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52
752회. 최단 거리로 모시겠습니다.
프리타 키아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 대종사를 보았다.
그녀가 천족들조차 아직 모르는 천문(天門)의 비밀을 대종사에게 털어놓은 건 당연히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를 위해서였다.
천문의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고 해서 천문을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정보로 대종사의 환심을 사는 게 나았다.
연적하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그녀가 천족들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 준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요. 그래도 교섭의 우선권은 앙겔로스 왕가에 있어요.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죠?”
“물론이죠. 저는 다만 앙겔로스 왕가가 거절하거나, 정한 날까지 회신하지 않았을 때, 저에게 우선적인 기회를 주십사 바랄 뿐이에요. 그건 대종사님이 정한 규칙에 어긋나는 게 아니잖아요?”
연적하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한마디로 앙겔로스 왕가와 틀어지면 프리타 왕가에 활을 넘겨 달라는 소리다.
“그럴게요.”
사실 그건 오히려 바라던 바다.
앙겔로스 왕가와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생명의 나무’ 열매와 마하담(공간의 창고)의 주법만 배우면 된다.
연적하가 흔쾌히 승낙하자 프리타 키아나는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침묵하자 빗소리가 더욱 커졌다.
쏴아아아-.
빗줄기를 응시하던 프리타 키아나가 대종사를 힐끔 보았다.
천족 남자들은 자신에게 구애를 하지 못해 안달인데 이 남자는 자신을 소나 닭 보듯 했다.
천족과 인간은 체형만 다르지 모든 게 같다.
그래서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사는 천족 남자들도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많지 않았다.
천족 남자와 달리 천족 여자들은 왜소한 남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자신은 천족보다 인간에 가까운 체형이다.
당연히 대종사를 보아도 그가 왜소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내 체구가 작으니 대종사도 내가 거인으로 보이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천족들 뿐 아니라 인간들도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 말이다.
“대종사님은 천족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싸움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싸움요?”
“블레이즈 부관과 백리하 전투에서 함께 싸운 적이 있거든요. 어지간한 천족 남자들보다 낫더라고요.”
“아 네, 그럼 다른 쪽으로는요?”
“다른 쪽 뭐요?”
“여성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력이 있나요?”
“매력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쪽으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프리타 키아나는 대종사가 남녀관계에 무지함을 알고 좀 더 노골적으로 나갔다.
“뭐랄까? ‘저 천족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느냐?’라고 할까요?”
“안 드는데요.”
“조금도요?”
“네.”
연적하는 생각할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프리타 키아나는 도리어 오기가 생겼다.
“왜요? 인간보다는 천족이 더 아름답잖아요?”
“내 처가 제일 아름다워요.”
“물론 저도 빙설화 제군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하지만 천족 여자들도 그 못지않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아니에요.”
“아, 그러시구나.”
프리타 키아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제 처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내에게 무슨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천족의 미모로 그에게 접근하기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아쉽지만 주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참, 그런데 대종사님은 어떻게 종문에 입문할 생각을 하셨어요?”
“사람을 찾으려고요. 구주를 마음껏 돌아다니려면 종문 제자가 돼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찾으셨어요?”
“네.”
“아, 그러셨구나.”
프리타 키아나는 대종사가 찾아다닌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정보는 힘이다. 대종사에 관해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천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
조금쯤 집요하게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그 사람이 누군가요?”
“처요.”
“아…….”
프리타 키아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살자(神殺者)이자 이 세계 최강자인 그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빙설화가 있었다.
까닭 모를 답답함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일 때다.
갑자기 산등성이 아래, 정확히는 협곡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천족 몇이 부산하게 뛰어다니더니 이내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뿌우우우-.
세 번의 뿔나팔은 적과 교전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연적하와 프리타 키아나는 후다닥 의자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프리타 키아나의 입에서 뾰족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마왕군이 움직이려나 봐요!”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협곡 안쪽에서 마물들이 새까맣게 밀려 나왔다.
그 기세는 마치 둑이 터진 것 같았다.
협곡 입구에 세워져 있던 천막들이 홍수에 쓸린 것처럼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마왕군의 전격적인 기습에 천족군은 삼 리(약 1킬로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애초에 마왕군을 격멸하려고 모인 천족군이다.
천족군은 이내 진영을 갖추어 반격에 나섰다.
폭우 속에서의 전투는 마물과 천족, 인간 모두에게 낯선 것이었지만 누구도 피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종문 고수들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북부군이 선두에 있었지만 삼 리를 후퇴한 것의 대가는 컸다.
마물들이 협곡 밖으로 나온 탓에 이젠 중간(종문)과 후미(서부군)의 구별도 없었다.
북부군과 종문, 그리고 서부군은 넓게 퍼져서 마물을 에워싸는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왕군의 씨를 말리겠다는 듯 사납게 몰아쳐 갔다.
천둔검으로 마물을 베어 넘기던 연적하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좌우편을 지키던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가 바람처럼 다가왔다.
이윽고 페라르바 존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종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마물밖에 없어요.”
페라르바 존자는 단번에 말뜻을 알아차렸다.
급히 좌우를 둘러보던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마물을 부리던 마귀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계곡 입구 쪽에서는 아직도 꾸물꾸물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죄다 마물뿐이었다.
백은 존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미에 있다가 혼란을 틈타 달아나려는 걸까? 아니면…….”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페라르바 존자가 혈주종의 칸쑤우 노조를 불렀다.
“예!”
칸쑤우 노조는 감히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페라르바 존자가 칸쑤우 노조에게 물었다.
“천독곡이 퉁룽챈녹(혈주종 종문)에서 멀지 않은데, 이곳에 대해 아느냐?”
“백독문도들 만큼은 모르나 기본적인 건 알고 있습니다.”
“천곡독 내에 뒷길이 있더냐?”
“없습……. 아, 천독곡 안쪽에 작은 균열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다만 좁고 위태로워 짐승들도 다니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균열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아느냐?”
“북쪽으로 뚫려 있습니다.”
“북쪽이면 금산산맥인가?”
“그렇습니다. 천독곡에서 북으로 사흘이면 금산산맥의 초입입니다.”
페라르바 존자가 황급히 대종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종사님. 마왕이 균열로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연적하는 협곡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꾸역꾸역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고위급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예측이 맞는 것 같다.
“저 마물들을 죽이고 천독곡 안까지 들어가는 데 최소한 두 시진(4시간)은 걸리겠죠?”
“그렇습니다.”
마물들이 천독곡으로 후퇴하면 입구가 좁아 토벌에 애를 먹게 될 터였다.
“이곳의 일은 두 사람이 마무리를 해 줘요. 나는 천족들과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예!”
“맡겨 주십시오.”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가 큰 소리로 답했다.
두 사람은 이 기회에 자신들의 잘못을 만회할 생각이었다.
연적하는 두 존자들에게 종문을 맡기고 바람처럼 전방으로 달려갔다.
전방 북부군 진영.
북부군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지 지휘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슬쩍 지면을 차고 날아오른 연적하는 북부군 사령관의 앞에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대종사님!”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반색을 하며 그를 맞이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종사에게 천족 전령을 보내려던 참에 그가 와 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대종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왕이 꼼수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마물들을 앞으로 내몰고 달아나려는 게 분명합니다. 천독곡 안쪽에 외부로 통하는 길이 있는지 혈주종 제자에게…….”
연적하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렇지 않아도 혈주종 노조에게 알아봤어요. 천독곡 뒤쪽에 북쪽으로 향하는 균열이 있다고 하네요. 협곡 입구에 마물만 가득한 걸 보니 마왕과 마족, 마귀들은 그리로 빠져나갈 생각인 것 같아요.”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걸 강조했다.
연적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마물들을 처리하고 천독곡 안쪽으로 들어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그때쯤이면 늦어요. 마족들이 균열에 손을 썼을 수도 있고.”
대종사의 말에 북부군 지휘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들이 쫓기는 입장이라도 균열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시간이나 정황상 마왕을 뒤따라가는 건 곤란하겠군요.”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균열의 상태가 어떤지는 둘째치고 마물을 토벌하고, 마왕을 추격하는 건 뒷북에 가까웠다.
그러자 참모장 퀴리아노스가 말했다.
“균열이 북쪽으로 향한다면 마왕의 목적지는 금산산맥이겠군요.”
“그럴 거예요. 천관산맥보다는 금산산맥이 훨씬 가까우니까. 천독곡에서 금산산맥 초입까지 사흘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허면 차라리 마왕 토벌대가 금산산맥 초입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마왕보다 토벌대가 금산산맥 초입에 도착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참모장의 말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대종사를 힐끔 보았다.
‘마왕 토벌대’라고 말은 거창했지만 실은 대종사가 해 줘야 하는 일인 까닭이다.
“그러죠.”
연적하는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토벌대가 출발해도 균열을 통과해야 하는 마왕보다 빨리 도착할 게 분명했다.
대종사가 동의하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직접 대종사님을 모시고 가겠다. 천독곡은 부사령관이 맡도록.”
부사령관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왕이 균열로 달아났다면 천독곡의 토벌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남아 있는 서부군과 종문의 인원을 생각하면 과할 정도였다.
이윽고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종사님, 가시지요. 금산산맥의 초입까지는 저희 참모장이 잘 안내할 겁니다.”
북부군 사령관이 신호를 보내자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대종사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맡겨 주십시오. 금산산맥 초입까지 최단 거리로 모시겠습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길을 모르는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시 후 연적하와 북부군 사령관의 직할 부대가 천독곡을 떠났다.