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90
1490회. 라데 백작의 검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서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자신 없는 태도에 엘리오가 말했다.
“베일럼의 호랑이가 많이 약해지셨네요?”
“모두 옛날이야기입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지 오랩니다.”
“에이, 소드마스터가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
오마르 백작이 착잡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걸 본 엘리오는 오마르 백작이 걱정됐다.
흔히 기세가 꺾인 사람을 향해 ‘싸우기도 전에 졌다’고 말한다.
엘리오가 보기에 오마르 백작이 그랬다.
이래서야 위르겐 라데 백작과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안 봐도 훤하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엘리오가 진지하게 묻자 오마르 백작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가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1왕자 측의 칼이었다면, 네블라 악시무스 백작은 2왕자 측의 칼이었다고.”
“예, 기억이 납니다.”
“힘만 쓰는 저와 달리 악시무스 백작은 선전 선동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선전 선동…….”
엘리오는 그 말에서 왠지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선전 선동을 ‘뒤에 숨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마일로 워커 자작 기억 나십니까? 저를 암살하려고 했던…….”
“예.”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워커 자작은 오마르 백작의 휘하에 있다가 배신한 사람이다.
워커 자작에게 살해당할 뻔한 오마르 백작을 구해 준 게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워커 자작을 배신한 것으로 뒤바뀌었습니다. 배신당한 워커 자작이 악시무스 백작에게 몸을 의탁한 것으로.”
“헐.”
“심지어 지금은 제가 제럴드 로건 백작을 제거하고 로건 백작파를 흡수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로건 백작과도 연락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런 헛소리가 먹힌다고요?”
“로건 백작 측의 귀족들이 저와 거리를 둔 지 여러 해 됩니다. 이젠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거 없이 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고나 할까요. 허허.”
오마르 백작이 허허롭게 웃었다.
자그마치 5년간이나 지속된 선정 선동에 완벽하게 고립됐다.
―오마르 백작은 휘하의 부하를 배신해 죽이려 했다.
―소드마스터가 되자 권력을 잡으려고 베일럼으로 돌아왔다.
―오마르 백작이 로건 백작 측의 귀족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오마르 백작이 로건 백작을 무능하고 고집만 센 늙은 노새라 비난했다.
―오마르 백작이 로건 백작의 후실을 범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했다.
―로건 백작 측의 귀족들이 오마르 백작에게 비밀리에 충성 서약을 했다.
―한 산에 호랑이 두 마리는 있을 수 없다. 결국 로건 백작과 오마르 백작 둘 중에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다.
―오마르 백작이 궁지에 몰린 자신을 받아 준 로건 백작까지 죽이려 한다.
오마르 백작은 한때 베일럼의 호랑이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욕심 많은 괴물일 뿐이다.
이전과 달리 소드마스터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타나토스에 제대로 맞으면 칼을 뽑기도 전에 죽으니 위세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기사로서의 명예는 남아 있었다.
검으로 궁극의 자리에 올랐다는 그 자긍심 말이다.
그런데 그 기사의 자긍심을 악시무스 백작은 거짓 선전 선동으로 여지없이 짓밟았다.
무려 5년간 계속된 거짓 선전 선동에 오마르 백작은 투지가 꺾인 상태였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것으로 ‘거짓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진짜로 여겨지게 된다’는 뜻이다.
악시무스 백작의 거짓 선전 선동에 오마르 백작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엘리오는 문득 역마차 안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위르겐 라데 백작이라고, 용병 출신으로 대귀족까지 오른 대단한 기사라네.”
“오, 대단한 소드마스터인가 봅니다?”
“실전적인 검술로 대륙 제일이라네. 용병 생활을 하다가 터득한 검술이라니 오죽할까. 소드마스터가 된 것도 십여 년 전이고. 오마르 백작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하더군.”
“그 정도예요?”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겨루면 라고아 백작도 그의 상대가 안 될걸?”
마이클이라는 상인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악시무스 백작가를 드나들던 상단 관리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처음에는 헛소리가 괘씸하기만 했는데, 오마르 백작을 보니 단순한 문제 같지 않았다.
“제가 역마차에서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잖아요?”
“예.”
“그 상인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순수하게 검술로만 싸우면 라고아 백작도 라데 백작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고. 그 말의 출처를 알아보니 악시무스 백작가였고요.”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악시무스 백작이 라데 백작을 띄워 주려고 그런 것 같은데, 기분이 나쁘셨습니까?”
“단지 그것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까지도 노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오마르 경과 친하니까 관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영기에 의지하지 말고 붙어 보자는 도발은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말씀을 들어 보니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죠?”
“라고아 경의 나이를 생각하면…… 라데 백작의 실전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소드마스터도 그렇지만 그랜드 마스터 역시 힘의 원천은 영기나 마나다.
영기나 마나를 제외하면 육체적 능력과 검술의 숙련도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라데 백작의 실전 경험을 고려하면 젊은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로 이긴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물론 라고아 백작은 예외지만 말이다.
오마르 백작이 애매한 눈으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다.
자신은 지난 5년간 눈에 띄게 늙었는데 그는 이전 모습 그대로다.
‘혹시 라고아 경은 늙지 않는 걸까?’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삼십 대가 이십 대로 보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엘리오가 물었다.
“왜요? 오마르 경도 제가 영기를 쓰지 않으면 질 것 같습니까?”
“아니요. 라고아 경의 얼굴이 5년 전 그대로라…… ‘경이 나이를 먹지 않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 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라고아 경은 여전히 어려 보이십니다.”
만약 오마르 백작이 더 파고들었다면 엘리오의 비밀을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마르 백작은 라고아 백작이 어려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 더 묻지 않았다.
“제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면서 바디 체인지를 좀 심하게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 영기를 쓰지 않는 라고아 경이 라데 백작에게 질 것 같으냐고 물으셨지요?”
“예.”
“겸손하시군요. 라고아 경의 검술은 실전이니 뭐니 하는 차원을 뛰어넘었습니다. 라고아 경이 검 쓰는 걸 봤다면 악시무스 백작 진영에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마르 백작은 과거 엘리오에게 직간접적으로 검술 지도를 받았다.
그러기에 엘리오의 검술 경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라데 백작이 평생을 수련한다 해도 라고아 백작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럼 오마르 경은요. 경은 라데 백작을 이길 자신이 없습니까?”
“하아!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싸울 의지조차 사라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런 마음 상태로 라데 백작과 싸운다면…… 아무리 오마르 경이라도 이기기 어려울 겁니다.”
“…….”
엘리오의 냉정한 지적에 오마르 백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결투의 결과는 사실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라데 백작은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까닭이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엘리오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머지는 오마르 백작이 결정할 문제였다.
두 사람은 5년 전의 일들을 회상하며 그간 못 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인생 쓴맛 단맛 다 본 엘리오와 칠십을 목전에 둔 오마르 백작은 친구처럼 말이 잘 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인들에게 배신당한 굴곡진 인생사까지.
두 사람은 공통점이 너무 많았다.
5년 전이 ‘모험의 동료’였다면 지금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 같았다.
둘의 대화는 저녁 만찬까지 계속 이어졌다.
다음 날.
정오가 지나면서부터 영주성으로 베일럼의 대귀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랜드 마스터인 라고아 백작과 오마르 백작의 만남이 밖으로 흘러 나간 것이다.
그동안 발길을 끊었던 제럴드 로건 백작은 물론, 정적인 폴 허먼 백작과 네블라 악시무스 백작, 위르겐 라데 백작까지 찾아왔다.
중앙 홀.
베일럼의 대귀족들이 모인 중앙 홀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했다.
베일럼 왕국의 양대 정치 세력이 한자리에 모인 탓이다.
그것도 상대에게 살의를 가진 정치 세력들이다 보니 눈빛이 곱지 않았다.
그래도 라고아 백작의 앞이라서 발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라고아 백작의 괴팍함을 생각하면 그러는 게 당연했다.
입에 발린 덕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상석에 앉은 엘리오의 시선이 로건 백작을 향했다.
불안한 얼굴로 눈알을 굴리는 걸 보니 이 자리를 호랑이 굴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오마르 백작을 불신하는지 알 수 있었다.
‘쯧! 한심하기는.’
그따위 거짓 공작에 휘말려 오마르 백작을 멀리하다니 기가 막혔다.
연이어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폴 허먼 백작과 네블라 악시무스 백작, 그리고 위르겐 라데 백작의 얼굴이 보였다.
악시무스 백작은 냉막한 인상이 천지맹 총사였던 신기수사 제갈승운을 닮았다.
‘머리 쓰는 놈들은 다 저렇게 생겼나?’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더 싫어졌다.
악시무스 백작과 라데 백작을 번갈아 보던 엘리오가 문득 말했다.
“악시무스 백작.”
“예, 각하.”
악시무스 백작은 같은 작위임에도 아랫사람처럼 자신을 낮췄다.
“내가 마차를 타고 오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악시무스 백작의 얼굴이 긴장으로 살짝 굳었다.
“라데 백작의 검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서요? 뭐라고 하더라? 순수한 검술로는 라고아 백작도 라데 백작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던가? 상인들이 악시무스 백작가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데……. 맞습니까?”
한순간 대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악시무스 백작을 향했다.
로건 백작 측은 고소하다는 표정인 반면, 허먼 백작 측은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다.
“상인들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라데 백작의 검술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어찌 그랜드 마스터인 각하께 비교하겠습니까?”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악시무스 백작을 보았다.
그런 발언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걸 보니 오해 살 말을 하긴 한 모양이다.
“그런 일이 아예 없었다고는 하지 않으시네. 그 오해를 샀다는 말, 나도 들어 봅시다.”
엘리오가 물고 늘어지자 악시무스 백작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오해라고 발뺌하면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런 식으로 파고들 줄이야.
‘그랜드 마스터나 되는 인물이 꽤나 집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