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9
349회. 얼마면 되겠나?
연적하가 신경질을 냈지만 만황주는 한술 더 떴다.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방무 도사와 나간 사람이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왔어. 문답식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둘 사이에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좋은 건 함께 나누자는 거지.”
“좋은 것도 없지만, 설사 그런 게 있다고 쳐도 왜 내가 그쪽과 나눠야 하는데요? 사람 이름 하나 알려 주는 대가로 열 냥이나 받아가 놓고서.”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돈을 내라는 말인가?”
대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입만 열면 돈 타령이다.
끝내 짜증이 치밀어 오른 연적하가 낮게 으르릉거렸다.
“이봐요. 아저씨. 좋은 말로 할 때 가. 나 지금 열심히 경전 읽고 있는 거 안 보여? 방무 도사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고, 당신에게 알려 줄 것도 없어. 그러니까 꺼지라고.”
연적하가 살짝 살기를 내뿜자 만황주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만만한 상대로 여겼는데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니 당황한 것이다.
“자네, 동향의 선배에게 막말을 하는군. 내가 이대로 넘어가리라고 생각하지 말게.”
“어떻게 할 건데?”
“이자가 끝까지.”
만황주는 이를 갈았지만 연두비의 기세에 눌려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더 할 말 없으면 가셔. 나 바쁜 사람이야.”
조롱 섞인 축객령에 만황주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만황주가 사라지자 연적하는 다시 ‘남화진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어울려 주면 왜들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지 몰라. 내가 그렇게 호구처럼 생겼나?”
그런 생각을 하자 ‘괜히 만황주를 곱게 보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아니야. 참아야지. 동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야 몇 대 패도 그만이지만 동문은 다르다.
앞으로 두고두고 얼굴을 봐야 하는데 그건 서로에게 거북한 일이었다.
더구나 녹림 태상호법 연적하가 무당파에서 수련자와 주먹질이라니?
무당파 장문인이나 천지상인이 알면 낯 뜨거워질 일이다.
***
그런데 정작 골치 아픈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호광성 골모산(圣母山)의 백화궁에서 여제자 열 명을 수련자로 보낸 것이다.
기존의 여성 수련자 일곱과 백화궁의 여제자를 포함하면 무려 열일곱.
오룡궁의 수련자 거처에 대대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오룡궁 궁주인 천명 도사는 ‘하선고’에 있던 열다섯 명의 남자 수련자들을 ‘남채화’, ‘이철괴’, ‘한상자’, ‘장과로’, ‘조국구’로 분산시켰다.
그리고 하선고를 여자 수련자들로만 채웠다.
연적하는 졸지에 ‘남채화’로 숙소를 옮겨야 했다.
그런데 무슨 질긴 악연인지 만황주, 천상동도 ‘남채화’로 배정을 받았다.
‘남채화’의 분위기는 싸했다.
연적하와 만황주, 천상동이 왔음에도 다른 수련자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친분이 다져진 ‘남채화’의 수련자들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대놓고 무시했다.
연적하는 어차피 ‘하선고’에서도 그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만황주와 천상동은 달랐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그런 와중에 ‘남채화’의 수련자들에게 기묘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아침 식사 후.
강론에 참석하기 위해 ‘남채화’를 나서는 연적하에게 삼십 대 사내가 슬며시 다가갔다.
“소형제.”
“예?”
“잠시 시간 좀 되겠나?”
“왜요?”
남자가 연적하의 옷깃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연적하는 영문도 모른 채 서두르는 그를 따라 전각 뒤로 돌아갔다.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나는 호광성에서 온 이초량이라 하네.”
“아, 저는…….”
“알고 있네. 개봉에서 온 연두비라고?”
“예.”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초량이 비굴한 얼굴로 하소연하듯 말했다.
“초면에 이런 말을 해서 그렇지만 나를 좀 도와주게.”
“도와 달라고요?”
“나는 이번 문답식을 꼭 통과해야 하네. 벌써 여섯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거든.”
“저어, 지금 제 코도 석 자인데 뭘 도와 달라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연적하가 의아한 눈으로 이초량을 보았다.
자신처럼 도가(道家)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자네가 오룡궁 도사들에게 정보를 얻고 있다는 건 알고 있네.”
“제가요?”
“‘남채화’에 소문이 다 났는데 아니라고 할 셈인가?”
“전혀 아닌데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가요?”
연적하는 되물으면서도 조마조마했다.
행여나 이틀 전 천지상인과의 만남을 누가 알아냈나 싶어서다.
“아니긴. 자네가 돈을 써서 시험관의 이름까지 알아냈다면서? 아닌가?”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이초량을 보았다.
자신이 열 냥으로 청불노의 이름을 알아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느낌상 그걸 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누가 그러던가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네. 이번 달 문답식의 시험관이 누군지 아나? 모르나?”
“알아요.”
순간 굳어 있던 이초량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네. 나에게도 좀 알려 주게. 나는 더 이상 ‘남채화’에서 버틸 돈이 없다네.”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채화’에서 버틸 돈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남채화에서 지내려면 돈을 내야 하나요?”
“몰랐나? 팔선각에서 지내려면 매 달 오룡궁에 기부금을 내야 한다네. 설마 오룡궁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줄 거라 생각했나?”
“…….”
연적하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초량을 보았다.
자신은 검왕 숙부의 추천으로 와서 그런 내밀한 것까지는 모른다.
그저 가서 배우라니 찾아왔을 뿐이다.
무당파 장문인이나 천명 도사도 기부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매달 기부금을 내며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이초량은 두 손까지 모으고 애원했다.
“이렇게 부탁함세. 사정 좀 봐주게. 고향에 내가 술법을 배우고 돌아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노모와 안식구가 있다네.”
“사정은 알겠는데 저도 공짜로 알아낸 것이 아니라서요.”
연적하가 굳은 눈으로 이초량을 응시했다.
자신도 열 냥이나 주고 산 이름이라 그냥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어, 얼마면 되겠나?”
“아니, 그 전에, 여섯 달이면 오룡칠사를 거의 대부분 만나 보셨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랬지. 청불노를 빼고 한 번씩 다 거쳐 봤네.”
‘쯧쯧! 이런 운 없는 사람.’
그 청불노가 이번 달 문답식의 시험관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암울할까.
“그럼 대충 질문을 알 수 있지 않나요?”
“나는 대충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원한다네. 시험관이 누구인지 알면 그분들이 원하는 답을 줄 수 있겠지. 제발, 나를 좀 도와주게.”
이초량의 계속된 애원에도 연적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도적들 사이에서 지내온 그에게 씨도 안 먹힐 소리였다.
“저도 도와주고 싶은데, 형님도 아시다시피 기부금을 마련해야 해서요.”
물론 기부금은 거짓말이다.
낼 생각도 없지만,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게다.
연적하는 자신이 지불한 열 냥을 조금이라도 복구하고 싶었다.
“끙! 얼마면 되겠나?”
“다섯 냥요.”
사정이 딱해서 반값에 넘기기로 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참 갈등하던 이초량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초량을 시작으로 그날만 세 사람이 더 연적하를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이 도사들에게 돈을 써서 정보를 얻어 낸다고 믿는 분위기였다.
연적하는 만황주와 천상동의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손해될 일이 없는지라 모른 척했다.
그렇게 그는 하루 만에 네 명에게 스무 냥을 벌어들였다.
그날 저녁.
불로소득에 연적하가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만황주와 천상동이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왜요?”
연적하가 삐딱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볼 때마다 뭐라도 뜯어 가려는 사람들인지라 이젠 눈만 마주쳐도 짜증이 났다.
만황주도 마찬가지인지 대화는 생략하고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내놔. 설마 혼자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뭘요?”
“네 사람에게 팔아먹었잖아. 절반만 내놔. 그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 주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뭘 팔았고, 뭘 보내 준다는 거예요?”
이번에는 천상동이 불쑥 끼어들었다.
“소형제, 우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시치미를 뗄 셈인가? 청불노의 이름을 팔아서 스무 냥이나 벌었으면 나누란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네. 돈을 벌고 싶으면 나를 내세우지 말고 당신들이 직접 해요. 내가 언제 부탁했다고 보내 줬네 마네 하는 거예요?”
“흥! 네가 그렇게 나오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두고 보면 알겠지. 갑시다! 만 형.”
천상동가 돌아서자 머뭇거리던 만황주도 그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하여간에 어디든 저런 사람들이 있다니까. 여기는 좀 깨끗할 줄 알았더니만.”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연적하는 ‘남채화’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세 명이 더 연적하를 찾아왔다.
하지만 만황주와 천상동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들 이후로 날파리처럼 달라붙는 사람은 없었다.
이틀 동안 연적하는 일곱 명에게 ‘청불노’의 이름을 팔아 서른다섯 냥을 벌어들였다.
***
문답식 하루 전.
오룡궁.
금정각.
정오 무렵.
오룡궁 궁주의 집무실로 쓰이는 금정각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허어! 이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아무리 속인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찌 이런. 쯧쯧!”
혀를 차던 천명 도사가 탁자 위로 서찰을 내려놓았다.
누가 썼는지 적혀 있지 않은 투서였다.
‘남채화’의 연두비가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부도덕한 장사를 하고 있다나?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내리치던 천명 도사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느냐?”
“예, 궁주님. 고월입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가서 ‘하선고’의 방무 도사와 ‘남채화’의 유운 도사를 불러 오거라.”
“예.”
대답과 함께 마당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무 도사와 유운 도사가 금정각으로 들어왔다.
연장자인 유운 도사가 대표로 물었다.
“찾으셨습니까?”
천명 도사는 대답 대신 조금 전에 받아 본 투서를 두 사람 앞으로 내밀었다.
말없이 눈으로 투서를 읽던 유운 도사와 방무 도사가 눈을 찌푸렸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봤나? 연두비라는 수련자가 내일 있을 문답식의 시험관이 누군지 알아낸 뒤, ‘남채화’의 수련자들에게 그 정보를 팔았다는구먼. 무려 다섯 냥씩 받고 말이야.”
“…….”
유운 도사는 책임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 유운 도사를 지그시 보던 천명 도사가 말을 이었다.
“시험관의 이름을 알아 두는 게 헛된 일이라 해도, 그것으로 거래를 해서는 안 될 일. 방무 도사를 부른 것은 연두비라는 자에 대해 듣고 싶어서네. 유운 도사보다는 오래 지켜보았을 테니까. 방무 도사, 자네가 보기에 그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냐고 하심은?”
“성정이 어떤 것 같으냐는 말일세.”
천명 도사는 오룡궁의 제자를 받아들이는 일인지라 인성을 먼저 확인하려 했다.
“얼굴은 흉측하나 독송과 강론에 열심이었고, 사람을 찾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런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사특한 자로 보이지는 않았다는 말인가?”
“사람의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문제를 일으킬 사람으로 보이지 않않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저는 더 충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