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32
432회. 귀뚜라미 때문에
적월 공취산은 ‘음양고’를 맹신했다.
그것이 사람을 제물로 만들어진 사악한 귀물, ‘염매(魔魅)’인 까닭이다.
‘염매’의 효능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유명교주도 ‘소천무령’이라는 염매로 ‘신의 지식’을 전해받았다.
교주에게 있어 ‘염매’는 힘의 근원이자 보고(寶庫)였다.
그래서 공취산은 교주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염매’라 믿었다.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당파에서 술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쪽 경험이 일천(日淺)해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음양고?”
“고독(蠱毒)의 일종이다. 영성이 담겨 있는 귀물이지.”
공취산도 양심이 있는지라 그것의 제작 과정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하! 고독. 그거 나도 들어 봤는데. 먼지만 한 독충이라며? 고작 벌레로 교주를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영성이 있는 귀물이라고. 지금의 교주는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음양고에 당했으니까.”
“반쪽?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연적하는 풍지산에서 만난 교주를 떠올렸다.
그 어마무시한 존재감과 능력이고 작 반쪽짜리라니 기가 막혔다.
교주가 음양고에 당한 상태라고 믿는 공취산으로 인해 생긴 오해였다.
“대단한 사람이지. 그래 봐야 아직은 사람일 뿐이다. 언젠가는 신이 될지도 모르지만.”
“신?”
“교주가 바라는 불로불사가 신이 아니면 뭐겠느냐?”
백두마군의 초능을 경험한 공취산은 교주라면 정말 신이 될지도 모른다 믿었다.
그것도 음양고를 쓴 이유 중에 하나였다.
교주가 신적인 존재가 되면 건드릴 엄두도 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교주가 사람으로 있을 때 제치려고 했다 이거네?”
공취산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지만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표정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공취산은 교주가 신적인 존재가 되기 전에 그녀에게 손을 썼다.
무림 지존이 되는 데 장애물로 여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연적하가 공취산을 힐끔 돌아보았다.
고집스럽게 닫힌 입술을 보니 묻는다고 선선히 답해 줄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왜 교주를 제치려고 했어?”
연적하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건 어쩌면 교주가 그를 콕 찍어 원하는 것과 관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까 말한 대로 무림…….”
“무림 지존 같은 헛소리는 하지 말고.”
연적하가 초반부터 차단하자 공취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무림 지존은 언제고 이루고 싶었던 망상에 가까운 꿈이다.
꿈이 없는 사람이 있던가.
‘왜 교주를 제치려고 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니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다.
자신은 왜 교주에게 음양고를 썼을까?
한참 생각하던 공취산이 입을 열었다.
“귀뚜라미 때문이다.”
“장난해?”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보자 공취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다. 귀뚜라미가 교주와 나의 운명을 갈랐다.”
오십 년 전.
사천성.
고명산 태일관.
가을밤.
공취산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다.
크립 크립 크립-.
작은 숙소를 귀뚜라미 소리가 뒤덮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중에는 소리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평소에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도 잘 잤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귀를 울리다가 나중에는 머리까지 뒤흔들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공취산은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들은 미친 듯 울어 댔다.
잠이 달아나자 머릿속을 뛰어다니던 귀뚜라미 소리도 조금씩 빠져나갔다.
마침내 귀뚜라미 소리를 모두 떨쳐 냈을 때 그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조용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깊이 잠든 사형제들을 둘러본 후에 살금살금 숙소를 빠져나갔다.
툇마루에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보고 있으려니 얼굴도 모를 부모가 그립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은 사저였다.
만약 사저가 사내였다면 태일관의 모두가 그녀를 떠받들었을 것이다.
사저는 뛰어난 미모로 사형제들의 우상이었다.
모두가 사저를 아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스승은 구정단법(九鼎丹法)의 ‘오정(五鼎)’에 이른 사저를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다.
스승의 후계자는 ‘사정(四果)’에 이른 삼사형이었다.
대사형은 재질이 뛰어나지 못해 ‘삼정(三鼎)’을 넘지 못했다.
모두가 ‘사정’인 삼사형이 후계자가 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저도 그랬다.
그녀는 태일관의 운영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고 믿었다.
산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누군가 내려왔다.
둘째 사저 양여령이었다.
“왜 안 자고?”
“…….”
공취산은 너무 놀라 눈만 끔뻑거렸다.
지금까지 사저는 단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이 없었다.
심지어 스승과 대사형에게도 그랬다.
오죽하면 ‘얼음 공주’라는 별명이 다 붙었을까.
철벽을 친 것 같던 사저가 친근하게 먼저 다가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귀뚜라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요.”
“그래?”
그게 전부였다.
그녀가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공취산은 습관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선선한 산중의 바람과 결이 다른 사저의 체취가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 사저에게서 나던 그런 냄새가 아니었다.
태일관의 사람들은 콩으로 만든 조두(深豆, 비누)를 사용해 몸을 씻는다.
조두를 쓰면 피부에 콩 비린내가 희미하게 남았다.
남자들은 그냥 넘기고 말지만, 여자들은 그걸 제거하기 위해 따로 화정유(花精油, 꽃에서 추출한 향수)를 사용했다.
사저도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화정유가 있다.
그런데 지금 사저의 몸에서 화정유 외에 다른 냄새가 나고 있었다.
묘한 땀 냄새였다.
공취산은 저도 모르게 사저가 내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상각’이 달빛 아래 묵직하게 서 있었다.
이상하다.
먼저 말을 걸어온 것도 그렇고, 오밤중에 이상한 체향도 그렇고…….
그 뒤로 귀뚜라미 소리에 선잠이 깨면 슬며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혹시라도 그날처럼 사저가 먼저 말을 걸어 줄까 싶어서다.
연적하가 주먹을 말아쥐고 부르르 떨었다.
“이 늙은이야. 말하기 싫음 그냥 하기 싫다고 해. 내가 진짜 한 대 때리고 싶은데, 처맞고 바로 마물이 될까 봐 참는다. 뭐? 귀뚜라미 때문에 교주 뒤통수를 쳤다고? 에라 이 늙은이야. 마음 좀 곱게 써.”
“세상에는 본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법이다. 네가 처음 들었다고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마라. 너의 인생도 다른 사람에게는 황당한 일일 테니까.”
“아, 이 늙은이가 진짜.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 끝까지 헛소리네. 귀뚜라미도 그 음양고처럼 염매야? 그래서 귀뚜라미가 귀에 속삭였어? 교주 뒤통수를 후려치라고? 그런 거라면 믿어 줄게.”
공취산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푸들푸들 웃었다.
“푸흐흣! 아주 재밌는 상상을 하는 구나. 내가 말한 귀뚜라미는 그저 흔한 산중의 귀뚜리미다. 오늘 밤에 그 소리를 또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럼 오늘 밤에는 내 뒤통수를 치겠네? 아이고, 무서워라. 오늘 잠 다 잤네.”
“나는 이제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한데 무엇을 겁내느냐?”
“아냐, 아냐. 찜찜해. 이리 와 봐.”
연적하는 꼼꼼하게 공취산의 몸을 뒤졌다.
혹시라도 음양고와 같은 염매를 가진 게 아닌가 신경이 쓰여서다.
그러나 공취산의 몸에서 나온 것은 은자 세 냥 반이 전부였다.
“이건 내가 여행 경비로 잘 쓸게.”
“도둑놈이 어련하려고.”
‘도둑’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발끈했다.
“이 늙은이가 누구더러 도둑이래? 내가 늙은이 손자야? 어디서 공짜로 비비려고 그래?”
“내가 풍지산에 데려다 달라고 했느냐? 네가 끌고 가면서 무슨 여행 경비?”
그러자 연적하는 급히 말을 바꾸었다.
“어차피 늙은이는 이 돈 쓸 시간도 없어. 풍지산에 가면 끝인 거 알잖아.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해.”
“마지막은 맞으나 도적에게 빼앗겼으니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
“와아. 한마디를 안 지네. 그래 뺏었다. 됐냐?”
공취산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의 말대로 어차피 자신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돈이었다.
그날 밤 갑판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가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
호광성.
여산.
광명촌.
불청객의 난입 직후 세 명의 백두 마군은 명왕교도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혹시라도 괴인이 여산에 남아 있을까 봐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사흘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백두마군들은 금족령을 풀었다.
십두마병들이 광명촌에서 너무 사고를 쳐서 마지못해 풀어준 것이다.
광명촌에 갇혀 있던 십두마병들은 굶주린 이리 떼처럼 여산을 내려갔다.
혈옥수 송군남도 그런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팔자걸음으로 산길을 휘적휘적 내려가던 송군남이 멈칫했다.
어딘가에서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냐!”
그의 외침이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윽고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나무 아래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 동방사자 탈혼마검 노도경이다.
하지만 송군남은 미처 상대를 알지 못했다.
“명왕교의 형제요?”
중년인의 등에 있는 검을 보고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아니오.”
“이곳은 명왕교의 성지다. 명왕교 사람이 아닌데 여산에는 왜 왔느냐!”
“한 가지 꼭 알고 싶은 게 있어 기다렸소.”
“누굴 기다렸다는 거냐?”
송군남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노도 경을 보았다.
딱히 적의는 보이지 않는데 뻔뻔한 얼굴이 조금 눈에 거슬렸다.
“십두마병이나 백두마군이면 되오. 대답해 보시오. 당신은 어느 쪽이오?”
순간 송군남은 흠칫 놀란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매복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인근에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십두마병이다. 너는 누구며, 왜 본교의 고수들을 찾고 있느냐?”
“잘됐구려.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되고, 한번 시원하게 붙어 봅시다.”
“크크크! 명왕교 성산에 와서 시비를 걸다니! 간덩이가 부은 놈이로구나!”
송군남의 두 손이 시뻘겋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노도경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혈옥수 송군남이었구려. 소문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은데 역시 초능을 받은 거요?”
“혈옥수를 알아보고도 태평하다 이거지? 오냐, 초능의 맛을 보여 주마! 뒈져랏!”
송군남이 벼락처럼 상대를 덮쳐 가며 두 손을 휘둘렀다.
붉은 장영(掌影) 두 개가 노도경의 머리와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노도경은 상대를 경시하지 않고 급히 검을 뽑아 휘둘렀다.
꽈광! 꽝!
유형화된 장영과 검기가 맞닿자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적수공권인 송군남은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빠르게 전진했다.
그때 노도경이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탈혼일절 환검노도(幻劍怒濤)다.
순간 허공에 만들어진 이십여 개의 검영(劍影)이 송군남을 덮쳤다.
“헉!”
대경실색한 송군남은 뒷걸음질 치며 두 손으로 검영을 미친 듯 후려 쳤다.
꽝! 꽝!꽝! 꽝-!
한참 검영을 깨부수던 송군남의 입에서 ‘악!’ 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검영이 양쪽 어깨를 무자비하게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양팔을 지면에 축 늘어트린 송군남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대체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러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