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1
431회. 언령보다 강한 게 욕망이다.
장강 수채의 배들이 떠나갔다.
연적하는 뱃전에 서서 멀어져 가는 수적들의 배를 물끄러미 보았다.
무당파 제자가 된 뒤로 녹림과 다시 얽힐 일이 없으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어딜 가도 도적이 있다.
그야말로 ‘녹림 천하’라고나 할까.
‘망할 세상…….’
이래서는 무당파 제자가 아니라 녹림의 고수로 더 알려질 판이다.
당장 선객들도 자신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적선수행(積善修行)이 어려워지는데…….’
오룡궁의 술법들, 특히나 청불노의 ‘언법(言法)’ 수련에 적선수행은 필수.
무당파 제자와 녹림 고수는 물과 불처럼 그 간극이 너무 커서 고민이다.
그의 곁에 있던 적월 공취산이 물었다.
“너의 본래 모습은 연적하냐? 연남천이냐?”
“왜?”
“후후, 녹림과 무당파 제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나쁜 놈은 당신처럼 평생 못된 짓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뭔데?”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물어본 것뿐이다. 나도 날 때부터 백두마군은 아니었으니까.”
공취산이 씁쓸한 얼굴로 돌아섰다.
자신도 ‘연남천’처럼 한때는 도문(道門)에 몸을 담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연적하’ 같은 녹림도에게 손가락질당해도 할 말이 없는 유명교도지만 말이다.
“유명교도가 되기 전에는 뭐였는데? 당신도 나처럼 도문에 있었다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던 공취산이 피식 웃었다.
도문에 있었냐고?
오십 년 전.
사천성.
고명산 태일관.
“알겠느냐? 우리 대일관이야말로 도법(道法)의 적통이라 할 수 있다. 너희가 배운 구정단법(九鼎丹法)은 천하제일의 내단술로 꾸준히 연성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
스승의 말에 공취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태일관이 천사도(天師道)를 따르는 도관으로 모산파(茅山派), 전진도(全眞道), 태일도(太一道), 진대도(眞大道) 등과 근본적으로 다름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다.
천사도는 구정단법부터 시작해 중요한 모든 수련법을 신들에게서 전수했다.
특히나 태일관의 경우 지금도 새로운 것을 신들에게 꾸준히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사천성 일대에서 고명산의 태일관은 귀도(鬼道)라고까지 불린다.
신들과의 교감을 강조하니 그렇게 소문이 난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귀도라 하는 것을 부끄러워 마라. 불로장생은 세상 밖의 지식이니라. 세상 밖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신들과 교감해야 함이 마땅하다.”
스승의 일장 연설이 있은 후에 제자들은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呪)’를 암송하며 신의 강림을 기다렸다.
가장 먼저 교감에 성공한 사람은 사저였다.
사저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터져 나오자 제자들은 더욱 크게 주문을 외웠다.
공취산은 신들과 쉽게 교감하는 사저가 부러웠다.
그녀는 가족을 돌림병으로 모두 잃고 기적처럼 혼자 살아남은 뒤 여관(女冠, 여도사)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최근 신과 교감에 성공한 뒤로 매일 신언(神言)을 말하고 있다.
스승과 동문들은 그런 사저를 장도릉(張道陵)의 환생이라고까지 말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자신도 사저를 동경했을 것이다.
물살에 배가 한차례 흔들리자 공취산은 급히 난간을 움켜잡았다.
공력을 잃으니 이런 작은 요동에도 뭔가에 의지를 해야만 한다.
“이 늙은이가 대답은 않고 무슨 잡생각이야. 도문에 있었냐고 물었잖아.”
“그랬지.”
“오호!”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공취산을 보았다.
유명교의 마두들은 거의 대부분 사파 출신이었다.
사파에서 빌빌거리다가 쉽게 힘을 얻겠다고 유명교에 투신한 것이다.
그런데 백두마군이 도문 출신이었다니!
칠파일문에서 알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뭘 그리 놀라느냐? 모산파 출신도 있는데, 도문이 뭐 별거라고.”
“모산파는 원래 이상한 곳이잖아. 그 사람들이 죄다 중이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걸? 도문이면 어디야? 설마 무당파는 아니겠지?”
“무당파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이지.”
“뭐? 따위? 단전을 잃은 충격에 갑자기 노망이라도 든 거야? 대무당파를 두고 무슨 헛소리야.”
“무당파가 검술로 유명해서 그렇지 정통 도문에서는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이 있던 도문은 본줄기라도 돼?”
“본줄기라니. 쯧쯧! 녹림이라 그런지 배움이 얕구나. 이럴 때는 원류라고 해야 한다.”
“원류고 지랄이고 어딘데? 백두마군을 배출한 도문이 어디냐고.”
“크크. 네가 언제부터 도문이었다고 그처럼 흥분을 하느냐? 녹림이 아니라 무당파에서 자란 사람 같구나.”
“…….”
연적하가 멋쩍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맞다.
‘무당파 따위’라는 말에 지나치게 흥분했다.
전에는 자신도 무당파를 발가락 사이에 낀 때로 여겼는데 별일이다.
무당파에서 몇 달 살았다고 혈기가 치솟다니.
칠파일문 제자들이 사문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덤비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고작 몇 달도 이러는데 십수 년, 아니 수십 년을 지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게 다 스승님 때문이야.’
무당파 하면 바로 청불노가 떠올라서 스승이 조롱당한 느낌을 받고 만다.
“나도 한때는 너처럼 사문에 대한 공경심으로 가득할 때가 있었다.”
공취산이 허허로운 눈으로 장강의 물줄기를 보았다.
살아 있는 것은 저렇다.
굽이굽이 흐르고 흘러 늘 새로운 면을 보여 준다.
새로운 모습.
그게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옛 모습만 간직하고 살아가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자신의 경우는 확실히 그렇다.
“지금은 안 그렇다는 소리네? 아무리 악인이라도 과거 순수했던 시절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던데. 늙은이는 여러모로 특이해.”
“과거가 다 순수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현재보다 추악한 과거도 많으니까.”
“백두마군인 지금보다 더 추악한 과거라고? 도문이었다면서? 그런 도문이 있어?”
“도문이 추악했겠느냐. 본래 법과 제도가 그릇된 것은 없다. 항상 사람이 문제지.”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봐. 어디 출신인데?”
“사천 고명산 태일관. 천사도를 따르는 도관으로 모산파, 전진도, 태일도, 진대도 등과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다.”
공취산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인이라도 박였는지 오래전 스승이 하던 소리가 술술 흘러나와서다.
“천사도?”
“무당파 제자라는 놈이 도교의 뿌리도 모르느냐?”
“아, 내가 술법을 속성으로 배우느라 좀 바빴거든. 다른 데 신경 쓸 틈이 없었어.”
“흥! 어련했을라고. 도둑놈 주제에.”
“이거 왜 이래. 그래도 유명교보다는 녹림이 백배 나아. 최소한 녹림은 수도자를 산제물로 바치지는 않잖아. 당신은 몇 명이나 제물로 바쳤어? 백 명?”
“정확히 백오십 명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도사 놈들이 많아서 헛손질을 오십 번이나 했다.”
“와아. 이 늙은이 진짜 뼛속까지 마두네. 어째 부끄럽고 미안한 걸 몰라.”
“어차피 죽으면 염마왕 앞으로 갈 목숨. 염마왕을 위해 바치겠다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이 늙은이가 자기 잘못을 전혀 모르네. 수도자가 왜 염마왕 앞으로 가? 도가의 수도자는 우화등선하고, 불가의 수도자는 생불이 될 수 있는데. 당신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은 거라고.”
건들거리는 모습과 달리 꽤나 날카로운 지적이다.
공취산은 생각 없이 말했다가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확실히 수도자들이 득도하면 염마왕과 만날 일은 없다.
물론 득도가 쉬운 건 아니지만, 그럴 기회를 빼앗은 건 사실이었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도문에서 왜 늙은이 같은 마두가 나왔대? 아, 참. 사람이 문제라고 했지. 그때도 못된 짓 많이 했어? 그래서 파문당한 거야?”
“…….”
묵묵히 듣고 있던 공취산이 푸들푸 들 웃었다.
파문이라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누가 누구를 파문시킨단 말이냐. 나는 파문당하지 않았다.”
“추악한 과거라며? 사람이 문제라며?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몰라도 된다.”
“쌍! 줄 듯 말 듯 하다가 안 주는 게 제일 악질인 거 알아? 안 가르쳐 줄 거면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지. 지금 장난하는 거야?”
“이야기는 다 했다. 추악한 과거와 사람이 문제. 그 이상 뭘 더 말하라는 거냐?”
“추악한데 파문은 안 당했다며? 그럼 훌륭한 도사가 되지 왜 도사들을 죽였어? 백오십 명씩이나.”
“도문에 들었다고 다 도사가 되는 건 아니다. 너만 해도 도적이지 않느냐. 나도 그처럼 어쩌다 보니 유명교도가 되었을 뿐이다.”
“와아! 이 미꾸라지 같은 사람. 좋아. 거두절미하고 물어볼게. 파문도 안 당했는데 왜 그 좋은 사문을 버리고 유명교도가 된 거야?”
“몰라도 된다.”
“지금 나 속 터지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리고 사문을 버린 건 내가 아니라…….”
“아니라?”
“너는 몰라도 된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연적하가 홧김에 난간을 ‘쾅!’ 내리쳤다.
“에라 이 늙은이야! 그렇게 사람 속을 박박 긁으니 유명교주가 콕 찍어서 데리고 오래지. 착하게 좀 살아 봐. 착하게. 영원히 살 것 같지? 당신 곧 죽어.”
“푸흐흐. 나도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풍지산에 가면 죽겠지. 서너 달쯤 남았으려나.”
공취산은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연남천을 지그시 보았다.
처음에는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러웠는데 모든 걸 내려놓은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
“왜 웃어? 미쳤어?”
“우스워서 웃었다. 웃지도 못하느냐?”
“지금 웃음 나올 상황이 아닐 텐데. 당신은 저승행 배에 타고 있는 거라고.”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그의 대답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교는 죄다 교주처럼 불로불사가 목표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 몰랐네. 천두마왕이 돼서 불로불사하려는 게 아니었어?”
“불로장생은 교주의 꿈일 뿐이다.”
“당신이 원하던 건 뭔데?”
“무림 지존.”
“풋! 무림 지존이래. 애들도 아니고 너무 유치하다. 이봐 늙은이. 영원한 건 없어. 무림 지존이 몇 년이나 갈 것 같아? 십 년? 이십 년? 천하십대고수들 이름이 십 년 단위로 조금씩 바뀌는 건 알아? 무림 지존도 나이는 못 속여. 눈 깜빡할 사이에 후배들에게 내줘야 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 그래도 한 번쯤 최고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교주를 배신한 거야?”
‘배신’이라는 말에 공취산의 눈매가 꿈틀했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화가 난 건지 표정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웠다.
공취산이 침묵하자 연적하는 화제를 돌렸다.
“교주가 어지간히 백두마군들을 믿고 있었나 봐? 언령도 걸어 두지 않은 걸 보면.”
유명교주가 백두마군들에게 언령을 걸었다면 그들은 배신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자 공취산이 씹어 뱉듯 말했다.
“언령보다 강한 게 욕망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지 믿음과는 관계없다.”
“나 녹림이야. 쉽게 설명해 봐.”
“백두마군들의 꿈은 천두마왕이 되는 것이다. 천두마왕의 진언을 손에 쥔 사람이 교주인데, 너도 알다시피 교주의 무공은 천하제일이지. 배신할 수도 없거니와, 한다 해도 얻을 게 없다. 그러니 평생 교주의 눈치만 살피며 은혜 베풀기를 기다릴 수밖에.”
지금 유명교에 남아 있는 백두마군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당신들은 배신했잖아.”
“음양고(陰陽蟲)라는 천고의 기물이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공취산의 입에서 천하를 경동시킬 비밀 하나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