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49
449회. 성실, 노력, 성공
연적하로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야 녹림 출신으로 놀고먹는 게 인생의 목표라지만 남궁연은 달랐다.
그녀는 남궁세가의 기둥이자 정도 무림의 희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녀를 객점에 눌러앉히는 것은 꽤나 비난받을 짓이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그런다면 자신도 욕하는 대열에 섰을 것이다.
구천노도 심통이 넌지시 말했다.
“이 기회에 무관이나 장원을 마련하는 건 어떻습니까?”
“무관?”
“예, 제자를 받아들이시는 겁니다. 공자님이 가르친다고 하면 줄을 설 것 같은데요. 선대인(先大人)께서도 와룡장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나더러 ‘무관’이나 ‘와룡장’ 같은 걸 만들어 보라는 거야?”
“뭐, 정히 할 일이 없으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서요.”
“다른 건 다 해도 그거 두 개는 안 해.”
연적하는 전에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예? 왜요?”
“누구 가르치는 거 귀찮아.”
“장원은요? 그건 굳이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심통은 열심히 연적하를 부추겼다.
얼떨결에 주루를 열었지만 아직 무림인의 피가 식지 않아서다.
장원은 다용도로 쓸 수 있다.
외부 활동을 끊으면 은거지만, 손님들을 받아들이다 보면 강호의 세력이 된다.
주인의 뜻에 따라 조용히 지낼 수도, 무림 세가를 꿈꿀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연적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장원은 안 만들어. 구질구질한 기억들뿐이야. 나보고 그 짓을 하라고? 차라리 산에 들어가고 말지.”
‘장원을 만드느니 녹림으로 가겠다’는 소리에 심통은 깜짝 놀랐다.
와룡장에서 험한 꼴을 당한 기억으로 장원 자체를 싫어하게 된 모양이다.
‘어쩐다. 공자님에게는 장원이 딱인데.’
십전무후를 생각하면 객점보다는 장원이 어울린다. 놀기 좋아하는 그의 성품에도 맞는다.
하지만 그가 장원을 극도로 싫어하니 고민이다.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십쇼. 남궁세가까지 가려면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요.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내일 아침에.”
“쫄쫄 굶지 마시고 든든히 챙겨 가십쇼. 사람들 너무 믿지 마시고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시는 분이 그렇게 당하고 사십니까?”
“이런 젠장. 내가 어리숙해서 당한 줄 알아? 그놈 얼굴이 정말 부처였다니까. 심 노인이 같이 있었어도 별수 없었을 거야. 잡아 놓고 봐봐. 누구라도 당할 얼굴인지 아닌지.”
“예, 예. 아무튼 앞으로는 부처를 만나도 조심하십쇼. 뒤통수 맞지 않게.”
“와아. 곡성 그 개 같은 놈 때문에 별소리를 다 듣네. 꼭 잡아 놔.”
“흐흐, 잊으셨습니까? 제가 남연객점을 가지고 사기친 놈들도 잡아 온 사람입니다.”
심통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의기양양한 그의 모습에 연적하는 아무 소리 못 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눈앞에 반쯤 남은 초반(볶음밥)이 보였다.
다시 먹을까 생각했지만 식어 버린 초반에 손이 가질 않았다.
초반을 보니 다시 곡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재료가 돼지고기와 밀가루밖에 없어서 대충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맛있게 드십쇼.
대충 만든 게 그 정도면 잘 만든 건 얼마나 맛있을까?
이럴 때는 도둑을 잡고 싶은 건지, 그가 만든 초반이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마을을 뒤져 자그마한 마차 한 대와 말 한 마리를 장만했다.
마부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심통이 개봉까지 나가서 마부를 데려왔다.
“소, 소인은 양일이라고 합니다.”
사십 대의 마부는 심통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저씨,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죠?”
“예, 남직례성 합비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가죠.”
연적하는 마부가 긴장해 어쩔 줄 몰라 하자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심통이 마차 옆으로 바싹 붙으며 말했다.
“공자님, 이번에는 사람을 잘 골랐으니 마음 놓고 다녀 오십쇼.”
“뭐라고 했길래 마부가 저래? 내 눈도 못 쳐다보는데?”
“공자님이 누군지 가르쳐 주고, 오래 살고 싶으면 잘 모시라 했습니다.”
“왜 겁을 주고 그래.”
“현실을 알려 준 겁니다. 그럼 잘 다녀오십쇼. 곡성은 제가 잡아다 놓겠습니다. 출발!”
심통의 신호에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조심스럽게 가는지 사람 걸음걸이와 속도가 비슷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심통이 ‘더 빨리!’라고 소리 지르자 마차는 그제야 속도를 높였다.
***
하남성.
상구.
이른 아침.
도시의 관문(關門)을 빠져나가는 관도가 마차들로 꽉 막혔다.
하필 백화상방과 만덕상방의 이동 경로가 겹쳐 생긴 일이었다.
연적하의 작은 마차도 두 개 상방 사이에 끼어 느릿느릿 움직였다.
마차가 기어가자 연적하는 창문을 열었다.
관도는 수십 대의 마차와 백여 명의 쟁자수들이 얽혀서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쯧쯧’ 혀를 차던 연적하는 창문을 슬그머니 닫았다.
일각(15분)이 지난 후에야 마차는 속도를 냈다.
사방이 꽉 막힌 작은 마차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은 꽤나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마차 양쪽 면에 손바닥만 한 작은 창문이 있지만 겨울에는 닫고 다니니 있으나 마나.
마차가 멈추자 연적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튀어 나가 심호흡을 했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양일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공자님.”
“예?”
“아까 얼핏 들으니 동백현의 백화상방이 합비를 지나간다고 합니다. 함께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백화상방요?”
그제야 주위를 살피니 짐을 실은 마차와 쟁자수 들이 길가에 가득했다.
아까 관문에서 얽혔던 상방 중에 하나인 것 같았다.
“예, 상방과 함께 가는 것만큼 안전하고 편한 것도 없어서요. 식사도 숙수가 만들어 주고…….”
상방의 호위무사가 많아서 어지간한 도적들은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게다가 상방은 숙수까지 데리고 다녀 돈만 내면 좋은 음식도 구할 수 있다.
그러니 연적하를 잘 모셔야 하는 양일에게 안성맞춤의 기회였다.
‘식사를 숙수가 만들어 준다’는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숙수였다는 곡성이 만들어 준 요리가 떠올라서다.
“그렇게 하세요.”
“저어, 그러려면 공자님께서 상방의 대표와 말씀을 좀 나누셔야 하는데…….”
양일이 말 끝을 흐렸다.
녹림의 태상호법인 그가 상방과 어떤 대화를 나눌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서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아저씨는 무조건 모른다고만 해요. 알았죠?”
“예, 예.”
양일은 그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자 즉시 물러났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가 전부고 나머지는 연적하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연적하는 일단 가장 크고 화려한 마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가 백화상방의 대행수 백일웅에게 짧게 보고했다.
“대행수님, 인근 백 리(약 40km) 안에 도적이나 위험한 인물은 없습니다. 오늘 저녁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서기 백선화가 웃으며 거들었다.
“호호! 아무렴요. 상월검 백 숙부님이 호위로 나선 상행인데 별일이 있으려고요.”
그러자 상행의 최고 책임자인 백일웅이 짐짓 엄숙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백 서기. 밖에서는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표사와 쟁자수들이 속으로 업신여길 수 있으니 언행에 주의하거라.”
“피이! 옆에 누가 있다고요. 숙부님들밖에 없는데.”
이십 대 중반인 백선화는 고집스럽게 한 번 더 ‘숙부’ 소리를 했다.
“어허. 그러는 게 아니래도.”
백일웅이 나무라자 백선화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그녀의 눈에 한 청년이 들어왔다.
“누가 오는데요?”
적당한 거리가 되자 중양대주 백산우는 자연스럽게 청년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백화상방의 사람들인데, 무슨 일이오?”
“예, 말씀 들었어요. 우리 마부가 그러는데 합비를 지나가신다고요?”
“그렇소만.”
“제가 마침 합비에 갈 일이 있어서 가던 중이거든요. 방향이 같으니 함께 갔으면 해서요. 마부가 여럿이 가는 게 좋으니까 말 좀 잘해 보라고 제 등을 떠미네요.”
백산우가 청년의 아래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몸에 병기를 휴대하지 않은 것과 사내답지 않게 여리여리한 체형이 딱 백면서생이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우선은 신분 확인이 먼저다.
“어디의 뉘시오? 알다시피 아무나 일행으로 받을 수가 없기에 묻는 거요.”
“아, 저는 연씨고, 개봉에서 작은 객점을 하고 있어요.”
“아직 젊어 보이는데 벌써 객점 주인이오? 집안이 좋은가 보구려.”
“남씨 성의 할아버지와 돈을 합쳐서 샀어요. 지금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남씨 성의 할아버지와 돈을 합쳐서 샀다’는 말에야 백산우의 눈빛이 조금 풀어졌다.
완전히 믿어서가 아니다.
만약 거짓이라면 그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럽고 간단하게 했을 것이었다.
‘남씨 성의 할아버지와 돈을 합쳐서 객점을 사고, 지금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식으로 구질구질하게 꾸며 댈 모사꾼은 없으리라.
백산우가 대행수 백일웅을 힐끔 보았다.
자신은 반신반의라 상행의 책임자인 대행수에게 결정을 떠넘긴 것이다.
백일웅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다.
옆에서 빤히 보고 있던 백선화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봐요. 합비에는 무슨 일로 가는데요?”
“백부님을 만나 뵈러 가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왜 만나 뵈러 가냐는 거죠. 합비가 옆 동네도 아니고.”
피차 초면임을 고려하면 조금 지나친 질문이다.
하지만 백일웅은 조카를 막지 않았다.
청년이 그걸 불쾌하게 받아들여 떠나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실하게 답한다면 그에 대해 더 많은 걸 알 수 있으니 그것도 좋았다.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답했다.
“제 혼사 문제를 상의하러 가는 길이에요.”
“그걸 왜 백부님과 상의를 해요?”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요.”
“아, 미안해요. 상행 중에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꼬치꼬치 물었어요.”
백선화는 급히 사과를 했다.
조카를 철부지로만 생각했던 백일웅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떠올랐다.
“연씨라고 했나. 우리 백 서기의 질문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군. 백 서기가 말한 대로 상행 중에는 좀처럼 외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네. 자네가 다소 무례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한 것도 그래서겠지.”
백일웅은 잠시 말을 끊고 청년과 그가 타고 온 마차를 보았다.
수수하다 못해 초라한 마차다.
그가 남씨와 공동으로 운영한다는 객점의 규모와 상태를 알 만도 하다.
문득 측은지심이 일어났다.
인륜지대사를 백부와 의논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짠했다.
“그처럼 좋은 일에 우리가 초를 칠 수는 없지. 합비까지 함께 가도록 하세.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백 서기를 통해 말하고. 노숙지에서의 음식 정도는 재료값만 받고 제공해 줄 수 있으니까.”
음식을 팔겠다는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백 서기와의 대화로 쌓인 정신적인 피로가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연적하의 모습에 백일웅은 뿌듯했다.
돌이켜 보면 자신도 맨손으로 상업에 뛰어들어 대행수 자리까지 올랐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걸세.”
“…….”
언법(言法)의 전승자인 연적하는 빈말이라도 ‘예’라고 하지 않았다.
성실과 노력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