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09
409회. 술법을 배우셨겠네요?
무당산 북편.
대나무 등짐을 등에 짊어진 청년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오룡궁을 떠나온 연적하다.
조금 전 상청궁에서 온 도사로부터 ‘즉시 남암궁 길로 하산하라’는 장문인의 명을 전해 받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명교에서 건국사의 일로 왔다는 것을.
허둥지둥 짐을 꾸려 도망치듯 오룡궁에서 빠져나왔다.
유명교가 두려워 그런 게 아니라, ‘삼년지약’에 매인 무당파를 위해서였다.
습관이란 무섭다.
짐이 싫어서 ‘공진검’과 ‘포룡검’을 익혀 놓고 무심결에 대나무 등짐까지 챙겼다.
도중에 잠깐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작은 솥단지와 기타 자질구레한 짐들을 들고 다니려면 그러는 편이 나았다.
남암궁의 협곡을 지나 산 아래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저 멀리 관산하(官山河)의 지류가 보였다.
강을 건널까 말까 고민하는데 배 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
“에구구! 그러고 보니 아침도 안 먹었네.”
두리번거리던 연적하는 인가를 발견하자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식사부터 해결하고 싶어서다.
허름한 집으로 다가가자 마당에서 농기구를 수리하던 남자가 힐끔거렸다.
낯선 외부인이 오니 불편한 모양이다.
“아저씨, 근처에 식사할 만한 곳이 있나요?”
“안됐지만 우리 교가촌에는 반점이나 객잔이 없소.”
“그래요? 아침도 안 먹었는데 고민이네.”
연적하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한참 도리깨를 손질하던 남자가 가벼운 한숨을 쉬더니 연적하에게 말했다.
“곧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혹시 생각 있소?”
“어이쿠, 주시면 감사하죠.”
“그런데 그 얼굴은 어떻게 된 거요? 두창(痘瘡) 같은 거면 곤란한데.”
“아, 이건 약을 잘못 먹고 생긴 부스럼이에요. 두창이었으면 오룡궁에 있지도 못했죠.”
연적하는 슬쩍 오룡궁을 입에 올렸다.
자신의 신원과 부스럼의 무해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오룡궁이라는 말에 어둡던 사내의 안색이 밝아졌다.
무당산 인근의 사람들에게 무당파는 믿고 의지할 만한 도관인 까닭이다.
“무당파에 계셨소?”
당장 말투부터 공손하게 바뀌었다.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南尊武當)’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당파와 관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은 어려워했다.
“오룡궁의 속가제자입니다.”
“아! 오룡궁의 제자셨군요. 몰라서 죄송합니다.”
나무토막을 깔고 앉아 뭉기적거리던 사내가 급히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괜찮아요. 속가제자가 뭐 대단하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연적하는 실실 웃었다.
예기치 않은 대접을 받으니 무당파 제자가 되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허리를 세운 사내가 집 안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마누라! 빨리 나와서 식사 좀 준비해 봐! 무당파 제자분이 오셨다고!”
남자의 외침에 ‘덜커덩’ 하고 문이 열렸다.
곧이어 중년의 여자가 문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불렀어요?”
“무당파 제자분이 오셨다니까. 아침도 안 드셨다니 점심을 조금 일찍 먹자고.”
여자가 연적하를 힐끔 보고는 문을 닫았다.
곧이어 중년 여자와 십 대 소녀가 밖으로 나왔다.
“제 안사람과 딸입니다.”
사내의 소개에 중년 여자와 소녀가 묵례를 하고는 후다닥 부엌으로 들어갔다.
고개 숙여 화답하던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휘휘 돌렸다.
“도사님? 소협?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도사는 아니에요.”
“그러시다면 소협, 이리로 앉으십시오.”
사내가 마당 한쪽에 놓인 평상 마루를 가리켜 보였다.
연적하는 대나무 등짐을 대충 내려 놓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연남천이라 합니다.”
“연 소협이셨군요. 무당파 제자분을 집에 모시기는 처음입니다. 하하!”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무당파 제자를 잠시 모셨었다는 걸 마을 사람이 알면 꽤나 부러워할 게다.
잠시 후 평상 위에 돼지고기 볶음과 청채, 어탕이 올라왔다.
사내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어탕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 관산하에서 잡은 물고기입니다. 많이 드십쇼.”
“아, 예.”
사내는 그 뒤로도 계속 연적하에게 반찬을 권했다.
아침을 거른 연적하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 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소녀, 임소이가 슬쩍 물었다.
“오룡궁 제자라고 하셨지요?”
“네.”
“오룡궁은 술법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잘 아네요.”
“그럼 연 소협도 술법을 배우셨겠네요?”
“그랬죠.”
“하나 보여 주실 수 있어요?”
임소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연남천을 보았다.
척 봐도 지나가던 뜨내기 같아서 찔러 본 것이다.
순진한 아빠는 무당파 제자라고 믿는지 몰라도 자신은 어림도 없다.
‘무당파에서 저런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괴상망측하게 생긴 얼굴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당파와 어울리지 않았다.
“일단 먹고 생각해 볼게요.”
연적하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임소이의 부탁을 흘려들었다.
“네, 그러세요.”
임소이는 그가 얼렁뚱땅 넘기려 하자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흥! 먹으면 그냥 갈 거면서.’
그녀는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끊기로 했다.
재잘재잘 떠들던 임소이가 입을 다물자 평상은 이내 조용해졌다.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시원한 찻물로 입가심을 했다.
주린 배를 채우자 비로소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흐뭇한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가족을 보니 일상의 행복이라는 게 뭔지 알 것도 같다.
“잘 먹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짐을 다시 들쳐 맸다.
그러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사내가 후다닥 일어나 허리를 굽실거렸다.
“아이고, 왜 더 쉬시다 가시지. 기회가 되면 다음에도 꼭 들러 주십쇼.”
“예, 예.”
연적하가 건성으로 답하고 막 돌아섰을 때다.
못마땅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던 임소이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술법을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생각해 본다고 했었죠?”
연적하는 다시 돌아섰지만 딱히 보여 줄 만한 술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가 좋으려나.’
‘벽력부’는 너무 파괴적이고, ‘흑운부’도 공포스럽다.
평화로운 저들의 삶에 어울릴 만한 술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적하의 고민이 길어지자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연 소협, 괜찮습니다. 어린애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소이야, 도술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괜히 연 소협을 귀찮게 하지 마라.”
“아이 참! 누가 뭐라고 했나요? 바쁘면 그냥 가셔도 돼요.”
임소이가 선심 쓰듯 말했다.
둔한 연적하는 그녀의 말 속에 담긴 비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부녀의 대화에 ‘뭐라도 하나 보여 주자’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그렇지!’
묘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술법 비스름한 걸 보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는 수법이 하나 있었다.
구천구검 구 식인 능운소요(凌雲遙)다.
최근 ‘접인술’과 ‘이기어검’의 공부가 깊어지면서 ‘능운소요’에 대한 자신감도 늘어났다.
‘아차. 검이 없구나.’
검을 대체할 만한 걸 생각하던 연적하는 문득 ‘청사(靑蛇)’를 떠올렸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검이 없으면 단검이다.
연적하는 품에서 청사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풍지산에 펼쳐져 있는 팔문팔상진에서 사용한 뒤로 처음이다.
그때 길이가 삼십 장(약 100미터)에 달하는 푸른 이무기가 나타났었다.
‘오늘 같은 날 그 이무기가 다시 나타나면 진짜 끝내주는 술법을 보여 주…….’
가만?
생각해 보니 안 될 것도 없다.
그때 청사는 천둔검의 검결에 반응했다.
‘일점무량(一點無量)’과 ‘포라천지(包羅天地)’를 떠올리자 쥐고 있던 ‘청사’가 꿈틀했다.
깨달음은 찰나다.
지금까지 천둔검과 술법에 연연하느라 ‘청사’의 신비는 뒷전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에게 뭔가 보여 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청사를 깨웠다.
단전에서 일어난 구천기가 엄지손가락의 소상혈(少商穴)을 통해 청사에 전해졌다.
우우웅-.
청사가 부르르 떨며 검명을 토해 냈다.
뒤이어 청사에서 칠색 서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미 한번 갔던 길이기 때문일까?
청사는 연적하가 황당해할 만큼 너무도 쉽게 깨어났다.
칠색 서기에 휩싸인 청사가 그만 놓아 달라는 듯 연적하의 손바닥에서 펄떡거렸다.
연적하는 청사를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꾸아아아아-.
손에서 벗어난 청사는 삼십 장 길이의 푸른 이무기로 화해 창천 하늘을 날아올랐다.
임소이와 중년 부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그마한 단검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무기로 변했으니 놀랄 만도 하다.
그러나 이무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연적하는 마치 이기어검을 쓰듯 검결지를 한 바퀴 돌렸다.
꾸아아아아-.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이무기가 포효를 터트리고는 연적하에게 돌아왔다.
“가자! 능운소요닷!”
허공으로 훌쩍 뛰어오른 연적하가 이무기를 밟고 섰다.
푸른 이무기는 연적하를 등에 태우고 힘차게 관산하로 날아갔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연남천을 멍하니 바라보며 임소이가 중얼거렸다.
“지금 제가 헛것을 보는 건 아니죠?”
그녀의 부모는 대답 대신 튕겨 나듯 일어나 연신 절을 올렸다.
***
그건 확실히 ‘능운소요’였다.
관산하를 건너자마자 청사는 힘이 다한 듯 지면으로 스르륵 내려갔다.
연적하는 이무기의 배가 땅에 닿기 직전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무기도 단검으로 돌아갔다.
그는-지면을 스치듯 날아가는-청사를 접인술로 끌어당겼다.
곧이어 청사가 손에 잡히자 이리저리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검인데 여기에 어떻게 이무기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여동빈의 술법이 대단하구나.”
자신은 이치도 알 수 없는 일을 해냈으니 존경스러울 뿐이다.
강을 건넌 연적하는 일단 십언으로 향했다.
백두마군인 적월 공취산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해서다.
유명교 교주와의 약속은 무당파에도 알리지 않았기에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
호광성(호북성).
십언.
해거름 무렵.
죽립으로 머리를 가리다시피 한 남자가 성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상인들 꼬리에 붙어 성문을 통과한 직후, 번화가로 직진했다.
한참 걷던 그는 시야가 막혀 답답한 듯 손으로 죽립을 들어 올렸다.
벌에 쏘인 듯 퉁퉁 부은 얼굴, 연적하였다.
멀리 ‘십리미주’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는 다시 죽립을 눌러쓴 후에 ‘십리미주’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누님, 내가 술을 마시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소문을 들으려면 주루나 기루가 제격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절대 그동안 오룡궁에서 마시지 못한 술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주루는 초저녁답게 빈자리가 많았다.
창가 빈자리로 간 그는 등짐을 내려놓고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조르르 달려온 어린 점소이가 물었다.
“손님, 무엇으로 드릴까요?”
“향설주로 열 병만 가져와 봐. 안주는 닭고기 위주로. 아, 청채도 잊지 마.”
“궁보계정(宮保鷄丁)과 가향굴계(家鄕屈鷄)가 있는데 모두 내올까요?”
“그래, 다 가져와.”
“예, 예.”
점소이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갔다.
비록 죽립에 가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저 정도 주문이면 큰손임이 분명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인지 주문한 요리는 금방 나왔다.
연적하는 자작자음(自的自飮)하며 시간을 보냈다.
향설주를 다섯 병쯤 비웠을까?
창문 밖 어둠이 짙어 가고 비어 있던 주루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