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
4회. 너를 지켜. 알겠니?
좁고 음습한 개구멍은 단지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저 너머의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잠깐 동안의 시간이지만 바깥 세상은 자유와 평안을 준다.
연적하는 개구멍 앞에서 망설였다.
큰엄마는 오늘 중요한 손님이 왔으니 말썽을 부리지 말라고 했다.
마음이 약해진 연적하는 개구멍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걷던 연적하는 어지럼증을 느끼고 돌아섰다.
쿵.
무심코 한 걸음 내딛던 연적하는 그만 누군가와 부닥치고 말았다.
“…….”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손님으로 온 누나다.
남궁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누나가 화가 난 얼굴로 쏘아보고 있었다.
뭐라고 변명을 하려는데 놀란 가슴이 먼저 미친 듯 벌렁거렸다.
“어……. 어…….”
뒤늦게 말을 하지 말라던 큰엄마의 경고가 퍼뜩 떠올랐다.
연적하는 입을 꾹 다물고 남궁연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동생뻘인 연적하가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지나치려 하자 남궁연이 손을 뻗었다.
단숨에 어깨를 잡힌 연적하는 뒤로 넘어졌다.
철퍼덕.
땅에 떨어진 연적하는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미 말썽이 일어났으니 소리라도 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야 큰엄마에게 혼이 덜 난다. 혼이 덜 나야 덜 아프다.
큰엄마가 꼬집고 손가락으로 찌를 때마다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남궁연의 손길은 참을 만했다.
한편 남궁연은 자신의 가벼운 손짓에 넘어진 연적하를 보며 오히려 더 놀란 상태였다.
‘너무 가벼워.’
아빠는 분명히 와룡장에 남궁세가 못지않은 절학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었나 보다.
하지만 아이는 무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직 여섯 살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무가의 아이들은 여섯 살 전후로 무공에 입문을 한다. 자신도 그랬다. 그래서 연적하가 어느 정도 버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일반의 아이들보다 더 약한 것 같았다.
단지 체력만의 느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연적하는 마치 강아지나 병아리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어떤 동작도 하지 않았다. 무공을 못 배웠어도 본능적으로 버티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세상과 벽을 쌓았지만 총명한 남궁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 아래의 아이는 손톱으로 꾹 누르면 쉽게 죽고 마는 한 마리 벌레와도 같았다.
저항의 의지도 없는 한 마리 작은 벌레.
와룡장의 아이들은 전부 이런 것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아이의 형제들은 일반의 아이들보다 강했던 것 같다. 오직 이 어린아이만 연약하고, 눈빛도 죽어 있었다.
‘아하!’
남궁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 꼬마는 육 년 전에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작은 숙모의 아들이다.
남궁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연적하를 잡았다.
역시나 아이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왔다. 마치 목각인형 같다.
남궁연은 연적하를 돌려세우고 그의 눈을 응시했다.
연적하의 두 눈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혼탁했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끊임없이 흔들렸다.
돌연 남궁연의 주먹이 연적하의 얼굴로 날아갔다.
퍽.
연적하의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
때린 자도 맞은 자도 말이 없다.
남궁연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피를 흘려도 울지 않는다?
“흥!”
냉소와 함께 남궁연은 더욱 과감하게 손을 썼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세워 연적하의 눈을 찔러 간 것이다.
그건 어른들도 좀처럼 쓰지 않는 잔혹한 수법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적하는 피하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자기를 해치러 오는 손가락을 바라보기만 했다.
툭.
남궁연은 급히 방향을 틀어 연적하의 눈썹을 찔렀다.
연적하의 생기 잃은 눈이 강한 자극에 놀랐는지 몇 차례 끔뻑거렸다.
“아아!”
남궁연의 입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고작 여섯 살인 연적하는 아파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심지어 고통받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 듯하다.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 온 소처럼, 자신에게 가해지는 온갖 핍박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그것으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더라도…….
남궁연은 손등까지 내려온 아이의 팔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팔꿈치 안쪽의 여린 살이 피멍으로 온통 검게 변해 있었다.
확인은 끝났다.
남궁연은 돌연 부드러운 손길로 연적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적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남궁연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남궁연이 연적하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자신의 앞에 고정시켰다.
…….
한참 동안 남궁연은 연적하를 뚫어져라 응시하기만 했다.
너를 지켜.
알겠니?
남궁연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말했다.
그런 바람이 통한 것일까?
용기를 얻은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엄마…….”
태어나 처음 느끼는 따뜻함에 무심코 엄마 소리가 나온 것이다.
남궁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의 엄마가 아니다. 아이는 엄마가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자 연적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남궁연은 그런 연적하를 가만히 안았다.
연적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곧이어 또르륵 굴러 내린 눈물이 남궁연의 팔뚝으로 뚝뚝 떨어졌다.
남궁연은 옷자락으로 연적하의 눈물을 쓱쓱 닦아 주었다.
상대가 자신을 위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연적하가 남궁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지금 연적하가 향하고 있는 곳은 개구멍이다.
친절한 남궁연에게 자신만의 신천지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개구멍의 앞에 도달한 연적하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연적하의 작은 두 발이 꼬물거리며 멀어져 갔다.
입술을 깨물고 망설이던 남궁연은 연적하의 두 발이 사라지기 전에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
낮에 시작된 어른들 간의 이야기는 해거름 무렵이 되도록 쉽게 끝나지 않았다. 대화의 말미에 백미주가 갑작스럽게 혼약(婚約) 이야기를 꺼낸 탓이다.
남궁벽의 부인 장하은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남궁벽은 크게 웃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푸하핫! 제수씨의 말씀이 옳습니다. 연 아우의 자식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저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말을 꺼냈던 백미주의 눈이 휘둥 그렇게 떠졌다. 설마하니 남궁세가의 가주가 그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일 줄이야!
“저, 정말이세요?”
“허헛! 정말이고말고요. 와룡장이라면 남궁세가의 사돈이 되고도 남습니다. 아우님의 생각은 어떤가? 아우님도 나와 사돈이 되고 싶은가?”
하지만 뜻밖에도 연무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형님. 저는 형님에게 그런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사 문제만큼은 아이들 스스로가 정하게 두고 싶습니다.”
백미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려도 유분수지!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정해 주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연무룡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건 아니 될 말이오. 아이들의 인생은 부모의 것이 아니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하기 바라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백미주가 파랗게 타오르는 눈으로 남편을 쏘아보았다.
연무룡과 자신의 혼사를 정한 사람은 연씨 일족의 큰 어른이었다. 혼인 전날까지 연무룡과 자신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혹시 연무룡은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후회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일까?
속으로 이가 갈리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연씨 일족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데……. 당신은 어떻게…….’
의동생 부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남궁벽이 얼른 말을 돌렸다.
“허허! 두 분 모두 일리 있는 말이오. 아우님, 허면 이러면 어떻겠는가?”
“어떻게요?”
“양가의 아이들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혼인시키자는 게지. 그거야말로 아우님과 제수씨의 바람이 모두 담긴 거라고 보는데. 어떤가?”
“그런 거라면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소제가 형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겠습니다.”
“호호! 제가 봐도 명판결이시네요. 아우님, 그게 좋겠지요?”
되묻는 장하은의 말에 백미주는 분루를 삼키고 물러서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지만 속은 쓰라렸다. 결국 혼약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인 까닭이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아주버님, 부탁 올릴 말씀이 있어요.”
이어진 백미주의 말에 남궁벽이 부드럽게 웃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무백이를 남궁세가에서 지도해 주십사 해서요.”
“큰조카를요?”
남궁벽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연무룡을 바라보았다.
연씨 일족에게도 상승의 무공이 있는데 굳이 자신에게 보내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문제는 와룡장의 장주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연속해서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연무룡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남궁세가와 형님께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네.”
남궁벽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중한 연무룡이 저런 부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연씨 일족의 구천검은 자신도 궁금하던 참이다.
와룡장의 장자인 무백이를 남궁세가에 맡긴다는 것은 두 가문의 무공을 교류하자는 뜻이기도 하니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는가?”
워낙 중대한 사안인지라 남궁벽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집안의 비전(秘傳)은 피차 전하지 않는다 해도 가볍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이 경우 와룡장보다는 남궁세가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연무백은 이제 열네 살의 아이인 반면 자신은 하나를 보면 열을 추론해 낼 수 있는 초극의 고수이니 말이다.
“예, 무당산으로 가실 때 함께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나 서둘러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무백의 말에 남궁벽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미주가 애증 어린 눈으로 연무룡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이가 무슨 꿍꿍이지?’
혼약은 나서서 깨더니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무백이는 남궁세가에 보내겠단다. 홧김에 남편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부탁한 것이었지만, 남편의 곧은 성격에 반대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
저녁에 와룡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뒤늦게 양쪽 집안의 어른들이 연적하와 남궁연의 실종을 알게 된 때문이다.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에게는 감봉에 벌까지 내려졌다.
곧이어 와룡장과 창천대의 무사들이 와룡장 인근 십 리를 쥐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결국 두 아이는 마을의 시장통에서 발견되었다.
와룡장으로 보내진 두 아이는 연무룡과 남궁벽의 앞에 불려 나왔다.
크게 놀란 남궁벽이 호되게 야단을 쳤다.
“이 녀석들! 어른들이 장원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
놀란 연적하의 머리가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남궁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남궁벽을 응시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화가 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