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84
284회. 산(山)과 바람(風)과 고(蠱)
혼세검마 척진경은 악불 방천각과 적월 공취산을 번갈아 보았다.
허장성세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말 자신들의 방법이 성공할 거라고 굳건하게 믿는 얼굴이었다.
백두마군은 무공이나 술법으로 절대의 경지에 든 자들이다.
그건 다시 말해 저들의 안목도 절대적이라는 뜻.
마침내 척진경의 입이 열렸다.
“들어 봅시다. 그 방법이라는 것을.”
공취산이 방천각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그에게 말해도 괜찮은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척진경의 눈을 지그시 보던 방천각이 ‘괜찮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방취산이 말했다.
“이 세상에는 독이면서 독이 아니고, 생물이되 살아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소. 무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당하게 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저주라고나 할까.”
“그게 뭐요?”
“고독(蠱毒)이외다.”
고독이라는 말에 척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게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정말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다.
“고독으로 교주를 제압하겠다는 소리요?”
“보통 고독이 아니외다. 이것은 염매(魔魅, 사악한 주술)로 만들어진 특별한 고독으로 ‘음양고’라 불리오.”
“염매가 뭐요?”
척진경은 무인으로 술법에 무지했다.
염매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알 수 없었다.
“염매란 너무도 사악해서 술사들 사이에서도 금지된 주술을 의미하오. 음양고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고독 중에 가장 극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소.”
“그래 봐야 고독이 아니오?”
척진경이 다소 냉소적으로 되물었다.
고독이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독충이다.
물론 사람의 몸에는 해롭겠지만 먼지보다 작은 것으로 교주를 어떻게 제압한단 말인가?
공취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후후. 염매에는 영성(靈性)이 담겨 있소. 술사들이 비밀리에 염매를 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음양고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을 거요.”
“보통 고독과 다르다는 것이오?”
“특별한 주문이 새겨진 납관에 살아 있는 사람과 독충들을 천 일간 가두어 둔다고 하오. 독충들은 처음에는 사람을 먹지만, 그다음에는 독충들끼리 잡아먹소.”
“헐! 지독하군.”
“염매란 본래 그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외다. 여하튼 오직 사람의 영성이 깃든 고독만 천 일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소. 그 한 마리의 독충을 고독의 제왕인 인고(人蠱)라 하오. 인고에 당하면 설사 상대가 신선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소.”
“그게 음양고라는 말이오?”
“음양고는 더욱 특별하오. 인고를 만드는 자들이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게 음양고라는 것이오. 천 일 후에 아주 드물게 서로를 잡아먹지 않은 암수 한 쌍의 고독이 발견될 때가 있소. 암수에 영성이 깃들어 굶을지언정 서로를 잡아먹지 않은 게요. 그것을 음양고라 하오.”
“오호!”
처음으로 척진경이 관심을 보였다.
영성이 깃든 고독이니, 음양고니 하는 것은 설명만 들어도 그럴듯했다.
“음고(陰蠱)와 양고(陽蠱)인 그 두 마리 인고는, 어느 한쪽이 죽으면 따라 죽게 되어 있소. 고통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그 음양고 중에 하나를 교주에게 넣으면, 교주의 목숨줄은 우리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외다.”
“두 분에게 정말 그런 고독이 있다는 말이오?”
그러자 방천각과 공취산이 품에서 각각 하나의 은갑을 꺼내 보였다.
방천각이 자신의 은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가진 게 음고고, 적월께서 가진 게 양고외다. 이 음양고를 구하는 데 금 십만 냥이 들었소. 사실 천만금으로도 구하지 못하는 게 음양고요. 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거라고 하더이다.”
“그건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거요?”
“음양고를 차나 음식에 넣으면 되오. 인고는 일단 사람 몸에 들어가면 스스로 머릿속으로 옮겨 가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오. 마치 기생충처럼 말이오.”
잠자코 듣고 있던 공취산이 한마디 덧붙였다.
“양고든 음고든 기회가 되는 사람이 사용하기로 했소.”
“교주의 주의를 돌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방천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검마와 같은 분의 도움이 필요한 게요. 셋이서 교주의 주의를 흐트러트리다 보면, 누군가에게 적당한 기회가 오지 않겠소?”
“알겠소. 한번 해 봅시다.”
척진경은 흔쾌히 동참을 선언했다.
설사 고독이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손해 볼 게 없는 까닭이다.
중독 증상이 바로 나타나는 독이라면 모를까?
고독은 독처럼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살아남아 숙주의 몸에 기생하든지, 소화되어 죽어 버리든지 하니 말이다.
방천각과 공취산은 은갑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공취산이 말했다.
“이 일은 다른 백두마군들이 모르게 해야 하오. 누가 교주의 개인지 모르니까. 그러려면 우리가 풍지산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두 분 생각은 어떻소?”
거기까지 말을 맞춰 두었던 방천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을 것 같소. 교주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면 의심하지 않을 게요.”
“그럽시다.”
척진경도 동의했다.
다른 백두마군들이 있는 백마사보다 풍지산이 더 적합한 건 사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세 사람은 최측근들만 데리고 풍지산으로 떠났다.
***
정주.
칠리하촌.
천지맹 염탐조는 급하게 결성된 것과 달리 칠리하촌을 벗어나지 않았다.
십전무후 남궁연이 ‘길일(吉日)에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다.
천기를 헤아린다고 소문이 난 그녀의 말인지라 누구도 재촉하지 못했다.
사실 풍지산은 유명교 교주가 있는 ‘죽음의 산’인지라 길일을 앞세워도 할 말이 없었다.
남궁연이 모처럼 숙소에서 독서를 하고 있을 때다.
밖에서 경비 무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저, 안에 계십니까?”
“무슨 일이에요?”
“청산표국의 표두가 소저를 뵙고자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남궁연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청산표국은 정주에 있는 표국이지만 아직 거래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표두가 찾아왔다니?
표두 정도 되는 직책이면 물건 배달에 나서지 않는다.
‘표두가 직접 움직일 정도의 일이 뭘까?’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일단 만나 보기로 했다.
“들여보내세요.”
“예.”
경비 무사가 돌아가고 반 각(약 7 분)쯤 지났을까?
문밖에서 굵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십전무후 계십니까? 청산표국의 표두 대산도 일세진이라 합니다.”
남궁연은 즉시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사십 대로 보이는 낯선 도객이 섬돌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요?”
“한 달쯤 전에 십전무후께 보내는 편지를 맡아 둔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해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요즘은 표두가 직접 그런 심부름을 다니기도 하나요?”
“아닙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국주님께서 저를 택하신 것입니다.”
말과 함께 일세진이 품 안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서신을 들고도 선뜻 남궁연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남궁연은 그가 망설이자 더욱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서신이기에 저러는 걸까?
그녀의 시선이 그가 들고 있는 서신으로 향했다.
‘응? 밀납도 하지 않았네?’
그렇다는 건 이미 다른 사람이 보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건 청산표국의 국주인 충의검 위시청이리라.
그가 먼저 읽어 본 후에 표두를 시켜 자신에게 보낸 모양이다.
“마지막까지 전해도 될까 말까 고민할 정도의 내용이 실려 있는 모양이네요? 충의검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남의 서신을 보다니 의외네요.”
“헛! 그런 게 아닙니다. 워낙 기이한 상황이다 보니 사고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사고라고요?”
“예, 국주님께서는 혹시라도 십전무후께 피해가 갈까 봐 그리하셨던 겁니다.”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남궁연이 돌아섰다.
“들어오세요.”
“예, 예.”
일세진은 황송한 얼굴로 서탁 건너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손에 든 서신을 꽉 쥐고 있었다.
“의뢰인이 녹림이었나 보군요.”
관리나 칠파이문 사람들이었다면 밀납은 기본이다.
이 정도로 마무리가 어설픈 사람들은 사파나 녹림밖에 없다.
그들은 풀칠을 하면 아무도 못 볼 거라고 생각한다.
밀납조차 위조하는 세상에 말이다.
“그,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지나친 배려예요. 표정을 보니 당신도 읽었군요.”
“……예.”
“장수하려면 무림사의 비밀을 모르는 게 나아요. 서신의 내용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모든 걸 아는 듯한 남궁연의 말에 일세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십전무후는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일까?
저렇게 젊은데?
문득 그는 그녀의 명성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십전무후께서는 의뢰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한 달 전에 맡겼고, 당신들이 내용물을 확인했다면, 무영신투 백교겠군요. 의뢰인이 갑자기 죽어서 불안했겠죠? 궁금하기도 했을 테고.”
“…….”
일세진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허풍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허어! 점쟁이들처럼 모호한 말로 상대를 기만해서 얻은 명성이 아니구나.’
탄복한 그는 두 손으로 공손히 서탁 위에 서신을 올려놓았다.
“갑자기 백교가 사망하자 국주님께서 배송을 막으셨습니다. 그뒤 천지맹의 일들을 알아보시고, 십전무후께 전해 드리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허락 없이 내용물을 본 것은 백교가 독살당했기에 혹시나 싶어……. 아무튼 송구합니다.”
“백교는 운이 좋았군요. 충의검이 아니었다면 총사의 손으로 갔을지도 모르는데.”
일세진은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이제는 십전무후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백교를 독살한 것도 총사입니까? 장물 거래를 덮기 위해서?”
“알려고 하지 마세요. 백교가 죽기 전에 서신을 나에게 보냈다는 것도 비밀로 하시고요. 그만 가 보세요.”
단호한 축객령에 일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세진을 보낸 뒤에 남궁연은 풀로 봉해진 편지를 개봉해서 읽었다.
역시나 불안해진 백교는 자신이 처 한 상황을 글로 남겼다.
“쯧쯧!”
남궁연은 가볍게 혀를 찼다.
‘진즉 나에게 털어놓았다면 독살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한 걸 보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서탁 위 산가지[筮竹, 대나무 가지]가 든 통을 가볍게 흔들었다.
산가지를 늘어놓고 보니 여전히 천산둔(天山壓)의 괘다.
천산둔은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왜일까?
팔황신모가 풍지산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데, 하늘은 움직이지 말란다.
이제나저제나 탐문조가 움직이길 바라는 천지맹 고수들의 바람과 달리 말이다.
남궁연은 다시 산통을 흔들었다.
두 번째로 나온 것은 산풍고(山風蠱).
일찍이 주자는 ‘고(蠱)는 무너짐이 극에 달해 일[事]이 생긴 것이다.’라고 했다. 혹자는 ‘산밑에 머무르는 바람으로 부패하여 벌레가 생긴 것’이라고도 한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좋은 뜻이 아니다.
어쩌면 ‘산’과 ‘바람’과 ‘고’가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남궁연은 산가지를 다시 산통에 담았다.
그리고 곰곰이 뭔가를 떠올렸다.
얼굴에 살짝 홍조가 떠오른 걸 보니 엉뚱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이윽고 서탁 위에 조심조심 산가지가 놓였다.
택산함(澤山咸)이 나왔다.
아래의 간(良)괘는 젊은 남자고 위의 태(兌)괘는 젊은 여자를 뜻한다.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이라…….’
남궁연은 서둘러 산가지들을 주워 담은 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