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8
48회. 박리다매(薄利多賣)다.
백미주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누가 당장 상승대를 내보낸다고 하더냐. 내년 봄에 내보낼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 제자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습니다.”
지금 와룡장은 변칙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토록 무림 세가를 바라던 연씨 혈족들조차 ‘와룡장이 제자들을 상방에 팔아먹고 있다’고 욕할 정도다. 대사부인 연무백은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들의 삶을 살아야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와룡장에서 절정의 무공을 배웠으면 그 값을 치러야지.”
너무도 계산적인 어머니의 말에 연무백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이끌어 가는 와룡장은 남궁세가에서 보고 배운 것과 너무도 달랐다.
남궁세가는 제자들을 직계 혈족처럼 대했다. 물론 무공을 전수하는 부분에서 차등을 두었지만, 제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남궁세가의 제자들은 남궁세가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했다. 합비에서 남궁세가의 이름은 존경을 넘어 숭배에 가까웠다.
그에 비하면 와룡장은 악덕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고작 여섯 달 남짓 가르친 뒤 실전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상방에 보내 버렸으니까.
아직은 별말이 안 나오지만 언젠가는 제자들도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존경은커녕 와룡장의 일에 돕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값이라면 다달이 수련비가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 봐야 고작 한 사람당 오십 문이다. 어린애들은 열 문이고. 그 돈으로는 식비도 충당이 안 돼. 의식주와 무기와 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얼마인지 아니? 그걸 안다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게다.”
“하지만…….”
“너는 훌륭한 대사부가 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와룡장을 무림 세가로 세우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네가 가주가 되면, 그때에는 네 뜻대로 하거라.”
“저는 언제쯤 가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머니.”
“와룡장이 오대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
“지금처럼 제자들을 내다 파는 한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순간 백미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도 연씨 일족들이 뒤에서 뭐라고 수군대는지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누군가 욕먹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내 편이라 여겼던 아들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혔다.
“내가 이러는 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인 줄 아니? 천만에. 모두 너와 승백이, 설주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와룡장은 너희들의 것이니까.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게 될 게다.”
연무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해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서 몇 걸음 걷던 연무백이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저도 알 만큼 아는 나이입니다. 모든 게 저희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무리하고 있는 거잖아요.”
“닥쳐! 네가 뭘 안다고.”
“…….”
탄식하던 연무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객청을 떠났다.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던 백미주가 신경질적으로 장부를 펼쳤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백미주의 감정도 가라앉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들의 지적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자들을 판다는 아들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씨 일족들이 수군거릴 때는 무시했는데 아들이 찾아와 말하니 흘려 들을 수가 없다.
백미주는 즉시 총관 연무독을 불러들였다.
“오라버니, 지금 청룡단과 백호단 제자들에게 얼마씩 주고 있죠?”
“월봉 오백 문이다.”
“다음 달부터는 은자 한 냥으로 올려 주세요.”
백세상방에서 들어오는 돈이 은자 세 냥이니 한 냥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연무독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백미주를 바라보았다.
재정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예정에도 없던 지출은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예비비가 한 푼도 남지 않는데……. 갑자기 왜 그러느냐?”
“예비비가 없다고요?”
“신입 제자들을 받지 않았느냐?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다.”
“당분간만 버텨 주세요. 상승대를 상방에 보내면 숨통이 트일 거예요.”
“언제까지?”
“내년 여름 상방이 한창 바빠질 때, 상승대도 계약할 생각이에요.”
“알겠다. 그렇게 하마.”
연무독이 아쉬운 눈으로 백미주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백미주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머뭇거리던 연무독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무독이 사라지자 백미주는 ‘흥!’ 하고 냉소를 쳤다.
개봉에만 나가도 자신에게 줄을 대기 위해 젊은 무사들이 달라붙는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어린 남자들이 있는데 왜 늙은 연무독과 어울린단 말인가?
***
보봉현.
하가촌.
마침내 오봉십걸들은 오봉산에 도착했다.
초여름에 길을 떠나 무려 넉 달 만의 귀환이다.
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린 오봉십걸들은 반점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산채로 올라가기 전에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은 바람에서다.
오봉십걸들이 사해루로 들어가자 주인이 반색을 하고 달려와 맞이했다.
“어이쿠! 우리 귀한 호걸님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전보다 얼굴이 더 좋아지셨습니다요.”
채주 풍연초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 좋아지긴 개뿔이나. 한 달이나 길바닥에서 추위에 떨며 지냈는데.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요리로 머릿수에 맞춰 적당히 내오게.”
“예, 예,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요.”
주인은 오봉십걸들을 자리로 안내한 뒤에 주방으로 달려갔다.
자리에 앉은 한채연이 양쪽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아아! 그래도 돌아오니 좋긴 좋네요. 갈 때는 덥더니 오는 길은 왜 그리 춥던지.”
“그러게. 벌써 집에 온 듯한 기분이네. 그렇지?”
이철산이 다정하게 한채연의 말을 받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소백이 입술을 삐죽였다.
“두 분 요즘 너무 친하게 지내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조만간 살림 차리는 거 아닌가 몰라.”
“어머! 얘는 무슨 소리를.”
한채연이 깜짝 놀란 얼굴로 하소백을 때렸다.
그러나 입 끝이 살짝 올라간 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풍연초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채연과 이철산을 번갈아 보았다.
한채연의 경우 꽤 오랫동안 연적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기루에서 일한 과거 때문에 결국 이철산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 같았다.
‘산채에 신방을 차려 줘야 하나.’
찬모와 그 가족들도 있으니 신방 하나 더 차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풍연초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우르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풍 채주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멀리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뵈니 반갑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백화상방의 화풍대주 백안기라고 합니다. 조금 전에 산채를 지나왔는데, 조만간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오봉산채의 명성에 걸맞게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풍연초가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두 개의 탁자에 음식이 깔리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풍연초의 식사에 방해가 될까 봐 조심하는 것이다.
오봉십걸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신시 말(오후 5시)이지만 겨울의 해는 일찍 지니 서둘러 산채로 돌아가야 했다.
***
해가 바뀌었다.
녹림대회에서 돌아온 뒤로 오봉십걸들은 산행을 잘 나가려 하지 않았다.
구밀복검 심양각도 체면을 앞세워 산행에서 빠졌다.
그러다 보니 오봉십걸이 돌아온 뒤에도 독심낭인 황요명이 산적들을 이끌었다.
남는 시간에 오봉십걸들은 뒷마당에서 수련을 했다. 다른 산적들에게 자신들의 무공을 숨기고 싶어서다. 그렇게 된 데에는 말 못 할 이유가 있다.
녹림대회 이후로 오봉십걸과 연적하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왔다. 오봉십걸은 연적하를 의형제이자 무공 사부로 여겼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문파의 비기를 외부에 보이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사실 자신의 독문 무공을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서 산채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오봉십걸과 산적들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생긴 것이다. 아무래도 의형제와 다른 산적들의 관계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산적들이 위기의 순간 달아났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오봉산채는 어느 때보다 잘 굴러갔다.
연적하의 눈치를 살피느라 도적들 간에 시비가 사라졌고, 겨울이었지만 상인들의 통행세도 적당히 먹고 살 만큼 들어왔다.
춘절(春節, 음력 설)이 되자 산적들은 상화각에 모여 술판을 벌였다.
취기가 돌고 속에 있는 말들이 편안하게 나올 즈음, 황요명이 말했다.
“채주님, 요즘 상방이 자꾸 장난질을 칩니다.”
“무슨 소리냐?”
“상인들의 숫자를 줄여서 말합니다. 상인 한 명당 내는 은자 한 냥이 아까운 거지요. 우리도 그냥 다른 산채처럼 일괄적으로 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괄적으로?”
“예, 솔직히 상인들이 작정하고 속이면 알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도적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풍연초의 생각은 달랐다.
“괜찮아. 내버려 둬.”
“하지만 감히 속임수를…….”
“냅 둬. 부담이 되니까 속이는 거겠지. 거 뭐냐. 박리다매라고 하던가? 싸게 많이 파는 거. 맞아?”
“마, 맞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것과 같은 이치야, 인마. 통행세가 싸지면 더 많은 상인들이 몰려올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전체 수입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알겠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속임수를 쓰지 못하게 하면 더 많이…….”
“얀마! 그냥 두라고. 자식이 설명을 해 줘도 저러네. 너 같은 놈이 닭의 배를 갈라서 계란을 꺼내 먹으려다가 쫄딱 망하는 거야. 대답해 봐. 우리 수입이 줄었어? 늘었어?”
“조금 늘었습니다.”
“장사꾼들이 속임수를 썼지만 수입은 늘었지?”
“예.”
“쟈샤!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몇 군데 상방서 크게 빼먹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여러 곳에서 조금씩 받아 모으라고. 알겠어?”
“……예.”
대답은 했지만 황요명의 입은 튀어 나왔다.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는데 푼돈만 받으라니 짜증이 났던 것이다.
풍연초가 그런 황요명을 손가락질 했다.
“아휴! 저 새끼 입 튀어나온 거 봐. 아주 욕심이 하늘을 찔러. 네가 요즘 고생하는 건 알겠는데, 상인들 쥐어짤 생각하지 마. 우리 요즘 잘 먹고, 잘살고 있잖아. 너 어디 살림이라도 차렸냐? 돈이 더 필요해?”
다른 채주들에 비해 욕심이 덜한 풍연초는 상방에서 받은 돈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오봉산 산적들은 한 달에 세 냥 이상 받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돈 그만 밝히고 무공이나 연습해 인마. 누가 미친 척하고 들이박을지 모르니까. 이름 떨치고 싶어서 안달 난 놈들이 한둘인지 아냐?”
녹림산채가 유명해질수록 정파의 주목을 받게 된다. 빨리 명성을 얻으려는 정파의 무사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도적들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듯하자 풍연초가 잔소리를 했다.
“다들 잘 들어. 산 아래에서 칼부림이 나도 산채에서는 알 수가 없어. 적하 아우와 함께 산행을 가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너희 몸은 너희가 지켜야 해. 산행이 없을 때 빈둥거리지 마라. 날 풀리면 협객 놀음할 연놈들이 오봉산을 기웃거릴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탁고명이 한마디 거들었다.
“채주님 말씀이 맞다. 하남성에 우리 오봉산채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는 거 알지? 강호행을 한답시고 찾아와 칼부림하는 놈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오래 살고 싶으면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부분 들으나 마나 한 잔소리로 여겼다. 정파의 고수들이 노릴 수도 있다는 게 영 실감 나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