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2
22회. 산행보다 찬모가 낫지 않아?
허름한 모옥의 문을 열고 젊은 여자 둘이 밖으로 나왔다. 한채연과 얼마 전에 입산한 하소백이다. 스무 살의 한채연과 십팔 세의 하소백은 친자매처럼 딱 붙어 다녔다.
두 여자는 채주 풍연초와 부채주 탁고명을 발견하자 쪼르르 달려갔다.
그래도 언니라고 한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채주 오라버니, 오늘 연 오라버니와 마을에 다녀오면 안 돼요?”
“하가촌에?”
풍연초가 뚱한 얼굴로 한채연을 바라보았다.
하가촌에 가는 건 제 맘인데 왜 연적하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
“예. 소백이가 그러는데 오늘 하가촌에서 마을 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고요. 먹을 것도 많고 구경할 것도 엄청 많다고 해서.”
“둘이 가면 되지 연 아우는 왜?”
“어머, 여자 둘이서 산을 내려가라고요? 그러지 말고 연 오라버니 좀 보내 주세요. 네에?”
풍연초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연적하를 꾀어 보려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연적하가 남녀 간의 일에 둔하다는 것은 산채에서 유명하니까.
옆에 있던 탁고명이 키득거리며 한 마디 했다.
“크크, 마을에 가서 자빠트려 보게?”
“아휴! 그런 거 아니에요.”
입산한 지 얼마 안 되는 하소백이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그에 반해 한채연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기분 나쁘다는 듯 쏘아붙였다.
“소백이가 입산한 지 얼마 안 돼서 찝쩍거리는 놈들이 있을까 봐 그러는 거라고요!”
하소백은 하가촌 출신으로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그러다 지난해 어머니마저 병으로 죽고 혼자 남게 되었는데, 예쁘장한 그녀를 남자들이 가만둘 리가 없다. 이웃에게 겁탈당할 뻔한 걸 구해 준 사람이 한채연이었다.
풍연초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알았으니까 알아서 해. 연 아우도 그동안 산에서만 지냈으니까 좋아할 게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감사합니다.”
한채연과 하소백이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두 여자가 팔랑거리며 떠나자 탁고명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형님, 연 아우가 누구랑 될 것 같습니까?”
“왜?”
“왜는요? 저는 남자 아닙니까?”
“에라, 이 도둑놈아! 괜히 헛물 들이켜지 말고 너는 나중에 찬모하고나 잘해 봐.”
“형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겁니다.”
“너 같은 놈이 절밥을 먹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절밥이 어때서요? 절에도 상남자 많습니다. 소림사 보십쇼.”
“소림사의 중들이 너처럼 여색을 밝히디?”
“밝히긴 누가 밝혔다고 그러십니까? 그냥 산채에 젊은 여자들이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거죠.”
“어휴! 지랄. 헛소리 하지 말고 집 짓는 거나 자주 들여다봐. 잡부들이 괜히 산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고. 저 새끼들은 언제 관군들 길잡이로 돌변할지 모르니까.”
“설마요. 요즘 하가촌에서 우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서, 저 새끼들이 돈 몇 푼 쥐어 주면 술술 털어놓지 않을 것 같아?”
“물론, 저것들은 제 마누라까지도 팔아먹을 놈들이죠. 허튼짓 못 하게 잘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관리 잘하자. 나는 오봉산에서 오래가고 싶다.”
“저도 그렇습니다. 형님.”
탁고명 역시 오봉산채의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족했다. 산채에 찬모라니!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연적하는 두 여자의 권유에 하산하기로 했다. 입산한 이후로 놀기 위해 하가촌에 내려가기는 처음이다.
산채를 나서던 하소백이 신기하다는 듯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연 오라버니는 하가촌에 가 본 적 있어요?”
“어, 지난겨울에 형님들과 쌀과 먹을 걸 사러 두어 번 간 적이 있어.”
나이는 하소백이 한 살 더 많지만 연적하에게 존대를 했다. 연적하 역시 그간의 산채 생활로 반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상태였다.
“아, 그래서 제가 못 봤나 봐요. 자주 오셨으면 낯이 익었을 텐데.”
“너는 하가촌에서 살았다고 했지?”
“네.”
“나쁜 짓 할 얼굴은 아닌데 왜 산에 올라온 거야?”
솔직히 연적하는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소백은 누가 봐도 예쁘게 생겼다. 흑백이 선명한 눈동자는 맑고 투명해 그녀가 얼마나 순진한지 알 수 있다. 나쁜 짓과는 거리가 먼 얼굴인데 왜 쫓기듯 산에 올라온 것일까?
비록 자신이 도덕을 글로 배웠지만 옳고 그름 정도는 알고 있다. 산적은 대부분 세상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들이다. 물론 먹고살기 힘들어 산적이 된 사람도 있지만 그건 드문 경우였다.
“어머, 연 오라버니. 저는 나쁜 짓 할 얼굴이에요?”
한채연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피이!”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던 한채연이 하소백의 과거사를 간단히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연적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다. 연적하는 그 나쁜 놈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산채는 그보다 더한 짓을 하다가 온 놈들로 가득하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세 사람은 서로의 개인사를 조금씩 주고받으며 산을 내려갔다.
***
하가촌 사해루.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하소백이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
“요리는 이 집이 제일 맛있대요. 진미반점은 소면이 먹을 만하고요.”
“너도 먹어 본 적 없어?”
한채연의 물음에 하소백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이런 데 와서 사 먹을 돈이 없어서요. 진미반점은 가끔 갔지만요.”
때마침 점소이가 다가왔다.
“뭘 가져다 드릴까요?”
점소이는 연신 한채연과 하소백을 바라보았다.
하가촌에서 보기 드문 미모인지라 절로 눈이 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기루에서 다양한 요리를 접해 본 한채연이 일행을 대신해 주문했다.
“후라탕(매콤한 탕)과 포자(만두), 그리고 요자전계(통닭 요리), 소초육 (삼겹살 볶음), 팔보쌀밥(볶음밥) 되죠?”
한채연이 점소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봉현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이니 여기도 될 거라고 믿는 얼굴이었다.
“예,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굽실거리던 점소이가 물러갔다.
“어머, 언니. 멋있어요.”
하소백이 부럽다는 듯 바라보자 한채연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멋은 무슨. 다 기루에서 보고 배운 거야.”
“아! 그러셨구나.”
기루라는 말에 하소백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탁자에 놓인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실 즈음 요리가 나왔다.
세 사람은 모처럼 맛보는 진수성찬에 푹 빠져 말없이 먹기만 했다.
“이게 누구야? 소백이 아냐?”
큰 소리와 함께 비단 옷을 입은 남자가 탁자 옆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리던 하소백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눈 밑에 커다란 점이 있는 삼십 대 사내가 반갑다는 듯 하소백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요즘 도통 안 보이던데 어떻게 된 거야? 참,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서? 어려운 일 있으면 나를 찾아오라고 했잖아. 왜 안 왔어?”
그의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 있던 한채연이 하소백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의외로 하소백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물론 그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저 사람은 하가촌에서 자신에게 껄떡거리던 남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 나를 모른다고? 그럴 리가!”
남자가 계속 지분거리자 한채연이 차갑게 말했다.
“이봐요, 아저씨. 내 동생이 모른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 거예요?”
하가촌에서 커다란 포목점을 하는 하일지가 가소롭다는 듯 되물었다.
“누군데?”
“우리는 오봉산채 사람들이에요. 알았으면 가요.”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하일지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죄, 죄송합니다. 오봉산의 협사님들인 줄 모르고 그만…….”
그는 허리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 자리를 피했다. 하가촌에서 오봉산채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광경이다.
한심하다는 듯 ‘쯧쯧’ 하고 혀를 차던 한채연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오라버니는 저런 사람 보면 화 안 나요?”
“기분 나쁘지.”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어요?”
“네가 뭐라고 했잖아. 그럼 된 거지.”
사실 자신이 구경만 한 것은 소백과 그 남자와의 관계를 몰라서다. 하지만 한채연에게 그런 구구절절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한채연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어 오라버니.”
“왜?”
“소백이와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무공을?”
한채연이 하소백의 팔꿈치를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미리 말을 맞추고 온 듯 하소백도 한마디 했다.
“네, 오라버니. 저와 채연 언니에게 무공을 좀 가르쳐 주세요.”
갑작스러운 부탁에 연적하는 잠시 망설였다.
무공을 가르친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자신도 부채주에게 항마도법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친 경험이 없는데 잘될까?
연적하가 머뭇거리자 한채연이 애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안 되나요?”
궁지에 몰린 연적하가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 된다기보다는 자신이 없어. 아저씨들이 항마도법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려서 몇 번 보여 준 게 전부거든. 솔직히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몰라.”
순간 한채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요?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오라버니는 가르쳐 줄 마음만 있으면 돼요.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가 그때그때 말씀드릴게요.”
“그 정도라면 해 줄 수 있지. 그런데 갑자기 왜 무공을 배우려고 그러는 거야?”
“요즘 산채에 밥 짓고 빨래할 사람 구한다고 난리잖아요. 만약 우리가 싸움을 할 줄 모른다면 찬모를 구하려고 하겠어요? 우리한테 떠맡길 게 분명하다고요.”
“언니 말이 맞아요. 찬모를 구하면 다행인데, 구하지 못한다거나, 찬모가 갑자기 그만둔다거나 하면……. 으으.”
하소백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연적하는 그제야 두 아가씨의 속셈을 정확히 알았다.
결국 산채에서 찬모를 시킬까 봐 무공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근데 산행(산적질)을 나가는 거보다 찬모가 낫지 않아?”
연적하의 말에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절대로 싫어요!”
“아니 왜?”
두 아가씨는 왜 안전한 부엌보다 위험한 산행을 더 좋아하는 걸까?
한채연이 찻잔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조금 전에 그 남자가 한 말 기억나시죠? 죄송하다고. 오봉산의 협사님들인 줄 몰랐다고. 부엌데기들은 평생 그런 말을 들을 수 없거든요.”
“맞아요. 우리도 이왕이면 무공을 배워서 강호의 여걸이 되고 싶어요.”
“찬모는 진짜 아니에요.”
연적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자신도 창고에 갇혀 지낼 때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 마음은 비슷비슷한 거 같다.
***
하남성.
안거진(安居镇).
해가 질 무렵, 두 남자가 양화객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만수상방의 총대주 광풍검객 상무천과 그의 스승인 무당파 장로 천지상인이었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객점 안은 손님들로 바글거렸다.
상무천은 서둘러 객점의 방을 예약한 뒤, 한쪽 구석의 빈자리로 천지상인을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