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77
477회. 고서가 풀리면 당신들 책임이야
석경장.
산월각.
산월각은 ‘혼천팔괘진’의 활문으로 석경장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 산월각에서 가녀린 두 개의 인영이 빠져나왔다.
‘금아’와 ‘월아’였다.
두 사람은 검을 뽑아 들고 살금살금 마당으로 이동했다.
스승인 구천노도 심통은 산월각에 있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사문(?)에 닥친 위험을 구경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두 사람은 미약한 힘이나마 석경장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게 협(俠)이며 의(義)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마당으로 가는 길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장성 같은 목책이 앞을 막는가 싶더니, 환하던 하늘이 한밤중처럼 캄캄해졌다.
그 뒤로는 거의 제자리를 맴도는 수준이다.
다행히 안쪽 마당에는 ‘독질려’가 없었기에 가슴만 콩닥거릴 뿐 위험은 없었다.
이윽고 먹구름이 걷히는가 싶더니 목책까지 사라졌다.
‘혼천팔괘진’이 해체된 것이다.
그제야 방향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날쌔게 안채를 향해 달려갔다.
월동문을 빠져나간 월아와 금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앞마당에 거대한 인두사(人頭蛇)와 불을 뿜는 거인, 그리고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가 있었다.
두 사람은 저게 바로 ‘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말로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 압도적인 크기에 오금이 저렸다.
마물들은 쉬지 않고 연 공자를 공격했다.
그런데 사조(師祖)인 연 공자는 어렵지 않게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마음만 앞세워 달려왔던 두 사람은 재빨리 정원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행여나 연 공자의 싸움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다.
꼬리를 휘두르던 뇌신(雷神)은 연적하가 미꾸라지처럼 피하자 입을 쩍 벌렸다.
화아악.
인두사의 입에서 녹색 운무(雲霧)가 뿜어져 나왔다.
연적하가 운무를 피해 몸을 날리자 초열마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연적하를 움켜잡으려 했다.
일각마인도 손톱을 앞세우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연적하는 청사로 초열마인의 손을 후려쳤다.
콰앙!
초열마인의 손이 뒤로 튕겨졌다.
순간 일각마인의 손톱이 연적하의 뒷목으로 파고들었다.
연적하가 섬뜩한 느낌에 허리를 숙이려 할 때다.
허공에서 십전무후 남궁연이 떨어져 내리며 일각마인의 손을 내리찍었다.
콰직!
손은 잘리지 않았지만 충격을 받은 듯 일각마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연적하는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을 펼쳤다.
청사의 끝에서 눈부신 검강이 뻗어 나갔다.
초열마인이 본능적으로 손을 휘저어 쳐 내려 했지만 검강은 걸리지 않았다.
콰지지직!
검강이 초열마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돌았는지 검강은 가슴을 반쪽으로 갈라 버렸다.
“크아아…….”
조열마인의 거대한 몸체가 뒤로 넘어갔다.
뒤이어 양미간 사이의 신맥이 화끈거렸다.
마물이 죽자 또 그 기이한 장소로 빨려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안 돼!’
연적하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그 이상한 곳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다.
다급해진 그는 무심코 신맥으로 구천기를 밀어 넣었다.
낯선 기운에 저항하려다 보니 저도 모르게 구천기로 대응한 것이다.
구천기가 신맥에 도달하자 화끈거리는 느낌이 사라졌다.
푸스스-.
초열마인은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연적하는 그 기이한 장소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이게 되네?’
내심 감탄하던 연적하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남궁연과 일각마인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독무가 더 걸리적거리니 뇌신의 처리가 우선이다.
그는 운무를 향해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을 펼쳤다.
콰콰콰콰-.
돌풍에 운무가 뻥 뚫리며 일직선으로 길이 열렸다.
“차핫!”
연적하는 삼 장(약 9미터)쯤 위에 있는 뇌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깜짝 놀란 뇌신이 다시 녹무를 뿜었다.
그러자 연적하가 허공에서 몸을 틀며 더 높이 솟구쳤다.
구천세법 팔 식 구룡번신(九龍翻身)을 펼친 것이다.
거의 오 장(약 15미터)이나 솟구쳐 오른 연적하는 떨어져 내리며 연환 식인 구천세법 구 식 뢰검분형(雷劍貴亨)으로 뇌신의 머리를 노렸다.
꽈르르릉! 꽝!
의형검기로 만들어진 번개가 뇌신의 머리에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
뇌신은 미친 듯 버둥거렸지만 뢰검분형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뇌신의 머리 위로 청사가 그림처럼 나풀나풀 날아들었다.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玄女降臨)이다.
청사에 맺혀 있던 검강이 뇌신의 머리를 길게 갈랐다.
치명적인 일격에 청사의 몸통이 몇 차례 요동치는가 싶더니 뻣뻣하게 굳었다.
‘역시 구천세법으로는 뭔가 부족해.’
일격에 숨통을 끊는 건 ‘구천구검’만 가능했다.
법보(法寶)처럼 ‘구천구검’에도 특별한 공능이 있는 게 분명하다.
‘흐음! 구천 하늘에 닿는 검이라…….’
연적하는 뇌신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일각마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천노도 심통의 가세로 일각마인이 몰리고 있었다.
심통의 금강저에 일각마인의 손톱은 모두가 부서져 나간 상태.
도와주지 않아도 곧 끝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마인이 두 손으로 남궁연의 검을 막는 순간 금강저가 일각마인의 머리를 찔렀다.
역시나 법보답게 밋밋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일각마인의 머리에 구멍이 났다.
“캬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일각마인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그것이 죽음을 재촉했다.
남궁연의 검과 심통의 금강저가 고기를 다지듯 일각마인의 몸에 박혔다.
퍼퍼퍼퍽!
두 사람은 일각마인의 몸이 재로 변해 흩어질 때까지 두들겨 댔다.
푸스스-.
일각마인이 사라지자 나무 뒤에 있던 월아와 금아가 쪼르르 달려왔다.
멀찍이서 전황을 주시하던 삼보절명 당운망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심통이 턱을 치켜세워 당운망을 내려다보았다.
“흐흐. 당가야.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느냐?”
“험, 나를 심가 너같이 의리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의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마물이 나오자마자 산월각으로 내빼려고 하는 걸 봤구만.”
“그야 남아 있는 어린아이들 걱정으로 그런 거고.”
“퍽이나.”
심통과 당운망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말했다.
“누님, 저는 팔황을 쫓아가 볼게요.”
남궁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적하는 남궁연이 동의하자 즉시 허공으로 솟구쳐 석경장을 벗어났다.
갑자기 연적하가 사라지자 심통이 남궁연에게 물었다.
“사모님, 연 공자님은 왜 팔황을 쫓아간 겁니까?”
“유명교주에게 전할 말이 있나 보죠.”
“무슨 말요?”
“글쎄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남궁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적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녀도 이 순간만큼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합비.
남령촌.
백석산하(白石山河).
강변은 ‘팔황’과 ‘마물’의 싸움으로 난장판이었다.
본래 마물은 처음 현신한 지역에 머무르는데 팔황의 경우 뒤가 잡힌 게 문제였다.
팔황이 빠른 경신술로 사라졌다면 마물은 석경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중독된 ‘화조선인’과 ‘음양천선’의 느린 걸음이 마물을 팔황에게 인도했다.
‘일각마인’과 ‘화염마인’은 그야말로 물귀신처럼 팔황, 그중에서도 태백선인을 물고 늘어졌다.
‘일각마인’의 날카로운 손톱에 태백선인의 상체는 너덜너덜해졌다.
다른 팔황들이 도울라치면 ‘화염마인’이 지옥의 겁화를 뿌려 댔다.
금강보살의 한쪽 팔을 태워 먹은 화염 앞에서 팔황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보다 못한 육통존자가 팔황들에게 소리쳤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화염마인’부터 처리합시다!”
태백선인을 제외한 팔황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경장이 뒤를 노릴지도 모르니 지금은 빨리 처리하고 떠나야 했다.
곧이어 일곱 명의 팔황이 ‘화염마인’을 덮쳤다.
화르르륵-.
‘화염마인’이 사방으로 불길을 뿜어 댔다.
팔황들은 그래도 불나방처럼 ‘화염마인’에게 달려들었다.
‘화염마인’에게 빈틈이 보일 때마다 검과 도가 몸통에 박혔다.
비파선자도 한쪽으로 물러나 미친 듯 음공을 퍼부었다.
띵- 띠딩-.
퍼퍼퍽! 퍽! 퍼퍽!
불꽃이 튀고 돌가루가 날렸지만 ‘화염마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팔황과 ‘화염마인’의 싸움은 일다경(약 20분)이나 계속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곱 팔황은 안정을 되찾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할 만하다.
차분해진 일곱 팔황과 반대로 ‘화염마인’의 공격은 점차 약해졌다.
“크아아!”
마침내 ‘화염마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입으로 불을 쏟아 내지도 못했다.
불을 뿜지 못하는 ‘화염마인’은 그저 덩치만 큰 괴물일 뿐이다.
일곱 팔황은 ‘화염마인’의 굵직한 목을 집중적으로 난타했고, 이윽고 ‘콰직’ 소리와 함께 목이 잘렸다.
“헉! 헉!”
내력이 고갈된 화조선인과 음양천선은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한쪽 팔을 잃은 금강보살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육통존자와 직일신장, 비파선자, 구궁천녀는 즉시 태백선인의 지원에 나섰다.
다섯 팔황의 공세에 ‘일각마인’은 일각(15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태백선인에게 구궁천녀가 다가갔다.
“그런데 왜 ‘지옥의 마신’이 우리를 공격한 걸까요?”
태백선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머리가 잘리고도 바로 죽지 않은 모양이오. 공교롭게 땅에 떨어진 둘이 나를 보았소. ‘지옥의 마신’은 자신을 죽인 자를 적으로 인식하는 게 분명하오.”
“아!”
구궁천녀가 고개를 끄덕일 때다.
뒤쪽에서 생기발랄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쥐새끼들! 용케 마물을 다 처리했네? 그런데 많이들 지친 모양이야?”
다섯 명의 팔황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연적하가 화조선인과 음양천선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태백선인이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연 공자. 오늘은 우리가 패했음을 인정하겠소. 설마 저항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일 셈이오?”
“나를 뭐로 보고. 나는 사람 잘 안 죽여.”
굳어 있던 태백선인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어이, 너무 좋아하지 마. 그렇다고 바보도 아니니까.”
말과 함께 연적하는 화조선인과 음양천선의 등쪽 명문(命門)과 양관(陽關) 사이를 발끝으로 찍었다.
“쿨럭!”
“컥!”
화조선인과 음양천선이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가뜩이나 중독된 상태에서 단전이 충격을 받자 두 사람은 픽 쓰러졌다.
“감히! 팔황을 죽이다니!”
태백선인이 달려들려 하자 연적하는 유령처럼 금강보살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태연히 운기조식 중인 금강보살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허! 누가 죽였대?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냥 은퇴시켜 준 거야. 언제까지 빨빨거리며 강호를 돌아다닐 거야? 이 사람들도 속으로는 나에게 감사할걸?”
“너, 너 이놈! 원하는 게 뭐냐!”
태백선인은 행여나 연적하가 금강보살에게까지 독수를 쓸까 봐 움직이지 않았다.
“교주에게 내 말을 전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금강보살에게 독수를 쓰면 단 한마디 말도 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마음대로 하고.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집중해서 들어.”
“그에게 독수를 쓰지 않겠다고 약속부터 해라!”
그러나 연적하는 태백선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원한다면 고서는 줄 수 있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석경장을 건드리면, 필사를 해서 천하의 모든 책방에 뿌릴 거야. 혼자 조용히 고서를 받든지, 가까운 책방에서 사서 읽을 건지 결정하라고 해.”
“미친…….”
“난 말했다. 나중에 고서가 책방에 풀리면 당신들 책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