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7
347회. 칠십이 개의 봉우리와 스물 여섯 개의 바위산
점심 식사 후.
연적하는 ‘하선고’의 관리자인 방무 도사를 찾아갔다.
새벽과 달리 그의 손에는 죽비 대신에 경전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제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오후에는 남암궁을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궁주님께서 남암궁에 갈 때는 꼭 도사님들에게 말해 두라고 하셔서요.”
남암궁이라는 말에 방무 도사가 눈을 찌푸렸다.
새벽에 일어나 꾸벅꾸벅 졸고, 오전의 강론 시간에는 코까지 골며 자던 사람이 남암궁이라니?
남암궁은 무당파 내에서도 고련의 장소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무당파의 기인들은 죄다 남암궁을 거쳐 간다는 말이 있을까.
“수련이 아니라 개인적인 용무인가?”
“예.”
“그렇다면 왜 가려는지는 묻지 않겠네. 행여나 조급한 마음에 남암궁에서 뭘 해 보려는 생각은 하지 말게. 경지가 낮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니까.”
“아닙니다. 약을 좀 구할까 해서요.”
말과 함께 연적하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켜 보였다.
“아!”
방무 도사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남암궁은 약사들의 이상향과도 같은 곳인지라 간혹 희귀한 약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두비라는 사람의 열꽃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짐작이 갔다.
‘쯧!’
조금 전까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측은했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돌아오도록 하게. 남암궁은 넓고 험한 곳이라 매일 조금씩 공을 들이는 게 나을 걸세. 사람 찾는 일에 욕심을 부리 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네. 무당산은 칠십이 개의 봉우리와 스물여섯 개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잊지 말게.”
“예, 알고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늦어도 잠들기 전까지는 돌아오게. 밤늦도록 침상이 비어 있으면 오룡궁의 도사들이 소협을 찾으러 남암궁으로 간다고 할 걸세.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해 주게.”
“예.”
연적하는 귀찮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룡궁 도사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방무 도사는 오룡궁에서 남암궁으로 가는 길을 소상하게 알려 주었다.
잠시 후 연적하는 방무 도사와 대화를 끝내고 오룡궁을 나섰다.
막 오룡궁의 경내를 벗어나던 연적하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전각 모퉁이에서 만황주가 한 여자 수련자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여 매, 꼭 해 줄 말이 있다니까.”
“여기서 말해요.”
“안 돼. 이건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이야기야.”
“뭔데 그래요? 또 시시한 이야기를 할 거면 그만둬요.”
여자, 여화조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결국 만황주에게 이끌려 갔다.
‘좋을 때다.’
연적하는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바쁘게 걸어갔다.
하지만 귓가로 남황주와 여자가 속삭이듯 하는 말이 크게 들려왔다.
공력이 뛰어나서 그렇게 된 거지 의도적으로 들으려 한 건 아니다.
“이번 문답식 시험관에 대한 거야. 어때? 이래도 시시하다고 할 거야?”
“누군데요?”
여자는 단번에 관심을 보였다.
‘쳇! 나에게는 은자 열 냥을 받더니 여자라고 그냥 알려 줄 모양이네.’
연적하는 씁쓰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남자라는 게 다 저렇다.
여자에게는 간도 쓸개도 내주지만 같은 남자에겐 국물도 없다.
“흥!”
연적하는 코웃음 치며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남암궁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반나절.
그 시간 안에 약사여래 백일운을 찾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연적하는 산 중턱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본래 방무 도사는 하산한 뒤에 다시 북쪽 봉우리를 목표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행자를 위해서 한 말일 뿐이다.
경신술이 뛰어난 그는 산 중턱 절벽에서 건너편으로 비조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맞은편 산에 도착하자 나무 위를 마치 평지처럼 내달렸다.
파파파팟-.
쉬지 않고 반 시진(1시간) 정도 가자 멀리 협곡의 입구가 드러났다.
협곡 초입의 거대한 바위에 ‘남암궁’이라는 세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여기를 반나절 안에 둘러보고 가야 한다는 거야?”
자신이 지름길을 이용했음에도 이런데, 가라는 대로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일 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연적하는 타박타박 남암궁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이 없다고 하더니 정말 사방 천지가 울창한 숲으로 막혀 있었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 위로 듬성듬성 수직으로 솟은 절벽이 보였다.
눈이 닿는 곳마다 그런 절벽을 품은 봉우리다.
‘이거 잘못하면 길을 잃겠는데?’
걱정이 된 연적하는 차분하게 오른쪽 첫 번째 절벽부터 오르기로 했다.
절벽을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적하는 마치 산양처럼 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올라갔지만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봉우리를 중간쯤 오르는 동안 세 개의 동굴을 발견했지만 깨끗했다.
그래도 희망은 꺾이지 않았다.
동굴은 자연적으로 뚫려 있었지만 내부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다시 절벽을 기어오르던 연적하의 눈이 번쩍였다.
머리 위로 네 번째 동굴이 보여서다.
시커먼 동굴의 입구를 발견하자 축 늘어져 있던 온몸에 다시 힘이 실렸다.
“영차!”
연적하는 요란한 기합 소리와 함께 상체를 위로 쭉 뽑아 올렸다.
마침내 동굴 입구에 올라선 그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아!”
어느덧 석양이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 백일운이 있든 없든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야 할 모양이다.
땀을 식힌 연적하는 동굴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동굴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걸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꼭 백일운이 아니더라도 약사를 만나고 싶었다.
이렇게 험한 남암궁에서 수련하는 약사라면 백일운 정도의 능력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다.
석실이 세 개나 됐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 곳곳에 거미줄투성이였다.
동굴 입구로 나온 연적하는 답답한 마음에 크게 소리 질렀다.
“약사여래 백일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마치 남암궁에 혼자 있는 것처럼 공허한 메아리만 울렸다.
“아무도 없나요?”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치사하네. 분명히 약사들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아무도 대답을 안 하지?’
모두 귀가 먹었든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는 것이리라.
투덜거리던 연적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절벽을 내려갔다.
겨우겨우 바닥에 도착한 그는 왔던 길을 돌아 나갔다.
스스로도 길눈이 어둡다는 것을 아는지라 짧은 거리임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에 하나 길을 잃으면 오룡궁의 도사들에게 폐를 끼치는 까닭이다.
‘남암궁’이라는 글자가 적힌 석벽에 도착해서야 연적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다행이……. 아니구나. 여기서 백일운을 언제 찾지? 아니 찾을 수나 있을까?”
지금은 남암궁 초입이라 길 찾기가 쉬웠다.
그러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입구로 되돌아 나오는 것도 어려울 터였다.
“아 몰라.”
연적하는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남쪽으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석양 무렵에 남암궁을 출발했음에도 저녁 식사 시간은 맞추지 못했다.
그는 방무 도사에게 돌아왔음을 알리고 ‘하선고’로 들어갔다.
호형호제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경전을 읽고 있던 이도주가 눈인사를 했다.
뒤이어 만황주와 천상동이 다가왔다.
만황주가 연적하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아까 식당에서 보이지 않던데 어디서 따로 먹고 온 건가? 내가 알기로 무당산에는 우리 같은 외인에게 음식을 줄 만한 곳이 없는데.”
“좋은 데 있으면 우리도 좀 소개해 주게.”
천상동은 연적하가 다른 곳에서 먹고 왔다고 확신했다.
수련자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또 배가 고파진다. 그러니 처음부터 연두비가 저녁 식사를 건너뛰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까지 빈속으로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없어요. 굶었어요.”
“아!”
“그렇군.”
남황주와 천상동은 그제야 시큰둥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남황주가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주역참동계’와 ‘남화진경’에 공을 들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예.”
아마도 일전에 만한 ‘청불노’라는 시험관이 그걸 좋아한다는 소리리라.
천상동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남 형, 여 소저와는 잘되고 있소?”
“잘되긴 무슨. 나와는 말도 섞으려고 하지 않는데. 그런데 천 형이 왜 그걸 묻소? 혹시 천 형도 관심 있소?”
“그럴 리가요. 그저 남 형과 잘돼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외다.”
연적하는 대충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물었다.
“여 소저가 누군가요?”
남황주보다 한발 빠르게 천상동이 답했다.
“여화조라고, 여자 수련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라네. 남 형이 요즘 공을 들이고 있으니 곁에도 가지 말게. 그랬다가는 남 형이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푸훗!”
천상동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말끝에 혼자 웃음을 흘렸다.
“여자 수련자가 많은가요?”
“많지는 않네. 일곱이나 될까? 숫자가 워낙 적어서 객당에 거하고 있지.”
“아.”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자 수련자가 백오십 명인 걸 생각하면 꽤나 적은 숫자였다.
남황주가 끼어들었다.
“하늘에 감사를 해야지. 여자 수련자가 많았으면 우리가 ‘하선고’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르네. 하선고가 여선(女仙)이라 여자들의 수련처로 내 줬을 테니까.”
“맞아, 맞아. 그랬을 게야.”
천상동의 음성이 살짝 높아졌다.
그러자 멀찍이서 경전을 읽고 있던 수련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거기, 좀 조용히 합시다. 계속 이야기를 할 거면 나가서 해 주시오.”
남황주와 천상동은 이번에는 나가지 않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연적하도 한쪽에 있는 서가로 가서 경전을 골랐다.
‘남화진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침 ‘주역참동계’가 눈에 들어왔다.
‘검왕 숙부님의 추천까지 받았는데 제대로 된 술법을 배워야지.’
문답식을 통과하지 못해 배우지 못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연적하는 ‘주역참동계’를 자리에 들고 와서 펼쳐 읽었다.
그러나 배가 너무 고픈 탓에 도무지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뭐라도 먹고 와야지 이대로는 못 버티겠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하선고’를 벗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식당은 물론 주방까지 뒤졌음에도 먹을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기는 더욱 심해졌다.
그는 굶주린 들개처럼 킁킁거리며 오룡궁 인근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오룡궁을 중심으로 무려 사방 십 리를 뒤졌지만 허사였다.
더 멀리는 길을 잃을까 봐 차마 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헤매던 연적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선고로 돌아가야 했다.
***
짝-.
어깨에 죽비가 떨어지자 연적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 장(약 3미터)여 길이의 죽비(竹篦)를 손에 든 방무 도사가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벌써부터 사방에서 독송(讀誦)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굶주림에 몸부림치던 연적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태평경을 펼쳤다.
꼬르륵- 꼬륵-.
본격적인 독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배 속에서 먼저 난리를 쳐 댔다.
마음 같아서는 태평경이라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