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8
348회. 공력과 법력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던 연적하도 칠 일쯤 되자 오룡궁 생활이 익숙해졌다.
죽비가 어깨를 때리지 않아도 새벽에 눈을 떴다.
여전히 내용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독송 시간에 꾸벅꾸벅 졸지도 않았다.
강론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제는 얌전히 듣고 있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던졌다.
오후에는 방무 도사에게 알리고 남암궁으로 달려갔다.
사람을 찾는 일에도 요령이 생겨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오룡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요즘의 연적하는 누가 봐도 완숙한 수련자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하선고’로 돌아가 ‘남화진경’을 집어 들었다.
그가 한창 경전을 읽고 있을 때 방무 도사가 찾아왔다.
“잠시 나와 보게.”
“예.”
연적하는 경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무 도사는 오룡궁 안쪽의 ‘유수각’에 연적하를 남겨 두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연적하가 멀뚱거리고 있을 때 전각 문이 열렸다.
“연 소협, 잠시 들어오시오.”
그는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천지상인이었다.
연적하가 자리에 앉자 천지상인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이거 괜히 문답식 준비로 바쁜 사람을 불러낸 건 아닌지 모르겠소.”
“괜찮아요.”
연적하가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고 홀짝거렸다.
오히려 진무궁 궁주인 천지상인과의 대화는 자신에게 유익했다.
그를 통해 도가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배울 수 있어서다.
“준비는 잘되고 있소?”
“그냥저냥요.”
연적하의 신통치 않은 대답에 오히려 천지상인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이제라도 오룡궁 궁주에게 연 소협이 누군지 알리는 것은 어떻소?”
그는 이번 일로 연적하와 무당파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랐다.
만에 하나라도 연적하가 문답식을 통과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낭패였다.
“괜찮아요.”
연적하는 손사래를 쳤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오룡궁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호기심 많은 수련자들 사이에 무슨 소문이 날지 모를 일이었다.
자고로 비밀이란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켜지기 쉽다.
하나 둘 알게 되면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괜히 날파리들이 꼬이면 안 되지.’
백일운을 찾았다면 모를까?
그를 언제 찾을지 기약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골치만 아파진다.
“문답식만 잘하면 되잖아요.”
연적하가 기대의 눈으로 천지상인을 보았다.
무당파에 와서야 진무궁의 존재감을 알았다. 진무궁은 상청궁 다음으로 큰 힘을 가진 도관이었다.
상청궁이 무당파를 대표한다면, 진무궁은 무당파 무학의 총본산.
그 정도 위치라면 문답식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었다.
하지만 천지상인은 그런 연적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하아! 옳은 말씀이오. 허나 오룡궁의 문답식은 쉬운 일이 아니오. 무당파 도사라 해도 오룡궁의 절기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면 아시겠소?”
“예? 무당파 도사도 어렵다고요?”
“상청궁과 진무궁, 태화궁에서 무공을 가르칠 때도 제자를 가려서 받소. 오룡궁과 남암궁 역시 마찬가지요. 특히나 오룡궁의 문답식은 극악, 아니, 난도(難度)가 높아서 도사들도 쉽게 통과하지 못하오. 물론 속가제자를 들일 때는 기준을 좀 낮추겠지만…….”
그래도 오룡궁의 문답식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오죽하면 제멋대로라고 뒤에서 수군댈까.
하지만 제자를 가려 받는 것은 다른 도관도 마찬가지인지라 뭐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문답식을 ‘청불노’라는 도사님이 주재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에 대해서 좀 아세요?”
“그가 ‘오룡칠사’로 불린다는 정도밖에…….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그 이상은 모르오.”
최근에야 술법이 관심을 끌지 유명교가 나오기 전까지 술법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그래서 천지상인이나 영결상인 같은 고수들은 오룡칠사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쉽군요.”
연적하는 입맛이 썼다.
천지상인을 통해 청불노에 대한 정보를 얻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틀린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도(道)의 본질은 다르지 않소.”
“예?”
연적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천지상인이 웃으며 말했다.
“문답식은 결국 도에 관한 질문이 아니겠소? 술법의 바탕이 ‘도’라면, 무당파 무공의 바탕도 ‘도’요. 한 뿌리에서 뻗어 나간 가지란 말이외다.”
“아.”
“연 소협은 도가 기공으로 상승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문답식도 어렵지 않을 게요.”
“정말요?”
“나와 장문인도 소협의 몸에 깃든 선기(仙氣)를 알아봤소. 아마 오룡칠사들도 머지않아 그걸 알게 될 게요. 다만 중독의 후유증 때문에 선기가 좀 흐려졌다는 게 문제인데…….”
천지상인이 말끝을 흐렸다.
독성에 의해 얼굴이 엉망이 됐듯 신체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이전에는 선기가 줄줄 흘러넘치던 사람이 지금은 유심히 들여다봐야 겨우 알아볼 정도다.
‘선기의 잔재만 남은 지금 오룡칠사 눈에 들지 의문이로군.’
지금 연적하의 선기는 조금 특이한 정도였다.
대체 ‘낙월독정’이 무엇이기에 천하의 연적하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천하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다더니 놀라울 뿐이다.
“문답식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요?”
연적하는 선기가 아닌 문답식에 관심을 두었다.
어차피 실체도 알 수 없는 선기보다는 문답식이 더 피부에 와 닿아서다.
“그렇소. 소협이 터득한 공력은 도가(道家)의 것이오. 그러니 소협은 이미 득도한 도사나 다름이 없다는 게 빈도의 생각이오.”
“제가 득도를 했다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검공을 펼칠 수 있었겠소? 신공에 대한 믿음이 곧 ‘도’요. 소협은 부지불식간에 ‘도’를 터득한 것이외다.”
“그런데 왜 술법을 못 하죠?”
“온전히 전해받지 못했으니 그런 것이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는 법,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술법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게요.”
역시나 천지상인의 말도 믿음으로 귀결된다.
무당파가 도교에 뿌리를 둬서 그런지 잘 나가다가도 결국 믿음의 문제란다.
“어떤 믿음요?”
그동안 경전도 읽고 강론도 들었지만 정작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연 소협은 구천현녀에게 무공을 배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죠.”
“구천현녀는 도교의 신선 중에 한 분이시오. 바로 그런 분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게 도교외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내가 묻고 싶소. 연 소협이 그렇게 말할 때 다른 이들이 믿더이까?”
“미친 사람 취급하던데요?”
“바로 그것이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요. 연 소협은 모르겠지만 이미 믿음이 있소.”
“다른 건 모르겠지만 구천현녀에 대해서는 맞는 것 같아요.”
“허허, 신선들이 사는 세계가 있다고 치십시다. 그곳에 구천현녀가 홀로 계시겠소?”
“다른 신선들도 많이 있겠죠?”
연적하가 그걸 왜 묻느냐는 눈으로 천지상인을 보았다.
구천현녀가 존재한다면 다른 신선도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 그것이 우리 도사들의 믿음이오. 신선들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그 세계로 우리도 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전부외다. 쉽지 않소?”
“그럼, 벌레가 쇠똥을 굴리면 ‘신(神)’이 생긴다는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연적하는 잠결에 들었던 말들 중 이상했던 것 하나를 끄집어냈다.
천지상인이 웃으며 설명했다.
“여조께서 쇠똥구리라는 곤충이 쇠똥을 굴리면 그 알맹이 가운데에서 흰빛이 생겨난다고 했소. 그것은 쇠똥구리의 ‘신’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이오. 그걸 두고 ‘신공(神功)’ 이라 말하는 게요.”
“곤충이 ‘신공’을 쌓는다는 건가요?”
“그렇소. 그처럼 곤충도 ‘신’을 쏟아부으면 신공이 생기오. 사람이 ‘신’을 쏟아도 역시 ‘신공’이 생기지 않겠소? 아마도 그 말씀을 하신 것 같소.”
“그 ‘신공’이 ‘공력’인가요?”
“‘공력’일 수도 있고 ‘법력’일 수도 있소. 오룡궁에서 강론했다면 필시 ‘법력’에 관한 것일 게요.”
“‘공력’과 ‘법력’이 달라요?”
“본질은 같지만 드러나는 결과가 다르다고 할 수 있소. ‘공력’은 외력(外力)으로 이어지지만, ‘법력’은 믿음의 대상을 구체화하니까.”
“공력과 법력이 같을 수도 있나요?”
“신선이라면 가능할 게요. 애당초 신선은 ‘법력’과 ‘공력’의 구별이 없으니까. 인간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공력’과 ‘법력’으로 갈라졌소. 예컨대 우리 진무궁에서는 호흡법으로 ‘내공’을 쌓지만, 오룡궁은 그것으로 ‘법력’을 쌓아 간다오.”
“하지만 전에 천명 도사님은 ‘법력’은 곧 믿음의 크기라고 했는데요?”
“맞는 말이오. 무인이나 술사나 모두가 믿음의 기반 위에 나아가는 사람들이라오. 믿음이 없이는 좁쌀 한 톨만큼의 공력도 쌓을 수 없소.”
“헐! 공력도 믿음으로 쌓아요?”
“그렇소. 공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오. 그 실체를 보지 않고 믿어야 연공이 가능하다오. 법력 또한 마찬가지. 같은 이슬을 마시되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들지 않소? 무인과 술사의 믿음도 그러하오.”
“아하! 무인은 공력을, 술사는 법력을 쌓는다는 게 그런 뜻이었군요?”
“그렇소. 그래서 소협에게 큰 믿음이 있다고 한 것이오. 소협은 구천현녀의 존재를 믿지 않소?”
“봤으니 믿죠.”
“그 믿음으로 정진하면 술법도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 있을 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연적하는 밤늦도록 무공과 술법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들을 배웠다.
대화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천지상인과 작별한 연적하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선고’에 돌아왔다.
수련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가서 ‘남화진경’을 펼쳐 읽었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었다. 그 이름은 곤(銀)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 새가 되었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언젠가 천지상인에게 들었던 ‘곤화위붕(銀化爲鵬)’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경험한 일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이어 가는데 누군가 슬며시 다가왔다.
동향 출신임을 내세우는 만황주였다.
“소형제, 방무 도사와 무슨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한 건가?”
“방무 도사님과는 별 얘기 안 했는데요? 그냥 오룡궁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온 거예요.”
“무슨, 나와 천 형제가 자네를 찾으려고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좋은 정보가 있으면 같이 좀 알자고.”
만황주는 연두비가 방무 도사를 구워삶아서 문답식의 정보를 캐냈다고 믿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방무 도사 같은 사람이 연두비와 밤늦도록 함께 있는단 말인가!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오후만 되면 사람 찾으러 다니는 거 알잖아요. 밖으로 돌아다닌 거예요.”
연적하는 시치미를 뗐다.
자신이 천지상인과 만났다는 걸 알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해서다.
하지만 만황주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소형제, 우리는 자네에게 시험관이 누구인지까지 알려 줬다고. 소형제도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우리에게 살짝 귀띔해 줘. 함께 돕고 살아야지.”
“그걸 아는 대가로 누구와는 다르게 난 은자를 열 냥이나 냈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며칠 전에 만 노형이 여 소저에게 하는 말을 들었어요. 싫다는 데도 공짜로 알려 주셨잖아요.”
“그래서? 지금 나에게 돈이라도 내라는 건가?”
만황주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어디 하나 비빌 데 없는 놈을 거두어 주었더니 은혜도 모르고 기어 오른다.
“누가 돈을 내래요? 방무 도사와 아무 얘기도 안 했다고요.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믿어요?”
연적하는 은근 짜증이 났다.
남의 것을 훔치는 녹림의 도둑놈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지금 만황주가 딱 그 짝이었다. 돈으로 정보를 샀다더니, 자신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