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7
637회. 이젠 제군이라 불러야겠구려
본래 검령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많은 것이 검의 본질에 충실한 살검령이고, 그다음이 활검령이다.
검의 본질과 무관한 활검령이 많음을 두고 ‘극과 극은 통한다’거나 ‘음과 양처럼 스스로 균형을 맞춘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귀하기로 치면 몇백 년 간격으로 남두검령이나 북두검령처럼 성수검령(星宿劍靈)이 나왔고, 다시 수천 년 간격으로 조화검령(造化劍靈), 칠요검령(七曜劍靈), 호천검령(昊天劍靈) 등이 나타났다.
무상검령(無常劍靈)은 무려 십만 년 만에 나타난 것이니 존자와 제군들이 놀랄 만도 하다.
만약 소요종의 역사 속에 무상검령을 취한 자가 없었다면, 검서린 진인도-연적하처럼-다른 진인들의 도전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연적하는 운이 없었다.
종사인 태을 존자가 진인들의 대결에 끼어든 것은 단지 목강산 진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그가 목강산 진인과 연적하의 대결을 허락한 것은 구천검령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목강산 진인의 생사는 차치하고 구천검령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대범수인(大凡手印)으로 ‘검의 화신(化身)’들을 움켜잡았다.
대범수인은 종사들의 절기인 만큼 그 위력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콰드드득-.
대범수인에 잡힌 ‘검의 화신’들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목강산 진인으로서는 구사일행을 한 셈이다.
그 순간 목강산 진인은 뒤로 물러나는 대신 일검천붕(一劍天崩)의 검공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진검강에 휩싸인 검이 연적하를 노리고 날아갔다.
쉬이익-.
대범수인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은 상황이니 이 대 일의 싸움인 셈이다.
태을 존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자리를 지켰다.
아직 ‘검의 화신’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대범수인을 회수하고 물러설 수 없어서다.
체면 불고하고 진인들의 결투에 끼어들었는데 구천검령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구천검령만 보고 손을 뗄 생각이었다.
한편 연적하는 갑자기 태을 존자가 끼어들어 판을 흔들자 불쾌했다.
애초에 목강산 진인을 죽일 생각도 없었다.
‘검의 화신’은 이기어검처럼 방향만 바꾸면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걸 모를 태을 존자가 아닌데 끼어든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지금의 자신은 소요종에서 별것 아닌 위치다.
승급해도 소격각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두고두고 따라다닐 것이다.
오늘 목강산 진인이 시비를 건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이 인정받지 못해서다.
남궁연은 소요종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모른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소요종을 대표하려면,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부숴야 한다.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마침 목강산 진인이 앞으로 펄쩍 뛰어들었다.
그냥 달아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고맙게도 기회를 만들어 주다니!
연적하는 청사로 목강산 진인의 검을 쳐 냈다.
쩌엉-!
어찌나 상대의 검에 큰 힘이 실려 있던지 하마터면 뒤로 밀릴 뻔했다.
그러나 끝내 연적하의 강한 힘에 목강산 진인의 검이 뒤로 튕겼다.
연적하는 목강산 진인의 앞으로 뛰어들며 검 손잡이로 목강산 진인의 이마를 찍었다.
퍼억!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목강산 진인의 신형이 뒤로 넘어갔다.
다음 순간 청사(靑蛇)가 태을 존자를 가리켰다.
허공에 떠 있던 ‘검의 화신’들이 태을 존자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쐐애애액-.
이전까지의 속도와는 천양지차로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 가공할 기세와 빠른 속도 앞에서는 태을 존자조차도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이? 해보자는 건가?’
태을 존자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일대일의 대결 구도에서 물러나기도 어려웠다.
물론 싸움을 건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래도 종사에게 검 끝을 돌리다니?
화가 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비록 연적하가 천애불문비의 기연과 검령을 얻었다 해도 그의 눈에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태을 존자는 일단 대범수인에 더욱 영기를 밀어 넣었다.
일 장(약 3미터)여 크기의 손바닥이 오 장(약 15미터) 크기로 늘어났다.
마당 위를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난 손그림자가 ‘검의 화신’을 마구 잡이로 잡아챘다.
콰지지직! 콰직!
단숨에 백여 개의 ‘검의 화신’이 수수깡처럼 파괴되었다.
진인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지만, 제군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대범수인에 박살이 난 ‘검의 화신’이 수백 개가 넘는다.
그런데 아직도 하늘은 ‘검의 화신’으로 가득했다.
대범수인은 ‘검의 화신’을 박살 낼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영기의 소모가 심하다. 아무리 종사라 해도 무한대로 대범수인을 쓰지는 못한다.
그 말은 ‘검의 화신’이 줄어들지 않으면 태을 존자가 낭패를 당할 거라는 뜻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범수인은 계속해서 ‘검의 화신’을 부숴 나갔다.
아니, ‘검의 화신’이 대범수인에게 날아가 박힌다는 표현이 맞다.
연적하는 마치 ‘검의 화신’으로 대범수인을 박살 낼 것처럼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콰지직! 콰직! 콰직-!
시간이 지나자 진인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손그림자가 밀어붙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수세로 바뀐 것 같다?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검서린 진인이다.
‘헉! 검의 화신으로 대범수인을 부수고 있구나!’
하늘 가득한 ‘검의 화신’은 변함이 없는데 손그림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무식한 힘의 대결에서 태을 존자의 영기가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태을 존자의 여유만만하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허어!’
연적하 진인의 검령을 보려고 시작한 일인데 자신의 밑천부터 꺼내야 할 판이다.
검령을 쓰지 않으면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 난망한 상황이었다.
‘저놈의 영기가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그의 영기는 종사인 자신과 비교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대범수인에 의해 ‘검의 화신’이 몽땅 박살 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신의 대범수인이 줄어들고 있었다.
상대가 진인이라 검을 쓰기 민망해 장법으로 시작했는데, 실수다.
‘쯧! 처음부터 검을 썼으면 이렇게 수세에 몰리지도 않았으련만.’
결국 태을 존자는 대범수인을 거두어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대범수인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검의 화신’들에 몸이 노출되는 까닭이다.
‘제길!’
종사 체면에 진인에게 두 가지 공법을 써야 한다니!
태을 존자는 오른손으로 대범수인을 유지하며 왼손 검결지를 세웠다.
순간 검결지 끝에서 칠색의 서기가 밤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태을 존자가 자랑하는 칠요검령(七曜劍靈)이었다.
파아앗-.
이윽고 칠색의 서기는 지면으로 방향을 꺾어 그물처럼 뻗어 나갔다.
그 한 수에 전세가 역전됐다.
밤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검의 화신’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칠요검령에 녹아 버린 것이다.
하늘이 뻥 뚫리자 대범수인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태을 존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꽤나 난폭한 한 수였다.
콰아아-.
연적하는 저 칠색의 서기가 태을 존자의 검령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게 아니라면 진검강보다 강하다는 ‘검의 화신’이 한순간에 깨질 리가 없으니까.
태을 존자의 검령이 나왔으니 자신도 검령을 꺼내야 할 때였다.
연적하는 검결지로 손그림자를 가리켰다.
태을 존자가 검령으로 ‘검의 화신’을 부쉈으니 자신도 똑같이 돌려줄 생각이다.
그는 독맥에 있던 구천검령을 떠올렸다.
아니, 독맥에 있던 구천검령이 가장 열렬하게 반응했다는 게 맞다.
이윽고 연적하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형(劍形)이 떠올랐다.
검신의 폭이 일장(약 3미터)이나 되고, 길이도 무려 십장(약 30미터)에 달했다.
용암처럼 시뻘건 검형은 태을 존자의 대범수인을 찢고 솟구쳐 올랐다.
쑤아악-.
‘크윽!’
태을 존자는 손바닥으로 찢어지는 듯한 격통이 전해지자 황급히 손을 뒤로 뺐다.
어찌나 아프던지 오른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을 경험했지만, 이런 통증은 처음이다.
마치 시뻘겋게 달군 바늘이 장심에 박힌 느낌이다.
그렇다고 태평하게 손바닥의 상태나 확인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왼손의 검결지를 흔들어 흩어졌던 칠요검령을 한데 모았다.
칠색의 서기가 더욱 농밀해지자 벌렁이던 가슴도 조금 진정이 됐다.
이제 연적하의 구천검령에 대한 의심은 내려놓았다.
도도하게 날아오른 저 검형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검령이었다.
이제 검령 대 검령의 싸움이다.
태을 존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진인들 장난에 놀아 주는 느낌으로 시작한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져 버렸다.
그런데 칠요검령의 칠색 서기가 오늘따라 왠지 빛이 바래 보인다.
‘설마 칠요검령이 두려워하는 건가?’
인간과 동화(同化)된 검령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검령과 인간 간의 순수한 감정의 교류는 계속된다.
태을 존자는 자신과 함께 구주(九州)를 종횡하던 칠요검령이 몸을 사리자 기가 막혔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가라!’
태을 존자는 검결지로 검형을 가리켰다.
그러자 칠요검령이 마지못해 거대한 검형, 구천검령을 향해 날아갔다.
꽈르르릉-!
천번지복(天翻地覆)의 폭발음과 함께 밤하늘에서 불꽃이 튀었다.
대폭발에 모두 터져 버렸는지 밤하늘에서 검령들이 사라졌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밤하늘을 응시할 때다.
광명진천(달의 이름)에서 뭔가 반짝였다.
이윽고 붉은 검형이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연적하의 구천검령이었다.
대경실색한 태을 존자는 즉시 검을 뽑아 머리 위로 휘둘렀다.
천 년간 천산검영(天山劍影)을 참오하다 창안한 통천검강(通天劍)의 검공이다.
콰콰콰콰-.
소용돌이치며 올라간 수백 개의 진검강이 구천검령을 휘감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콰지지직-!
썩은 지푸라기처럼 가루가 된 진검강의 파편들이 밤하늘에 흩날렸다.
순간 허공으로 도약한 태을 존자는 검결지로 구천검령을 지그시 눌렀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구천검령이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태을 존자는 검결지로 구천검령을 누른 상태로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연 진인, 아니 이젠 제군이라 불러야겠구려. 종문 역사상 그대보다 빠른 성취를 가진 제자는 없을 것이오.”
태을 존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제군과 진인 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천지종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군이 탄생했으니 소요종의 큰 경사다. 여러 제군들은 연적하 제군의 거처를 마련해 주고, 그와 함께 천지종의 침탈에 대비하도록 하시오.”
“예.”
세 명의 제군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태을 존자가 진인을 제군으로 인정하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종사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제군들은 지금 연적하의 구천검령에 압도당한 상태였다.
마지막에 태을 존자가 직접 손을 쓰기 전까지 구천검령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태을 존자의 칠요검령마저도 당해 내지 못했다.
소요종이 종문 중에 상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사의 검령과 싸워 이긴 것이다.
성수검령(남두검령, 북두검령 등)을 가진 제군들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태을 존자는 구천검령이 스르륵 사라지자 그제야 검결지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제군들에게 둘러싸인 연적하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소요궁으로 들어갔다.
축하연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