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51
451회. 그래 봐야 자기들 손해지
하남성.
부양 부남현.
해거름 무렵.
백화상방의 마차와 짐꾼 들이 부남현 외곽에 도착했다.
정찰에서 돌아온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가 대행수 백일웅을 찾아갔다.
“대행수님, 십 리(약 4km) 앞에 회하가 있습니다. 마을로 가면 길을 돌아가게 되는데, 어찌할까요?”
“강변에 묵을 곳은 있나?”
“버려진 집들이 십여 채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변에서 하룻밤 묵고, 날이 밝으면 강을 건너기로 하지. 객점 하나만 보고 길을 돌아가기는 좀 그렇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마을까지 이십 리(약 8km)를 가야 하는데 왕복할 걸 생각하면 시간 낭비입니다.”
“근방에 도적 떼가 있다던가?”
“부남현에 도적 떼가 출몰한다는 소문은 아직 없습니다. 녹림이 아니라면 설령 도적 떼가 있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부양에 진출한 녹림은 없지?”
“그렇습니다. 육안(大安) 곽구현의 성서채가 가장 가깝습니다.”
“가깝다 해도 이틀 거리고, 그들이 부양까지 움직일 일은 없을 거야.”
“맞습니다. 우리가 성서채와 조우할 일은 없습니다. 영상현과 수현을 거쳐 회남으로 들어갈 테니까요.”
회남에서 합비의 남궁세가까지는 이틀 길.
사실상 회남까지만 가면 상품 운송은 성공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양에 녹림이 없다면 강변에서 하룻밤 쉬어 가지 못할 것도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빈집들을 조사하고, 경계에 빈틈이 없도록 하게. 이번 상행에 삐끗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살피겠습니다.”
“그래, 자네가 직접 챙겨 주게. 강변은 워낙 변수가 많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거든.”
“너무 심려 마십시오. 성서채가 움직이면 그들보다 소문이 먼저 닿을 테니까요.”
“그러겠지. 녹림이야 워낙 눈에 띄니까. 여하튼, 알겠네. 그럼 적당한 숙영지로 안내해 주게.”
“예.”
백산우가 중양대의 호위들을 이끌고 선두로 나섰다.
백화상방의 마차와 짐꾼 들이 석양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회하(淮河) 강변.
가장 크고 덜 부서진 집을 중심으로 마차와 짐꾼 들이 둥글게 배치됐다.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를 가득 실은 마차는 마당 한가운데 세웠다.
사람과 짐으로 벽을 세운 셈이다.
대충 숙영 준비를 마치자 짐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건량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별채에서 숙수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앞마당으로 들어냈다.
냄새를 맡고 중양대 호위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마지막으로 연적하가 어기적어기적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의 호위 홍정로가 연적하를 힐끗 보고 한마디 했다.
“연 공자는 보기보다 돈이 많은가 봐. 끼니때마다 사 먹으러 오는 걸 보니.”
누군가 말을 받았다.
“자기 객점이 망해도 괜찮다는 사람 아닙니까? 열 닷문이야 새 발의 피겠죠.”
“이봐. 새 발의 피라고 무시하지 마. 아무리 새 발이래도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다고.”
홍정로의 말에 젊은 호위들이 키득거렸다.
전과 달리 호위들이 비아냥거리자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낮의 일로 호위들에게 단단히 찍힌 것 같았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확 밟아 버릴까?’
그가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다.
연적하의 표정이 좋지 않자 백선화가 나섰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놀리는 게 좋아 보이지 않네요. 백화상방의 이름으로 다니는 동안은 언행에 주의해 주시기 바라요. 연 공자,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요. 다들 그냥 하는 말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보통의 서기라면 호위들이 발끈했을 테지만 그녀는 방주의 조카다.
호위들은 멋쩍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연적하가 백선화를 힐끔 보았다.
여러모로 특이한 여자다.
예리하고 집요한 구석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아는 것 같다.
서기라면서 호위들에게 거침없이 지적질 하는 걸 보니 뒷배가 상당한 모양이다.
호위들은 무림에 한 다리 걸친 사람들이라 문사(文士)를 경원시했다.
당연히 서기를 개똥으로 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묘한 분위기는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백 소저.”
“네?”
“집안이 좋은가 봐요?”
백선화가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기껏 편을 들어 주었더니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드센 호위들이 서기 말에 찍소리도 못 하는 걸 보니까 신기해서요.”
순간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호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척 봐도 자존심이 상한 얼굴들이다.
당황한 백선화가 급히 되물었다.
“연 공자,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건 알아요?”
“그런 말을 할 때가 따로 정해져 있어요?”
연적하가 눈을 끔뻑였다.
그는 녹림에 발을 담근 이래로 누군가의 눈치 따위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백선화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순진무구한 그의 표정에 백선화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욕을 꾹 눌러 참았다.
“연 공자, 식사나 하고 얼른 가서 자요. 남의 집안 내력은 알아서 뭐 하게요.”
“아,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요.”
연적하는 ‘당신의 집안이 좋아서 호위 앞에서 큰소리치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럴 법한 사연이 있음을 알아 달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백선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를 박박 갈고 있는 호위들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이봐요. 연 공자. 나는 연 공자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연 공자의 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요. 그러니 조용히 식사나 하고 가세요. 연 공자도 여기에 식사를 하러 온 거잖아요.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죠.”
“그럼 식사나 하세요.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부, 불편하게 만들었다고요? 내가?”
그의 물음에 백선화가 단호하게 답했다.
“네. 연 공자 때문에 여기 분위기 싸해진 거 안 느껴져요?”
“오자마자 기분 나쁜 소리를 듣고 불편해진 사람은 난데 왜 내가…….”
“그 일은 내가 대신 사과했잖아요. 그 뒤로 연 공자가 호위와 저를 두고 이상한 말을 해서……. 하아, 됐어요. 연 공자.”
“네.”
“내일 아침에 각자 갈 길을 가도록 해요. 연 공자와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피차 더 불쾌감이 쌓이기 전에 안보는 게 낫겠어요. 대행수님에게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까 조용히 가 주세요.”
“와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상방과 동행하던 중에 쫓겨나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또래에게 ‘가 달라’는 말을 들으니 충격이 컸다.
뒤이어 민망함과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기분은 꾸질꾸질한데 그녀에게 충분한 사과를 들어서인지 화는 나지 않았다.
“쩝, 그럽시다.”
입맛이 싹 달아난 연적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마차로 돌아갔다.
마차 옆에서 건량을 먹고 있던 마부 영일이 달려와 허리를 굽실거렸다.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그는 연적하의 입맛이 은근 까다롭다는 것을 알고 그것부터 물었다.
“안 먹었어요.”
“어이쿠! 싫어하는 요리가 나왔나 보군요. 건량이라도 준비해 올릴까요?”
“싫어한다기보다는 뭘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예? 왜요?”
연적하의 입에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 술술 흘러나왔다.
“……서로 맞지 않으니 내일 아침에 조용히 떠나래요. 같이 있어 봐야 피차 좋을 거 없다고.”
“…….”
양일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방에게 관부보다 더 어려운 상대가 녹림이라는 것은 세 살짜리 애도 안다.
그런데 녹림의 이인자인 연적하에게 그런 짓을 했다니?
물론 정체를 모르니 그랬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죄였다.
녹림도들은 자기 기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학살하곤 했으니까.
특히나 무림 방파보다 약한 상방은 녹림의 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어, 내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
“백 서기가 하라는 대로 조용히 가실 건지, 아니면 사람들을…….”
양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싹 다 죽이고 마차를 불태우실 거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람들을 뭐요?”
“아니요. 그냥 정말 조용히 떠나실 건지 궁금해서요.”
“소원이 그거라는데 들어줘야죠. 우리가 조금 늦게 출발하면 되겠죠. 아저씨도 내일은 새벽부터 서두르지 말아요. 느긋하게 가자고요.”
“예, 예. 그럼 내일 아침 식사도 준비할까요?”
“그래야죠. 갈라서는 마당에 구질구질하게 그쪽을 기웃거리고 싶지 않네요.”
“그럼, 내일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지금은 이거라도 드시겠습니까?”
양일이 들고 있던 건량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연적하는 저녁으로 뭐라도 먹어야 하는지라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양일이 연적하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사람들이 야박하네요. 그거 며칠 동행하고는 가라 마라 하니원.”
“그렇게 살라 그래요. 그래 봐야 자기들 손해지. 나는 손해 볼 거 하나도 없으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자기 복을 발로 찬 거죠. 숙수 하나 있다고 유세야 뭐야.”
다시 연적하의 식사를 책임지게 된 양일은 백선화의 처사가 원망스러웠
은근 입이 짧은 연 공자를 앞으로 어떻게 만족시킬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
다음 날 새벽.
백화상방의 사람들은 해가 뜨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느 때처럼 돈 없는 짐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건량으로 아침을 해결했고, 상인과 호위들은 숙수가 만든 뜨끈한 도삭면(刀削麵, 칼국수의 일종)으로 배를 채웠다.
백선화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겨우 지붕만 남아 있는 헛간 앞에 작은 마차가 보였다.
연 공자의 마차다.
어젯밤에 싫은 소리를 했더니 아침을 건너뛸 모양이다.
늘 눈앞에서 알짱거리던 그가 보이지 않으니 조금 신경이 쓰였다.
‘내가 좀 심했나? 그렇게 내쫓을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때마침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웬일로 연 공자가 늦는군. 요리 냄새만 나도 달려오던 사람이.”
어젯밤의 일을 아는 호위들이 백선화를 힐끔거렸다.
백선화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제가 상행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어요.”
“응? 그건 무슨 소리냐?”
“호위들과 가벼운 충돌이 있어서 제가 중재를 해 줬는데, 눈치 없는 소리로 분위기를 해쳐서…….”
‘충돌’이라는 말에 무심코 듣고 있던 백산우가 정색을 했다.
호위들은 모두 중양대의 무사라 자신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충돌은 뭐고, 분위기를 해쳤다는 건 또 뭐냐?”
백산우가 자세히 캐묻자 백선화는 지난밤의 일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래서 아침에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했어요. 연 공자와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피차 더 불쾌감 쌓이기 전에 그만 보자고.”
“…….”
백산우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다.
상행 중에 뜨내기 하나를 받아들였다가 눈치 없이 굴어 내쫓은 거니까.
하지만 중양대 무사들이 먼저 그를 희롱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지난 일로 수하들을 책망할 수는 없었다.
조카의 결정을 번복해 그녀를 우스운 꼴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서기가 결정한 일이니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백화상방의 품에 들어온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백산우는 씁쓸한 얼굴로 백선화를 보았다.
장사꾼이라면 행동에 앞서 손익부터 계산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카는 이번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한 것 같았다.
그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