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50
450회.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
하남성.
부양 태화현.
백화상방의 마차와 쟁자수 들이 관도를 가득 메웠다.
입춘이 지난 뒤로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아직 관도에 행인은 없었다.
정오 무렵.
선두가 멈추자 뒤따르던 마차와 쟁자수들도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표사들이 지나가며 ‘휴식!’이라고 소리쳤다.
존은 마차 안에 있던 연적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밖으로 튀어 나갔다.
대화 상대도 없는 데다 마차까지 작아 답답했기 때문이다.
쟁자수들이 모인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그를 보고 양일은 피식 웃었다.
무시무시한 녹림의 고수도 혼자 다니니 심심한가 보다.
쟁자수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음식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여기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갈 모양이다.
연적하는 쟁자수들을 떠나 숙수들에게로 향했다.
먼저 온 몇몇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걸 보니 초반(볶음밥)에 계란탕이다.
연적하도 십오 문을 내고 한 자리 끼었다.
먼저 앉아서 먹고 있던 백선화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연 공자, 우리와 함께 가길 잘한 거 같죠?”
“예. 건량은 오래 못 먹겠더라고요.”
숙수의 요리를 사 먹는 이십 대가 없어서 두 사람은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쟁자수들 중에 이십 대는 많았지만 그들은 돈을 아끼느라 요리를 사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야외에서의 식사 때마다 둘은 같이 먹곤 했다.
“그쪽 객점 숙수와 우리 상방 숙수 중에 누가 더 요리를 잘하는 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았다.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법 흥미로운 소재였다.
“비슷한 것 같아요.”
숙수들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정말 연적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곡성의 요리를 먹은 뒤로 어지간한 건 눈에 차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비슷하다고요? 우리 곽 숙수는 정주에서 알아주는 요리사인데. 연 공자 객점에 그 정도 숙수가 있다니 놀랍네요. 인복이 있나 보다.”
그러자 중년의 표사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비슷하다고 해서 정말 비슷하다는 보장은 없지. 곽 숙수와 촌구석 객점 숙수의 실력이 비슷할 리가 있나.”
연적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선화는 동의하지 않았다.
“모르죠, 연 공자의 객점에 실력 좋은 숙수가 있을지도. 강호의 은거 고수들처럼. 작은 객점이라고 엉터리 숙수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렇죠? 연 공자?”
백선화의 물음에 연적하는 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표사가 한마디 했다.
“연 공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지 말고 본인의 생각을 확실히 밝히게. 남자가 그렇게 소신 없이 사는 것도 별로라네. 백 서기와 홍 표사 앞에서 당당히 말하게. 누가 더 요리를 잘하는지.”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가 소신의 유무로 튀었다.
그의 말에 식사를 하던 다른 표사들은 물론 숙수까지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이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연적하가 마지못해 답했다.
“정말 제 입맛에는 비슷하다니까요.”
그러자 표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우유부단한 사람 같으니.”
“얼굴이 흐릿하게 생겨 먹었잖아.”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눈치만 빠삭해서는……. 대성하기는 틀렸어.”
숙수 이야기는 그렇게 정리됐다.
연적하는 사람들의 그런 극단적인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선화도 그렇고 모두가 경쟁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누가 더 뛰어난가?
비슷하다니까 ‘우유부단하다’, ‘흐릿하다’, 심지어 ‘눈치만 빠삭하다’고 한다.
시무룩한 얼굴로 초반을 씹는 연적하에게 백선화가 위로하듯 말했다.
“연 공자,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아요. 이게 다 연 공자 잘되라고 하는 소리니까. 연 공자도 객점을 운영한다니까 알잖아요. 물건을 팔고, 손님을 상대한다는 건 무림인들의 싸움과 같아요.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죠.”
“저는 별로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꼭 최고가 되라는 게 아니라, 험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혼인 문제로 백부를 만나러 간다고 했죠?”
“예.”
“처와 언젠가 태어날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노력해야죠. 그러다 객점이 쫄딱 망하면 어쩌려고요.”
“망하면 다행이죠. 어차피 처가 될 여자에게 객점이 맞지도 않아요.”
그의 자조 섞인 푸념에 백선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객점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망하면 다행이란다.
그것도 처가 될 여자에게 객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린지 모르겠다.
위로하려다가 기분만 상한 백선화는 따끔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여자에게 맞지 않는다고 객점이 망하길 바라다니. 그런 정신머리로 용케 살아왔네요? 내 생각에 연공자에게 혼인은 백 년쯤 이른 것 같네요.”
그 말을 끝으로 백선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표사들도 기막힌 얼굴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살다 살다 여자에게 안 맞는다고 제 객점이 망하길 바라는 놈은 처음이다.
부자가 그런 소리를 하면 이해라도 된다.
코딱지만 한 마차 하나를 끌고 다니는 놈이 그러니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표사들도 불쾌한 얼굴로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법인데.”
중얼거리고 있는 연적하에게 숙수 곽효가 다가갔다.
“소형제,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하니 그릇을 비워 주게.”
“벌써요?”
평소보다 빠른 그릇 정리에 연적하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출발하려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맛도 없는 초반을 뭘 그렇게 붙들고 있나? 시간 없으니 서두르게.”
“먹다 말고 가라고요?”
“뭘 먹어? 아까부터 깨작거리기만 하는 걸 봤구먼. 아 그릇 달래도!”
곽효의 재촉에 연적하는 반이나 남은 초반과 계란탕을 그릇째 반납했다.
곽효는 연적하 앞에서 남은 음식을 숲에다가 뿌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백선화가 마차에 올라타자 대행수이자 숙부인 백일웅이 한마디 했다.
“연 공자와 너무 자주 어울리는 것 같구나. 괜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조심하거라.”
“구설수요? 숙부님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절대 그런 소리 안 하셨을걸요?”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어휴! 말도 마세요.”
백선화는 조금 전 연적하와 나누었던 대화를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자기 여자에게 객점이 안 맞는다고 망했으면 좋겠다니, 그게 어디 제정신 가진 사람이 할 소리예요? 그래서 한마디 해 줬어요. 혼인하려면 백 년은 이른 것 같다고.”
“허허! 정말 그가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같이 있던 표사들도 듣고 다들 얼마나 황당해하던지. 숙부님도 봤어야 한다니까요.”
“여자에게 맞지 않는다고 제가 운영하는 객점이 망하기를 바라다니. 정말 철없는 녀석이로군.”
“그런 사람이 객점 주인이라니, 세상 참 불공평한 것 같지 않아요? 보나마나 부모가 남긴 유산으로 산 걸 테죠? 한심해서 원.”
“네가 그를 한심하게 여기니 다행이다. 합비까지 동행해야 하니 너무 구박하지는 말고, 그를 타산지석 삼아 더욱 정진하도록 해라.”
“누군지 여자가 불쌍해요. 평생 그런 한심한 남자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잖아요.”
“사람마다 팔자가 있는 법이다. 그게 그 여자 팔자라면 어쩔 수 없는 게지. 그건 그렇고 남궁세가로 가는 물건은 확인해 보았느냐?”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는 오전에도 한차례 점검했어요.”
옥주는 옥으로 만든 조각품이고, 당삼채는 세 가지 색 유약으로 만든 도기다.
모두가 가벼운 충격에도 깨지기 쉬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물건이었다.
“남궁세가 직계들이 사용할 물건이라니 소홀히 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남궁세가는 검왕과 청운검, 십전무후 이 세 사람으로 인해 합비뿐 아니라 안휘성의 패주라 불리고 있다. 합비에 분점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방이 남궁세가를 찾아다니는지 아느냐.”
“알아요. 제가 이번 상행을 따라온 것도 그래서인걸요?”
“어린 네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청운검과 십전무후가 제 또래잖아요. 혹시 알아요? 대화가 잘 통할지.”
“네가 그들의 얼굴을 볼 기회나 있을지 모르겠다. 외부 사람들과는 왕래를 안 한다고 하는데.”
“물건을 배달하고 설치하다 보면 분명히 만날 기회가 생길 거예요.”
“행여나 섣불리 나대다가 그들의 눈 밖에 날까 두렵구나. 남궁세가가 기침만 해도 백화상방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설마요. 우리가 무림의 방파도 아닌데 문까지 닫게 하겠어요?”
“설마라고? 그러니 네가 어리다는 게다. 꼭 칼로 찍어 눌러야 망하는 줄 아느냐? 남궁세가의 눈 밖에 나면 거래처가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고사(枯死)하게 되는 게다.”
“네, 네, 최대한 그들의 비위를 맞춰 줄게요. 제가 눈치를 얼마나 잘 보는데요. 아주 입속의 혀처럼 굴 자신 있어요. 다 녹여 버릴게요!”
“쯧쯧! 그렇게 허튼소리나 할 생각이면 아예 남궁세가에 얼씬도 하지 마라. 그들이 네 재롱을 받아 줄 것 같으냐? 칼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저를 너무 무시하신다. 제가 이래 봬도 정주에서 손꼽히는 미녀라고요. 혹시 알아요? 청운검이 저의 매력에 홀딱 넘어올지.”
“아서라. 청운검은 임자 있는 몸이다. 창인문의 진설하와 사귄다는 소문도 못 들었느냐?”
“그야 소문일 뿐이죠. 생각해 보세요. 청운검이 뭐가 아쉬워서 진설하와 만나겠어요?”
“너는 되고?”
“그래도 제 뒤에는 백화상방이라도 있잖아요.”
“하여간 저 자신감이 문제야. 청운검의 눈에 백화상방이 보이기나 하겠느냐? 허튼소리 하지 말고 남궁세가에서 주문한 물건이나 잘 관리해라. ‘옥주’와 ‘당삼채’에 문제가 생기면 방주를 볼 낯이 없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차에 곱게 싣고 가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요?”
“방심하지 말고. 합비까지 칠 일 남았으니 그때까지 긴장 늦추지 마라.”
“네, 네. 알겠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대답과 달리 그녀의 눈은 가까운 마차를 보고 있었다.
지붕에 보란 듯 백화상방의 깃발이 꽂혀 있는 가장 튼튼한 마차.
저곳에 실린 ‘옥주’와 ‘당삼채’는 백화상방의 합비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다.
***
하남성.
부양 부남현.
회하(淮河) 인근.
삼십여 명의 무인이 강변의 폐가에 모여 있었다.
통일성 없는 복장과 다양한 병기를 보니 낭인이다.
추위에도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잠시 후 복면을 한 사내가 부서진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왔다.
무질서하게 앉아 있던 낭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복면 사내를 향했다.
복면 사내가 낭인들의 우두머리인 송추안에게 다가갔다.
“백화상방의 마차가 태화현을 지나고 있다.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회하를 건널 것이다. 무리하지는 마라. 우리가 원하는 건 표물이 아니니까.”
송추안이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도 재주껏 알아서 챙기는 것쯤은 괜찮겠지요?”
“아서라. 괜히 욕심부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너희만 손해다. 그러니 맡은 일이나 하는 게 좋을 게다.”
송추안의 표정을 보니 복면인이 누군지 아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복면은 아마도 다른 낭인들에게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쓴 것이리라.
복면인이 확인하듯 거듭 말했다.
“물건을 실은 마차들 중에 크고 튼튼한 마차가 있다. 지붕 한복판에 백화상방의 깃발이 꽂혀 있으니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마차를 부수거나 불태우면 된다. 그것만 제대로 하면 잔금을 지불하겠다.”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송추안이 낭인들 앞으로 나섰다.
“들었지? 회하를 건널 때 치는 거다. 지붕에 백화상방의 깃발이 꽂힌 튼튼한 마차만 노린다. 뒤로 빠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막간을 이용해 훔치는 것은 자유지만, 욕심부리다 뒈질 수 있으니 알아서 처신하고. 일을 마친 후에는 약속한 장소로 와라. 오늘 자정까지만 그곳에서 기다릴 테니까, 제대로 정산받고 싶으면 늦지 마라. 이상.”
그의 설명이 끝나자 낭인들은 각자의 병기를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복면인은 송추안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말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