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14
1514회. 가보를 팔았습니까?
십언시 공항 대합실.
진과월을 먼저 보내고 연적하와 마주 앉아 있던 크리스티가 불쑥 물었다.
“찾는 사람이 있죠?”
“그것도 부사장님에게 들었냐?”
“아뇨. 오라버니 표정을 보니까 왠지 그런 것 같아서요. 여자인가요?”
“비슷해.”
“피이! 비슷한 게 어딨어요? 당당하지 못하시네.”
“솔직히 나도 내가 찾는 게 누군지 모르겠어. 신인지, 인간인지……. 그래서 그래.”
“그래도 남자는 아닌가 보네요.”
“원수가 아니라면 남자를 찾아다닐 일은 없지.”
그 부분에 있어서 연적하의 생각은 확고했다.
피식 웃던 크리스티는 문득 연적하에 대해 아버지가 한 말을 떠올렸다.
“혹시 찾아다닌다는 게 구천현녀예요?”
“부사장님에게 들은 거 맞네.”
“아뇨, 처음에는 여자의 직감이 왠지 그래서 물어봤던 거예요.”
“맞아. 네 눈에도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냐?”
“아뇨, 전혀요. 찾아다닐 만한 이유가 있으니 찾아다니는 거겠죠.”
“고맙다. 나한테 그런 말 해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저도 고마워요.”
“뭐가?”
“……배주대곡 사장실에서 저 구해 주신 거요.”
“봤냐?”
“네, 저도 돌연변이라서요. 보통 사람들보다 신진대사가 엄청 빠르답니다.”
“그랬구나.”
연적하는 머쓱한 얼굴로 턱을 긁었다.
그가 어색해 하자 크리스티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공부대왕(功夫大王)에서 임 경사가 MDM(유전 변이 측정기)으로 오라버니 차원력을 쟀잖아요. 그때 분명히 0이 나왔었는데…….”
“무공이야.”
“무협 영화에 나오는 그 무공요?”
“어.”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거 아니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는 있음 직한 것으로 만들잖아. 내가 진짜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와아! 그럼 문파나 스승님도 있겠네요?”
“문파는 없고, 스승은 있어.”
“스승님이 누구예요?”
“구천현녀.”
“여자 신선요?”
“맞아.”
“그러니까 스승님을 찾아다녔던 거네요?”
“뭐, 그런 셈이지.”
연적하는 선선히 인정했다.
동시에 전생(轉生)한 전 부인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까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와아! 무슨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 같아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과학자들이 블랙홀 실험하다가 블랙 스피어가 전 세계에 나타났고, 그것 때문에 계획에 없던 돌연변이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이미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오!”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크리스티를 보았다.
그저 철부지 아가씨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꽤나 생각이 깊다. 사람은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참, 이거 아빠가 전해 주랬어요.”
말과 함께 크리스티가 연적하에게 플라스틱 카드 하나를 건넸다.
“이거 혹시 신용 카드냐?”
“예, 현금을 받지 않는 곳도 많거든요. 현금은 분실의 위험도 있고. 오라버니 자리 잡히기 전까지 편하게 사용하라고 하셨어요.”
“고맙게 쓰겠다고 전해 드려.”
“네, 그거 외국에서도 사용 가능해요. 혹시 한국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쓰세요. 한국은 현금보다 카드를 더 쓰는 나라라서……. 신용 카드가 없거나 휴대 전화 결제가 안 되면 생활하기 불편할 거예요.”
“현금을 안 쓴다고?”
“네, 전에 저와 같이 점심 먹었던 거 기억나세요? 거기 무인 주문기에서 제가 카드로 주문 결제했잖아요. 한국의 가게에도 죄다 그게 비치되어 있어서 카드 없으면 뭐 하나 살 수가 없어요.”
“신기하네.”
“그런 걸 모르는 오라버니가 더 신기한 거예요. 요즘은 깡촌에도 무인 주문기가 있던데.”
때마침 합비행 항공기의 탑승을 알리는 메시지가 대합실 모니터에 떠올랐다.
대답이 궁색했던 연적하는 그 메시지를 손으로 가리켜 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탑승하란다. 가야겠다.”
크리스티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라버니, 종종 전화드릴게요. 혹시라도 전화기 바꾸게 되면 제게 꼭 알려 주세요. 아셨죠?”
“그래, 나중에 통화하자.”
연적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탑승구를 향해 걸어갔다.
***
안휘성.
합비 공항.
사람들 속에 섞여 출구로 나가던 연적하는 비행기의 빠른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마차로 꼬박 스무 날은 가야 할 거리를 한 시간 삼십 분 만에 도착한 때문이다.
“비공정도 이렇게 빠르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생긴 건 하늘고래처럼 생긴 비행기가 우라지게 빨랐다.
비행기에서 찾을 짐이 없던 그는 가장 먼저 공항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길게 늘어선 택시 줄에 가서 섰다.
구룡번신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현대 문명에 적응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다.
차창 밖으로 달라진 합비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운종술을 쓰면 좋겠지만, 솔직히 석경장까지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삼백구십 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카메라가 없다면 모를까?
구름을 타고 다니다가 누군가의 휴대폰 카메라에 찍히면 그것도 문제였다.
잡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줄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자, 그는 남들처럼 재빨리 택시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기사가 부드럽게 차를 움직이며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여강현 석경장요.”
“여강현 어디요?”
다시 묻는 기사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웠다.
여강현이야 소호 인근에 있어 알지만, 석경장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기억이 없어서다.
“석경장요. 혹시 원가산은 압니까?”
“예.”
“원가산 인근에 있으니 거기서 물어보면 다들 알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원가산으로 모시겠습니다. 소호를 따라가면 한 시간쯤 걸릴 겁니다.”
“…….”
기사의 설명에 연적하는 기분이 묘했다.
저 머나먼 십언시에서 합비까지 한 시간 삼십 분밖에 안 걸렸는데, 합비에서 여강현까지 한 시간쯤 걸린단다.
이게 무슨 도깨비 장난인지 모르겠다.
젊은 승객이 침묵하자 기사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말을 걸지 않았다.
공항을 빠져나간 택시는 한 시간쯤 달려 원가산 인근에 도착했다.
그러나 연적하의 장담과 달리 석경장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석경장요? 모릅니다.”
“새로 생긴 모텔인가? 처음 들어 봅니다.”
“요릿집 같은데, 시내로 가 보세요.”
도로를 따라 뱅글뱅글 돌며 길을 묻던 기사가 젊은 승객에게 말했다.
“손님, 석경장이 이 근방에 있다면 차라리 내려서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얼마죠?”
“이백오십 위안(한화 약 4만 6천원)입니다.”
택시비를 지불한 연적하가 차에서 내리자 기사는 가속 페달까지 밟아 가며 요란하게 떠났다.
홀로 남겨진 연적하는 기막힌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방향 감각이 어두운데, 환골탈태한 마을을 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서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의 길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어찌어찌 찾아가 보겠는데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네 번째 하늘에 뚝 떨어졌을 때처럼 막막했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그는 일단 원가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원가산은 변함이 없으니 거기를 기준으로 석경장을 찾아볼 요량이다.
연적하는 원가산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다 뉘엿뉘엿 석양이 질 무렵, 그는 마침내 석경장의 터를 찾을 수 있었다.
“허어…….”
석경장 터는 잡초로 무성했다.
중심부에는 짓다가 말았는지 잔뜩 녹슨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달랑 서 있었다.
남궁연과 딸의 무덤이 있던 가산도 반듯하게 밀려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폐허가 됐다더니 정말 그랬다.
‘이러니 사람들이 석경장을 모르지…….’
처음에는 만난 게 전부 외지 사람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됐다.
큰길을 따라 터덜터덜 내려가던 그의 눈에 두 노인이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내기 장기를 두는 것 같았다.
연적하는 장기가 끝날 때까지 노인들의 곁에 서서 구경을 했다.
장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장기에 패한 노인이 품에서 쌈짓돈을 꺼내며 구시렁거렸다.
“니미럴. 옆에서 자꾸 쳐다보니 신경이 쓰여 장기를 둘 수가 있나. 가던 길 마저 가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기웃거려. 에이, 퇫! 퇫! 퇫!”
노인의 무례한 행동에 연적하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였던지라 노인의 행동을 두고 뭐라 하지 않았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내기에서 이긴 노인이 돈을 받아 챙긴 후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뭔가?”
“제가 요 위에 있는 석경장을 찾아왔는데 말입니다. 무슨 짓다 만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고요? 석경장에 대해 아는 게 좀 있으십니까?”
내기에서 이긴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 모르네. 이 친구는 이곳 출신이니 알지도 모르겠군. 자네, 석경장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내기에서 진 노인이 심술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알지.”
“그럼 좀 가르쳐 주게. 석경장에 대해 묻고 있잖나.”
내기에서 진 노인은 청년의 아래위를 훑어보고는 잔뜩 뜸을 들였다.
“그거라면 이 마을에서 나만큼 자세하게 아는 사람도 없지, 암.”
연적하는 노인에게 읍을 해 보이며 물었다.
“노인장, 아는 게 있다면 좀 가르쳐 주십쇼.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제야 노인의 입이 열렸다.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면…….”
문화혁명 당시 흥분한 마을 청소년들은 석경장으로 몰려갔다.
서각에 있는 서적들을 불태우기 위해서다.
마을 청소년들은 서각에서 빼낸 서적을 마당에 쌓고,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붙였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책은 산더미처럼 쌓였지, 바람은 지랄맞게 불어오지……. 어떻게 됐겠나. 불길이 서각에 옮겨붙은 거야. 서각을 시작으로 석경장이 홀랑 불에 탔지.”
“불이 번졌는데 안 껐나 봐요?”
“일단 책은 확실하게 타고 있었으니까. 불의 근원이 책 더미인데, 끌 수가 있나. 그러니 그냥 내뺄 수밖에. 다들 어려서 뭐가 뭔지 모르던 때였으니까…….”
“석경장 사람들은 뭐 하고요?”
“안채로 불이 번지기 전에 가보며 귀중품들을 끄집어내더군. 그걸 훔쳐 가려고 또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 다들 어렸을 때라…….”
노인은 자꾸 ‘어려서 몰랐다’는 말로 과거의 잘못을 덮으려 했다.
그게 눈에 거슬린 연적하가 슬쩍 딴지를 걸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죠.”
장기에서 이긴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지.”
수세에 몰리자 장기에서 진 노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사례나 주게.”
연적하는 택시비를 내고 거슬러 받은 돈을 꺼내 들고 다시 물었다.
“연씨들이 마을을 떠나기 전에 가보를 팔았습니까?”
“자네 같으면 자네 집에 불을 낸 마을 사람들에게 가보를 팔겠나?”
“안 팔았나 보군요?”
“그랬을 걸세. 석경장과 관계된 물건이 거래가 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들고 있던 지폐를 노인에게 건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강퍅한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렸다.
연적하는 택시에서 내린 곳으로 돌아갔다.
해가 저물어서 그런지 버스는 물론 택시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까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진과월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사장님?”
―어, 그, 그래. 석경장은 둘러봤고?
“말씀하신 대로 폐허가 됐더라고요. 석경장의 연씨들이 한국으로 갔다고 하셨죠?”
―그렇네. 십중팔구는 인천에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참, 카드는 잘 받았습니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감사는 무슨. 혹시 한국으로 갈 생각인가? 그렇다면 내가 안내인을 보내 주겠네.
“안내인요?”
―우리가 본토에서는 힘을 못 쓰지만, 해외에서는 날아다닌다네. 한국으로 이주한 연씨들을 찾는 일에 분명 도움이 될 걸세.
“그러시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연적하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앞길이 막막한데 안내인을 보내 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