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495
495회. 책은 돌려줬잖아!
연적하는 세 명의 백두마군과 삼십여 명의 십두마병들을 둘러보았다.
싸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숫자다.
자신의 무력을 까마득히 넘어선, 그야말로 암울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그렇다 해도 적의 의도대로 따를 생각은 없다.
‘팔황신모! 나름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 믿었는데, 어디서 개수작을?’
교주의 손바닥에서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피가 끓었다.
순순히 당해 줄 것 같으냐!
연적하는 교주가 짠 판을 엎어 버리기로 했다.
‘오냐! 원한다면 지옥의 문을 열어 주마!’
판을 엎는 건 어렵지 않다.
백두마군과 십두마병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 된다.
유명교의 근간인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은 그 칼끝을 저들의 성지인 풍지산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날뛰면 아무리 유명교주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마침내 청사(靑蛇)가 움직였다.
그러자 환영신마 웅재귀와 무산낭랑 이매화, 월하선자도 지체하지 않고 반격했다.
채채챙-.
네 사람 사이에서 한차례 불꽃이 튀었다.
일격을 주고받은 직후, 웅재귀와 이매화는 뒤로 빠지고 월하선자가 앞으로 나섰다.
연적하와 월하선자가 다시 맞붙었다.
차차창-.
이선으로 빠진 웅재귀가 품에서 ‘산가지’를 꺼내 날렸다.
연적하의 주위로 ‘산가지’들이 박혔다.
파파파팟-.
뒤이어 땅바닥에서 어둠보다 짙은 시커먼 그림자들이 꾸역꾸역 지상으로 올라왔다.
웅재귀의 성명절학인 ‘함영탈혼마공’이다.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연적하의 팔과 다리에 거머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이매화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구절장(九節杖)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낭랑하게 소리쳤다.
“상조금궐 하부곤륜(上朝金闕 下覆崑崙)!”
순간 태산처럼 생긴 암경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연적하와 맞붙어 싸우던 월하선자는 눈치 있게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림자들에게 팔다리와 몸을 잡힌 연적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림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연적하 위로 암경이 떨어져 내렸다.
쿠웅-.
폭발음과 함께 사방 오 장(약 15미터) 넓이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가뜩이나 어두운 상황에서 흙먼지까지 자욱하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백두마군들과 십두마병, 교도들은 그 자리에서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팔황신모가 움직인 것은 그때다.
십전무후 남궁연의 등 뒤에 팔황신모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이형환위의 신법이다.
모두가 흙먼지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 남궁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팔황신모의 손가락이 남궁연의 뒷목을 잡아 갔다.
뒤에서 음유한 기운이 느껴지자 남궁연은 오히려 강하게 뒤로 상체를 젖혔다.
퍽-.
예기치 못한 충격에 오므리고 있던 팔황신모의 손이 활짝 벌어졌다.
남궁연은 쾌속하게 돌아서며 손바닥을 연속으로 세 번 내뻗었다.
‘천강장’이라 불리는 패도적인 장법이다.
쉬쉬쉭-.
파공성과 함께 코앞으로 장영(掌影)이 날아왔지만 팔황신모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각선으로 한걸음 내디뎌 장영을 흘려보냈다.
강맹한 공격을 쏟아 내면 허점이 보이기 마련.
남궁연이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팔황신모는 그녀의 완맥을 낚아챘다.
‘앗!’
남궁연은 급히 뻗었던 팔을 틀었지만 팔황신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곧이어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무런 전조 없이 찰나지간에 벌어진 두 사람의 박투는 그렇게 끝났다.
뒤늦게 팔황신모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우!”
백두마군들이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수월하게 끝났다.
남궁연의 무위가 예상보다 뛰어난 바람에 자칫 일이 꼬일 뻔했다.
“연아!”
“가모님!”
청운검 남궁천과 구천노도 심통은 남궁연이 제압당하자 발을 동동 굴렀다.
두 사람이 교주와 남궁연의 싸움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두 사람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때마침 안마당에 자욱하던 흙먼지가 걷혔다.
움푹 꺼진 지면 위에 연적하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서 있었다.
비록 머리는 산발을 했지만 옷차림이나 안색은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심 기대하고 있던 백두마군들이 실망한 얼굴로 다시 움직이려 할 때다.
연적하가 백두마군들을 향해 청사를 던졌다.
쉬이익-.
청사가 쏜살처럼 월하선자에게 날아갔다.
대경실색한 월하선자는 검으로 청사를 힘껏 쳐 냈다.
챙-.
하지만 월하선자의 검에 부딪친 청사는 튕겨 나지 않고 검신을 타고 올랐다.
마치 살아 있는 뱀을 보는 것 같았다.
“뭐, 뭐야!”
깜짝 놀란 월하선자가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렇게 함으로 청사까지 떨쳐 내려 한 것이다.
철그럭.
검과 청사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월하선자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매화가 구절장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안 돼!”
그녀의 비명에 움찔 놀란 월하선자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번쩍-.
땅에서 솟구쳐 오른 청사가 빛살처럼 그녀의 어깨를 꿰뚫고 지나갔다.
“제길!”
연적하가 검결지를 돌렸다.
밤하늘로 날아올랐던 청사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공중을 선회했다.
웅재귀와 이매화가 다급하게 팔황신모를 보았다.
부상을 입은 월하선자로는 더 이상 연적하를 상대할 수가 없어서다.
술사 출신인 두 사람에게는 적의 직접적인 공격을 막아 줄 방패가 필요했다.
그러자 팔황신모가 ‘쯧쯧!’하고 혀를 찼다.
셋이나 되는 백두마군이 연적하 하나에게 질질 끌려다니니 못마땅한 것이다.
무심코 팔황들을 보내려던 그녀가 멈칫했다.
다섯 명의 팔황으로 독이 잔뜩 오른 연적하를 저지할 수 있을까?
‘죽을 테지.’
팔황들은 연적하를 어쩌지 못하지만, 연적하는 반드시 그들을 죽일 것이다.
고작 방패막이의 대가치고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다섯 명의 팔황들에게 어울릴 만한 상대는 따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삼두견과 흑기사에게로 향했다.
전투가 벌어지면서부터 흥분했는지 제자리에서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저게 좋겠군.’
왕들의 하늘에서 온 삼두견과 흑기사는 마물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죽어도 피해 줄 일이 없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 잘 어울릴 것이다.
‘가라! 연적하를 막아라!’
팔황신모의 생각이 전해진 것일까?
턱 밑으로 용암 같은 침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던 삼두견이 먼저 비호처럼 달려 나갔다.
밤하늘을 선회하던 청사가 백두마군들의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청사를 주시하고 있던 이매화가 다급히 구절장을 흔들었다.
“풍급천고(風急天鼓) 취파만산(就破萬山)!”
밤하늘에서 우렛소리가 마치 북을 치는 것처럼 ‘쿠쿠쿵!’ 하고 울렸다. 뒤이어 지면에서 용권풍이 일어나 하늘로 솟구쳤다.
용권풍이 청사를 휘감았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아래로 누르려는데, 돌연 그림자들이 꾸물꾸물 일어나 사지에 매달렸다.
그림자로 인해 검결지를 움직이지 못하자 청사는 용권풍에 빨려 들어갔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연적하는 급히 ‘사주파해(邪呪破骸)’의 주문을 외웠다.
“천계멸유(天計滅類) 신력일하(神力一下)!”
푸스스-.
사악한 주박(呪)을 해체하는 오룡궁의 술법에 그림자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함영탈혼마공’이 깨지자 그 충격으로 웅재귀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그림자가 사라진 틈에 연적하는 다시 검결지를 뻗었다.
용권풍에 휘말렸던 청사가 빳빳하게 몸을 세우더니 그에게로 돌아왔다.
청사가 지척에 이르자 연적하는 검결지로 이매화를 가리켰다.
청사가 방향을 틀 때다.
갑자기 뜨거운 열기가 연적하를 덮쳤다.
황급히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 연적하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크아아아!”
“캬아!”
“갸아아!”
신당에서 보았던 ‘삼두견’이 미친 듯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이것들이 진짜!’
연적하는 접인술로 청사를 끌어당기며 공중에서 ‘구룡번신(九龍翻身)’을 펼쳤다.
아홉 번 자리를 바꿀 즈음, 청사가 손아귀에 잡혔다.
그는 구 식 ‘뢰검분형(蕾劍貴亨)’을 펼치며 아홉 개의 잠혈에 담아 두었던 구천기를 일시에 내뿜었다.
청사 끝에서 시퍼런 전뢰검기가 뻗어 나갔다.
번쩍! 꽈르르르릉!
백두마군들과 삼두견의 머리 위로 벼락이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윽!”
“크윽!”
“악!”
월화선자와 웅재귀, 이매화는 벼락을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세 사람은 전뢰검기에 직격으로 맞고 비칠거렸다.
삼두견도 무사하지 못했다.
강철 같던 삼두견의 피부는 마치 창칼로 헤집은 것처럼 너덜거렸다.
전뢰검기에 담긴 파사(破邪)의 기운 때문이다.
처참한 외형과 달리 삼두견의 눈동자는 여전히 투기로 번들거렸다.
전뢰검기가 내부까지 침투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연적하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백두마군들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청사 끝에 눈부신 검강(劍罡)이 맺혔다.
지금이라면 최소한 백두마군 하나쯤은 척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두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흑기사가 달려든 것이다.
흑기사의 장창이 뻗어 오자 연적하는 청사를 틀어 창끝을 후려쳤다.
콰앙!
장창과 청사가 마주치자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
강력한 반발력에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난 연적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번의 격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기가 막히게도 흑기사는 백두마군인 월하선자보다 강했다.
이미 부상을 입고 있던 월하선자는 내상까지 겹치자 아예 뒤로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흑기사와 삼두견이 그녀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웅재귀와 이매화가 산가지와 구절장을 손에 들었다.
적들이 전열을 가다듬자 연적하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제길! 저런 마물은 예정에 없었는데.”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저것들은 왜 나를 공격하는 거지?’
삼두견과 흑기사는 자신이 이전에 만났던 마물들과 전혀 달랐다.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흑기사’와 ‘삼두견’은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 틈에 연적하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헉! 누님?’
뒤늦게 팔황신모와 일행의 대치를 발견한 연적하의 눈이 부릅떠졌다.
팔황신모의 손에 남궁연이 잡혀 있었다.
연적하가 그리로 가려 하자 삼두견이 ‘으르렁’거리며 앞을 막았다.
분노한 연적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팔황신모! 노망이라도 났느냐! 보내 준다고 하더니 뭐 하는 짓이냐! 한 입 가지고 두말하기냐?”
“후후, 누가 한 입 가지고 두말을 했다는 게냐? 나는 지금까지 식언(食言)을 한 적이 없느니라.”
“그런데 왜 십전무후를 잡고 있는 건데?”
“십전무후와 네가 가야 할 길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네 처가 어디로 갈지 궁금하냐?”
“개수작하지 말고 그냥 말해.”
“이 일은 십전무후에게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썅! 그 일이 뭐냐고!”
연적하의 거친 욕설에도 팔황신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불로불사를 추구한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책은 돌려줬잖아!”
연적하는 팔황신모가 ‘고서 때문에 남궁연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남궁연을 핍박할 이유가 없어서다.
그건 그만의 오해가 아니었다.
사실 남궁천이나 심통, 당운망 등이 대응을 자제한 것도 그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