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6
636회. 살검령인지 쌀검령인지 꺼내 봐!
활검령 일색에 가라앉았던 소요궁의 분위기가 검서린 진인의 무상검령으로 살아났다.
무상검령 하나의 전략적 가치가 활검령 일곱보다 더 큰 덕분이다.
진인 개인의 성취 면에서 보면 모든 검령은 같다.
하지만 전쟁이 임박해서는 아무래도 살검령이 환영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무상검령은 말할 것도 없다.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태을 존자의 시선이 연적하에게로 향했다.
그의 위치는 묘했다.
무위는 뛰어나지만 영기의 질이 하품에도 못 미쳐 소격각으로 배치됐다.
그러다 ‘천애불문비’의 기연을 얻어 최단 시일 내에 진인이 되었다.
‘검의 화신(化身)’ 백여 개를 구현해 백운정의 천향송실로 올려보냈다던가.
소요종 역사상 그처럼 빠르게 승급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무상검령의 출현으로 그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였지만 말이다.
당장 자신만 해도 연적하를 보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무상검령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연적하. 너는 어떤 검령을 얻었느냐?”
순간 검서린 진인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연적하에게 옮겨 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직 연적하가 남았음을 떠올렸다.
한순간 연적하를 잊을 정도로 검서린 진인의 무상검령이 준 충격은 컸다.
연적하는 사실 앞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하고 있었다.
태을 존자는 검령이 두 종류(살검령과 활검령)라고 했는데, 이어진 진인들의 대답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얻은 건 구천검령.
태을 존자나 진인들이 말하는 살검령이나 활검령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천검령을 살검령이나 활검령에 대충 넣어야 하나 한참 머리를 굴릴 때, 검서린 진인의 무상검령이 튀어나왔다.
‘이건 뭐지?’ 하는데 태을 존자나 제군들이 펄쩍 뛰며 좋아했다.
뒤늦게 그는 살검령이나 활검령 외에 다른 검령도 존재함을 알았다.
굳이 구천검령을 살검령이나 활검령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구천검령이오.”
“…….”
그러자 장내에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인들은 ‘이건 또 뭔가?’ 싶은 눈으로 태을 존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을 존자에게도 구천검령은 낯선 이름이었다.
당황한 그는 급히 제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제군들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인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황망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던 태을 존자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무상검령은 역대 종사 중에 얻은 분이 계셔서 알고 있었지만, 구천검령은 처음 듣는 이름이구나. 간략하게 어떤 검령인지 소개해 보거라.”
“아홉 하늘의 수호자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연적하는 ‘신들조차 우리 중에 셋 이상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우리 중 하나만으로도 능히 악신(惡神)에 맞설 수 있다’, ‘구천검령을 온전히 받으면 만신(萬神)조차 앙복(仰伏) 하리라’ 따위의 설명은 생략했다.
그런 말을 하면 과대망상이라고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었다면 ‘수호자들’이라는 말도 하면 안 됐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을 존자가 물었다.
“지금 ‘수호자들’이라고 했느냐?”
“예?”
“검령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육신에 혼이 하나이듯, 검령도 하나라는 건 상식이다.
한 인간에게 하나의 검령은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그래서 태을 존자는 ‘수호자들’이라는 표현이 실수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이름에 자신도 당황했으니 연적하도 그랬을 거라고.
그런데 이게 웬걸?
“아, 예. 아홉 개의 검령을 받았어요.”
“…….”
한순간 소요궁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형언하기 어려운 무거운 침묵이 오래도록 소요궁을 찍어 눌렀다.
구천검령에 반신반의하던 분위기는 이제 누가 봐도 의심으로 기울어졌다.
태을 존자와 제군들의 얼굴은 굳다 못해 살짝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구천검령만 해도 ‘그럴 수 있다’ 여겼지만, 아홉 개나 되는 검령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흐음!”
태을 존자는 차마 버럭 화를 내지 못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제군들 역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개라 해도 ‘흰소리 말라!’고 야단칠 판에 아홉 개라니.
지금 연적하 진인의 말은 아무리 좋게 봐도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초요산 제군은 연적하가 그를 소격각으로 보낸 일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 여겼다.
한산월 제군과 진곤 제군의 생각도 대동소이했다.
격려와 감탄으로 화기애애하던 소요궁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연적하를 벼르고 있던 목강산 진인이 슬쩍 운을 띄웠다.
“감히 종사님과 제군님들에게 여쭙겠습니다. 본래 검령은 하나가 아닙니까? 둘만 해도 이상한데 아홉이라니. 검령을 여러 개 얻는 게 가능한 것인지요?”
태을 존자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지라 듣지 못한 척했다.
제군들도 회피하는 기색을 보이자 초요산 제군이 마지못해 나섰다.
“험! 사람에게 혼이 하나이듯, 검령도 하나라는 것은 불변의 이치다. 하지만 아홉 개의 검령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검령이 불변의 이치라면, 아홉 개의 검령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허나 연 진인이 아홉 개의 검령을 얻었다고 하지 않느냐?”
말과 함께 초요산 제군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그는 지금이라도 연적하가 ‘그냥 해 본 소리였다’고 말을 바꾸기를 바랐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미 조용히 넘어가 주기는 틀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연적하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태을 존자와 제군들은 체면 때문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지만, 목강산 진인은 달랐다.
그는 연적하 진인과 동급이라 말싸움을 해도 깎일 체면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오랫동안 연적하 진인을 벼르던 그에게 지금은 그야말로 하늘이 허락한 기회였다.
그는 ‘검서린 진인의 검령을 제외하면 자신의 검령에 맞설 검령이 없다’고 믿었다.
살검령보다 살상력이 뛰어난 검령은 없으니까.
그는 화살을 연적하에게 돌렸다.
“연 진인. 구천검령이라는 것을 얻은 게 사실인가?”
“예.”
“한 사람에게 하나의 검령이 불변의 이치라는 말씀을 듣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절대불변이라고는 하지 않으셨잖아요.”
“허튼소리! 나는 모두가 그대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종문 역사에 그런 일은 없었다!”
“성물이 파괴된 적도 없었죠.”
연적하의 말에 목강산 진인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성물의 파괴 역시 종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목강산 진인이 냉소를 쳤다.
“흥! 지금 그대의 검령을 성물에 비교하는 건가? 실로 광오하군.”
“역사에 없다고 해서 그런 거거든요?”
“그대의 속이 배배 꼬여 있다는 것은 잘 아네만, 그렇다고 성물에 비교를 하면 안 되지.”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작 제 속이 배배 꼬인 주제에 남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하다니!
“이봐요. 누가 누구에게 속이 배배 꼬였다는 거예요? 꼬인 게 있다면 그쪽 속이 꼬였겠지!”
“종사님과 제군님들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니 꼬였다고 할밖에.”
“아니 누구더러 허튼소리래! 이 늙은이가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이 보자기로 보이나!”
늙은이라는 말에 목강산 진인도 폭발했다.
“뭐라! 실로 오만방자한 놈이로구나! 솔직히 나는 네놈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 네놈의 검령으로 나의 살검령에 대적할 수 있겠느냐!”
검령으로 싸워 보자는 소리다.
사실 검령을 얻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영기의 성질은 내공과 비슷해서 따로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검령은 다르다.
‘검의 혼’이라고도 불리는 검령은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검령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먼저 무공에 접목시켜야 한다.
그 뒤에야 검령을 영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출발점이 같다면, 목강산 진인처럼 경험 많은 진인에게 유리했다.
검령을 얻은 지 이제 보름 정도밖에 안 됐다면 더더욱 그렇다.
순간 태을 존자와 제군들은 목강산 진인의 교활함에 혀를 내둘렀다.
인간과 검령이 동화(同和)하지 못할 경우, 검령의 반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검령이 강할수록 반발력도 심하다.
지금이라면 무상검령을 얻은 검서린 진인도 목강산 진인의 상대가 되지 못할 터였다.
물론 그건 인간과 검령이 아직 동화하지 못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목강산 진인의 도발에 연적하보다 더 ‘울컥’한 존재가 있었다.
구천검령이다.
검령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본성에 맞는 대상을 선택한다.
그건 연적하의 성격과 구천검령의 성질이 닮았다는 것을 뜻한다.
고작 살검령을 얻고서 구천검령의 존재를 부인하고, 도발까지 하다니!
연적하의 기경팔맥과 신맥에 똬리를 틀고 있던 구천검령이 크게 진동했다.
거기에 자극받은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적할 수 있겠냐고? 이 늙은이가 누구 앞에서 이빨을 털어! 살검령인지 쌀검령인지 꺼내 봐! 내가 아주 곤죽을 내 줄 테니까!”
두 사람의 언행에 깜짝 놀란 진인들은 종사와 제군들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그런데 의외로 태을 존자와 세 명의 제군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펴고 여유를 되찾은 모습들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던가.
태을 존자와 제군들은 이 기회에 연적하가 얻은 검령의 실체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흔히들 나잇값이라는 말을 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목강산 진인이 태을 존자와 제군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너무 기가 막혀서 화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태을 존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괜찮다. 너희가 소동을 벌인 것은 맞으나,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면 확인하고 넘어가야지. 그거야말로 종문 제자의 바른 자세니라. 너는 연적하의 말을 거짓이라 확신하느냐?”
“예.”
“그래서 너의 살검령으로 그의 검령을 상대해 보겠다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두 사람의 대결을 허락하겠다. 술상이 엎어지면 곤란하니 자리를 옮기자꾸나. 연적하, 너도 동의하느냐?”
“예.”
그러자 태을 존자와 제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을 존자와 제군들이 밖으로 나가자 진인들도 쭈뼛쭈뼛 그 뒤를 따랐다.
소요궁 앞의 너른 앞마당에 연적하와 목강산 진인이 마주 보고 섰다.
목강산 진인이 먼저 검을 뽑았다.
연적하도 청사를 꺼내 들었다.
연적하가 준비를 마치자 목강산 진인은 상급 검공인 천벽일홍(天碧日江)을 펼쳤다.
슈아아악-.
검에서 일어난 시퍼런 진검강, 천벽(天碧)이 흉폭하게 연적하를 쓸어갔다.
연적하는 천산검영(天山劍影)으로 맞받았다.
고오오오오-.
백여 개가 넘는 ‘검의 화신(化身)’들이 파도처럼 밀려가 천벽을 찢어발겼다.
그러자 목강산 진인의 입에서 창룡음이 터져 나왔다.
“일홍(日紅)!”
순간 부서져 내리는 천벽들 사이에서 붉은 용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천벽일홍에 동화되었던 살검령이다.
붉은 용은 비늘을 바짝 세우고 역류하듯 ‘검의 화신’들 사이를 꾸역꾸역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한계에 달한 듯 스르륵 사라졌다.
그와 반대로 ‘검의 화신’은 오히려 수백 개로 늘어나 목강산 진인을 옥죄어 갔다.
믿었던 살검령이 막히자 목강산 진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굳어 버렸다.
수백 개나 되는 ‘검의 화신’이면 진인은 가루가 될 터.
연적하의 구천검령은 구경도 못 하고 목강산 진인만 죽어 나갈 상황이다.
보다 못한 태을 존자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순간 허공에 거대한 손 그림자[掌影]가 나타나 ‘검의 화신’들을 움켜잡았다. 진인들의 대결에 무려 소요종의 종사가 끼어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