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59
459회. 어머니의 꿈
돌변한 정문 무사들의 태도에 움츠러졌던 양일의 어깨가 활짝 펴졌다.
그는 마치 명문가의 마부처럼 턱을 치켜들고 가볍게 고삐를 흔들었다.
작고 볼품없는 마차가 활짝 열린 남궁세가의 대문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달그락달그락.
백화상방의 대행수 백일웅과 중양대주 상월검 백산우, 그리고 서기 백선화가 멍한 눈으로 자기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마차를 보았다.
그들은 연 공자의 정체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잡고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마차가 안으로 들어가자 활짝 열렸던 대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뒤이어 정문의 무사가 백일웅에게 말했다.
“본가에서 주문한 ‘옥주(玉雕)’와 ‘당삼채(唐三彩)’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은 알겠소. 그래서 누구에게 사정을 알리겠다는 거요?”
한마디로 ‘누굴 찾아왔느냐?’는 소리다.
“주문한 분이 총관님이니 그분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총관님께 전하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무사는 다른 무사들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쪽문으로 사라졌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무사는 총관 유정유검 남궁산호와 함께 돌아왔다.
“총관님!”
백일웅이 죽은 조상을 만난 것처럼 반색하며 남궁산호에게 다가갔다.
“백 대행수. 이야기는 들었소. 일단 안으로 드십시다.”
남궁산호가 백일웅의 어깨를 다독이며 쪽문으로 이끌었다.
총관조차 쪽문으로 드나드는 걸 본 백일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이하군. 조금 전 연 공자의 마차가 들어갈 때는 정문이 활짝 열렸는데.’
궁금하지만 감히 총관에게 당신은 왜 쪽문으로 다니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백일웅은 안채 마당에 떡하니 서 있는 마차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작고 낡은 마차는 분명 연 공자가 타고 온 것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온 것으로도 부족해 안채까지 직통으로 갔다는 뜻이다.
백일웅은 의구심을 꾹꾹 누르고 조용히 남궁산호의 뒤를 따랐다.
남궁세가 일에 알은체는 물론 관심도 보이지 말라고 한 것은 백산우와 백선화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니까.
총관 남궁산호는 자신의 집무실로 세 사람을 안내하고 차를 대접했다.
차향이 실내에 가득 찰 즈음 남궁산호가 운을 뗐다.
“‘옥주’와 ‘당삼채’가 불에 탔다고요?”
백일웅이 황급히 찻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예, 부양현에서 복면인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옥주’와 ‘당삼채’가 실린 마차에 불을 질러서 그만…….”
“저런, 쯧쯧! 빼앗긴 재물은 없습니까?”
“예, 저희 중양대 호위들의 발 빠른 대처로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남궁산호가 백일웅을 지그시 보았다.
“기이하구려. 비적들이 빼앗아 갈 생각은 않고 불을 놓았다니. 필경 곡절이 있을 듯한데.”
“저희도 그것이 수상해서 백방으로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는 딱히…….”
“흐음! 합비 인근에서 남궁세가로 가는 물건이 실린 마차에 불을 놓았다? 마차는 모두 몇 대였소?”
“열 대였습니다. 그중 한 대는 불에 탔고, 나머지 한 대는 반파되어 수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옥주’와 ‘당삼채’를 노렸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구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잘 알겠소. 우리도 따로 도적들이 누구며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조사해 보겠소.”
남궁산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옥주’와 ‘당삼채’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눈치를 살피던 백일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면목이 없습니다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신지요? 백화상방의 이름을 걸고 최고급 ‘옥주’와 ‘당삼채’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저희의 과실인 만큼 약조하신 물건값의 삼 할을 깎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 바로 답을 드릴 수가 없겠소.”
“혹 다른 상방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입니까? 사 할을 깎아 드리겠습니다. 저희보다 더 싸게 최고급 ‘옥주’와 ‘당삼채’를 공급하는 곳은 없을 겁니다.”
남궁산호가 피식 웃었다.
그가 백화상방의 제안에 즉답을 피하는 것은 ‘옥주’와 ‘당삼채’보다 더 급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다.
남궁연과 혼인할 것으로 알려진 연적하가 방문했는데 무슨 ‘옥주’며 ‘당삼채’란 말인가.
“아니오. 본가에 큰 손님이 와서 당분간 다른 데 신경 쓸 수가 없소.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백화상방의 제안을 고려해 보리다.”
‘큰 손님’이라는 말에 백일웅이 슬쩍 물었다.
“아! 손님이 계셨군요. 저희가 총관님을 기다릴 때 마차 한 대가 들어갔는데. 혹 그분이신가요?”
그러나 무림 세가의 총관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부드럽던 남궁산호의 눈빛이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득였다.
“백화상방이 본가의 손님에게 관심을 둘 줄은 몰랐구려. 무림 경영에 뜻이 있었소?”
상방이면 상방답게 굴라는 소리다.
백일웅은 말뜻을 알아듣고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어이쿠! 아닙니다. 눈에 익은 마차가 들어가는 걸 보고 생각 없이 여쭤 봤던 것뿐입니다. 아랫사람들에게 항상 입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남궁산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허허. 설마 내가 백화상방을 그렇게 생각했겠소. 백 대행수가 타고난 장사꾼인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상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오?”
총관이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듯하자 백선화가 급히 나섰다.
“총관님.”
“무슨 일인가?”
“사죄의 뜻으로 십전무후께 고서를 선물하고 싶어서요. 응천부(應天府, 남경)로 가는 책들 중에 십전무후께서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을 따로 추려 보았는데, 제가 직접 드릴 수 있을까요?”
남궁산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떻게든 연줄을 만들어 두려는 노력이 가상한데 남궁연에게 통할지 의문이다.
“오늘은 시간을 내기 어려울 테고, 내일 적당한 때에 다시 방문해 보시게. 물론 십전무후가 백 소저를 만나 준다는 보장은 할 수 없네만. 혹 모르지. 좋은 책이 있다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이니 만나 줄지도.”
“예, 그럼 내일 다시 찾아뵐게요.”
백선화가 방문을 허락받자 백일웅과 백산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
남궁세가의 안채.
삼 남 일 녀가 마주 보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검왕 남궁벽, 청운검 남궁천, 십전무후 남궁연 그리고 연적하다.
연적하가 오룡궁에서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자 남궁벽이 말했다.
“오룡궁의 술법을 무림의 일절이라 칭하던 때가 있었다. 너를 무당파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입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하산이라니 장하구나. 천이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게다.”
부친의 비교에 남궁천이 급히 변명했다.
“아버지, 그래도 제가 검술로는 천재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까?”
“네가 천재면 네 동생은? 천천재냐?”
“솔직히 연이는 사람이 아니지요. 사람의 범주에서는 제가 그래도 쓸 만하지 않습니까?”
“네가 초심을 유지했더라면 연이에 비할까.”
남궁벽은 천재 소리를 듣던 아들이 자라면서 범재(凡材)가 된 게 아쉬웠다.
물론 아직 그의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 기대를 품고 있지만 말이다.
미련 가득한 부친의 말에 남궁천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적하는 남연객점에 들렀다가 바로 온 것이냐?”
“예.”
“길눈이 어두운데 용케도 찾아왔구나?”
“그래서 마차를 한 대 구했어요. 길은 마부가 알아서 잘 찾더라고요.”
“아하! 마부. 제법 머리를 썼는걸?”
머리를 썼다는 말에 의기양양해진 연적하가 설명을 덧붙였다.
“거기다 도중에 백화상방을 만나서 살짝 묻어 왔어요.”
“백화상방?”
“예, 응천부로 가는 길에 남궁세가에도 볼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꼬리에 따라붙었죠.”
“백화상방과 무슨 거래가 있었나?”
남궁천이 남궁연을 힐끔 보았다.
그러자 남궁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둘째 숙부가 그들에게 ‘옥주’와 ‘당삼채’의 구매를 의뢰했다고 들었어요.”
그러자 연적하가 말을 받았다.
“맞아요. ‘옥주’와 ‘당삼채’. 회하를 건너기 직전에 비적들을 만나 엉망이 됐지만.”
남궁천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뭐? 설마 둘째 숙부가 주문한 물건을 비적들에게 털리기라도 한 거냐?”
“털렸으면 다행이게요? 비적들이 ‘옥주’와 ‘당삼채’가 실린 마차를 골라서 불태웠대요.”
“허! 비적은 확실하고?”
“모르겠어요. 저도 나중에 들은 이야기라.”
“몰라? 너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면서? 그들이 녹림이라 못 본 척한 게 아니고?”
“어이쿠! 형님. 제가 녹림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그래도 상단과 움직일 때는 항상 상단 편에 섰어요.”
“그런데 왜 마차가 불에 타?”
“실은 그 전날 상방 서기에게 찍히는 바람에 상단에서 쫓겨났거든요. 그래서 저도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알았어요.”
“뭐? 쫓겨났다고?”
깜짝 놀란 남궁천이 언성을 높였다.
연적하는 강호의 악명과 달리 사람이 순후해 몹쓸 짓과 거리가 멀어서
남궁벽과 남궁연도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연적하를 응시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연적하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연 누님 때문에 객점이 망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그렇게 됐는데…….’
생각할수록 낯 뜨거운 소리였다.
기다리던 남궁천이 슬쩍 미끼를 던졌다.
“적하가 쫓겨날 만한 짓을 했던 모양이네. 혹시 여자와 관계된 일이냐?”
“절대 형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니에요.”
“여자 맞네. 맞아.”
남궁천이 단정 짓자 당황한 연적하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실은…….”
별수 없이 연적하는 세 사람 앞에서 상단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된 거예요.”
남궁연은 얼굴을 붉혔고, 남궁천은 웃다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그에 반해 남궁벽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연적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남궁벽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말이 나온 김에 묻자. 혼인을 하면 너는 어떻게 살 생각이냐?”
“……백부님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요?”
“그야 당연한 거고. 내 말은 혼인 후에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살 거냐는 말이다. 지금처럼 계속 객점을 운영할 생각이냐?”
“…….”
연적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야 녹림 출신이라 객점을 해도 별 느낌이 없지만, 남궁연에게 객점 안주인은 어울리지 않았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연신 넘어갔다.
올 것이 온 느낌이다.
문득 구천노도 심통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십전무후가 객점 운영을 하는 게 더 면이 안 서지 않을까요?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고 사람들이 공자님을 욕할 것 같은데요.
-뒤웅박은 박을 자르지 않고 꼭지 부근에 구멍만 내고, 속을 파내어 말린 바가집니다. 이 구멍 속에 곡식이나 씨앗을 담아 두는 거죠. 부잣집에서는 당연히 ‘쌀’을 담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집의 뒤웅박이냐에 따라서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이 바뀐다’, 뭐 대충 그런 뜻입니다.
심통은 남궁세가 사람들에게는 ‘객점’이 ‘여물’과도 같다고 했었다.
눈으로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위세를 부리던 백화상방 사람들도 정문에서 꼼짝없이 기다리지 않던가.
머뭇거리고 있는 연적하의 귓가로 남궁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지, 저는 적하가 무엇을 하든 그와 함께할 거예요. 객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셈이 빠르니 객점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녀의 말에 분위기가 한순간 싸해졌다.
심지어 객점 주인인 연적하조차도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남궁벽이 말했다.
“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다. 평생에 잘한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와룡장을 세운 것이라고. 본래 와룡장은 네 친모, 이부용의 꿈이었다. 네 어머니는 연무룡이 와룡(臥龍)처럼, 관조하는 삶을 살기를 바랐지. 군림을 원하는 연씨들과 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