽면을 유심히 살폈다.
천연의 바위라 오니스토스 신전이라는 말을 들었어도 믿어지지 않았다.
‘무슨 신전이 이 모양이래?’
남부 아드리아 왕국 이시카의 잊혀진 신전과 달리 이건 그냥 바위 동굴이었다.
베리스를 뒤따르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엘리오가 멈칫했다.
춥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다.
아직 초입에 불과한데 한서불침인 피부가 터질 것처럼 따끔거렸다.
“시원하다.”
물론 허세다.
엘리오는 입김이 얼어서 눈처럼 흩날리자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뒤를 힐금 돌아보는 베리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뼛속까지 시원해질 거다. 아스타로이드는 딱 여기까지 버텨 내더군. 그래도 명색이 군주인데, 불멸의 사다리는 봐야지?”
“유물이라는 게 사다리처럼 생겼나 봐?”
“흐흐. 사다리보다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노리스에 가깝다.”
모노리스는 여러 개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로 된 구조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불멸의 사다리를 모노리스라고 부르는 마족들도 있었다.
“그럼 모노리스라고 부르지 왜 사다리라고 해?”
“그것이 불멸의 세계로 연결해 주니까. 그래서 불멸의 사다리라고 하는 거다.”
“불멸의 세계?”
모쿠바스의 군주가 관심을 보이자 베리스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모쿠바스의 군주가 불멸의 사다리를 알수록 욕망에 휩싸일 테니까.
“새가 둥지를 옮기면 깃털이 남는 법. 티탄족은 이 세계를 떠났지만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남았다. 대표적인 게 오니스토스의 신전이지. 신전에는 예외 없이 불멸의 사다리가 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티탄족 전사의 능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건? 마공학으로 만든 건가?”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티탄족의 유물이 들어 있다고밖에는.”
“이곳에도 있겠네?”
“물론이다. 내가 이곳에 머물며 결계를 해제하려고 한 것도 그래서다.”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했지?”
“그렇다.”
자신도 모르게 냉기에 부르르 몸을 떨던 엘리오가 물었다.
“어후! 썅. 더럽게 시원하네. 동굴 끝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나?”
“벌써 힘든가 보군. 견디지 못하겠으면 무리하지 말고 돌아가라. 괜히 티탄족의 유물에 목숨 걸지 말고.”
“너는 안 춥냐? 솔직히 말해 봐. 너도 춥지?”
“수만 년 연금술에 매진한 내가 너와 같을 것으로 생각되나?”
엘리오는 베리스가 냉기를 막는 방법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을 게 분명해서다.
오십 보를 더 걸어 들어가자 더는 참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느낌이다.
날숨을 내뱉으면 눈이 되어 흩날렸다.
반신(半神)이라 불리는 영기지체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냉기였다.
‘내가 군주 따위에게 질 것 같으냐!’
엘리오는 아쉬운 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반투명한 막이 피부에 덧씌워지자 찢어지는 듯한 통증도 덜했다.
동굴 중간 지점을 지나던 베리스는 무심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흥! 모쿠바스의 군주답군.’
하지만 이제 절반쯤 왔을 뿐이다.
시퍼런 모쿠바스 군주의 입술을 보니 동굴 끝까지 갈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득 냉기가 느껴지자 베리스는 ‘아차!’ 싶었다.
손을 들고 보니 냉기 저항 반지들 중 하나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런 젠장. 냉기 저항 반지의 상태를 점검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능력은 모쿠바스의 군주보다 아래다.
그럼에도 멀쩡한 것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냉기 저항 반지들 덕분이다.
냉기 저항 반지들은 모두 아티팩트고, 마력을 소모하면 평범한 액세서리가 된다.
결계를 해제하겠다고 불멸의 사다리 앞에서 몇 시간 버틴 걸 깜빡했다.
냉기 저항 반지는 모두 세 개.
그중 하나가 시들시들했는데, 나머지 둘도 머지않아 비슷해질 터였다.
‘불멸의 사다리 앞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라.’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던 반지는 끝내 영롱한 빛을 잃었다.
피부가 따끔거리자 베리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베리스의 심장이 요란하게 박동했다.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남아 있던 반지들의 빛깔도 조금씩 칙칙해지기 시작했다.
베리스는 폐까지 따끔거리자 체면을 잊고 반쯤 달려갔다.
엘리오는 그제야 베리스에게 문제가 생긴 걸 알았지만, 그를 조롱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태도 베리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에 얼음이 가득 차면 이런 느낌일까?
숨을 내쉴 때마다 눈보라처럼 날리던 입김도 나오지 않은 지 오래다.
눈앞에 베리스가 없었다면 벌써 동굴 밖으로 튀었을 것이다.
“아…… 직…… 머…….”
‘아직 멀었냐?’고 물으려는데 생각처럼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티탄족 유물이고 뭐고 돌아갈까?’
그나마 대주천으로 영기가 돌아가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달아났다.
아니, 영기마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벌써 얼어 죽었을 것이다.
한편 동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다 죽어 가던 베리스의 눈이 번득였다.
‘왔구나!’
저 멀리 불멸의 사다리와 그 아래 수북이 쌓인 화기가 보였다.
초록색 불빛이 불멸의 사다리 하단부에서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베리스가 손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불멸의 사다리다.”
엘리오는 굳은 입을 이리저리 움직여 풀어 준 후에 물었다.
“반짝이는 건 뭐야?”
“결계 해제의 마지막 단계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불멸의 사다리를 앞에 두고 엘리오는 자신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이곳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당장 동굴을 나가야 하는데…….’
개고생을 하고 그냥 돌아가려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볼일을 보고 뒤를 안 닦은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베리스는 모쿠바스 군주의 안색을 살폈다.
자기처럼 저 모쿠바스의 군주도 얼어 죽기 직전으로 보였다.
‘질긴 놈.’
변변한 아티팩트도 안 보이는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힘들게 하다니!
‘저놈을 불멸의 사다리 앞으로 보내야 하는데…….’
아니, 생각해 보니 놈과 함께 죽을 게 아니라면 타이머 설치가 먼저였다.
베리스는 눈을 질끈 감고 불멸의 사다리로 빠르게 다가갔다.
이제는 진짜 목숨을 건 머리싸움이다.
그는 태연하게 품에서 스크롤 두 개를 꺼내 화기 뒤에 꽂았다.
‘와라, 와라…….’
그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모쿠바스의 군주가 등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뭘 하는 거야? 저 기둥 아래 쌓여 있는 요상한 물건들은 뭐고?”
“오니스토스 신전이라고 하지 않았나. 티탄족 신에게 바친 공물들이겠지.”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티탄족의 신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 저 공물도 티탄족이 바친 거겠네?”
“그렇겠지?”
베리스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자신의 설명대로라면 티탄족의 것이어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너는 뭘 바친 거야?”
“결계 해제에 도움이 될까 싶어 아무거나 바쳐 봤다.”
“마족 군주가 악신(惡神)의 원수에게 공물을 바쳤다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멋쩍은 얼굴로 우물쭈물하던 베리스가 벼락처럼 왔던 길로 내달렸다.
그걸 구경만 할 엘리오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퍽!’ 하고 사라진 엘리오가 베리스 앞을 막아섰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공허의 검이 들려 있었다.
베리스가 갑자기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으으……. 내 몸은 한계에 도달했다. 냉기를 버틸 수 없어 나가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엘리오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한계에 도달한 것과 거짓말은 완전히 다른 거라고. 내가 바본 줄 알아?”
엘리오가 검 끝을 까딱이자 베리스는 마지못해 불멸의 사다리로 돌아갔다.
불멸의 사다리 앞에 선 베리스가 돌연 차갑게 말했다.
“바보 같은 놈. 너는 끝났다.”
“무슨 개소리야?”
불쾌한 얼굴로 베리스를 보던 엘리오가 전광석화처럼 검을 휘둘렀다.
팟―!
검이 베리스를 가르자, 베리스의 모습이 꺼지듯 사라졌다.
“이런 젠장!”
뒤늦게 엘리오는 자신이 베리스의 환영 마법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언제 마법을 사용한 것일까?
순간 짚이는 게 있어 불멸의 사다리 하단을 살폈다.
두 개의 스크롤 중 하나에서 희미한 마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아!”
조금 전 갑자기 달아난 척한 게 환영이었던 모양이다.
본체는 자신이 환영과 옥신각신할 때 빠져나갔으리라.
자신을 완벽하게 속일 정도의 환영 마법이라니! 과연 마족 군주다운 솜씨다.
“내가 이 마족 새끼를 살려 두면 사람이 아니다.”
욕을 하던 엘리오는 섬뜩한 느낌에 불멸의 사다리로 고개를 돌렸다.
“씨발!”
베리스가 꽂아 두었던 또 하나의 스크롤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엘리오는 부지불식간에 허리를 굽혀 스크롤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스크롤의 폭발이 먼저였다.
꽈광!
스크롤을 놓친 엘리오의 손가락이 점멸하는 초록빛 문양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베리스가 쌓아 두었던 화기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콰콰콰쾅―!
대형 폭발에 오니스토스 신전이 박살 났다.
이윽고 발도 디아노 협곡 좌우편 산에 오랜 세월 쌓여 있던 눈이 무너져 내렸다.
가공할 눈사태에 발도 디아노 협곡은 설원으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