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5
715회. 천문을 달라는 건 누구 생각이야?
신화(神化), 즉 ‘신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 든다’는 말이 있다.
건강하지 못한 육체와 정신으로 ‘신화’를 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최악의 경우 육체나 정신의 일부가 붕괴되기도 한다.
육체의 붕괴도 치유가 어렵지만, 내부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정신의 붕괴는 구제 불능이다.
정신의 붕괴는 일종의 주화입마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정신이 황폐해지면 무슨 짓을 벌일지 알지 못한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다.
광명진천의 ‘신화’에는 그런 위험이 뒤따른다.
그 말은 즉, 위험을 무릅쓰고 ‘신화’를 할 정도로 광명진천이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신(神) 디나미스가 사용한 주법은 천족들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디나미스의 ‘신벌(엘하임 티모리아)’에 연적하의 천둔검이 폭발했다.
꽈광-!
충격의 여파로 운종술까지 깨지자 연적하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디나미스는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화염검을 소환해 들고 아래로 날아갔다.
뒤이어 검신이 일 장(약 3미터)이나 되는 화염검으로 연적하를 베었다.
화르륵-.
화염검의 참격에 연적하의 몸은 금방이라도 양단당할 것처럼 보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무토막처럼 떨어져 내리던 연적하가 눈을 번쩍 떴다.
‘이런 제길!’
폭발의 충격으로 혼미하던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화염검의 기세가 놀라웠다.
과거 경험한 광천사 베레드의 화염검이 반딧불이라면 저건 횃불은 되는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광명진천의 신격에 걸맞은 검공이었다.
천둔검은 광명진천의 주법에 깨졌으니 다른 것을 써야 한다.
자신에게는 아직 구천검령이 남아 있었다.
연적하가 구천검령을 떠올리자 기경팔맥과 신맥에 깃들어 있던 검령들이 일제히 화답했다.
아홉 개의 검령은 서로 나가지 못해 아우성을 쳤다.
구천검령의 힘이 깨어난 순간 연적하의 몸은 거짓말처럼 허공에 멈춰 섰다.
낙하하는 속도에 맞춰졌던 화염검이 연적하의 발밑을 스치듯 지나쳤다.
화르르륵-.
전지전능한 신의 참격이 빗나간 셈이다.
어깨가 돌아갈 정도의 헛손질에 디나미스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치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허공에 우뚝 선 연적하의 등 뒤로 거대한 붉은 검이 등장했다.
신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이 나온 것이다.
거대한 구천검령의 크기에 화염검이 젓가락처럼 작아 보였다.
자존심이 상한 디나미스는 급히 들고 있던 화염검의 크기를 늘렸다.
화염검은 이내 구천검령만큼 커졌다.
때마침 연적하의 검결지가 광명진천을 가리켰다.
붉은 검이 그 거대한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광명진천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번쩍-.
순간 디나미스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한 박자 늦게 화염검이 붉은 검을 향해 마주 쏘아 갔다.
두 검 모두 워낙 덩치가 큰 터라 노리지 않았음에도 중간에서 맞부닥쳤다.
꽈르르릉-!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섬광 작렬했다.
대폭발은 아무래도 수세를 하던 디나미스의 가까이서 일어났다.
섬광이 번득인 순간 디나미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급히 다시 눈을 뜬 그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헉!”
붉은 검이 가슴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화염검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다섯 쌍의 날개를 움직여 가슴을 가렸다.
콰콰콰콰콱-!
뒤이어 듣기 거북한 파열음과 함께 다섯 쌍의 날개가 잘렸다.
신의 권능이 깃든 날개가 순차적으로 떨어져 나갔다.
천족에게 날개는 권세의 상징이자 권능 그 자체였다.
그랬던 만큼 다섯 쌍의 날개가 잘린 순간, 디나미스의 사고도 멈췄다.
퍽-.
붉은 검이 디나미스의 명치에 박혔다.
그래도 디나미스로 신화(神化)한 몸이라고 단번에 꿰뚫리지는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린 디나미스가 두 손으로 칼끝을 움켜잡았다.
“익스파니지메노스(소멸하라)!”
신언(神言)의 절대명령 앞에 붉은 검이 ‘퍽!’ 하고 사라졌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디나미스의 의지가 연적하와 구천검령의 관계보다 강했다.
연적하는-붉은 검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졌음에도-놀라지 않고 기경팔맥에서 두 개의 구천검령을 꺼냈다.
그의 얼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했다.
아직은 ‘의지’보다 ‘직접 닿는 힘’이 더 강하게 작용했음을 알아서다.
상황이 만들어 준 행운일 뿐이다.
구천검령의 속도를 생각하면 그걸 손으로 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죽여 버릴까?’
지금이라면 광명진천을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의 주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지만, 자신의 구천검령은 더 강하다.
연적하의 뒤에 떠올랐던 두 자루 구천검령의 검 끝이 천천히 광명진천을 겨누었다.
공교롭게 그 순간 광명진천의 ‘신화’가 풀렸다.
광명진천은 거신(巨神) 디나미스에서 인간보다 조금 큰 천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 쌍의 날개로 위태롭게 떠 있던 광명진천이 말했다.
“나를 죽일 셈인가.”
연적하는 답하지 않았다.
안하무인이던 광명진천은 이제야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홀로 마족들을 막지 못한다. 마천의 마족들로부터 구주를 지키려면 천족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나를 죽인다면 마천뿐 아니라 천계까지도 적으로 돌리게 될 텐데, 나와의 은원이 그 정도로 깊으냐?”
연적하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구차한 소리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는 구천검령을 움직이지 않았다.
살겠다고 늘어놓는 말들이지만, 그렇다고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신좌(神坐)에 오른 존재들은 신이 아니지만,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진짜 신과 가짜 신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신이라 칭할 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천족과 마족들 중에 그런 능력자가 적지 않았다.
당장 세상에 드러난 것만 해도 ‘아 홉 군주’와 ‘팔왕’과 ‘삼천의 신’까지 스물이나 된다.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자신에게 구천검령이 있다 해도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신좌에 오른 존재들과 싸우다가 강호로 돌아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설사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진 것이다.
아니, 망한 삶이 되고 만다.
‘그럼 안 되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다.
그건 자신과 남궁연에게 구주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한 아픔이 될 터였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런 속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빛살처럼 날아간 두 자루의 구천검령이 광명진천의 턱 아래로 파고들었다.
구천검령의 크기를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조작이다.
그건 마치 대(大劍)을 파리의 목 밑에 바싹 들이댄 것과도 같았다.
광명진천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평소 연적하의 단순무식함을 생각하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좌에 오른 뒤로 처음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이 그를 잠식해 들어갔
그렇지 않아도 ‘신화’의 부작용으로 마음이 불안한 상황에, 죽음의 공포까지 덧씌워지자 광명진천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졌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그에게 연적하가 물었다.
“살고 싶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광명진천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박한 질문이지만 승자가 그것을 원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다.”
“그럼 매달려 봐. 그쪽도 나한테 매달리게 했잖아. 기억 안 나?”
“……살려다오.”
“살고 싶으면 묻는 말에 정직하게 답해 봐. 천문을 달라는 건 누구 생각이야? 그쪽은 원하면 아무 때라도 천문을 조사할 수 있었잖아.”
“천족들이 그러기를 원했다.”
“그쪽이 원한 건 아니고?”
“나는 이미 오래전에 천문에서 손을 뗐다. 원한다면 아무 때나 들여다볼 수도 있고.”
그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소리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전투에서 그가 보여 준 신위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파병의 조건으로 천문을 달라고 한 게 천족이라는 거지?”
“그렇다. 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중재자다.”
광명진천은 자신만만하던 평소와 달리 변명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실제로 천문을 원한 건 천족이지 그가 아니었다.
그가 제안한 것처럼 보인 것은 쌍방 간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서였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모두 천족을 위해 그런 것이지만 말이다.
“결국 천문을 줘야 한다는 소리네?”
“…….”
광명진천은 답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내막을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아니, 천족은 왜 갑자기 천문에 욕심을 내는 건데?”
“천족에 지혜의 신으로 알려진 우샤스 킨샤사보다 뛰어난 천재가 등장했다. 천족들은 그가 천문의 비밀을 풀어 줄 거라 믿고 있다.”
“그쪽이 믿는 건 아니고?”
연적하가 광명진전을 빤히 보았다.
광명진천 정도 되는 존재가 그 정도 확신도 없이 나섰을 것 같지 않아서다.
“나 역시도 기대하고 있다.”
광명진천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그녀의 지혜는 하늘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연적하는 더 이상 천족의 천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천재는 남궁연뿐인지라 아예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쪽이 나서서 천족을 설득할 수는 없고?”
연적하는 광명진천이 종문에 그랬던 것처럼 천족을 단념시켜 줬으면 했다.
“천족에도 큰 희생이 따를 테니 설득당하지 않을 것이다.”
“설득이 안 되면 욕심내지 말라고 하든가.”
“내가 ‘삼천의 신’이지만 천족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두 쌍의 날개를 잃은 걸 알게 되면 내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을 것이다.”
천족들에게 날개의 숫자는 곧 서열을 의미한다.
한 쌍의 날개는 중급에 불과했다.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연적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날개를 잃으면 말을 안 들어?”
“천족의 날개에는 고유의 권능이 담겨 있다. 종문으로 치면 영기의 결정체인 셈이지. 그래서 날개의 숫자가 곧 신분이다.”
“한 쌍은 낮은 신분이고?”
“중급이니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그쪽은 ‘삼천의 신’이잖아?”
“네가 ‘신화’한 나의 날개를 모두 잘랐으니, 나는 더 이상 ‘삼천의 신’이 아니다.”
“아!”
그제야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천족의 날개에 그런 묘용이 있었다니 짐작조차 못 했던 일이다.
“그럼, 그쪽은 이제 평범한 천족인 거야?”
“비슷하다.”
광명진천은 애매하게 답했다.
아직 ‘신화’의 몸(디나미스)이 남았지만 날개를 잃었으니 의미가 없었다.
연적하는 그에게 사정이 있음을 알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천족은 아홉 개의 천문을 다 원하는 거야? 아니면 하나만 줘도 되는 거야?”
“아홉 개를 다 원할 테지만 협상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하나의 천문을 통해 상천 세계로 가는지, 혹은 아홉 개가 다 있어야 가능한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광명진천이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건 천족의 천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으니까.
“천족에게 전해. 가급적 빨리 만나자고.”
최고신에서 전령으로 전락한 광명진천은 모멸감에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