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50
350회. 두 번, 세 번 맹세합니다.
방무 도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얼굴이었다.
처음에는 흉측한 몰골에 거리낌도 있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흡족해 했다.
그런 사람이 뒤에서 동문이 될 사람들에게 시험관 이름이나 팔아먹고 있었다니!
오룡궁 궁주 천명 도사가 이번에는 ‘남채화’의 담당자인 유운 도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운 도사의 눈에는 연두비가 어떻던가?”
“솔직히 말씀드려 얼굴을 제외하면 눈에 띄지 않는 사람입니다. 독송이나 강론에서도 평범한 수준이지죠. 무리를 해서라도 안고 갈 정도의 수재는 아닙니다.”
유운 도사는 은근히 연두비를 쫓아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천명 도사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유운 도사를 바라보았다.
무려 검왕의 추천을 받고 온 사람이 그렇게나 평범해 보이다니?
“평범하다 이건가?”
“굳이 눈에 띄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오후에 남암궁으로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 정도입니다. 솔직히 어떨 때는 ‘사람을 찾기 위해 오룡궁에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입니다.”
천명 도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흠! 검왕의 눈에 들 정도면 무공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자처하여 힘든 수련자 생활을 한다는 게 이상하다.
무인이라면 그럴 시간에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역시, 사람을 찾으러 왔나?’
무당산에 은거한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당산에는 무려 칠십이 개의 봉우리와 스물여섯 개의 바위산이 있다.
확실히 장기간 사람을 찾으려면 오룡궁 같은 곳에 머무는 게 낫다. 무당산처럼 깊은 산속에서는 숙식이 가장 문제인 까닭이다.
사람 찾는 게 우선이고 술법이 후순위라면, 조금 씁쓸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알겠네. 오늘 일은 두 사람만 알고 있게. 연두비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예.”
방무 도사와 유운 도사는 이구동성으로 답한 뒤 물러갔다.
홀로 고민하던 천명 도사는 다시 고월에게 연두비를 데리고 오라 명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연적하가 천명 도사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문답식을 하루 앞두고 왜 자신만 콕 찍어 따로 보자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문답식에 도움을 주려는 건가?’
어쩌면 검왕 숙부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 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거면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들여야지.’
연적하가 단꿈에 부풀어 있을 때다.
천명 도사가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연 소협. 우리 무당파에서는 연 소협에게 아무것도 청구하지 않았는데, 돈이 필요했나?”
“…….”
일순 연적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그렇게 돈이 필요했느냐고 물었네.”
“아뇨?”
“그런데 왜 동문이 될지도 모를 ‘남채화’의 수련자들에게 그런 짓을 했나?”
“그, 그런 짓이라니요?”
속으로 뜨끔 했지만 연적하는 일단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천명 도사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사람이 아니었다.
“왜 ‘남채화’의 수련자들에게 문답식 시험관의 이름을 팔아먹었느냐는 말일세.”
“아, 그건 오해이십니다.”
“오해?”
“제가 우연한 기회에 시험관의 이름을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수련자들이 찾아와 자꾸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허! 그 말투 좀 고치라니까.”
“아, 예. 하여튼 자꾸 사람들이 거머리처럼 달라붙길래 그럼 돈을 내라고 했어요, 아니,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 알려진 모양이네요. 절대로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선친(先親)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연적하는 본래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거론하자 천명 도사는 연두비의 말을 믿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불편함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알겠네. 믿어 주도록 하지. 그런데 누가 자네에게 시험관의 이름을 알려 주었는가?”
천명 도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연두비를 바라보았다.
오룡궁에 온 지 보름 남짓 되는 사람이 시험관 이름을 알아낸 것도 문제였다.
‘도사들 중에 누군가가 그걸 흘렸을 테지.’
연두비 같은 외인이야 스쳐 지나가면 그뿐이니 중요치 않다. 하지만 오룡궁의 비밀을 유출한 도사가 누군지는 꼭 알아야 했다.
“그건, 그건…….”
연적하는 천명 도사의 질문에 크게 당황했다.
여기서 돈 주고 그 이름을 샀다는 게 밝혀지면 자신의 꼴이 우습게 되고 만다.
검왕 숙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될 말이다.
“우연히 오룡궁을 헤매다가 오룡칠사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사실인가?”
“예.”
“그것도 선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나?”
“예! 두 번, 세 번 맹세합니다.”
천명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이 설마하니 선친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을 할까 싶어서다.
‘다행이로군. 무당파 도사들 가운데 유출자가 없다니.’
모든 게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하니 다소 허망하기까지 하다.
“본래 자네의 행동은 퇴출을 당해도 마땅한 것일세. 허나 그 행동에 이윤을 얻으려는 마음이 없고, 시험관의 이름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므로 덮어 두겠네.”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음에 이와 같은 사달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네. 그때는 자네가 검왕이 아니라 옥황상제의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오룡궁에서 나가 줘야 할 걸세. 무슨 뜻인지 알겠나?”
한마디로 쫓아낼 거라는 소리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 연적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금정각’을 나와 ‘남채화’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궁주님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때 문득 자신을 향해 이를 빡빡 갈던 천상동의 얼굴이 떠올랐다.
-흥! 네가 그렇게 나오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두고 보면 알겠지. 갑시다! 만 형.
자신이 돈을 나누지 않았다고 천상동과 만황주가 고발한 모양이다.
연적하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이것들이 감히 내 앞길에 똥물을 뿌려?’
씩씩거리던 연적하는 홧김에 맨땅을 발로 퍽퍽 걷어찼다.
연적하가 팔선각으로 접어들었을 때다.
어딘가에서 만황주가 쪼르르 달려와 말을 걸었다.
“소형제.”
“왜요?”
“고월 도사가 자네를 데리고 가는 걸 보았는데, 무슨 일인가?”
“흥! 알면서 왜 물어요?”
“내가 안다고?”
“몰라서 물어요?”
“뭘?”
연적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기막힌 눈으로 만황주를 쏘아보았다.
“와! 이 아저씨 정말 얼굴 두껍네. 내가 번 돈을 나누지 않았다고 뒤에서 고발하고는 시치미를 떼? 그런다고 내가 모를 줄 알고? 이걸 확!”
연적하가 주먹을 치켜들자 깜짝 놀란 만황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고발을 하다니? 그랬다가는 우리도 얽혀 들어갈 터인데. 아무리 화가 난대도 그렇지, 우리가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집어 넣었겠는가? 자네와 우리는 운명 공동체인데.”
만황주의 장황한 설명에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검왕 숙부의 체면 때문에 그들과의 돈거래를 밝히지 않았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들의 이름이 나왔을 것이다. 혼자 당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정말 궁주님께서 자네가 돈 받고 시험관 이름 판 것을 알고 계시던가?”
어느 정도 화가 풀어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만황주가 뜨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걸 어떻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뭐 좋은 일이라고 소리를 질러요? 남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뒤늦게 만황주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뚫어져라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그 간절한 눈빛에 연적하가 적선하듯 말했다.
“다 오해다. 이제 그럴 일 없다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을 거래요.”
“오해라는 말을 믿었다고?”
“예,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맹세를 했더니 믿어 주시더라고요.”
“…….”
만황주가 황망한 눈으로 연두비를 보았다.
거짓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선친의 이름을 들먹이는 그를 보니 기가 질렸다.
겉모습만 보고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사악하기가 보통이 아니다.
“나와 천 형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걸 보니 ‘남채화’의 수련자가 고발한 모양이군.”
연적하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만황주를 보았다.
아니라고 하니 넘어가 주는데 그들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연적하의 의혹 어린 시선에 만황주는 거듭 부인했다.
“진짜 우리가 아닐세. 생각해 보게. 우리도 위험해질 일을 왜 벌인단 말인가?”
“그야 모르죠. 눈이 확 돌아가서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으로 했을지도.”
“이보게. 우린, 아무리 눈이 돌아가도 우리까지 죽을 자리로 가지는 않네.”
만황주는 점점 연두비가 부담스러워졌다.
말하는 걸 보니 눈이 돌아가면 너 죽고 나 죽자고 할 놈이었다.
“아 됐고. 지금까지의 일은 잘 덮었으니까 그런 줄 아쇼. 앞으로는 보지 맙시다.”
매몰차게 말한 연적하는 터덜터덜 ‘남채화’를 향해 걸어갔다.
만황주는 더 이상 잡지 않고 망부석처럼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만 보았다.
그런 만황주의 뒤로 천상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불려 갔답니까?”
“아, 궁주님이 그가 시험관 이름을 매매한 걸 알고 불렀다 하더이다.”
“헐! 그래서요?”
“임기응변으로 넘겼다는구려. 아무래도 ‘남채화’의 누군가가 찌른 모양이오.”
“궁주님이 저런 놈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갔다는 거요? 그 깐깐한 도사님이? 아니, 아니, 애초에 그런 큰일을 말로 때워 넘길 수가 있소?”
천상동이 황당한 눈으로 만황주를 보았다.
수련자들에게 시험관 이름을 판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 자체만으로 쫓겨날 일이었다.
“흐음! 천 형의 말을 들으니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한데……. 보다시피 아무 일 없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소? 이젠 나도 잘 모르겠소.”
만황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에게 막 대하는 연두비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전에 방무 도사에게 따로 불려 간 것도 그렇고. 연두비란 놈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지 않소?”
골똘히 생각하느라 천상동의 눈매가 좁아졌다.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천 형, 뒷배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떻소? 나는 저 연가와 상종하고 싶지도 않소.”
“이대로 저놈 좋은 일만 하고 끝내자는 거요?”
“괜히 저놈 물을 먹이려다가 우리도 다칠 수 있으니 하는 말이오. 가까이서 저놈 눈깔을 본 적이 있소? 절대 혼자 당할 놈이 아니오.”
그 말에는 천상동도 동감이었다.
왠지 찌질해 보여서 가까이했지만 연두비는 쉬운 놈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틀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원수가 된 건 놈이 자신들에게 수그리고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놈의 뒷배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렇게 개무시를 당하고 끝낼 수는 없소. 지켜보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게요. 그때 빼도 박도 못 하게 엎어 버립시다.”
천상동은 기르던 개에게 물린 기분인지라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기회건 나발이건 문답식이나 준비하십시다. 그깟 놈 하나 망신 준다고 속가제자가 되는 건 아니지 않소?”
만황주는 문답식으로 화제를 돌렸다.
당장 내일이 문답식인데 또 떨어지면 기부금을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