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
47회. 뒤꿈치만 들면 되나요?
잠시 후 혈도술의 최고수인 심양각이 막혀 있던 도사와 중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푸하! 감사합니다! 대협님들!”
“하아, 하아! 나,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풍연초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구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그렇게 된 일로 생색내고 싶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돈이라도 뜯어냈을 텐데 비룡문 행세를 오래해서 그런지 시들했다.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도사와 중은 오봉십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빈승은 오륜사의 현장이라 합니다. 은인들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현장의 물음에 채주 풍연초가 짧게 답했다.
“우리는 오봉산 사람들이오.”
“아! 오봉산의 호걸들이셨군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현장은 더는 묻지 않았다.
녹림의 호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빈도는 무량도관의 왕허라고 합니다.”
뒤늦게 왕허도 오봉십걸들에게 인사를 했다.
부채주 탁고명이 현장과 왕허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쩌다가 납치를 당하게 된 거요? 누군가에게 원한이라도 샀소?”
현장과 왕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빈도도 원한 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설마 누가 납치를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오? 짐작 가는 사람도 없고?”
“예.”
현장과 왕허가 한소리로 답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풍연초가 슬쩍 끼어들었다.
“두 사람 모두 부자요?”
“전혀요.”
“아닙니다.”
현장과 왕허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사찰이나 도관에 소속된 많은 수도사 중 하나였다. 주지나 관주라면 모를까? 일개 수도사들에게 재물이 있을 리가 없다.
“허! 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세.”
풍연초가 탄식하자 탁고명이 한마디 했다.
“큰형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관원도 아니고. 좋은 일 한번 한 것으로 끝냅시다.”
“뭐, 그러자.”
풍연초도 툴툴 털어 버렸다.
그때 현장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승려들이 좀 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가슴이 섬뜩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도관에도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떠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왕허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오봉십걸들은 별 관심이 없는 얼굴들이다.
미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현장이 긴장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이십오 년쯤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의 짓이 아닐까요?”
“아! 유명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강남에서 아주 일을 크게 벌였었다지요?”
“유명교, 맞습니다. 칠파이문에서 대대적으로 토벌에 나서서 정리가 됐다고 하던데.”
“설마 유명교의 잔당이 벌이는 짓일까요?”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오봉십걸들은 불을 피우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한참 떠들던 두 사람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오봉산의 호걸들이 말을 받아 줘야 대화가 이어질 텐데, 그러지 않으니 시들해진 것이다. 그제야 둘은 녹림의 호걸들이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이 되자 빗줄기가 조금 약해졌다.
현장과 왕하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에 사당을 떠나갔다.
그러나 오봉십걸은 굳이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는지라 사당에 주저앉았다.
오봉십걸들은 사당에서 하루 종일 비룡승천만 연마했다.
점심 무렵, 검을 휘두르던 한채연이 연적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비룡승천을 배운 지도 어언 반년.
이제는 다른 수법도 배우고 싶었다. 물론 비룡승천 일 식만 해도 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어디 그런가.
한채연이 창틀에 걸터앉아 있는 연적하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오라버니.”
“응?”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던 연적하가 시선을 돌렸다.
“저어, 비룡승천은 이제 몸에 붙었는데요. 다른 거 더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칼로 먹고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조금 더 도와주는 게 맞았다.
“알았어. 이 식인 용무천상을 가르쳐 줄게. 다들 모이라고 해.”
“헤헷! 고마워요.”
한채연이 사당 안을 돌아다니며 오봉십걸들을 불러 모았다.
오봉십걸이 모이자 연적하가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그동안 비룡승천만 익히려니 지겨웠죠? 이번에는 용무전상을 가르쳐 줄게요. 일 식이 하단세로 시작한다면, 이 식은 상단세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말과 함께 연적하가 박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보법을 밟으며 도를 휘둘렀다.
내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칼끝에서 일어난 도풍이 사방으로 몰아쳐 갔다.
“마지막으로 칼을 내뻗으며 뒷발의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립니다.”
순간 박도 끝에서 무지막지한 도풍이 쏟아져 나와 일직선으로 뻗었다.
퍽.
도풍에 직격당한 벽에서 돌가루가 와르르 떨어졌다.
연적하가 박도를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뒤꿈치를 두 치(약 6센티)가량 드는 게 중요해요.”
현녀경에는 그 자세한 이유가 나와 있다.
구천세법은 몸에 있는 기경팔맥의 순환도리를 이용한다. 그중 용무천상은 양교맥과 음교맥으로 공력을 끌어내는 수법이다.
눈을 빛내며 듣고 있던 이철산이 물었다.
“형님, 특별히 뒤꿈치를 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양교맥과 음교맥을 자극하기 위해서야. 방금 벽에 구멍이 난 거 봤지?”
“예.”
“나는 내력을 사용하지도 않았어. 제대로 된 자세만으로 그렇게 만든 거야.”
“아! 그럼 무조건 뒤꿈치만 들면 되는 겁니까?”
“푸훗! 그럴 리가. 그랬다면 무림인들이 죄다 까치발로 다니게? 용무천상의 바른 자세만이 양교맥과 음교맥의 힘을 끌어낼 수 있어.”
“아아!”
오봉십걸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백자구결도 놀랍지만 구천세법은 몇 번을 들어도 신기하기만 했다.
“참, 사당이 부서지니까 용무천상을 수련할 때 내력은 사용하지 마세요.”
주의 사항을 듣고 난 뒤 오봉십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심양각은 한쪽 구석에서 곁눈질로 용무전상을 훔쳐 배웠다. 비록 백자구결은 익히지 못했지만 용무천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심오했다.
‘미치겠군. 잊어버리기 전에 몸에 익혀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놓고 연습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비는 사흘이 지나서야 그쳤다.
그동안 오봉십걸들은 사당 안에서 미친 듯 용무천상을 수련했다. 사당을 나설 때쯤 오봉십걸들의 검 끝에서는 제법 날카로운 검풍이 쏟아져 나왔다.
***
낙양 동편 언사.
와룡장.
백세상방의 방주 이세찬은 거상답게 약속을 지켰다.
일을 맡긴 지 두 달 만에 와룡장 출신 무사들의 월봉을 은자 세 냥으로 올려 준 것이다. 청룡대와 백호대의 뛰어난 일처리에 따른 결과다.
와룡장의 이름이 언사를 넘어 낙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낙양 무관들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됐지만, 상방에 진출한 와룡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사실 상방만큼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곳도 없다. 무사들은 매일 도적과 싸워야 했고,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당연히 대외적으로 알려진 명성만큼이나 무사들의 실적도 높이 쳐줬다.
빠른 성공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백미주다.
그녀는 곧바로 오십 명의 신입들을 더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낭인처럼 즉시 전력감이 아닌 어린아이들로 절반을 채웠다. 그리고 낭인 출신의 스물다섯은 상승대, 어린아이들은 잠룡대로 묶었다.
신입들은 전처럼 천지인 삼단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세 개의 단을 구성하기에는 숫자가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상승대는 연무백, 잠룡대는 연승백에게 맡겼다.
제자들 숫자로는 가히 무림 세가라 칭해도 될 정도다.
연씨 가문의 원로들도 이제는 백미주의 눈치를 살폈다. 재정적으로 와룡장이 자립한 터라 누구도 와룡장의 운영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못했다.
돈과 제자가 넘쳐나자 와룡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벅적했다.
제자들의 성공 덕분에 연무백에게도 별호가 생겼다.
개봉의 무인들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를 와룡검객이라 불렀다. 와룡장 출신 무사들의 대사부이기에 예우상 그렇게 한 것이다.
연무장 중앙에 우뚝 선 연무백이 상승대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오늘 가르칠 것은 구천세법의 이 식인 용무천상이다. 일 식이 하단세에서 시작했지만, 이 식은 상단세에서 시작된다.”
곧이어 연무백은 천천히 용무천상을 펼쳐 보였다.
마지막으로 검 끝으로 정면을 찌르는 것으로 시연이 끝났다.
검을 찌른 상태에서 연무백이 말했다.
“마지막 자세를 잘 봐 둬라. 뒤를 받치는 발꿈치의 모양이 어떤가?”
눈썰미 좋은 사내 하나가 큰 소리로 답했다.
“뒤꿈치가 두 치 정도 떠 있습니다!”
“잘 보았다. 이렇게 하면 칼끝이 네 치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만큼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검술에서는 한 치의 거리가 생사를 좌우한다. 네 치 이상 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제자들이 씩씩하게 답하자 연무백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백 번씩 반복해서 몸에 익히도록. 백 대주, 나와서 지도해라.”
낭인 중에 가장 고수인 백난영이 앞으로 나왔다.
하얗고 조막만 한 얼굴에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그녀는 꽤나 미인이었다.
연무백은 그녀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돌아서 연무장을 떠나갔다.
연무백은 곧바로 안채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연설주를 만난 연무백이 가볍게 눈을 찡그렸다.
“너 요즘 이상한 녀석들과 어울린다고 하던데. 적당히 해라. 그러다 어머니 귀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
연설주는 최근 낙양의 젊은 무인들과 자주 만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언사를 벗어나지 않더니 커 갈수록 활동 범위가 넓어져 이젠 낙양에서 살다시피 한다.
평판에 민감한 백미주가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머! 이상한 녀석들이라니. 우리 낙양오협을 뭘로 보고.”
“헐! 낙양오협? 누가 너희를 오협이래?”
“지금이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걸?”
“그래, 어머니 귀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알게 되겠지. 그때는 아마 낙양사협이 될 거다. 네 머리를 빡빡 깎고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실 테니까.”
“쳇! 잘나간다고 너무 무시하지 마. 나도 곧 협명을 떨칠 테니까.”
“쯧쯧!”
연무백이 혀를 차며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둘째인 승백이는 무공이라도 열심히 익히는데, 셋째는 밖으로 나돌기만 해서 문제다.
“흥! 바보! 메롱이다.”
연설주가 연무백에게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던 연무백은 이내 안채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모자가 객청에 마주 앉았다.
한참 동안 찻잔을 매만지던 연무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 연 숙부에게 들었습니다. 제자를 더 받아들이려 하신다면서요?”
연무백의 말에 백미주가 보고 있던 장부를 덮었다.
“쯧쯧, 연 숙부가 잘못 알아들으신 거다. 새 제자는 상승대를 내보낸 후에 받아들일 거야.”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본래 청룡대와 백호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받아들인 게 아니었습니까?”
연무백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내보낸다는 것은 상방의 호위무사로 보낸다는 뜻이다.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신입 제자들을 상대로 할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