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346
346회.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사시 초(오전 9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산책하던 연적하의 귓가에 종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도사와 수련자 들이 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호기심으로 슬슬 따라가 보니 오룡궁이 나왔다.
‘아! 강론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구나.’
문답식을 통과하려면 강론은 필수다.
연적하는 조용히 사람들 속에 섞여 오룡궁으로 들어갔다.
넓은 실내는 여덟 개 전각에 흩어져 있던 남녀 수련자들과 오룡궁 도사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잠시 후 초로의 도사 한 사람이 강단으로 올라갔다.
“여조(呂祖, 여동빈)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날부터 선인(仙人)이나 진인(眞人)이 입에서 입으로 서로 가르쳐 전하였다고 했소. 오늘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도우들께 여조의 가르침을 전하려 하오…….”
노도사, 고죽은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곧바로 ‘태을금화종지’의 강론에 들어갔다.
“여조는 ‘하늘과 땅은 사람을 하루 살이같이 보고, 큰 진리는 하늘과 땅도 물거품같이 본다. 오직 생명 활동을 주재(主宰)하는 으뜸 된 신[元神]만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참된 본성[眞性]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그 위에 있다’고 했소. 이 원신이야말로 우리의 본모습이니 부지런히 갈고닦아…….”
고죽은 근 반 시진(1시간)을 쉬지 않고 강론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듣고 있던 연적하는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음양이 어쩌고, 정이 어쩌고, 신이 어쩌고, 무극이 어쩌고 하는데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다.
창고에서 나온 뒤 제멋대로 생활해 온 연적하에게 강론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강론이 빨리 끝나기만 바랐다.
“……쇠똥구리라는 곤충이 쇠똥을 동글동글 굴리면 그 알맹이 가운데에서 흰빛이 생겨난다. 그것은 쇠똥구리의 신(神)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것으로, 신공(神功)이라 할 수 있다. 한낱 곤충도 이러할진대 사람이 신(神)을 쏟아부으면 어찌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강론하던 고죽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려서다.
“드르렁…….”
이건 분명 코 고는 소리다.
‘이런 미친, 오룡궁의 강론 시간에 코를 골며 자?’
지금까지 오룡궁 역사에 이렇게까지 얼빠진 수도자는 없었다.
고죽이 검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지점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얼굴이 부스럼으로 뒤덮인 수련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연적하 옆에 앉아 있던 도사 하나가 뒤늦게 팔꿈치로 연적하를 쿡 찔렀다.
“쓰읍.”
누가 건드리자 연적하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눈을 떴다.
‘강론이 끝난 건가?’
별생각 없이 눈을 비비던 연적하는 싸한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
‘헉!’
오룡궁의 도사들이 사나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명상에서 깬 것처럼 해야 한다.
연적하는 큰 고민을 떠안은 사람처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뻔뻔한 모습이 오히려 올곧은 고죽의 신경을 건드렸다.
‘요란하게 퍼질러 잔 놈이 시치미를 떼겠다고?’
“그대는 누군가?”
“저요?”
연적하의 반문에 고죽은 기분이 상했지만 꾹 참았다.
“그래, 자네. 자네는 누군가?”
“연두비라고 합니다.”
“의복을 보니 수련자인 것 같은데 맞나?”
“예, 하선고에 있습니다.”
‘하선고’라는 말에 고죽의 표정이 풀어졌다.
‘하선고’의 속인들은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초보들인 까닭이다.
“그래, 하선고의 연두비.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는 알고 있겠지?”
“강론?”
“잘 알고 있구먼. 오룡궁의 강론은 천하의 도사들이 흠모하는 귀한 자리라네. 아직은 어려워서 잘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꾸준히 듣다 보면 귀가 열릴 걸세.”
“예.”
연적하는 공손히 대답했다.
자신이 잠깐 졸은 걸 문제 삼지 않으려는 것 같아 고마웠다.
한차례 주목을 받으니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때부터 연적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노도사의 강론에 집중했다.
강론은 정오가 되어서야 끝났다.
오룡궁에 모여 있던 수련자들과 도사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 연적하에게 이도주가 다가갔다.
“연 소협.”
“예?”
“하선고의 수련자들을 망신시키지 마시오.”
“…….”
갑작스러운 그의 지적에 연적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닌지라 반박하기는 뭐 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하선고 수련자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요.”
그건 분명한 경고였다.
순간 연적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선고의 수도자들은 자신과 통성명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만황주와 천상동의 말처럼 서로를 얼치기나 뜨내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의 명예라니?
개가 웃을 소리다.
“이 형.”
연적하가 삼십 대 중반의 이도주를 불렀다.
막 돌아서 가려던 이도주가 날 서린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 보았다.
나이도 어린놈이 자신을 ‘이 형’이라 부르니 화가 난 것이다.
“나는 네 형이 아니니 그렇게 부르지 마라.”
이도주가 내력을 끌어 올리자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하선고’ 최고수라고 하더니 과연 주변 기온이 뚝 떨어지며 한기가 몰아쳤다.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 정도 내력이면 칠파일문의 제자라 해도 믿을 정도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하선고에 이만한 고수가 있을 줄이야!
그렇다 해도 기 죽을 연적하가 아니다.
“그럼, 이가야. 나도 하나 묻자. 너는 내가 하선고에서 인사를 할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아. 처음부터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 놓고서 왜 갑자기 하선고 명예 운운하는 거야? 하선고에 무슨 명예가 있다고? 그냥 얼치기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던데? 아니야?”
순간 이도주는 오히려 내력을 흩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잠시 자리를 옮깁시다.”
으슥한 데 가서 때리겠다는 소리다.
연적하는 그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바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말로 안 되면 주먹인 거지. 나는 길을 모르니까 앞장서 봐.”
이도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렇게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놈들이 있다.
이도주는 오룡궁에서 빠져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일각(15분)쯤 하산하여 으슥한 골짜기에 도달하자 비로소 멈춰 섰다.
“연두비. 너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러나 네가 나를 무시하고, 하선고 수련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오늘 너에게…….”
그는 마치 명문 정파의 협객처럼 서론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강론에 질려 있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흰소리 그만하고 빨리 끝내자. 들어와.”
연적하의 도발에 이도주는 ‘이놈!’ 하는 호통과 함께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부웅. 붕.
이도주의 주먹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말벌의 날갯짓 소리가 났다.
그러나 연적하는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하선고에 사람이 없네. 이 정도로 최고수 소리를 다 듣고. 그러니 얼치기라고 하지. 쯧쯧!”
연적하는 이도주의 곁을 맴돌며 깐죽거렸다.
계속된 헛손질에 이도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돌연 주먹 대신 장영(掌影)이 난무했다.
그것은 분명히 무당파의 절기인 면장(綿掌)이었다.
손바닥은 나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벌처럼 날카롭게 연적하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도주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손바닥은 연적하의 몸에 닿지 않았다.
한창 어울려 주던 연적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철썩-.
눈앞에서 빛이 번쩍였다고 생각한 순간 이도주는 뒤로 넘어갔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이도주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연두비가 보였다.
그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눈빛으로 무당산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룡궁’이나 ‘하선고’에서 보여 주던 허접스러움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내가 졌소.”
그제야 연적하가 이도주를 향해 돌아섰다.
“이 형, 무당파와 관계있어?”
조금 전 이도주의 장법에는 무당파 특유의 부드러움이 담겨져 있었다.
‘이유제강(以柔制剛)이라고 하던가.’
무당파 제자가 아니고서는 그 정도로 숙달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무당파의 속가제자요.”
“아니, 속가제자가 왜 하선고에 있어요?”
연적하는 얼른 말을 높였다.
이도주를 때려눕히고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솔직히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그가 무당파 속가제자라니 급히 태도를 바꾼 것이다.
연적하의 그런 마음은 곧 이도주에게 전해졌다.
이도주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태화궁의 속가제자요. 태화궁의 스승에게 무공을 배웠지만 보다시피 실력이 형편없소. 그래서 술법을 배우려고 다시 입산하게 된 게요.”
“태화궁의 스승에게 술법을 배워도 되지 않아요?”
“술법은 오룡궁이 최고요. 태화궁은 상청궁과 비슷한 기풍의 도사님들이 모인 곳이라. 술법을 익힌 분들이 계시지 않소.”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하산고에 있는 사람인데…….”
연적하가 넉살 좋게 다가가자이도 주도 피식 웃었다.
“그러지. 아우는 무공이 뛰어난 것 같은데 왜 술법을 배우려고 하나?”
“저도 남들과 사정이 비슷해요. 유명교 술법에 대비를 좀 하고 싶어서요.”
“역시, 아우도 유명교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거로군.”
“말 들어 보니까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하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처음부터 오룡궁의 제자가 될 걸 그랬어. 그랬다면 지금쯤 강호의 방파에 몸담고 있을 텐데.”
이도주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태화궁에서 죽어라 무공을 배웠다.
그런데 삼십 대 중반에 다시 또 이러고 있으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그래도 형님은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막살다가 와서 그런지 도무지 적응이 안 돼요.”
녹림과 무당파는 음과 양처럼 극과 극이다.
하루밖에 안 됐지만 연적하는 십 년은 지난 것처럼 진이 빠진 상태였다.
“속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수도를 하려면 힘들 거야. 나도 그런데 아우는 더하겠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하선고에서 아무도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는데, 형님이 뭐라고 하니까 저도 좀 그랬거든요.”
“하선고의 사람들이 아우를 멀리한 건 아우가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런 거야.”
“이상한 사람들요?”
잠시 생각하던 이도주가 작정한 듯 말했다.
“입문식을 통과하려면 만황주나 천상동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왜요?”
“그들은 정도(正道)를 벗어난 사람들이야. 강론을 들었다면 알겠지만, 무당파의 술법은 도(道)를 바탕으로 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득도에는 관심이 없어. 술법을 검법이나 장법처럼 하나의 기술로 생각하거든. 술법을 배우기 위해서 스승들도 속일 사람들이지. 하지만 그들의 교묘한 눈속임을 스승들이 모를 것 같아?”
“도사님들도 안다고요?”
“한마디만 들어도 득도를 했는지 말장난인지 아시는 분들이야. 그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문답식에 정답은 없어. 두 사람이 같은 대답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게 문답식이라고.”
“정답이 없어요?”
“아우도 강론을 듣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저는 들어도 모르겠던데…….”
“첫술에 배부를 생각하지 마. 아우는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잖아. 독송을 외우고, 강론에 참석하다 보면 분명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물론 격려 차원에서 한 말이다.
이도주는 연두비가 문답식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