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529
529회. 욕심(慾心)
월악산.
유시 초(오후 5시).
말을 탄 세 사람이 공도에서 벗어나 소로로 접어들었다.
연적하 일행이다.
반 시진(1시간)쯤 소로를 달리던 공지유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다 왔어요. 여기부터가 월악산이에요.”
“아하! 그럼 지금부터 영지 선초를 찾으면 되나요?”
“네. 제가 연 대협에게 영지 선초의 모양새를 가르치면서 캐는 걸 도와 드릴게요. 말씀드렸다시피 유 사제가 채취하는 건 현천문의 거고요. 맞죠?”
그녀는 다시 한번 유익현의 역할을 확인시켰다.
영지 선초는 워낙 귀한 물건이라 확실하게 정하고 가지 않으면 분란의 요지가 있었다.
“예.”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 선초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깰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다.
한번 약조한 일을 거듭 확인하는 공지유가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이윽고 세 사람은 말에서 내렸다.
공지유의 뒤를 따라가던 유익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공 사저. 말을 끌고 산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해도 저물 것 같고…….”
“조금만 더 가면 방목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둔 공터가 있어. 말은 그곳에 풀어 두면 돼. 거기에 야영지도 있어.”
“야영지요?”
“뭘 그런 거로 놀라? 독안귀마가 나타나기 전에는 노점상도 많았는데.”
“굉장하네요.”
“인근 다섯 개 현의 문파들이 모여들었으니까. 그때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어. 참, 연 대협, 늦었으니 입산은 내일 아침에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죠.”
연적하는 경험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공지유의 말대로 조금 더 들어가자 방목장과 야영지가 나타났다.
세 사람은 끌고 간 말을 방목장에 풀어놓았다.
오랜 시간 월악산에 있어야 하니 말의 먹이를 챙겨줄 수가 없어서다.
방목장 옆의 야영지도 시설이 괜찮았다.
장사꾼들이 많았다더니 우물까지 있어서 취사 준비에 편리했다.
연적하 일행은 바닥이 평평하고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니 가을 산답게 추위가 밀려왔다.
유익현이 다람쥐처럼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를 구해 와 중앙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모닥불 위에 솥단지를 걸고 물을 끓였다.
한가하게 불빛을 바라보던 공지유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사방에서 모닥불을 피워 대마을로 착각할 정도였는데. 독안귀마 때문에 이젠 우리뿐이네요.”
“그런데 독안귀마라는 게 정확히 뭐예요? 말만 들었지 정작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연적하의 물음에 공지유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털이 칠흑처럼 검은 말이래요. 싸우다 한쪽 눈을 잃었는지 눈이 하나밖에 없는데, 귀신처럼 빠르다고 해서 독안귀마라 부르는 거예요.”
“말이라는 거네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럼 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일단 말은 초식동물이잖아요?”
“설마 독안귀마라는 놈이 육식을 해요?”
“독안귀마가 풀 먹는 건 본 사람이 없어서 몰라요. 그런데 그놈이 다른 야수나 사람을 잡아먹는 건 봤다네요?”
“허! 정말요?”
“네, 그것도 머리만 먹는대요.”
“아니, 머리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그러자 공지유가 스산한 얼굴로 말했다.
“자기 눈알이 없어서 다른 동물의 머리를 먹는 거래요. 눈알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솥단지에 쌀을 넣던 유익현이 흠칫 놀란 얼굴로 공지유를 보았다.
“사저, 눈을 먹으면 사라진 눈이 생겨요?”
“너 돼지 다리를 그렇게 먹고도 모르겠니? 돼지 다리 먹었다고 다리가 생기든?”
“아…….”
“그러니까 아무리 신수(神獸)였어도 짐승은 어쩔 수가 없는 거지. 자기에게 없는 걸 먹어서 채우려 하다니. 무식하다니까.”
듣고 있던 연적하가 물었다.
“독안귀마가 눈알 때문에 머리만 먹는다고 말한 거예요?”
“풋! 말이 어떻게 사람하고 대화를 해요? 그냥 그럴 거라고 추측하는 거죠.”
“다른 이유로 머리만 먹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야 뭐……. 하지만 눈알 외에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독안귀마가 무식한 게 아니라 인간이 단순한 것 같다.
자기들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서 독안귀마를 무식하다고 하다니.
그러는 동안 쌀과 고기와 채소류를 넣고 끓인 정체불명의 죽이 완성되었다.
유익현이 그릇에 죽을 가득 퍼서 연적하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릇을 받아 든 연적하가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냄새는 괜찮네요. 이걸 뭐라고 불러요?”
“수약주 전통의 잡탕죽요. 보기는 이상해도 먹을 만할 겁니다. 원기를 보충해 주는 약재도 듬뿍 넣었습니다.”
“죽에 약재도 넣어요?”
“예, 믿고 드셔도 됩니다. 수약주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요리에 약재를 쓰고 있으니까요.”
연적하는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았다.
약재를 듬뿍 넣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약 냄새가 살짝 느껴졌다.
그러나 막상 숟가락으로 떠먹어 보니 먹을 만했다.
탕약에 밥을 말아 먹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의외다.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많이 드십쇼.”
해맑게 웃던 유익현이 공지유에게도 한 그릇 건넸다.
세 사람이 잡탕죽을 한 그릇 비울 무렵, 야영지로 세 기의 인마(人馬)가 들이닥쳤다.
금단문의 일대제자 동방유가 제자인 구석정과 정일도를 이끌고 월악산에 온 것이다.
동방유는 타고 온 말을 방목장에 풀어놓은 뒤,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안녕하시오? 여러분도 월악산에 입산하려는 것 같은데 인사나 나눕시다. 노부는 금단문의 일대제자 동방유요.”
공지유는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됐다.
자신들이야 ‘연허’의 고수를 따라 왔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은 까닭이다.
“저는 현천문의 삼대제자인 공지유예요. 이쪽은 제 사제인 유익현, 그리고 저쪽에 계신 분은 본문의 손님이세요.”
공지유가 자연스럽게 연적하를 가리켰다.
그에 대한 소개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몰라 슬그머니 떠넘긴 것이다.
“석경장의 장주 연적합니다.”
“연 장주셨구려. 월악산에는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소?”
“처음입니다.”
“그렇구려. 초행자의 행운이라는 게 있으니 원하는 걸 얻어 갈 수 있을 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동방유는 연적하를 슬쩍 보더니 이내 돌아섰다.
현천문 제자가 그를 대협이라 불렀다기에 내심 긴장했는데 생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난 또 연단쯤은 되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군.’
‘연단’은 의기발현(意氣發顯)이 가능한 경지로 종문 제자의 증표와도 같다.
그런데 연적하라는 청년은 지극히 평범해 ‘연단’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밤이 깊어 갔다.
유익현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공지유는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연적하의 말 상대를 했다.
“……뭐예요?”
잠깐 졸던 공지유가 눈을 번쩍 떴다.
연적하가 뭐라고 했는데 뒷말만 기억에 남았다.
“죄송해요. 깜빡 조느라 미처 못 들었네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몽연향의 후유증인지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와서 견디기 어려웠다.
“월악산에서 나오는 영지 선초 중에 비싼 게 뭐가 있냐고 물었어요.”
“아, 제 기억에 가장 비싸게 팔린 건 ‘만년지령흑수오(萬年地靈黑首烏)’였어요. 한 뿌리만으로 금자 천 냥을 받았다니 굉장하죠?”
“천 냥이나요?”
연적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거 하나면 십전무후 남궁연을 찾는 경비로 충분할 것 같았다.
“그보다 귀한 것도 있어요. 사람들 눈에 잘 안 띄어서 그렇지. 평범한 영지 선초라도 서너 차례 산행을 나가야 한 번 구하거든요? 그러니 귀한 건 어떻겠어요?”
“많이 어려운가요?”
“저도 지금까지 열 번은 다닌 것 같은데, 지난번 ‘천년화령적지’까지 딱 두 번 구경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게 영지 선초를 찾는 일이에요. 그러니 이번에 못 구한다 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아, 네. 그런데 그 ‘만년지령흑수오’는 어떻게 생겼어요?”
그가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공지유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햇볕이 잘 드는 경사면에 자란대요. 혹시 호박잎 보신 적 있어요?”
“네.”
“잎은 호박잎처럼 생겼는데, 그보다 절반 정도 작고 윤기가 흘러요. 햇빛을 받으면 빛이 날 정도로요.”
“그럼 눈에 잘 띄지 않아요?”
“없으니 안 뜨이겠죠? 게다가 절벽 같은 경사면에 숨어서 자라면 누가 알겠어요?”
“그렇기는 하네요.”
“그래서 ‘만년지령흑수오’는 인연이 닿아야만 얻을 수 있어요. 뭐, 모든 영지 선초가 다 그렇지만 ‘만년지령흑수오’는 특히 더 심해요.”
“그 밖의 주의할 점은요?”
“아, ‘만년지령흑수오’는 잎이 아니라 뿌리가 비싼 거예요. 조심조심 파내면 항아리만 한 크기의 시커먼 뿌리가 나와요. 생김새도 영락없는 항아리 모양이에요.”
“예, 항아리만 한 시커먼 뿌리. 그리고요?”
“그게 전부예요. 그보다는 차라리 ‘일엽선초(一葉仙草)’를 노려 보세요.”
“‘일엽선초’요?”
“네, 월악산에서 가장 많이 나는 영지 선초 중에 하나예요. 생김새도 기억하기 쉬워요. 부추처럼 줄기 하나가 곧게 뻗어 있거든요.”
“부추를 닮았어요?”
“네, 색깔도 딱 부추예요. 그런데 부추보다 짧고 잎은 더 넓어요. 그리고 잎의 중심을 따라 황금색 점이 두 줄로 박혀 있죠. 어때요? 기억하기 쉽죠?”
“그러니까 부추를 닮았는데, 잎에 두 줄기 황금색 점이 박혀 있다?”
“네, 맞아요. 저도 처음 월악산에 왔을 때는 그것만 찾아다녔어요. 그것만 팔아도 금 열 냥은 받거든요.”
“와! 은근 비싸네요?”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금 천 냥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열 냥도 큰 돈이었다.
“한 줄기가 비싼 건 아니에요. ‘일엽선초’는 한자리에 최소한 열 개 이상 나거든요. 그걸 다 캐서 팔면 열 냥을 받는다는 거였어요.”
“아…….”
연적하는 살짝 맥이 빠졌다.
‘일엽선초’ 열 뿌리면 금자 백냥이라고 좋아했는데 하나에 한 냥인 모양이다.
영지 선초들에 대해 설명하던 공지유가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연적하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내일부터 산을 돌아다니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터였다.
그녀를 보내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금단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데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사제는 ‘일엽선초’를 찾을 생각만 해. 다른 걸 생각하면 보고도 스쳐 지나가게 되거든? 그러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그거 하나만 생각해. 알았어?”
“사형은요?”
“나는 ‘천년설연화(千年雪蓮花)’를 노려 보려고.”
“그럼 저도 ‘천년설연화’로 하렵니다.”
“어허, 왜 이래? 부정 타게. 입산하기 전부터 욕심부리면 안 돼. 큰일 나.”
“욕심부리는 건 사형 같은데요?”
이야기를 듣던 연적하는 속으로 ‘천년설연화의 생김새나 말해!’라고 외쳤다.
그러나 두 남자는 옥신각신할 뿐 끝내 ‘천년설연화’의 생김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속으로 툴툴거리던 연적하는 더 이상 들어 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귀를 막았다.
그런데 ‘입산하기 전부터 욕심부리면 안 된다’는 말이 묘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일엽선초나 노리자.’
괜히 욕심부리다 ‘독안귀마’와 만나기라도 하면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다.
그는 머릿속으로 ‘일엽선초’를 수십 번 그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