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7
727회. 지금 빨리 옥천항으로 가야 해
붉은 검이 ‘타큐라’의 주법으로 만들어진 암경을 가르고 지나갔다.
콰드드드득-!
강제로 주법이 깨지자 그 충격은 광명진천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크윽!”
광명진천은 가슴의 뼈가 짓눌리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본래 그는 이 정도 고통에 소리를 낼 존재가 아니다.
그의 신음은 절망에 북받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
‘대종사가 왜!’
붉은 검은 연적하 대종사의 검령 중에 하나였다.
그는 가슴을 움켜잡고 급히 검령이 날아온 반대편으로 날아올랐다.
파팟-.
그러나 그의 몸은 허공에서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북악봉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에서 붉은 검과 같은 크기의 검 여덟 자루가 날아오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신이라 해도 이 정도의 신위는 보일 수 없으리라.
달아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광명진천은 빙설화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있어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는 빙설화를 인질로 대종사에게서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광명진천보다 붉은 검이 더 빨랐다.
츠츠츠-!
어느새 허공을 선회하고 돌아온 붉은 검이 빙설화의 앞에 내려왔다.
광명진천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멈춰 서야 했다.
그가 이도 저도 못 하고 갈팡질팡한 그 짧은 순간, 마침내 연적하가 북악봉 상공에 도달했다.
“이 개새끼야!”
웅혼한 외침과 함께 연적하의 몸이 광명진천에게 날아갔다.
광명진천은 이미 연적하에게 다섯 개의 날개를 잘린 경험이 있다.
하물며 지금은 고작 세 개의 날개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홉 개나 되는 검령에 완전히 투기가 꺾인 상황.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그는-최고신이라는 찬사에 어울리지 않게-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섣불리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느니 몸으로 때우고 자비를 구걸할 생각이다.
연적하의 주먹이 광명진천의 옆구리에 박혔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광명진천의 몸이 뒤로 튕겼다.
광명진천의 몸이 날아오자 구천검령 하나가 지면으로 방향을 꺾었다.
구천검령의 검신에 광명진천의 몸이 처박혔다.
터엉-.
그의 몸이 검신을 타고 막 아래로 흘러내리려는 때다.
번개처럼 날아온 연적하의 주먹이 광명진천의 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쾅! 쾅-!
연적하는 그의 몸이 아래로 처지려 할 때마다 한차례씩 걷어차 위로 올렸다.
연적하의 무자비한 폭력에 단단하던 광명진천의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급기야 머리를 감싸고 있던 광명진천의 두 팔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연적하는 기절한 광명진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는 남궁연의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연적하가 광명진천을 끌고 오자 남궁연이 말했다.
“죽이면 안 돼.”
“예, 죽여도 사과를 받고 죽이려고요. 그리고 이놈은 신좌에 오른 놈이라 잘 죽지도 않아요.”
광명진천을 살피던 남궁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워낙 참혹하게 짓뭉개져서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다.
하기야 주먹질로 신을 때려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연적하가 남궁연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배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다친 건 아니죠?”
“괜찮아. 네가 시간 맞춰 잘 와 줬어.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제가 말 안 했나요? 육신통(六神通)이 있다고.”
“아! 천안통으로 알아낸 거니?”
“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계속 찜찜하더라고요. 그래서 누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좀 살펴봤죠.”
“그랬구나.”
“그런데 누님은 이 시간에 왜 북악봉에서 이놈과 싸웠어요?”
“창조신에 대한 책을 읽는데 쪽지가 보이더라고. 창조신의 이명(異名)을 알고 싶으면 자정에 북악봉으로 나오라나. 종문 제자의 짓이라 생각해 신 노조를 데리고 나왔다가 그만.”
남궁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걸 옥천항에 있는 광명진천이 꾸민 줄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신의 이명이 아무리 궁금해도 신무희 노조만 데리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적하가 발끝으로 광명진천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신의 이명이 그렇게 중요해요?”
“이름에는 본성이 담겨 있으니까. 아무리 책을 뒤져도 창조신에 대한 기록이 없더라고. 다들 창조신이라고만 하지 정작 그 신이 어떤 신인지를 몰라.”
“그건 또 그렇네요.”
연적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도 창조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창조신을 알면 천문도 열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래서 창조신의 이명을 알기 위해 무리를 했군요?”
“만약 이게 광명진천이 벌인 일인 줄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야.”
남궁연은 광명진천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북악봉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후 광명진천의 호흡이 바뀌었다.
하지만 광명진천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연적하는 그가 깨어났음을 알고 발로 그의 머리를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이 노괴야. 내가 너 같은 놈들을 많이 봐서 알아. 계속 기절한 척하면 이대로 대가리를 터뜨려 버린다.”
연적하가 발에 더욱 힘을 싣자 광명진천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방금 깨어났다.”
그제야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머리에서 발을 뗐다.
비칠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광명진천은 연적하와 남궁연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광명진천이 저게 무슨 뜻인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다.
돌연 광명진천의 양쪽 어깨에 구천검령 두 자루가 나란히 얹어졌다.
이윽고 구천검령의 검날이 광명진천의 눈앞에서 맞닿았다.
카앙-.
맑은 검명에 광명진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구천검령으로 만든 계구(戒具, 족쇄나 칼 따위)를 목에 쓴 형국이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도 쉬지 못했다.
연적하의 손짓 한 번에 파리 대가리처럼 목이 똑 떨어지게 생긴 까닭이다.
엉망진창으로 깨진 광명진천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우리 누님이 아직 죽이면 안 된다고 해서 살려 둔 거니까. 누님, 뭐 하실 말씀 있어요?”
“응.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죠? 약속대로 북악봉에 나왔어요. 신의 이명이 뭔지 말해 봐요.”
“…….”
그러나 광명진천은 입을 열지 않았다.
참다못한 연적하가 주먹을 치켜들자 그제야 광명진천의 입이 열렸다.
“먼저 나를 살려서 보내겠다고 약속해라. 그러면 가르쳐 주겠다.”
“야아! 그렇게 오래 살고도 더 살고 싶을까?”
광명진천은 비웃는 연적하의 말을 무시하고 남궁연만 보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짜증이 난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카캉-.
두 개의 구천검령이 다시 한차례 요동쳤다.
그 소란에 광명진천의 양쪽 목이 베이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광명진천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창조신의 이명이 빙설화를 오밤중에 북악봉으로 나가게 할 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다.
그런 그의 도박이 통했다.
남궁연이 연적하를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적하야.”
연적하는 남궁연의 부름에 뒤로 빠졌다.
하지만 뒤에서 손날로 목을 쳐 죽이겠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광명진천은 대종사의 천박한 행동에 기가 막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넘겼다.
남궁연이 광명진천에게 말했다.
“창조신의 이명을 말해요. 그럼 당신을 이대로 돌려보내 줄게요.”
“창조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라. 너는 신좌에 오르지 못했으니 말만으로 부족하다.”
“창조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요. 됐죠?”
“창조신의 이명은 대자재천(大自在天)이다.”
광명진천은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답했다.
창조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가 얼마나 중한지 남궁연도 알 거라 믿어서다.
“이제 가도 되느냐?”
광명진천의 물음에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허락이 떨어졌음에도 광명진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양쪽 목에 닿아 있는 거대한 구천검령 때문이다.
머뭇거리던 광명진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령을 치워다오.”
그러자 연적하가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보내 준다고 했지 치워 준다고는 안 했다.”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광명진천은 천천히 뒷걸음질쳐 구천검령의 검날에서 몸을 빼냈다.
겨우 빠져나온 광명진천이 막 북악봉에서 떠나려 할 때 연적하가 불렀다.
“어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듯한 호칭에 광명진천은 치가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돌아섰다.
“뭐냐?”
“이번에는 운이 좋아 살아남은 줄 알아.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아주 털끝 하나만큼이라도 잘못해 봐. 그 자리에서 썰어 버릴 테니까.”
“…….”
광명진천은 속으로 ‘네놈에게 다음은 없다’고 저주를 퍼부으며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남궁연은 신무희 노조를 깨워 먼저 안학궁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북악봉 정상의 너른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킁킁거리며 남궁연의 체향을 맡던 연적하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왜 신 노조만 보냈어요? 나도 안학궁에서 자고 갈 수 있는데.”
“아니야. 너는 지금 빨리 옥천항으로 가야 해.”
“왜요? 아침에 가도 돼요.”
그러자 남궁연이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별의 운행이 심상치 않아.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아. 대종사인 네가 늦으면 안 되지.”
“내일요?”
“응, 내일. 천안통으로 확인해 봐.”
그러자 연적하가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연적하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젠장. 왜 안 보이지?”
“안 보여?”
“이게 잘될 때가 있고 잘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별로 기대를 안 해요.”
“오늘의 일은 잘 봤잖아?”
“그건 내가……. 아! 그래서 그런가?”
“그래서 그런 거라니?”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더라고요. 그게 천안통을 하라는 신호였던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중요한 게 아니면 안 보여 준다는 거겠죠?”
“흠. 먼저 육감으로 신호가 오면 잘 보인다는 거네? 그럴 수도 있겠다.”
“왜요?”
“육감으로 신호가 와서 보였다기보다, 그 정도로 네가 간절히 알기를 원한 걸지도 몰라. 육감이 너를 간절하게 만들어 준 거랄까?”
“그럼 지금은 그 간절함이 덜하다는 거네요?”
“긴장이 풀린 것도 사실이잖아. 들떠 있기도 하고.”
들떠 있다는 지적에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누님 말을 들으니 뭔가 흐릿하던 게 선명해지네요. 맞아요. 지금은 그냥 맥이 풀려서 쉬고 싶을 뿐이에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기가 자랄수록 관계는 삼가는 게 좋아. 배 속의 아기에게 위험하거든.”
“아, 그래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네? 별이 이상하다고 했어요?”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차피 오늘 중으로 돌아가려면 북악봉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남궁연이 피식 웃으며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천기(天氣)라는 건 어느 세계나 비슷한 것 같아. 저기 남쪽에 뿌연 별무리 보이지?”
“예.”
“저걸 이곳에서는 ‘전갈좌’라고 불러. 사흘 전부터 그 꼬리가 불길하게 빛나면서 은하에 접근하고 있어. 새벽이면 은하에 맞닿을 거야. 내일 새벽에 마신의 군세가 도하를 시도할지도 몰라.”
“잘됐네요.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마음을 비운 연적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천문은 누님에게 맡기고, 나는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낼 게요.”
“조심해.”
“네, 갈게요.”
곧이어 구름을 타고 오른 연적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정도로 빠른 이별이다.
홀로 남겨진 남궁연은 허전한 눈으로 빈 하늘을 오래도록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