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52
452회. 공자님의 저주는 아니고요?
하남성.
부양 부남현.
회하 강변.
이른 아침.
열 대의 마차와 사십여 명의 짐꾼이 나루터를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선두와 후미에는 각각 열다섯 명의 호위무사들이 차분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강에 도달한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상단 행렬이 생각보다 길게 늘어져 신경 쓰였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말을 몰아 나루터로 달려갔다.
선주(船主)와 미리 조율을 해 두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가 막 말에서 내려 선주에게 다가갈 때다.
“어……?”
선주가 입을 쩍 벌리고 백산우의 뒤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백산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말을 탄 삼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마차로 몰려가고 있었다.
방금까지 강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옆구리를 찔려 버렸다.
대경실색한 백산우는 선두의 무사들에게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도적이다! 마차를 지켜라!”
동시에 그는 재빨리 말 위로 몸을 날렸다.
“이랏!”
급한 마음에 말에 박차를 가했지만 그보다 복면인들이 훨씬 빨랐다.
복면인들이 난입하자 짐꾼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짐꾼과 달리 마부들은 줄지어 가던 중이라 혼자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중간에 낀 마부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복면인들이 들이닥쳤다.
아침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화상방이 떠난 빈자리를 보고 있으려니 쫓겨났다는 게 실감 났다.
‘기분 참 그렇네…….’
씁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연적하에게 양일이 다가왔다.
“공자님, 슬슬 출발할까요?”
“백화상방이 떠난 지 얼마나 됐어요?”
“한 시진(2시간)은 지났습니다.”
“그럼 만날 일은 없겠죠?”
“어이쿠! 당연하지요. 지금 시간이면 회하를 건넌 지도 한참 됐을 겁니다.”
“가요.”
“예.”
마부석으로 올라간 양일은 연적하가 마차에 오르자 가볍게 고삐를 흔들었다.
작은 마차가 천천히 강변으로 나아갔다.
‘응?’
양일이 눈을 찌푸렸다.
강으로 이어진 길이 백화상방의 짐꾼들로 막혀 있었다.
한 시진이나 먼저 출발한 저들이 왜 길바닥에 쪼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차를 본 짐꾼들이 그만 오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결국 양일은 짐꾼들 뒤에 마차를 세워야 했다.
“백화상방의 분들 아니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짐꾼 중에 하나가 양일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도적 떼가 나타나서 난리도 아니었소. 마차를 정비한 뒤에 움직인다고 하니 기다리슈.”
“도적 떼요?”
“갑자기 서른이나 되는 도적 떼가 튀어나와서 큰 싸움이 났었수.”
“헉! 녹림입니까?”
양일은 녹림부터 떠올렸다.
연적하의 일도 있지만, 이렇게나 많은 호위를 보고도 덤벼들 도적은 녹림뿐인 까닭이다.
“우리야 거기까지는 모르지. 윗분들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싸움은 어찌 됐습니까?”
“마차 세 대가 부서졌수. 물건은 빼앗기지 않았는데 윗분들 표정이 아주 죽을상인 걸 보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더이다. 그쪽도 조용히 기다리쇼. 괜히 먼저 가려고 설치다가 욕먹지 말고. 윗분들 분위기가 장난 아니니까.”
“아, 예. 우리는 바쁠 거 없습니다. 어차피 상방을 먼저 보내고 갈 거라서요.”
양일은 아예 고삐를 옆에 내려놓았다.
괜히 신경이 예민한 백화상방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잠시 멀뚱멀뚱 앉아 있던 그는 마차 쪽으로 힐끔 고개를 돌렸다.
‘설마, 아니겠지?’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연적하가 따로 만난 사람이 없으니 그의 복수는 아닐 것이다.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양일은 의심을 버리지는 못했다.
마차 안에서 듣고 있던 연적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좁은 마차 안에 있기가 답답한 것도 있지만, 얼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는지 궁금해서다.
쪼그려 앉아 쉬고 있는 짐꾼들 앞 쪽으로 마차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호위무사들이 새까맣게 불탄 마차 앞에 개미 떼처럼 모여 있었다.
연적하는 조금 더 잘 보기 위해 마부석 위로 올라가 양일 옆에 털썩 앉았다.
“어디 보자. 한 대가 불타고 두 대는 조금 부서졌네. 저 정도면 선방(善防)한 거 아닌가?”
연적하가 중얼거리자 양일이 되물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분위기가 어째 초상집 같지 않습니까? 열 대 중에 한 대만 못 쓰게 됐는데…….”
“저 한 대에 고가품이 잔뜩 실려 있었나 보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신기하네요.”
“뭐가요?”
양일이 부서진 마차를 가리켰다.
“지붕에 깃발이 꽂혀 있는 마차들만 부서진 것 같아서요.”
“오, 그러네요. 아저씨 눈썰미가 보통이 아닌데요? 깃발의 저주인가.”
연적하의 말에 양일이 지나가듯 말했다.
“공자님의 저주는 아니고요?”
“어이쿠!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에요.”
마부석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호위 하나가 다가왔다.
“연 공자. 잠깐 나 좀 봅시다.”
“나요?”
“그럼, 여기 다른 연 공자가 또 있소? 잠깐 내려와 보시오.”
“아, 그럴까요?”
연적하가 아래로 내려가자 호위는 바로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오. 대주님께서 잠깐 만나자고 하시오.”
“나를요? 왜요?”
몇 걸음 걷던 호위가 멈칫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눈치 없는 건 알고 있지만, 오늘은 말을 조심해야 할 거요.”
“그러니까 왜요?”
“그건 대주님을 만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요.”
이윽고 더 이상 말 섞기 귀찮다는 듯 호위의 걸음이 빨라졌다.
호위는 연적하를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와 대행수 백일웅 앞으로 데리고 갔다.
멀뚱멀뚱 서 있는 연적하에게 백산우가 말했다.
“연 공자, 보다시피 오늘 아침 백화상방이 이곳에서 습격을 당했소.”
“그런 것 같네요.”
“절차상 몇 가지만 물어보겠소.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무얼 하고 있었소?”
“잤죠.”
“따로 만난 사람은 없소?”
“우리 마부 외에는 만난 사람이 없는데요? 설마 나를 의심 하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오. 연 공자뿐 아니라 백화상방과 함께했던 모든 사람을 조사하고 있으니까. 호위는 물론 상인과 짐꾼들에게까지 예외 없이 같은 질문을 했소.”
잠시 말을 끊었던 백산우가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꼼짝 않고 잠만 잤다는 거요? 만난 사람도 없고?”
“예.”
“그 시간에 연 공자가 다른 곳에 있는 걸 본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연 공자를 도적들과 한패로 여길 거요.”
“그냥 잤다니까요.”
“알겠소. 가 보시오.”
막 돌아서려던 연적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마차 한 대만 불타고 나머지는 멀쩡한 것 같던데, 왜 분위기가 이래요?”
“열 대 중에 한 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의 인생 전부가 불에 탄 것일 수도 있소. 그러니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시오.”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연적하가 휘적휘적 왔던 길을 돌아갔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대행수 백일웅이 슬쩍 물었다.
“어떤가? 연 공자가 이 일에 관여 됐을 것 같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흠! 그런가? 그를 쫓아내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니 왠지 마음에 걸려서.”
“오비이락(烏飛梨落)일 뿐입니다. 그가 복면인들과 한패였다면 벌써 달아났을 겁니다.”
“하기야 그랬겠지? 하아! 남궁세가로 가야 할 물건들이 모조리 불에 탔으니. 대체 어떤 놈들 소행인지…….”
백일웅이 기막힌 눈으로 잿더미가 된 마차를 보았다.
“그 와중에 강탈당한 물건이 없는 걸 보면 도적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놈들이 물건 집어 가는 걸 보았는데?”
“몇 가지 물건을 집어 가기는 했습니다만, 모두가 부서진 세 대의 마차에 한해서입니다. 다른 마차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허면 저들이 남궁세가의 물건을 노렸다는 말인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마차를 부수고 불을 질렀습니다. 아무래도 상방 내부에 외부와 소통한 간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백화상방의 남직례성 진출을 막기 위한 세력의 짓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놈들은 깃발이 달린 마차만 노렸습니다. 마차에 뭐가 실렸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소리지요.”
“그게 목적이라면 성공했군. 남궁세가로 가야 할 물건이 모조리 불에 타 버렸으니.”
그때 부서진 마차를 조사하러 갔던 백선화가 돌아왔다.
“대행수님, 남궁세가로 가야 할 물건은……. 다 깨지고 불에 그을려서 폐기 처분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두 대의 마차에 실린 물건은 그래도 온전해요. 마차만 수리하면 굳이 옮겨 싣지 않아도 되겠어요.”
백일웅이 허탈한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차라리 아홉 대가 부서지더라도 그 한 대는 온전했어야 하는데…….”
백선화가 백산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숙부님, 복면인들의 정체는 알아냈나요?”
“아직 모르겠구나.”
백산우가 고개를 저었다.
복면인들은 번개처럼 치고 빠졌다.
호위들이 재빨리 반격해 둘을 죽였지만 애석하게도 사로잡은 자는 없었다.
“연 공자와 말씀을 나누는 것 같던데, 그는 어떻던가요?”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잠만 잤다고 하더구나. 그가 돌아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복면인들과 한패가 아닌 것 같다.”
“그가 앙심을 품었다면…….”
“그를 쫓아낸 게 어젯밤이다. 설사 앙심을 품었다 해도 복면인들과 엮일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하지만 이번 상행에서 오직 그만이 우리와 불편한 관계였잖아요.”
“대행수님께도 말씀드렸지만 공교롭게 그리된 것뿐이다. 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그를 거론하지 마라.”
“……예.”
백선화는 중양대주인 백산우의 판단을 믿었다.
그가 만나 보고 아니라고 판단했으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대행수님, 남궁세가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백배사죄해야지. 다음 상행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재계약을 할 생각이다만. 그들이 받아 줄지 어떨지는 모르겠구나. 하남성에 상방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상방이 끼어들기 전에 밀어붙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밀어붙인다고? 물건을 약속한 날짜에 가져다주지 못해 신용이 깨졌는데 가능할 것 같으냐? 오히려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우리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도적들에게 습격당해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도적에게서 물건을 지키지 못한 것은 상방의 수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백화상방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알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번 일로 손해를 본 건 우리인데, 만회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아직 다른 상방이 이번 일을 알지 못하니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남궁 세가에 선물을 준비하고, 최대한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보자꾸나.”
“네에.”
백선화는 마차로 돌아가 장부를 확인했다.
남궁세가에 선물로 줄 만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백일웅과 백선화만 연적하를 수상하게 생각한 건 아니다.
예컨대 지난밤 연적하를 조롱했던 중년의 호위 홍정로와 그의 후배 고주일이 그랬다.
후미에서 짐꾼들을 지키고 있던 고주일이 홍정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선배님. 저 연 공자라는 놈, 좀 수상하지 않습니까? 저놈을 내보내자마자 습격당한 것도 그렇고, 별 볼 일 없는 놈이 돈을 펑펑 쓰는 것도 그렇고.”
“그렇지? 대주님은 증거가 없어서 그냥 놓아준 모양인데. 저런 능구렁이 같은 놈을 상대할 때는 인정사정 봐주면 안 돼. 도둑에게 ‘너 도둑이냐?’고 백 번을 물어봐라. ‘예’라고 하는 놈 있나.”
말하다 말고 홍정로가 고주일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어딜요?”
“자백받으러.”
홍정로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연적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