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8
648회. 한시적인 동맹을 맺어 볼까 하네
소요종 종산 불우산.
천지봉 소요궁.
소요정이 태을 존자의 거처라면 소요궁은 그가 공무를 보는 곳이다.
회의실로 안내된 연적하는 태을 존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신만 따로 부른 것인지 다른 세 명의 제군들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천지종에 갔었다는 걸 아는 건 아니겠지?’
만약 태을 존자가 사람을 시켜 은밀하게 지켜보게 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천지종과의 전쟁 중에 천지종을 드나든 것은 간자 취급당해도 할 말이 없다.
‘왜 갔냐고 물으면 뭐라고 하지?’
연적하가 부지런히 머리를 굴릴 때, 태을 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냈나?”
“예.”
연적하는 빈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화답 차원에서 태을 존자의 근황을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궁금하지 않았고, 건강하다는 건 지금 봐서 알 수 있었으니까.
자연히 대화가 뚝뚝 끊어졌다.
부른 사람답게 어색한 대화를 이어 가는 사람은 태을 존자였다.
“삼관정은 마음에 드나?”
“예, 소격각에 비하면 천궁입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자네가 삼관정에 있는 걸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는 모양이야. 자네가 다른 곳을 원한다면 그리 보내 줄 수도 있네.”
“괜찮아요. 옮겨 봐야 거기서 거기죠.”
“그런가.”
태을 존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연적하 제군을 보았다.
이왕이면 삼관정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좋았을 텐데, 거기서 거기라니.
왠지 어차피 오십보백보일 테니 그냥 삼관정을 쓰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자네가 삼관정이 마음에 든다니 더 권하지는 않겠네. 그건 그렇고 오늘 내가 자네를 부른 건 한 가지 맡길 일이 있어서야.”
연적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지종에 갔던 일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니 한시름 놓았다.
“무슨 일인데요?”
“자네가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비경이 닫힌 직후 천뢰종에서 천태종을 쳤네. 지금은 완산주의 백년하를 사이에 두고 천태종의 고수들과 대치 중이지.”
“아…….”
이미 남궁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연적하는 내색하지 않았다.
“며칠 전 천뢰종의 한암 존자가 사자를 보내 한시적 동맹을 맺자고 하더군. 등 뒤에 우리를 두고 천태종과 싸우려니 부담이 되는 모양이야.”
연적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천뢰종이라고 하니 심통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창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그를 향해 태을 존자가 물었다.
“……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딴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연적하가 되물었다.
“천뢰종과 천태종 중에 어느 편이 이길 것 같냐고 물었네.”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가? 나와 제군들은 천뢰종의 승리를 점치고 있네. 자신 있으니 천태종의 종산이 있는 완산주로 쳐들어갔겠지. 그렇지 않은가?”
“아, 예.”
연적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체로 먼저 쳐들어가는 쪽이 강한 것은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천뢰종이 ‘한시적’이라고 한 말에 주목하고 있다네. 그 말은 나중에 우리와 척을 질 수도 있다는 뜻이거든.”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그는 태을 존자가 왜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삼관정에서 찬밥 소리나 듣는 자신에게 뭘 바라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의 적은 천지종이 전부였네. 정확히 말하면 천지종의 침입에 방어하는 입장이었지. 하지만 구주의 현실은 시시각각으로 변 하고 있네. 적은 천지종이 아니며, 우리도 움츠리고 있을 수만도 없게 된 형국이랄까.”
한순간 가라앉아 있던 태을 존자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연적하는 문득 녹림 총채주 파천마군 석무해를 떠올렸다.
지금 태을 존자의 눈빛은 파천마군과 닮아 있었다.
이전까지 잔잔한 호수였다면 지금은 태풍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 같았다.
‘그래서 천뢰종이나 천태종을 칠 수도 있다는 건가?’
지정학적으로 소요종은 천뢰종과 천태종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그러니 어디로든 움직이려면 천뢰종이나 천태종을 거쳐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금의 현실은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상황이네. 종문들의 최종 목표는 천문이야. 우리가 천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천지종은 물론, 다른 종문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지.”
그 말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요종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한시적인 동맹을 맺어 볼까 하네.”
“아, 천뢰종과요?”
천뢰종의 제안이고, 그들이 천태종보다 우세하니 천뢰종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태을 존자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 나는 천태종을 생각하고 있네. 천뢰종은 소요종이 감당하기 어렵지만, 천태종은 상대해 볼 만하거든.”
“…….”
연적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사실 소요종이 어느 쪽과 먼저 손을 잡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목표는 아홉 종문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자네가 천태종과 만나 나의 뜻을 전했으면 하네.”
“제가요?”
연적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을 존자를 보았다.
종문의 일에 아직 어두운 자신에게 이 무슨 막중한 제안인지 모르겠다.
“기존의 제군들은 너무 알려져 있네. 다른 제군들이 완산주로 가면 천뢰종에서 눈치를 챌지도 몰라. 그러니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자네가 적격일세.”
“끙! 그럼 가서 말만 전하면 되나요?”
“따로 편지를 쓸까 했는데, 분실의 위험이 있으니 구두로 나의 뜻을 전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 오도록 하게.”
“제가 이런 일을 잘 모르지만, 천뢰종이 무너지면 영천주를 어떻게 하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자 태을 존자가 피식 웃었다.
“천태종에서 영천주를 장악하면 우리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고 말지. 천태종에서도 우리가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걸세. 끝까지 천태종이 영천주를 갖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우리는 그들과 다시 싸워야 하네. 그래서 한시적인 동맹인 거고.”
“아…… 그런데 사벌주의 법요종은 어떻게 된 건가요?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비경에서 우리 소요종 진인들을 돕지 않았거든요.”
“종문 간의 싸움이 과거와 달리 복잡하고 치열해서 손을 뗐다고 하더군. 그들과의 협력 관계는 비경이 닫힘과 함께 끝났네.”
“여하튼 더 이상 소요종의 동맹이 아니라는 거죠?”
“엄밀히 말해 구주의 그 어느 종문도 소요종의 동맹이었던 적은 없네. 법요종과도 어느 한쪽에서 손을 떼면 끝날 가벼운 관계였지.”
“천태종과의 한시적인 동맹도 그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태을 존자를 보았다.
동맹이라기에 정사파가 천지맹으로 뭉친 걸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맞네. 구주의 종문을 동물에 비유하자면 호랑이라 할 수 있네. 결코 무리를 짓는 법이 없지. 천뢰종이 ‘한시적’이라 한 것도 그래서고.”
그제야 연적하는 종문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다.
호랑이 같은 최고의 포식자는 무리 지을 필요가 없다.
구주에서 종문의 위치가 딱 그랬다.
지금은 성물의 파괴로 자기 영역에 머무르던 호랑이들이 미쳐 날뛰는 중이고.
덕분에 자신과 남궁연에게 강호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으니 감사할 일이기는 하다.
“언제 출발하면 되나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지금 가도록 하게.”
“예.”
연적하는 태을 존자에게 인사를 하고 즉시 삼관정으로 돌아갔다.
관음봉 삼관정.
연적하는 완산주로 떠나기 전에 하나뿐인 제자 병휴 방사를 불렀다.
병휴 방사가 탁자 옆에 놓은 행낭을 보고 물었다.
“또 출타하시게요?”
“어, 그렇게 됐다. 이번에는 태을 존자님의 심부름을 가기로 했다.”
“아니, 태을 존자님은 연 제군님을 찬밥 대우하면서 심부름은 왜 시킨대요?”
“다른 제군들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나를 보내는 거란다.”
“구름 위로 떠다니시는 분들이 얼굴 좀 알려진 게 뭐 어때서요?”
“밥 먹고 잠잘 때는 땅 위로 내려가잖냐.”
“저는 어째 느낌이 싸합니다. 삼관정에 처박아 두더니 갑자기 심부름이라니.”
“소요종 종사가 가라면 가야지. 별 수 있냐.”
“무슨 일로 가시는 건데요?”
“알면 다친다.”
“아, 예에. 그럼 관심 접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쇼.”
“혹시 누가 나를 찾으면 태을 존자님의 심부름으로 하산했다고 해.”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지난번처럼 오래 안 걸릴 거야. 늦어도 열흘?”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누가 물으면 그렇게 답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간다.”
연적하가 행낭을 들고 일어서자 병휴 방사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가시게요?”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서 그래.”
연적하는 병휴 방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지 않았다.
소요종의 참전(參戰)과 직결된 일인지라 최대한 조심한 것이다.
잠시 후 마당으로 나간 연적하는 운종술을 써서 서편 하늘로 날아갔다.
***
완산주.
강동성.
도리포.
정오.
한낮의 도리포는 시끌벅적하던 평소와 달리 고요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가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쩌다 필요한 말을 할 때도 행여나 꼬투리가 잡힐세라 신중했다.
이 모두가 천뢰종 고수들이 들이닥쳐 도리포 항구를 접수한 뒤로 생긴 변화다.
연적하는 운종술로 백년하를 건너가려다가 도리포로 방향을 바꾸었다.
심통을 만나 천뢰종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천뢰종에서 한시적 동맹을 제의할 만큼 소요종에 대해 호의적인지 궁금했다.
천뢰종 고수들의 숙소가 잘 보이는 곳에서 반 시진(1시간) 가량 지켜보자, 심통이 나타났다.
연적하는 한창 점심 식사중인 심통에게 전음을 보냈다.
-식사 마치고 백리하 강변으로 나와.
심통은 갑작스러운 전음에 놀랐는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하 강변.
연적하를 본 심통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전보다 훨씬 헌앙해지신 걸 보니 검령을 얻으셨나 봅니다?”
“심 노인은 못 얻었지?”
“예, 죽도록 고생만 하고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나온 게 어디야? 이번에 칠 할 정도가 죽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은 하려고 하는데, 사람 욕심이 어디 그렇습니까? 검령을 얻고 훨훨 날아가는 것들만 보면 배알이 꼴려서…….”
사실 비경에 들기 전까지의 심통은 잘나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비경에서 고배를 마시고, 이제는 사람들의 기대에서 멀어져 있었다.
진인들에게 검령은 성패를 가르는 기준.
검령을 얻지 못한 심통은 평범한 진인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연적하는 그의 열패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왜 내가 찾아온 게 싫어? 불만이야?”
“그럴 리가요. 천뢰종과 천태종의 싸움판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다.”
“뭐 좀 물어보려고 왔어.”
“물어보십쇼.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흘 전에 소요종 종사를 만났는데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천뢰종에서 한시적으로 동맹을 맺자고 했다나? 그래서 천뢰종 분위기를 확인해 보려고 와 본 거야. 천뢰종에서는 소요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 한시적이든 뭐든 소요종과 동맹을 맺자는 분위기야?”
“저 같은 진인이 뭘 알겠습니까만.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는 있습니다.”
“뭔데?”
“소요종에 굉장한 고수가 나타났다는데 사실 파악부터 하자, 뭐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동맹은?”
“사실 파악부터 하자는 건, 소요종과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소요종에 대해서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맹의 제안이 사실이라는 소리다.
연적하는 태을 존자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맹을 제의한 천뢰종의 배후를 굳이 치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