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58
458회. 내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아요.
다음 날 새벽.
백선화는 아침 식사를 하러 숙수의 마차로 가는 길에 뒤쪽을 힐끔 보았다.
딱 눈이 닿는 언덕 위에 보란 듯 작은 마차가 서 있었다.
연 공자의 마차다.
‘끈질긴 사람.’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과 함께 명치 어림이 단단하게 뭉쳤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불편함이 덜하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이 마음을 더 헤집는 느낌이다.
그들의 눈에는 누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다들 못 본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왠지 연 공자를 동정할 것 같았다.
사정이야 어떻든 일방적으로 쫓겨난 건 그니까.
약자 편에 서는 게 인지상정이니 자신을 무서운 여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입맛이 싹 달아났다.
백선화는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주변 시선에 떠밀리듯 계속 걸어갔다.
곽효 숙수의 마차 주변에는 적지 않은 호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백선화를 보자마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명은 먹던 그릇을 들고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다.
백선화는 그런 호위들과 힘들게 눈을 맞추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네요. 오늘 아침은 조조계(曺操鷄, 닭찜의 일종)인가요? 냄새가 좋은데요?”
그런데 호위들의 반응이 영 이상하다.
어설프게 웃으며 모두가 시선을 피하는 분위기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선화의 눈에 때마침 문엽성이 들어왔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다?
게다가 한쪽 뺨에는 화상을 입었는지 벌겋게 물집이 잡혀 있었다.
“문 호위, 얼굴을 데었어요?”
“아, 예. 그렇게 됐습니다.”
“어머, 조심하지. 하필 얼굴을 데셨담.”
나름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넨 그녀는 곽효에게 걸어갔다.
입맛은 없지만 상행을 위해 조금이라도 먹어 두려는 생각에서다.
그때 언제 왔는지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가 다가와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좀 하자꾸나.”
“예? 예.”
식전부터 무슨 급한 이야기인가 싶어 백선화는 백산우를 따라갔다.
“무슨 일인데요? 어? 그런데 숙부님 얼굴이 왜 그래요? 문 호위도 화상을 입은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백산우도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백선화가 빤히 바라보자 백산우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연 공자에게 찾아가 사과를 해 줘야겠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왜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그러자 백산우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우선 네가 그를 쫓아낸 것부터 사과하거라.”
“그가 먼저 호위들 앞에서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소리를 지어낸 것은 아니지 않으냐? 네가 노력한 것은 알고 있다만, 방주님의 딸이 아니었다면 어린 너를 서기에 임명했겠느냐? 그동안 네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부인할 생각이냐?”
“숙부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봐라. 지금도 너는 중양대 대주인 나를 탓하고 있지 않으냐. 너는 특권이 일상이라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걸 지적한 연 공자를 네가 쫓아낸 게다. 그래도 너의 잘못을 모르겠느냐?”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마땅히 제가 누려야 할 것들이잖아요. 제가 거부한다고 사람들이 저를 평범한 서기 취급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네가 누린 삶이 잘못됐다고 사과하라는 게 아니다. 네가 특별하게 살아온 너의 삶을 부인하고, 그걸 지적한 연 공자를 쫓아낸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이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숙부님 말씀대로 저는 방주의 장녀예요. 상방의 서기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연 공자를 쫓아낼 권리가 있어요. 그래서 숙부님도 반대하지 않았잖아요. 이제 와서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순간 울컥한 백산우가 버럭 소리다.
“권리라는 말을 그런 데 쓰지 마라! 네가 쥐꼬리만 한 권세로 그를 찍어 누르니, 그가 힘으로 우리를 찍어 눌러도 할 말이 없지 않으냐!”
“힘으로 찍어 누르다니요?”
백산우가 머리에 쓴 두건을 풀어 헤쳐 문드러진 정수리를 보였다.
“왜, 왜 그렇게 되신 거예요?”
“하아! 어젯밤 연 공자를 처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실패했다. 나까지 나섰지만 그의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지. 그는 무림의 고수였다. 중양대로도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결국 무릎을 꿇었다.”
“연 공자가 무림의 고수라고요?”
“홍정로와 고주일이 네게 한 말을 기억하느냐?”
“예.”
“연 공자를 두고 한 말일 게다. 그들이 너를 유독 따랐으니 보다 못해 손을 쓰려고 했겠지. 이제야 그들이 침묵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혹시 연 공자가 저의 사과를 원했나요?”
“그래. 어떻게든 돈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는 돈과 너의 사과를 원했다.”
“그렇다면 사과를 해야겠네요. 할게요.”
백선화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능동적으로 나서는 게 보기에도 좋으니까.
백산우와 대화를 끝낸 백선화는 곧바로 연 공자의 마차로 향했다.
속은 쓰리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한편으로 ‘이런 꼴을 보려고 상방에 투신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장사란 본디 쓸개를 빼고 해야 한다니 견딜 생각이다.
마침 연 공자는 모닥불 앞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음식이 눈에 익어 다시 보니 곽효 숙수가 만든 ‘조조계’다.
이미 상단에서 그를 귀빈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적하 앞에 다다른 백선화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연 공자. 중양대 대주님께 말씀은 전해 들었어요. 저의 언행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용서해 주세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랬어요.”
모처럼 맛있는 요리에 흠뻑 빠져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과를 원하니 하러 온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왜 자신이 그녀에게 화가 났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연적하의 입에서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맞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허풍으로 받아들였지.’
그래서 ‘당신이 방주 딸이라 대우 받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해 주려 했다.
하지만 ‘백선화의 특별한 대우’에 대해 말을 꺼내자마자 쫓겨났다.
“왜 그러세요?”
“잊고 있던 일이 떠올라서요.”
백선화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녀는 연 공자가 사과를 받아들이면 조용히 물러날 생각이었다.
“백 소저는 내가 왜 상단을 따라다녔는지 알아요?”
“목적지가 같아서 그랬다고 들었어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내가 백 소저나 호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그게 뭔가요?”
“쫓겨나던 날 내가 한 말 기억나요? 백 소저가 방주 딸이라서 호위들이 눈치를 본다고 했잖아요.”
“……네. 그 일은 거듭 사죄드릴게요.”
“왜 그랬냐 하면, ‘백 소저가 특별하게 대우받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나름의 이유요?”
그날 연 공자와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은 백선화는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객점이 망해도 좋다고 한 말로 호위들이 한동안 비웃었잖아요. 돈이 많은가 보다고.”
“아! 네.”
“나에게도 백 소저처럼 그런 말을 해도 될 사연이 있다. 뭐 그런 뜻이죠.”
“…….”
그제야 그의 말을 알아들은 백선화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고작 그런 들으나 마나 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일을 벌였다니 기가 막혔다.
“표정이 왜 그래요? 똥이라도 씹은 얼굴이네?”
“그냥 찾아와서 말씀을 하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다치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백선화는 숙부가 화상을 입은 게 자신의 탓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백 소저. 당신 숙부가 나를 협박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
“강한 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 게 당신들 생활 태도잖아요. 그러니 당신은 당당하게 나를 쫓아내고, 당신 숙부는 나를 죽이려 한 거지. 왜? 원래 강한 사람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세상이니까. 나도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내 방식에 왈가왈부하지 말아요. 삼단 같은 머리카락 다 태워 버리기 전에.”
“……용서해 주세요.”
백선화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조아렸다.
지금은 간도 쓸개도 다 빼 줄 것처럼 굴어야 한다는 걸 깜빡했다.
잠시 후 백선화가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던 연적하가 문득 양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때요?”
“예? 뭐가요?”
“단숨에 확 밟았으면 돈도 못 받았을 거 아니에요. 적당히 참아 주니까 사과도 받고, 돈도 받고.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는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공자님의 혜안에 탄복했습니다.”
갑자기 은자를 천 냥이나 챙기게 된 양일의 입이 헤 벌어졌다.
연 공자가 돈을 벌기 위해 참았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녹림의 태상호법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
남직례성.
합비.
비가산.
정오 무렵.
비가산 아래에 백화상방의 깃발을 단 마차와 상인, 짐꾼, 호위 들이 나타났다.
비가산은 무림세가인 남궁세가가 자리한 곳.
상단은 골목 어귀에서 감히 더 들어가지 못하고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대행수 백일웅은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와 서기 백선화만 데리고 남궁세가로 향했다.
멀리 남궁세가가 보이자 백일웅이 백선화를 힐끔 보았다.
“선물은 문제가 없겠지?”
“예.”
대답과 함께 백선화는 가슴에 안고 있던 고서(古書)가 든 나무 상자를 쓰다듬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니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행여나 세가 내에서 이상한 것을 보아도 알은체하거나 궁금해하지 말고.”
“예.”
백산우와 백선화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사실 백일웅이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두 사람은 긴장한 상태였다.
“연 공자가 승냥이라면 남궁세가는 호랑이다. 눈곱만큼이라도 꼬투리 잡힐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백일웅의 신신당부에 백산우와 백선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다가오자 남궁세가의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가 물었다.
“어디의 누구시오?”
무사의 기백에 눌린 백일웅이 공손히 답했다.
“하남 백화상방의 대행수 백일웅이라 합니다. 한 달 전에 남궁세가에서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를 주문한 일로 찾아 왔습니다.”
“옥주와 당삼채는 어쩌고 사람만 셋이오?”
꼬치꼬치 캐묻는 무사에게 백일웅이 그간의 일을 말했다.
“……옥주와 당삼채가 든 마차는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하여 사정을 아뢰고…….”
백일웅이 한창 설명을 늘어놓는데 뒤쪽에서 덜그럭거리는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돌아보던 백일웅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상단 꼬리에 달라붙어 있던 연 공자의 마차가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연 공자가 왜 이리 오는 거지?’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지 뻔히 알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대문 앞에 있던 또 다른 무사가 손을 들어 마차를 세우고 소리쳤다.
“어디의 누구시오!”
쭈뼛쭈뼛 눈치를 보던 양일이 자신 없는 얼굴로 웅얼거렸다.
“그게 저어, 개봉 남연객점의 연 공자라고 하면 알 거라는데…….”
순간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누구는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누구는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이어 철탑처럼 서 있던 무사들이 마차를 향해 읍(揖)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연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